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국이 말하는 공기업 또는 공공부분 민영화의 목적을 한 마디로 줄이면, 주인 없는 상태라고 평가되는 공기업을 주인 있는 기업으로 바꾸는 데 있다. 여기서 “주인”은 자신의 행동을 적절한 근거에 비춰 결정하고, 그것을 반성하며 결과에 알맞은 책임을 지는 주체를 말한다.
한편 공기업 민영화의 제도적 문턱은 상장이며, 상장기업의 주인은 주주다. 주주는 회사가 잘 되면 배당금을 받아가지만, 그렇지 못하면 배당금은커녕 주식 자체의 가치조차 떨어지고, 회사가 파산하면 투자한 모든 것을 잃게 된다. 그렇다면 공기업 민영화는 공기업이 벌이던 사업에 대한 권리와 책임을 지금까지 그 후견인이었던 정부로부터 민간의 주주로 넘기는 작업이다.
그렇다면 철도 민영화를 놓고 벌어지는 대립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한국철도의 주인이 되기 위한 자격은 무엇이며, 관련 주체는 그 자격을 충분히 지니고 있는가?” 이 글에서는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철도 권리체계를 파악하고, 한국철도공사를 비롯한 각종 철도 관련 주체의 실적과 행동을 평가하도록 하겠다.
철도 운송시장에서 시장 경쟁 환경을 조성하는 문제는 민영화의 주요 목표로, 지금 요약한 기업의 소유권 문제와 쌍둥이 문제다. 하지만 이 문제는 따로 분리할 수 있으므로, 다음 글에서 논의하도록 한다.
한국 철도의 주요 사업자들
지금 한국철도는 크게 두 개의 사업자가 지배하고 있다.
1) 한국철도시설공단 : 철도의 신규건설 및 대개량과 기존 선로의 정비를 담당하는 조직이다. 기존선의 정비는 사실상 한국철도공사의 보선 조직에서 수행하고 있으며, 철도시설공단 산하 조직에서는 고속선을 담당한다. 공단은 정부출연기관으로서, 주주가 없는 조직이다.
2) 한국철도공사 : 철도차량의 운전과 정비, 그리고 역무를 비롯하여 여객과 화물 운송에 필요한 업무를 수행하는 조직이다. 이들은 고속철도와 수도권 광역전철, 일반여객(새마을∙무궁화∙누리로), 화물철도 영업을 수행한다. 현재 한국철도공사의 지분은 모두 대한민국 정부가 소유하고 있다.
이외에 이른바 ‘지하철’은 각 지방정부 산하 공기업에서 소유, 운영하고 있다. 각 지방 공기업의 지분은 물론 대부분 지방정부가 보유하고 있다. 국내에서 민간 컨소시엄이 운송업의 ‘주인’인 회사, 즉 이른바 민간 철도 회사로 2013년 6월 현재 영업 중인 사업체는 서울지하철 9호선, 신분당선, 의정부경전철, 김해-부산 경전철, 용인경전철이다.
코레일공항철도는 최초의 민간 철도 회사 ‘공항철도’로 출범한 회사였으나, 수송 실적이 너무 저조하여 결국 대부분의 지분이 정부에 인수되었다. 2012년 말 현재 코레일공항철도의 지분 가운데 88.80%는 한국철도공사, 9.90%는 국토해양부, 1.30%는 현대해상화재보험 소유다.
이 가운데, 현재 민영화가 논의되고 있는 사업은 한국철도공사가 담당하는 광역 및 중장거리 철도 운송사업이다. 철도시설공단이 담당하는 철도의 하부 구조, 즉 노반 궤도 전기 등에 대해서도 원칙적으로 민영화가 가능하기는 하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철도 하부구조의 민영화에 대한 논의는 없었다.
철도 민영화의 대표적인 실패 사례로 알려진 영국의 경우, 철도의 하부 구조 역시 민영화했으나(레일트랙) 실패하고 사실상 다시 국유화한 상태다. 미국을 제외하면, 대규모 철도를 운용하는 국가 가운데 간선 철도의 하부 구조를 민영화한 사례는 찾을 수 없다. 따라서 한국철도의 지배구조에 대해 논의할 때는 하부 구조의 민영화에 대해서는 상세히 논하지 않아도 무방하다.
하지만 운송사업은 이야기가 다르다. 현존하는 한국철도공사는 향후 변화에도 현 노선망을 유지하는 회사로 유지될 가망이 크다. 하지만 수도권 고속선을 시작으로, 새로 개통되는 선구에 대한 영업권을 지닌 사업자는 민간 사업자가 될 수도 있다. 이명박 연간 이래로 계속해서 국토부가 추진해 온 조치는 바로 후자의 조치다.
여기에 최근 한국철도시설공단은 긴급 용역을 발주하여 원주~강릉, 소사~원시(상세 자료 링크), 판교~여주, 부전~울산 (상세 자료 링크) 복선전철 사업 민간 운영을 준비하는 행보를 보여주었다. 이들 노선은, 부전~울산 간 동해남부선을 이외에는 새로 건설되는 철도다. 수도권고속선을 비롯하여 새로 개통되는 철도의 영업 권리를 민간 사업자에게 넘기려는 것이 지난 정권 이래 국토부의 정책 방향이었고, 차근차근 실현해 나가고 있다고 보면 되겠다.
사업자를 나누는 이유 : 사용료를 지불하는 상부구조와 자연독점의 하부구조
민영화 논의에서 빠지지 않는 부분은, 산업에는 각 영업 부분이 이루고 있는 수직적 구조가 있으며, 이에 따라 사업자를 나눠야 한다는 주장이다. 예를 들어 전력 산업은 발전소와 송전망, 그리고 변전소에서 각 집으로 전력을 보내는 배전망으로, 액화천연가스(LNG) 산업 역시 가스 인수기지와 전국적 규모의 파이프라인 그리고 각 집으로 가스를 보내는 소매망으로 구성되는데, 전력은 발전소와 송배전망 회사를 분리한 바 있고 천연가스 산업 역시 한국가스공사가 운영하는 인수기지 및 전국망과 민간 회사가 운영하는 소매망으로 사업자가 분할되어 있다.
철도 역시 비슷한 형태로 사업자가 분할되어 있다. 앞서 소개한 철도시설공단과 철도공사 사이의 분할이 바로 그것이다. 대체로 하부 구조는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여, 자연독점성이 인정되는데 반해 상부 구조는 그와는 달리 여러 이유에서 자연독점성이 인정되지는 않는다. 한국철도를 크게 시설공단과 철도공사라는 양대 사업자가 수직적으로 분할하고 있는 이유는 바로 철도산업의 두 부분이 지닌 성격이 상당히 다르기 때문이다.
교통부분의 상하분리가 어떤 함축을 지니고 있는지는 다른 인프라의 상황을 떠올려 보면 알 수 있다. 국도는 국가가 하부 구조를 관리하지만(건설 및 정비, 시설운영, 교통경찰 등), 누구나 자신의 차량을 몰고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이다. 공항이나 항만 역시 공기업이 하부 구조를 관리하지만, 각국의 수많은 항공사∙선사들이 자유롭게 이용하고 있다.
철도의 상하분리는 바로 도로나 공항, 항만과 비슷한 모형에 따라 철도를 운영하겠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다. 국가 또는 그로부터 업무를 위탁받은 주체가 철도 하부구조를 운영하는 한편, 이 하부구조를 다수의 운송사업자에게 제공하여 자신의 의도에 따라 활용할 수 있게 만드는 모형이 바로 상하분리를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다.
상하분리가 한국철도에 적절한지에 대해서도 다음 글에서 논의하도록 하자. 여기서 지적해 둘 사실은 상하분리 모형 하에서 철도 운송사업자는 시설사업자에게 시설사용료를 부담해야 하고, 시설사업자는 이 수입을 바탕으로 시설 투자 비용을 충당해야 한다는 사실, 그리고 현 시점 한국철도의 위기는 사실 바로 이 과정이 원활하게 이뤄지기 힘든 상태로 권리관계가 설정되어 있다는 데 기인한다는 점 정도다. 상세 사항은 다음 글에서 논의하도록 하겠다.
현 상하분리 상황에서, 하부구조의 주인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국토부는 철도 시설에 대한 소유권을 놓을 생각이 전혀 없다. 하지만 상부 운송부분의 주인은 바뀔 수도 있다. 현재 국토부는 신규 철도 가운데 최소한 다섯 개 노선의 운송에 대한 권리를 철도공사가 아닌 사업자에 주고 싶어한다. 이런 목표는, 운송 사업자인 한국철도공사가 공기업의 여러 단점을 지니고 있고 따라서 철도 운송 서비스의 품질을 끌어올리기에 역부족이라는 판단 때문에 설정된 것이다. 철도 운송을 민간에 일부 맞겨야 한다는 생각이 적절한 판단인지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한국철도공사의 역량을 평가할 필요가 있다.
철도공사는 정말로 방만하고 안이한 회사인가?
일반적으로 공기업은 두 가지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한 가지는 해당 산업을 지배, 주도하여 시장이 제공하기에는 벅찬 서비스를 사회에 제공하는, 국가의 경제 개입에 필수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필수불가결한 행위자라는 시각이다. 또 다른 시각은 주인 없는 기업이라는 시각이다. 즉, 공익 등의 모호한 목표를 추구하기 때문에 목표 없는 조직으로 전락하기 쉬우며, 채산성이라는 압력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우므로 무절제하게 자기 조직을 확장하는 방만한 행동을 보이는데다가, 정부의 정치적 간섭 때문에 경영상 필요한 판단을 제대로 내릴 수도, 관철시킬 수도 없다는 지적이 그 골자다.
한국철도에 대한 논의 역시 동일한 대립을 보여준다. 철도는 서민의 발이고, 수송의 중추이기 때문에 충분한 신뢰성이 없는 민간에게 맡겨서는 곤란하다는 시각과, “자기가 도산하거나 철도서비스의 제공이 중단될 가능성이 없다는 안이한 경영의식(삼성경제연구원 편, 1996: 531쪽)”을 가진 철도공사가 이대로는 안 된다는 시각이 대립하고 있다.
이들 시각 가운데, 전자가 적절한 주장인지는 이 글의 말미에서 검토해 보도록 하자. 후자의 시각은 한국철도의 역대 실적이나, 정부의 행동을 근거로 평가할 수 있는 경험적 주장이다. 따라서 한국철도의 실질적인 지표와 관련 행위자의 행동을 근거로, 다음 네 가지 질문에 답해보기로 하자.
질문 1. 한국철도공사는 방만한 조직인가?
철도 사업자가 얼마나 효율적으로 인력을 활용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지표는 다양하다. 가장 흔하게 사용되는 것은 직원당 수송량이다. 수송량 지표로 주로 사용되는 것은 탑승한 사람 숫자에 사람별로 움직인 거리를 곱해 얻는 인-킬로미터 지표(화물은 톤-킬로미터)다. 예를 들어, 서울~부산 간 정차역이 없는 고속열차가 정원인 935명을 싣고 서울에서 부산까지 412km를 달렸다면, 이 열차가 처리한 인-킬로미터 값은 935*412=385220이다. 하지만 한국과 같이 세계의 다른 지역보다 훨씬 높은 인구밀도를 지닌 나라에서는, 철도의 인-킬로미터가 철도의 경쟁력과는 무관하게 높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있다(삼성경제연구원 편, 1996: 532~4쪽). 따라서 나는 다음 다섯 가지 지표를 활용하여 인구밀도 효과를 감쇄하려고 한다.
· 직원당 처리 인-킬로미터
· 직원당 처리 톤-킬로미터. 이 두 지표는 한 명의 직원으로 얼마나 많은 수송을 처리했는지 보여주는 값이다.
· 직원당 열차킬로. 열차킬로는 한 개 열차가 주행한 거리를 말한다. 앞서 예로 든 서울~부산 간 고속열차의 열차킬로값은 주행거리인 412km다. 이를 모두 더한 값을 직원 수로 나눈 값은 한 명의 직원이 얼마나 긴 거리의 열차 운행에 기여했는지를 보여준다.
· 직원당 환산차량킬로. 환산차량킬로는 열차킬로값에 각 열차의 량 수를 곱해 얻은 값이다. 서울~부산 간 고속열차 사례의 환산차량킬로는 412*20=8,240km다. 이 값은 열차 운행 거리로 인한 부담은 물론, 그에 부속된 객차나 화차로 인한 업무 부담까지 모두 평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 직원당 궤도연장. 궤도는 열차가 주행할 수 있는 본선, 부본선, 측선, 인입선(역에서 공장이나 항구로 철도 화물을 넣는 데 사용하는 전용 선로)등의 선로를 말한다. 궤도연장은 철도시설의 규모를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지표이며, 따라서 직원당 궤도연장은 한 명의 직원이 얼마나 많은 시설을 담당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값이다.
철도차량 역시 중요한 스톡이지만, 그 종류가 무척 다양해서 총괄 지표로 뽑을만한 것은 아직 개발되지 않은 상태다. 여기서는 무시하도록 한다. 우선 이들 값의 바탕이 되는 지표들의 변동을 살펴보도록 하자. 지표의 값이 다양하기 때문에, 이들의 변화를 하나의 그래프로 표현하고자, 1995년을 100%로 두고 그 값의 크기를 환산했다.
톤킬로와 직원 수를 빼면, 모든 지표는 상승하고 있다. 물론 이는 고속철 개통 및 광역전철망의 확장으로 인한 효과다. 2004년과 2011년의 상승은 기록적인 수준이며, 특히 고속철 이전에는 고속도로망의 확장으로 인해 침체에 빠져가던 여객철도의 인킬로값도 계속해서 상승하고 있다. 열차운행량을 보여주는 열차킬로 및 환산차량킬로 역시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다음은 이들 지표를 직원 수로 나눈 값을, 역시 1995년을 기준으로 삼아 그린 그래프다.
그래프의 방향은 비슷하다. 하지만 그 기울기는 훨씬 가파르다. 특히, 직원당 톤킬로를 제외한 네 가지 지표가 모두 고속철 이전 시기부터 급격히 상승하기 시작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특히 궤도연장 값은 1983년부터 2003년까지 거의 변하지 않았으나 직원당 궤도연장은 고속철 개통에 앞서 크게 상승했다. 이런 차이는 물론 한국철도가 고속철 개통 및 공사화 이전에 상당한 수준의 감원을 수행했기 때문이다.
동시에, 고속철로 인해 열차 운행량과 궤도연장이 폭증했음에도 직원은 크게 늘지 않았다. 오히려 2단계 개통 시에는 직원이 감소했다. 따라서 1995년 이후, 한국철도의 1인당 지표의 개선 성과는 총괄지표의 개선 성과보다 상당히 높으며, 고속철 개통으로 인한 업무 증가에도 그 개선은 계속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물론 2004년, 철도청과 고속철도건설공단을 한국철도시설공단과 한국철도공사로 개편할 때 직원의 출입이 있었다는 점을 지적할 수도 있다. 고속철도 보선 업무는 시설공단의 직원이 수행하며, 구 철도청의 철도 건설공사 관련 인원도 시설공단으로 이전되었다. 하지만 한국철도시설공단의 직원 규모는 현재 1,500명에 미치지 못한다 . 직원 3만 명이 넘는 거대 조직인 철도공사의 노동생산성을 평가할 때 큰 영향을 미친다고는 볼 수 없는 숫자다.
국토부는 철도수송실적의 개선(앞의 그래프)은 국가의 투자로 인한 성과이지 철도공사의 운영에 의한 성과는 아니라고 여러 차례 주장한 바 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뒤 그래프가 보여주는 지표로 볼 때 거짓 주장으로 보인다. 한국철도는 90년대 중후반부터 지속적인 인력 감축을 수행했으며, 고속철 개통 이후 1인당 지표의 개선 수준 역시 대체로 총괄지표의 개선수준보다 높았다. 따라서 현재의 한국철도공사가 방만한 조직이라고 주장할 어떠한 근거도 없다.
아쉽게도 국제철도연맹(UIC)이 제공하는 통계가 미비하여, 열차킬로 및 환산차량킬로, 그리고 궤도연장에 대한 국제비교를 만족스럽게 수행할 수는 없었다(인킬로의 경우 인구밀도에 큰 영향을 받기 때문에 국가별 비교를 통해 철도 직원의 생산성을 평가하는 데 쓰기는 곤란하다). 하지만 한 가지 흥미로운 통계는 세계 굴지의 철도회사인 독일철도공사(DB)의 홈페이지에서 획득할 수 있었다. 다음은 독일철도공사의 열차킬로값과 한국철도공사의 열차킬로값을 비교한 그래프다.
이에 따르면, 이제 한국철도 직원 한 명이 굴리는 열차의 운전거리가 독일철도 직원이 굴리는 거리보다 더 길다. 삼성경제연구원의 지적을 받아들여, 인킬로 지표가 국내의 고밀도 환경 때문에 왜곡된 것이라고 인정한다고 해도, 열차킬로의 수준은 철도 직원에게 가해지는 업무 부담을 인구 밀도로 인한 왜곡 없이 보여주는 지표다.
독일철도공사는 국토부조차도 모범적인 철도의 모형이라고 인정하고 있는 회사다. 따라서 한국철도의 노동생산성은 세계 정상급이라고 평가해도 좋은 수준에 올랐다고 볼 수 있다. 이들 모든 지표로 볼 때, 철도공사는 방만한 조직이기는커녕 대단히 효율적으로 인력을 활용하고 있는 조직이라고 보아야 한다.
질문 2. 철도공사의 사업 목적이 불분명한가?
철도의 경우, 그 “공익성”을 정의하는 것이 어렵지 않으므로, 대체로 현재의 철도공사는 명확한 목적을 지닌 조직으로서 운영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철도 운송사업자에게 본질적인 임무는 적실한 수송계획을 작성하여 그에 맞춰 열차를 운행하는 데 있다. 이를 달성하지 못하면 철도운송사업은 유지될 수 없다.
비록 지방정부와의 협력이 여의치 않고, 일부 구간에서는 스톡 부족으로 인해 승객이 폭주해도 열차를 늘릴 수 없는 경우도 있으며, 수도권 밖에서는 광역 교통을 처리하는 데 큰 힘을 쓰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공사는 (몇몇 실책이 있으나) 여러 지방의 중장거리 교통을 처리하는 데는 동원 가능한 자원과 수요를 감안했을 때 대체로 적실한 수송계획을 수립해 놓고 있다. 수송계획을 실현할 수 있는 역량도 신뢰할 만하다. 비록 서울 인근의 애로 구간으로 인해 지연이 빈발하고 있으나, 일본,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사업자와 대결해 가장 높은 고속철 정시율(15분 지연 기준)을 기록하는 등 그 수준을 용인할 수 있는 단계로 묶는데 성공하고 있다.
질문 3. 철도공사의 영업 적자는 철도공사의 책임인가?
특히 일반 열차와 화물 열차 사업부분의 영업 적자는 상당한 수준이다. 양자를 합치면, 그 규모는 수천억 원에 달한다. 국토부는 이것이 철도공사의 경영상 책임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국토부는 법령으로 철도 운임을 규율하는 권한을 지닌다. 따라서 운임수준이 실질 비용보다 낮아서 생긴 적자는 결국 국토부의 책임이라고 할 수 있다. 심지어 민영화를 지지하는 연구에서도, 철도 저운임은 꼭 풀어야 하는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는 형편이다(삼성경제연구소 편, 1996: 556~558쪽).
안타깝게도 철도공사는 최근 들어 선구별 운임수익 및 비용에 대한 정보는 공개하지 않고 있다. 다만 나는 일전에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부분별 비용에 대해서는 정보를 획득한 바 있다.
일반철도와 물류(화물) 부분의 손실 규모는 막심한 수준이다. 그리고 비용을 절반으로 감축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일반철도와 화물철도 적자에는 국토부의 저운임 정책 역시 큰 기여를 했다고 평가해야 한다. 단 그 수준을 구하는 것은 훨씬 더 상세한 정보를 획득해야만 수행할 수 있으니, 다음을 기약하도록 하자.
저운임 정책은 당연한 것은 아니다. 인구밀도가 낮은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 교통서비스를 공급하려면, 인구밀도가 높은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 들어가는 비용보다 아무래도 큰 비용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언제나 입석이 있는 경부선과 텅 비어가는 날도 있는 경전선, 영동선의 상황은 상당히 다르니 말이다.
흥미롭게도, 국내 시외버스의 운임제도에는 이런 상황이 반영되어 있다. 시외버스의 임률은 고속도로 주행 시에 더 싸게 계산되지만, 국도 주행 시에는 더 비싸게 계산되기 때문이다. 2013년 6월 현재 임률은 국도 주행시 116.14원/km이며, 고속도로 주행 시에는 일반고속의 임률(200km까지 62.35원/km)을 준용한다. 무궁화호 운임이 64.78원/km, 새마을호 운임이 96.36원/km이니, 국도를 달리는 시외버스의 임률이 대단히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고속도로는 국도보다 1.5배는 빠른 주행을 가능하게 해 주기 때문에, 승객의 지불의사는 오히려 고속도로 주행 시외버스에 대해 더 높을 것이다. 따라서 이런 임률 정산 체계는 전적으로 시외버스 사업자의 적자를 보전하기 위한 것이다. 게다가 국도망을 달리는 시외버스는 저밀도 지역으로 뻗어 있는 대중교통망의 말단을 담당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저밀도 지역 말단부에 접근하는 사람들에게 상당한 부담을 지게 하는 운임 체계를 채택하고 있다는 점도 알 수 있다. 물론, 이처럼 열차가 시외버스보다 싸지만 많은 지역에서는 외면을 받고 있는데, 이는 네트워크가 크게 부족할 뿐만 아니라 단거리에선 배차 간격이 너무 길어서, 중장거리에선 소요시간이 도로보다 길어서 그런 경우가 많다.
시외버스에서도 채택하는 정책을 철도에서 채택하지 않는 이유는, 결국 철도공사는 거대 공기업으로, 시외버스 사업자들과는 달리 파산하여 열차 운행이 중단될 염려는 사실상 없다는 국토부의 판단 때문일 것이다. 제대로 영업하지 않으면 파산하여 열차 운행이 중단될 수도 있는(그래서 열심히 운영해야 할 이유가 있는) 구조를 설계하는 것이 국토부의 목적이라면, 시외버스 운임 제도처럼 재래선 열차의 운임을 올려야 할 것이다.
질문 4. 철도공사에 대한 정치적 간섭은 공사의 적절한 판단을 방해하고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절대적으로 YES다. 예를 들어, 철도공사의 사장 가운데 내부 승진 인사는 단 한 명뿐 이었다. 게다가, 철도공사는 최근 수도권고속선으로 인한 갈등 상황에서 신임 사장이 들어온 다음부터는 국토부의 공격에도 반론을 자제하고 있다. 나는 다른 무엇보다도, 국토부가 상위 기관이라는 이유 때문에 부당한 비판에 대한 반론조차 자제하는 모습이 철도공사 민영화의 근거로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부당한 비판에 대한 반론을 자제해야 할 의무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 오히려, 부당한 비판을 교정한다면 그 덕분에 철도정책에 대한 여론이 바뀔 것이고, 이에 따라 정책 방향이 철도산업의 미래나 국민의 후생 증진을 위해서 더 좋은 방향으로 바뀔 것이다. 그런데도 공사가 스스로 입을 다문 것은 결국 공기업이기 때문이다. 현재 국토부의 방식으로는 이런 폐해를 막을 도리가 없다.
운송에서도, 혼잡하기 그지없는 경부선의 용량을 잡아먹는 광명역 셔틀 전동열차를 굴리는 등 일정 부분 비효율적인 정치적 간섭이 존재한다. 승객이 폭주하는 러시아워에, 텅 비어가는 것과 다름없는 광명셔틀 때문에 동인천 급행이 줄어드는 상황을 겪어보았던 글쓴이의 뇌리에 깊게 남아 있어서 예로 든 것일 뿐, 다른 사례들도 충분히 많이 있다.
게다가 운송사업자가 성과를 내기 힘든 노선 계획이 정치적 이유에서, 또는 예산 절감을 위해 채택되는 경우도 많이 있다. 전자의 사례로 들 수 있는 것은 호남고속철도 오송분기이며, 후자의 사례로 들 수 있는 것은 장항선 군산~장항 연결이다.
전자의 경우 호남~서울간 소요시간을 줄여줄 수 있는 천안아산 분기나, 호남~대전간의 수요도 덤으로 처리할 수 있는 대전 분기가 채택되지 않고, 지역 균형발전이라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 충북의 오송분기 안이 채택되었는데, 이 대안은 다른 대안에 비해 실제로 열차를 운행할 운송사업자에게는 아무런 이점도 없는 안이었다.
후자인 군산~장항 연결의 경우, 금강 하굿둑에 마련되었던 철도 노반을 활용하기 위해 장항역과 군산역을 시가지에서 수 km 떨어진 지역으로 이설했는데, 이는 사업비는 절감할 수 있을지언정 시내 한가운데에 있던 역을 버려 영업 손실을 준 선택이라고 보아야 한다. 군산은 장항선 인근의 주요 도시인 홍성, 대천보다 인구가 훨씬 많은 도시인데도(홍성, 대천을 합쳐도 군산의 인구를 따라갈 수 없다), 철도이용객은 훨씬 적은 상태다(홍성, 대천 관내의 역 이용객이 군산역보다 각기 네 배 많음).
게다가 군산역은 과거 수십 년간 익산, 전주 방면으로 통근 열차를 운행하던 거점이었는데, 군산역이 시가지에서 5km 가까이 떨어진 곳으로 이전되어 익산, 전주 방면 여객조차도 거의 사라지고 말았다. 운송사업의 관점에서 철도 개량과 신설을 주도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향후 철도망의 개량과 확장에서도 오송분기나 군산역 같은 사례가 얼마든지 재현될 수 있다.
정리 : 철도공사의 현위치
네 가지 질문과 답변을 통해, 철도공사의 조직 운영이나 열차 운영에는 큰 문제가 보이지 않고, 저운임 정책은 그렇게 하더라도 철도공사의 철도 서비스 제공이 안정적으로 제공될 것이라고 보고 있는 국토부의 책임이며, 국토부의 정치적 개입은 철도 정책에 대한 공정한 공론을 형성하는 데에도, 운송 및 노선 계획을 짜는 데에도 일정 부분 방해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따라서, 나는 한국철도공사의 철도 운송사업 역량은 상당한 수준이지만, 국토부의 저운임 정책이나 철도 정책에 대한 공론의 왜곡, 운송 및 노선 계획에 대한 부적절한 계획이 오히려 철도공사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평가하고 싶다.
철도 덕후가 본 철도 민영화가 부당한 이유 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