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 글에서 이어집니다.
- [한국 수학이 왜 문제인가] ① 과연 수능의 범위는 타당할까?
- [한국 수학이 왜 문제인가] ② 수능 수학이 어려운 이유
- [한국 수학이 왜 문제인가] ③ 대한민국 수학 교육의 근본적인 문제는?
우선, 볼드모트가 누구인지 밝히기 전에 볼드모트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우선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
- 소신은 중요하지 않다. 사회적 분위기가 중요하다.
- 옳고 그름 또한 중요하지 않다. 따지자면 다수의 사람이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 설령 안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손해라 생각하면 절대로 행하지 않는다.
- 자기 자식들에게는 옳은 것에 대한 행함보다는 대다수의 눈치를 보고 행해야 함을 먼저 가르친다.
- 내가 손해나는 일은 절대 하지 않는다.
- 실질적 약자와 (정치적) 프레임에 의한 약자를 구별하지 못한다.
- 내가 못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이 나를 못 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 아이러니한 패거리 문화를 갖추고 있다.
- 내 새끼가 좋은 대학 간 건 실력이고, 남의 새끼가 대학 들어가는 돈지랄이다.
볼드모트, 그들은 누구인가
우선, 얼마 전에 인터넷에 올라온 다음 기사를 보자.
이 기사의 주요 골자는 여러분들이 알아서 판단하시고, 중요한 것은 이렇게 불완전한 ‘학종(혹은 입학사관)’제도가 바로 미국의 대학 입학제도라는 것이다. 미국뿐만 아니라, 우리가 이야기하는 유럽, 호주 등의 선진국들 또한 학종과 비슷한 류의 입학 사정을 진행한다.
이러한 학종 제도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지원자들이 학교를 신뢰하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이러한 신뢰가 없다. 물론 이런 신뢰가 쌓이지 않은 데 비단 볼드모트에게만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애초에 누군가의 잘잘못을 따지려는 글이 아니다. 하지만 학교나 국가, 교육부에 대한 신뢰가 없는 이러한 상태에서는 이처럼 ‘종합적인’ 평가 방법은 성공할 수가 없다. (이런 입장에서 어떤 시험 제도가 가장 적합한지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다루도록 하겠다) 사실, 어떠한 제도 위에서 어떠한 시험 범위로 문제를 출제하더라도 ‘볼드모트’를 만족시킬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없다.
수학이 중요한 이유는 수학 공식이 중요해서도, 대입에서 배점이 높아서도 아니다. 수학이 중요한 이유는, 수학이라는 학문이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을 키우는 몇 안 되는 학문 분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생활과 직접적인 연관이 가장 높은 분야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최근, 집합을 과정에서 빼겠다든가 기하/벡터를 고등 과정에서 뺀다고 난리 치는 것을 보면 경악을 금치 못하겠다. 그래서 수학을(누구에게?) 잘 교육하고 싶은 볼드모트에게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싶다.
1. 문제를 빨리 많이 푼다고 생각하는 능력이 늘어나진 않는다.
일전에도 이야기했듯이, 아무리 어렵고 복잡한 문제를 많이 연습한다고 해서 생각하는 능력이 늘어나지는 않는다. 생각하는 능력은 오로지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것, 그것만으로만 향상시킬 수 있다.
2. 선행학습 및 문제 연습은 생각하는 능력을 없애는 지름길이다
일단 답을 알면 생각하는 능력이 급격히 저하된다. 선행학습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시험 성적 향상을 위한 속성 선행학습과 단순 문제 풀이를 연습시키는 것은 아이들의 생각하는 능력을 망친다. 아이들의 진정한 수학 능력 향상을 원한다면, 선행학습과 문제연습을 당장 그만두라.
한 문제를 오래 생각하도록 해야 한다. 증명 문제, 벡터를 요하는 정역학(Statics) 문제, 미적분을 요하는 동역학(Dynamic) 문제, 수학 자체의 난이도는 낮으나 생활에 밀접한 문제가 좋다. 단, 답을 가르쳐줘서는 안 된다. 그러니 학원에서는 어렵다.
3. 생각을 키우는 학습을 하게 되면 현 제도에서의 수능은 망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 생각하는 능력을 키우는 학습만으로 현재 대입 수능을 잘 본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우리나라 사교육 시장의 능력은 어마무시하다. 심지어 생각을 요하도록 설계된 해외의 문제들조차도 ‘패턴’과 ‘연습’으로 무력화시키는 어마무시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최근 학원가에서 들리는 풍문에 의하면 SAT-Subject는 이미 점령(?) 당한 지 오래고, 최근에는 A-Level조차도 쪽집게 과외가 등장하여 해외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조차 방학 동안 국내로 불러들이고 있다고 한다.
나 개인적으로는 우리나라 교사분을 무척 존경하고, 그에 못지않게 학원에서 일타 강사를 하는 분들도 존경한다. 하지만 그토록 뛰어난 그들의 역량이 아이들의 실질적인 실력 항상을 목표로 두는 게 아니라 볼드모트의 허영심을 채우는 데 맞추어져 있다는 것이 서글플 뿐이다.
4. 하지만, 생각을 키우는 학습을 한 아이들이 결국엔 성공한다.
생각을 키우는 학습을 한 아이들, 수학적 사고를 키우는 교육을 받은 아이들은 수능시험에서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물론 성공하는 학생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설령 수능에 실패했다 하더라도 이렇게 사고능력을 키우는 학습을 한 아이들은 결국 성공하게 된다. 생각을 키우는 교육은 자기 주도적 학습과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이런 아이들이 대학 공부, 대학원 공부, 혹은 해외에서의 유학을 하게 된다면 이때부터 진가를 발휘하게 될 것이다.
5. 교육제도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글쎄?
볼드모트는 이야기할 것이다.
현재의 제도에서 대학을 가려면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
우리도 수학적으로 생각하는 아이들을 키우고 싶다. 하지만 대학을 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
정말 그럴까? 물론, 제도가 문제일 수도 있고 사회가 문제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단시간에 제도만을 바꾸는 것은 오히려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것, 그러니까 사람이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 표면적으로 보이는 제도만을 바꾼다면 결국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상황을 개선할 방법은 영영 없는 것일까? 이에 대한 대답을 하기 전에, 다음 예제를 보고 고민해 보자.
- [상황 1] 버스 정류장에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그런데 누군가 새치기를 시도해서 성공(?)했다. 줄 끝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던 당신, 어떻게 할 것인가?
- 새치기 한놈이 나쁜 놈이다. 그냥 줄을 선다.
- 나도 시간 없다. 같이 새치기를 시도한다.
- [상황 2] 버스 정류장에 줄 서는 표시는 있는데 아무도 질서를 지키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버스가 오면 아비규환이 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정류장에 거의 마지막에 도착한 당신, 어떻게 할 것인가?
- 다른 놈들도 줄을 안 서는데 나만 줄 서면 무조건 손해다. 나도 새치기한다.
- 그래도 줄을 서는 게 옳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줄 선다(물론 제때 버스는 못 탄다).
[상황 1]에서 2번 새치기를 택할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런데 [상황 2]라면 어떨까? 모든 사람들이 질서를 지키지 않는다면, 이 상황에서 나만 질서를 지키는 게 손해일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이들처럼 눈 딱 감고 새치기를 할 것인가?
중요한 것은, [상황 2]에서 모든 사람들이 1번 새치기를 선택한다면, 이런 무질서한 상황이 절대로 개선되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하지만 몇 명이라도 2번을 택한다면, 그리고 뒤이어 오는 사람들이 그것을 목격한 뒤 줄을 서기 시작한다면 다시 버스 정류장에 질서가 찾아올지도 모른다. 개선될 수 있는 최소한의 가능성이 생긴다는 말이다.
모두가 줄을 서게 된다면 바뀌는 것들
다시 수학교육의 문제로 돌아오자. 우리나라의 교육/대입은 현재 [상황 2]의 버스정류장과 같다. 볼드모트의 대부분도 수학 교육을 어떻게 하는 게 궁극적으로 옳을지 ‘머리로는’ 알고 있다. 하지만 대학을 가기 위해서는 다른 이들처럼 단순 반복의 문제풀이 연습을 시켜야 한다. 단시간에 많은 양의 문제를 풀어야 하는 수능 특성상, 아이들을 생각하도록 키우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내 아이에게 불이익이 생기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그러니 ‘손해 보지 않기 위해서라도’ 과외를 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옳은 것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모든 볼드모트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대한민국 아이들의 수학능력은 날이 갈수록 하락할 것이다. 반대로 대입 수학 문제는 갈수록 어려워질 것이다. 그리고 볼드모트는 여전히 제도를, 사회를 탓할 것이다. 그렇게 더 좋은 학원, 더 좋은 일타강사를 쫓아다닌다. 그리고 이런 사회가 올바로 변할 가능성은 사라져 버린다!
그러니 방법은 하나뿐이다. 다만 몇 명이라도 옳은 가치관을 가지고 아이들을 키우는 것이다. 그렇게 커 가는 아이들에게 옳은 가치관을 심어주고, 그렇게 커나간 아이들이 성공한다면 그나마 사회가 바뀔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다. 마치 [상황 2]의 버스정류장처럼 2번 줄을 서는 사람들? 때문에 바뀔 ‘가능성’이 생기는 상황처럼 말이다.
결국 올바른 가치관을 지키려는 한 사람에 속할지, 대중에 휩쓸려가는 무리 중 한 명이 될지는 본인의 몫이다. (계속)
원문: Amang Kim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