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민영화야, 아니야?
1. 철도공사는 12월 10일 이사회를 열고 수서발 KTX 분할 법인 설립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철도노조는 이것이 민영화의 초석이라 보고 총파업에 들어갔다. (시사in, “‘4대강 사업’과 똑 닮은 ‘철도 민영화’”, 2013.10.21.)
2. 수서발 KTX를 가져갈 코레일 자회사는 ‘코레일이 지배권을 갖는 계열사 형태의 출자회사로 출범’하며, 코레일이 41%, 공공자금이 59%의 지분을 가져가게 된다. (프레시안, “코레일, 국토부 ‘꼭두각시’? 수서발KTX 설립 강행”, 2013.12.15.)
3. 이 지분은 “또 이 지분은 공공 부문의 참여를 유도하되 부족할 경우 정부가 직접 운영 기금을 투입하고 정부와 지자체ㆍ공공기관ㆍ지방 공기업에만 주식을 양도ㆍ매매할 수 있도록 정관에 명시하기로 했다.” (아시아경제, “철도파업 부른 ‘수서發 KTX’ 지분 59%…민영화 가능성은?”, 2013.12.09.)
4. 문제는 이 ‘정관’이다. 주식 매각을 제한하는 정관의 문제로는 크게
4-1) 상법 위반으로 무효화될 수 있다는 점 (뉴스1, ““수서발 KTX, 연기금 주식 민간매각 가능…민영화 불씨””, 2013.10.15.)
4-2) 정관의 변경이 불가능하지 않다는 점이 있다. 정부의 해명에는, 이사회가 정관을 변경하기 위해선 ‘코레일이 동의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는 단서가 붙는데, 이는 바꿔 말하면 코레일 혹은 정부가 입장을 선회하면 정관 변경은 얼마든지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머니투데이, “‘철도 민영화’ 가능?… 정부-노조 법리논쟁 가열”, 2013.12.08.)
5. 한편, “9일 국회 등에 따르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여야 간사는 수서발 KTX 운영회사 공공 지분의 민간 매각 금지 방안을 운영회사 정관이 아니라 법령에 명문화하도록 합의했다.” 간혹 ‘국토부가 법제화를 제안했는데 여전히 이에 대한 의심이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는 주장이 보이기도 하나, 이는 국회 소속의 국토위와 행정부 소속의 국토부를 구분하지 못해서 생긴 착각이다. (아주경제, “국토위 “수서발 KTX 지분 민간 매각 금지 법제화””, 2013.12.09.)
한편, 현재 코레일을 둘러싼 논란을 바라보는 정부-여당과 야당의 시각차가 대단히 크기 때문에, 민간 자본 매각을 금지하는 법률이 얌전히 국회에서 통과되리라고 기대하는 것도 지나치게 안이하다. (뉴시스, “與野, 철도노조 파업·직위해제사태 시각차”, 2013.12.10.)
6. 현재 이뤄지고 있는 수서발 KTX 자회사 설립은 ‘민영화’인가? 라고 묻는다면, ‘그렇지 않다’고 현재로서는 답할 수 있다. 정부가 말하는 바도 ‘민영화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도 민간의 자본소유는 없을 것인가’에 대한 보장은 아직까지 어디에도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정부-코레일이 입장을 선회하여 민간에 자본 매각을 시도할 경우, 이를 막을 수 있는 법적 장치가 현재까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7. 지난 11월 정부가 국회의 동의를 얻지 않고 독단으로 개정한 정부조달협정이 철도 민영화의 수순이 아니냐 하는 의혹도 있다. (KBS, “산업부 “정부조달협정 개정, 철도민영화와 관계없다””, 2013.11.18., 머니투데이, “靑 “정부조달협정 개정, ‘철도민영화’ 명분 약화시켜””, 2013.11.27.)
“한편, 최근 행정부 독단으로 개정된 정부조달협정에 관해, “정부는(…)“개정안 내용은 건설, 유지보수, 부품, 자재 장비조달 입찰에 해외 업체가 국내 업체와 동등한 조건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한 것으로 공기업 민영화와는 다르다”(…) 실제로 정부조달협정 개정안을 살펴보면 고속철도의 운영권을 외국 기업에 넘기는 것은 아니다. 또 고속철도 차량의 조달시장 역시 열리지 않았다.
경실련·참여연대 등 시민사회진영과 철도노조 등은 하지만 개정안이 발효되면 공공부문 민영화가 가속화될 것이라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공공기관의 경영권이 해외 업체로 넘어가지 않더라도 추가로 개방된 분야에서 상업적인 운영이 강화될 경우 공공성이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다. 사회공공연구소 박흥수 객원연구위원은 “최근 공기업 민영화는 정부가 지분은 소유하되 사업권 불하 같은 다양한 방식을 통해 은밀하게 진행된다”고 말했다.” (주간경향, “[경제]정부조달협정 개정안 논란 왜?”, 2013.12.10.)
중요한 것은 ‘경쟁체제 도입’
1. 민영화가 이렇듯 ‘아직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앞으로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이라는 ‘가능성’을 두고 싸우는 문제라면, ‘철도 경쟁체제 도입’은 정부가 공언하는 사실이자 자회사 설립의 핵심 이유로서의 문제이고, 현존하는 실질적 논점이다. (나는 노조와 시민사회가 지금 당장, 보다 초점을 맞춰야 하는 부분은 바로 이 지점이라고 본다.)
2. 공공부문이 지분의 59%를 가져가는 수서발 KTX 법인, 즉 ‘수서 고속철도 주식회사’는, 그만큼의 수익을 내고 투자자들에게 이윤을 돌려주지 않으면 지속될 수 없다. 문제는 여기서 다루는 것이 ‘철도’라고 하는 공공서비스라는 데 있다.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서비스는 ‘흑자’가 아닌 ‘공공성’을 목적으로 한다. 이를테면 수도권에 비해 이용자가 현저히 적은 지역에서의 철도 운행 등, 시장경제논리로 보았을 때 ‘경제적이지 못한’ 분야에도 ‘공익을 위해’ 지출하는 것이 공공서비스이며, 이는 당연히 일정정도 비용의 상승과 적자로 이어지고, 이는 세금을 통해 보전된다.
그런데 주식회사로 전환되면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운영이 시작될 수밖에 없고, 여기서 이윤을 내고자 하는 시도는 철도라고 하는 공공서비스를 이용하는 국민의 부담, 철도 노동자들의 부담, 그리고 공익의 손실로 고스란히 돌아올 수밖에 없다.
3. 공공서비스라고 하더라도, 세금으로 운영되는 이상, 최대한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건 당연한 사실이다. ‘방만한 운영’으로 인해 ‘불필요한(즉, 공익을 위한 어쩔 수 없는 것들을 제외한)’ 손실이 발생한다면 그것은 그 나름대로 ‘합리화’ 혹은 ‘효율화’를 추구해야 하는 부분인 것이다. 정부와 코레일이 말하는 경쟁체제 도입의 이유도 이 지점에 있다. 하지만 정말 그런가? 우리가 여기서 물어야 할 것은 두 가지, 즉
3-1) 현재 철도산업은 (정말 정부가 말하는 것처럼) ‘비효율적’인가? (왜?) 와,
3-2) 만약 그렇다고 친다면, (코레일 자회사인) 수서발 KTX 주식회사 설립과 이를 통한 코레일-코레일 자회사 간의 ‘경쟁’은 ‘효율화’에 기여하는가? (어떻게?) 이다.
첫 번째 의문에 대해서는
(저련, ‘철도공사는 정말로 방만하고 안이한 회사인가?’, “ㅍㅍㅅㅅ”, 2013.06.17.)
가 그 해답이 될 수 있겠으며, 두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저련, ‘민영화가 한국철도에 이익을 가져올 수 있는가’, “ㅍㅍㅅㅅ”, 2013.06.21., )
(저련, ‘철도 덕후가 본 철도 민영화가 부당한 이유’, “ㅍㅍㅅㅅ”, 2013.06.27.)
(프레시안, ““정부, 수서발 KTX 수요 예측 부풀렸다””, 2013.10.04.)
(국토교통부, “수서발 KTX 자회사 운영해도 현재 수준 이상 수익”, 2013.12.11.)
(프레시안, “코레일, 국토부 ‘꼭두각시’? 수서발KTX 설립 강행”, 2013.12.05)
가 그 판단의 기준점이 되어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4. 한편, 수익성이 높은 수서발 KTX 노선을 주식회사가 가져가면 그 ‘경쟁’으로 인한 손해는 고스란히 코레일에 전가된다. 공공성을 추구하는, 수익성이 낮은 노선들을 지속적으로 운영하려면 도심에 위치한 수익성이 높은 노선에서 어느 정도 이윤을 취해 그 손해를 보전해야 하는데, 수서발 노선이 분리되어, 수익이 주식회사로 들어가게 된다면 기존의 구조는 무너지고, 코레일의 ‘비효율성’이 더욱 커지게 되는 한편, 수서발 KTX 주식회사의 ‘효율성’이 부각되어 경쟁체제 도입-민영화 주장이 더욱 탄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가 생겨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