※ 이 글은 「[한국 수학이 왜 문제인가] ①과연 수능의 범위는 타당할까?」에서 이어집니다.
기하와 벡터가 어려운 이유
2021년 수능의 수학 범위에 관한 기사가 처음 나왔을 때, 한 학생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다음 동영상을 확인해 보시라.
그리고, 이에 대해 수학과 교수는 다음과 같이 반론을 제기했다.
우선, 나는 학생의 말에는 동의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수학과 교수의 말에도 100% 동의하지도 않는다.
우선 기하와 벡터(엄밀히 말하면 벡터 또한 기하에 포함되지만)는 다른 나라 고3 수준을 생각해 볼 때 배워야 할 범위에 충분히 포함될 수 있다. IB나 A-Level 시험을 주로 보는 영국의 경우, 기하학과 벡터는 수학을 선택한 이들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범위이다. 물론 고3을 졸업할 만한 수준에는 포함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대학에 입학하여 학업을 수행하기 위한 기본 과정의 측면에서 봤을 때는 당연히 있어야 할 범위이기도 하다. 심지어 수학 최소한의 범위를 다루는 SAT(일반)의 경우도 기하학(혹은 도형) 문제는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어쨌든 기하학을 고3까지 수학의 범위에 넣을 것이냐 말 것이냐의 문제는 논외로 한다.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는 ‘과연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기하와 벡터, 보다 넓은 의미로 기하학이 정말 어려운 과목인가’ 하는 점이다. 물론 대학 혹은 대학원에서 배우는 기하학은 어려운 분야이다. 사실 모든 수학 분야가 대학교 고학년 이상을 넘어가면 다 어렵다. 내가 이야기하는 것은 고3수준(K-12의 12학년 수준, Y13의 13학년수준)의 기하와 벡터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 고3 수준의 수학은 어떨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고3 수준의 수학은 절대로 쉽지 않다. 그리고 쉽지 않은 수학 과정을 쉽고 재미있게 가르칠 방법은 없다. 이러한 수학을 제대로 이해하고 활용하기 위해서는 본인이 공부해야 한다. 그렇다. ‘본인’이 해야 하고 ‘본인’이 깨쳐야 한다. 그래서 나는 위의 수학과 교수가 하는 말 또한 동의를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이들의 입장은 어떨까? 적어도 인터뷰의 내용을 보면 요즘 아이들이 기하학을 어려워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 말이 거짓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어려운 수학 문제’가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을 해볼 필요가 있다.
과연 어려운 수학 문제란 무엇인가? 수학이 학문적 탐구의 여부를 떠나 중요한 이유는 바로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을 키워준다는 데 있다. 수학을 옹호하는 많은 이들도 수학을 배워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같은 이유를 말한다. 수학문제가 어렵다는 의미는 아마도 크게 둘로 나뉠 것이다.
- 많이 생각해야지만 풀 수 있는 문제
- 많이 알아야지만 풀 수 있는 문제
로 나눈다. 특히 변별력을 요하는 전 세계의 수학 시험(수능, IB, A-Level, SAT등)들에 나오는 문제들의 난이도는 거의 이 두 가지 요소에 의해 결정이 된다. 물론 수학의 종류에 따라 지식적인 내용을 아는 것이 더 필요한 분야가 있고 많이 생각하는 것을 더 필요로 하는 분야가 있다(그렇다고 생각을 많이 해야 하는 분야가 지식적인 습득이 전혀 필요 없다는 뜻은 아니며, 그 반대도 아니다. 다만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것뿐)
예를 들면 이렇다. 미분과 적분은 극한을 배워야 적용할 수 있다. 미분, 적분, 극한의 지식이 없는 이들에게 미분, 적분 문제는 어려운 걸 넘어서 ‘풀 수 없는’ 문제에 해당한다. 특히 근간이 되는 ‘극한’은 단순 공식이 아니라 개념적으로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이에 반해, 기하는 지식적인 부분이 미, 적분에 비해 그리 많지 않다(물론 고3 수준의 수학을 기준으로 하는 이야기다). 즉 기하는 생각을 많이 해야 하는 문제에 가까운 것이다. 많이 알아야 풀 수 있는 문제는 공식을 외우고 있는 등 해당 지식을 알고 있으면 풀 수 있는 문제들인 반면, 생각을 해야 하는 문제는 근본 원리를 파악해야 풀 수 있는 문제들이다. 기본적인 원리만 가지고도 다양한 유형의 문제 출제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유형의 문제들을 잘 풀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 생각하는 능력은 학원을 다닌다고, 문제를 많이 푼다고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생각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유년 시절에 수학을 배워야 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생각하는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뭘 해야 하는가?
당연히 생각을 많이 해야 한다. 이는 역시 학원에서 지식을 넓힌다고, 문제를 많이 푼다고 해결되는 능력이 아닌 것이다.
한국 수학이 어려울 수밖에 없는 이유
그렇다면 왜 한국 수학은 어려운 것일까? 이는 사실상 ‘변별력’과 상관이 있다.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을 키우는 게 수학 교육인데, 이 근본 이유와 상관없이 한국 수학의 모든 과정이 대입(수능)에서 시작해서 대입으로 끝나는 게 문제인 것이다.
즉, 한국 수학은 아이들의 사고 능력이나 문제 해결 능력을 기르는 것과 별개의 목적을 가진다. 그것은 눈에 보이는 잣대로 학생들을 평가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문제를 잘 푸는 사람이 많아지면, 변별력을 기르기 위해 어려워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무리 수학 문제를 모든 난이도 별로, 체계적으로 구성해서 만들었다 하더라도 그 문제가 대입처럼 아이들을 선별해야 하는 시험이라면, 그리고 시험을 치는 집단의 성적이 모두 다 잘 나온다면 문제를 어렵게 만들 수밖에 없다는 의미이다.
구체적인 예시를 들어보자. 수학 성적만으로 100명의 아이들을 뽑는데 만점을 받는 아이들은 150명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든지 100명의 아이들(혹은 그 이하)만이 만점을 받도록 난이도를 조정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150명의 아이들이 수학 만점을 받았다는 것과, 만점을 받은 아이들이 고3 정도의 나이에 필수적으로 배워야 하는 수준의 수학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라는 것이다. 즉 100명 정도 만점이 나올 시험에 150명이 만점이 나왔다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아이들의 수학 실력이 좋아서일 수도 있지만, 시험 문제가 변별력이 없어서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원래 수학 문제의 목적은 수학 능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데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수학 문제는 수학능력시험에서 학생들을 선별하는 ‘변별력’에 있기에 이렇게 기이한 현상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이는 아이들이 실제로 필요한 수학 능력을 학습했느냐의 여부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그래서 수능 시험의 성적과 고3 정도 나이에 갖춰야 할 수학 실력은 완전히 별개의 것으로 존재한다.
이런 점에서 봤을 때, 고차원 미적분을 수능에서 척척 풀고 기하와 벡터 문제를 풀어내던 고3들이 국내 명문대에 합격해 수학 실력이 영 없다고 교수들이 불평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왜 이렇게 기이한 현상이 나타나는 것일까? 물론 수학문제의 목적이 다른 것도 이유이긴 하다. 하지만 문제의 근본에는 ‘볼드모트’가 있다. (계속)
원문: Amang Kim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