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공사는 정말로 방만하고 안이한 회사인가? 에서 이어집니다.
민간 참여는 한국철도에 이익을 가져올 수 있는가?
민간사업자는 철도를 통해 수익을 올리려고 할 것이다. 나는 여기서 이들의 참여가 현재 예정된 준비 하에서 사업자에게 이익이 될 것인지, 민간 참여가 철도부채 문제에 도움이 될 것인지, 그리고 이용객의 편익을 개선하는데 충분한 도움이 될 것인지 판단해 보고자 한다.
앞서 지적했듯, 철도사업을 통해 수익을 올리려면 적정 수준의 운임이 보장되어야 한다. 물론 이미 철도공사도 고속철 사업에서 어느 정도 영업 이익을 올리고 있기 때문에, 적어도 수도권고속철 운영사업자가 영업 이익을 올릴 수 있다고 보는 데는 무리가 없다.
하지만 고속철은 고급 교통수단으로, 어느 정도는 사업자가(결국 승객에게 전가된다) 건설비를 부담해야 하는 시설인 것이 사실이다. 고속열차의 편익은 건설 후 수십 년에 걸쳐 발생하므로, 이 부담은 부채의 형태로 사업자가 짊어지게 된다.
각 노선별로 사업자 부담 비율이 달라지는데, 대체로 절반 정도는 사업자의 부담이다. 이에 대해 철도공사나 철도 동호인들은 불만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다른 교통수단과의 형평성을 생각하면 이 결정은 타당한 것이다. 예를 들어 전국의 모든 고속도로망과 인천공항의 경우 건설비의 상당 부분이 부채로 조달되었다(심지어 인천공항 3단계의 경우는 전액 부채로 건설한다).
고속철 건설부채의 현황은 이렇다.
약 19조 원의 부채가 고속철 사업으로 발생한 셈이다. 결국 이 돈은 고속철 사업자의 부담이고, 물론 승객에게 전가될 것이다.
인프라 건설부채는 앞서 말했듯 편익이 건설 후 수십 년에 걸쳐 발생하므로, 부채 상환 부담을 세대 사이에 균등하게 분할하는 작업이 중요하다. 상환되는 부채의 가치를 매년 동일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시중 이자율을 감안하여 미래의 부채 상환액수를 할인해 평가할 필요가 있다. 미래에 갚을 부채는 그만큼 불확실하기 때문에, 할인해 평가해야 한다.
다음 표는 18.9361조원의 부채를 30년 내로 매년 동일한 절댓값만큼 상환하려면 얼마를 내야 하는지 계산한 표이다. 모든 연도의 상환액수 절댓값은 동일하다. 단, 현재 KDI가 인프라 건설사업 예비타당성평가에 사용하는 사회적 할인율인 5.5%/년을 적용하여 미래에 지불할 원금의 가치를 할인했다.
매년 1.2751조원을 내면, 부채로 인한 부담을 30년 뒤 시점까지 균등하게 분할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물론 이 경우, 절대가치로는 약 38조 원을 부채 처리를 위해 납부해야 한다. 원금과 38조 원의 차이는 이자로 보면 된다. 물론 이 값은 추정치이니, 독자 여러분께서는 고속철 부채의 원활한 상환을 위해서는 1조 원 이상의 원리금 상환이 있어야 한다는 지적 정도로 보면 된다.
그런데, 현재 고속철도 사업자들이 갚아나가고 있는 부채는 1.2751조원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고속철 부채의 60%가량을 부담하는 시설공단의 경우, 철도공사가 시설공단에 납부하는 선로사용료 0.25조원 가운데 0.1조원은 고속철도 유지보수비용으로 충당하고 약 0.15조원 정도의 여유만이 있을 뿐이다(2011년 철도통계연보, 1636쪽, 1648쪽).
철도공사는 부채를 갚아나가기는커녕, 고속철도가 속속 개통되면서 계속 부채를 인수하고 있는데다가 고속열차 추가도입 등 막대한 투자 소요로 인한 차입금이 계속 증가하는 상태다. 국토부는 철도부채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은 파악하고는 있으나, 이것을 해결할만한 뾰족한 대안을 내놓지는 못하고 있는 상태다.
만일 새로운 고속철도 사업자가 이렇게 심각한 상태에 있는 고속철도 부채를 일정 부분 분담하지 않는다면, 이는 심각한 직무유기이자 사업자에 대한 특혜라고 할 수 있다. 철도공사와의 공정한 경쟁을 위해서는, 경부고속철도로 인한 부채를 포함해 고속철도 건설 부채 전체를 열차 운행 비율에 맞게 분담해야 한다.
나는 처음 교통연구원에서 <수서發 고속철도 운송사업 제안요청서(초안)>을 발표했을 때, 그 내용에 따라 분석하면 현재의 선로사용료 납부 조건에 따라 철도공사에 사업을 맡겼을 때보다 철도시설공단의 철도자산으로 인한 수익이 1천억 원 가량 증가할 것으로 추정한 바 있다. 그렇다면 이 안은 고속철 부채 부담을 경감하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좋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현재 수도권고속선 및 호남고속선용으로 현대로템에 발주된 고속열차는 22개 편성에 불과하기 때문에, 민간사업자는 정액으로 설정된 시설 임대료를 납부할 만큼의 수익을 올리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다시 다루겠지만, 최근 민간운영 계획을 용역 발주한 네 개 노선의 경우, 국토부는 철도공사에 주는 보조금보다 적은 보조금 지급을 바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수도권고속선이든, 4개 신규 노선이든 민간이 반드시 수익을 낼 수 있다는 보장이 있는 계획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게다가 철도운임 상한선을 올린다는 이야기도 없으니, 민간사업자가 고속철 부채의 구원군 역할을 하면서 동시에 수익을 창출하는 것은 사실상 힘든 일일 것이다.
차량 부족 문제는 철도공사가 수도권고속선을 운영하게 하면 보완할 수 있다
특히 수도권고속선 차량 부족 문제는 민간사업자의 이익 실현에도 악영향을 끼칠 뿐만 아니라 이용객의 편익에도 악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나는 이를 보이기 위해, 가상의 고속열차 운전시각표를 작성해 보았다. 현재 발주된 고속열차는 22개 편성에 불과하나, 내가 작성한 가상 운전시각표에서 열차 운행을 위해 필요한 편성 수는 최대 25개였다. 예비차량과 각종 정비, 중련에 필요한 차량 숫자를 감안할 때, 거의 10개 편성은 모자란 상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대중교통은 승용차 등의 개인교통과는 달리 차량에 맞춰 일정을 짜야 하므로 사람들이 불편함을 호소한다. 따라서 언제 가면 확실히 열차를 탑승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도록 시각표를 짤 필요가 있다. 특히 도시 밖으로 가는 간선철도는 이런 기법이 필수적이다. 매시간 지정된 분에 열차가 출발하도록 하여, 사람들이 쉽게 일정을 맞출 수 있게 만드는 기법을 이른바 “패턴 다이어그램”이라고 부른다.
이를 적용하여, 수서역과 목포역에서 매 시 정각에 호남선 고속열차가, 수서역과 부산역에서 매 시 33분에 경부선 고속열차가 출발한다고 설정했다. 호남선의 운전시각은 115분, 경부선의 운전시각은 132분으로 설정했다. 상행은 여기에 3분을 추가했다. 추가로, 종착역 도착 이후 40분 정도의 시간이 열차 청소와 정리에 필요하므로 이 시간 또한 열차를 운용 중인 시간으로 보고 계산에 포함시켰다. 이 시간 없이 열차를 투입한다면, 차내는 쓰레기장이 되고 화장실 변기는 넘쳐 악취가 차내에 진동하게 될 것이다. 다음은 가상의 운전시각표로 그린 “다이어그램”이다.
이 그래프는 <수서發 고속철도 운송사업 제안요청서(초안)>에 제시된 숫자인 경부선 하루 편도 24개 열차, 호남선 하루 편도 27개 열차에, 각각 주말 증편 4 / 5편을 집어넣어 그린 것이다. 총 28*2+32*2=120개 열차가 표현되어 있다. 앞서 말한대로 매시 정각에 호남선, 매시 33분에 경부선 열차를 출발시키고, 남은 횟수는 매시 30분에 호남선, 매시 3분에 경부선 열차를 투입하여 채웠다. 물론 사람이 집중되는 시간대에, 현행 시간표를 참고하여 열차를 집어넣었다. 11시 33분부터 12시 33분까지는 고속철 출발을 멈췄는데, 이는 고속선은 낮시간대에도 1시간 정도 보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어떤 시각을 나타낸 수평선을, 몇 개의 열차 선이 지나갔는지 센 값이 바로 그 시각에 운용중인 열차 편성의 숫자다. 이 시각표대로면, 18시 36분에 가장 많은 열차가 필요하다. 앞서 말한 “25개 편성 필요”라는 주장의 근거가 되는 값이다. 예비차, 정비로 인해 빠질 수 있는 차량은 물론, 일부 혼잡시간대에는 중련도 필요할 것이기 때문에, 나는 최소 32~35개 편성은 보유해야 제대로 된 영업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열차를 단순히 40분, 또는 45분 간격으로 균등하게 배차할 경우 필요한 열차 수는 17개 편성으로 감소한다. 하지만 이 경우, 패턴 다이어 작성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승객의 편익은 크게 감소할 것이다. 패턴 다이어 작성은 기본 중의 기본인데, 이를 달성할 역량을 갖추지 못한 사업자가 승객의 편익을 늘려줄 수 있다고 보기는 어려운 일이다.
이 상황을 바로잡으려면 차량 조달 계획을 밝혀야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공개된 정보하에서는 차량 추가조달에 대한 의지를 가진 사업자는 없는 것 같다. 결국 신규사업자 자력으로는 차량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럴 때 급한 대로 대안이 될 수 있는 것이 한국철도공사 소유의 고속열차를 수도권고속선에 투입하는 방법이다. 물론 현재 철도공사의 고속열차는 현재 열차 운행량을 유지하기에도 벅찬 상태다. 하지만 어떻게든 여력을 짜낼 방법은 있을 것 같다. 다음 그림을 보자.
현재 한국철도공사가 보유한 KTX-1의 숫자는 46개 편성, KTX-산천의 숫자는 24개 편성이다. 그리고 이들 차량 모두 여유 편성이 각각 6개 편성에 불과하다. 예비 열차를 10% 정도는 확보해야 하므로, 투입 여력이 크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다만, 수도권고속선 가상 운전시각표 상에서 고속열차가 가장 집중되는 시간대(18시 36분)에 현재 철도공사의 열차 투입량에는 비교적 여유가 있다. 그리고 KTX-1은 현재 수도권고속선용으로 발주한 열차보다 정원이 두 배 이상 많다(935명 : 404명). 또, 호남고속선 개통 및 경부고속선 대전, 대구 시내구간 2복선화가 끝나면 열차의 운전시각도 약간 줄어들 것이므로 차량 사정에 조금은 숨통이 트일 것이다.
조금 더 확보된 차량을, 특히 KTX-1을 수도권고속선으로 투입한다면, 수도권고속선 차량 사정에 조금이나마 숨통이 트일 것이고, 덕분에 패턴 다이어를 유지하는 한편 혼잡시간대 좌석 공급도 늘릴 수 있어 철도이용객의 편익으로 이어질 것이다.
물론 이런 주장은 한국철도공사가 수도권고속선을 운영하거나 최소한 그에 열차를 굴리는 것이 이익이라는 주장이다. 철도차량을 더 구매하기는 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 발주되지 않은 상태라면, 건조에 2년은 걸리는 철도차량의 특성상, 그리고 정부의 재정 지원을 기대할 수 없는 현 정권의 방침상 향후 몇 년은 92개 편성의 고속열차를 가지고 어떻게든 고속철을 운영해 나가야 한다. 현재의 스톡을 더 효율적으로 활용해 사람들의 편익을 늘리려면, 한국철도공사가 수도권고속선의 운송사업을 운영하는 것이 맞는 답이다.
요약
결국 현재 철도환경은 민간의 이익 실현에 적절하지 않은 상태다. 일견 영업 이익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이나, 그것은 건설부채를 감당하지 않을 때에나 있을 수 있는 일이기에, 만일 수도권고속선 별도 사업자가 정말로 당기순이익을 올린다면 그것은 불공정 경쟁의 결과라고 보아야 한다. 또, 차량 문제를 해결할 의사가 있는 사업자가 존재하지 않고, 철도공사의 차량(특히 정원이 많은 KTX-1)을 여력이 되는 한 수도권고속선에 투입하는 것이 오히려 철도자산을 더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길이기 때문에, 새로운 사업자를 만들기보다는 철도공사가 수도권고속선을 통합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철도 덕후가 본 철도 민영화가 부당한 이유 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