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달도 더 전에 발행되었던 아즈마 히로키 인터뷰 – 1.오타쿠 1세대와 3세대의 차이와 원인의 후속편입니다. 아무도 재촉하지 않는 바람에 그만 이렇게 늦어지고 말았군요. (또 남 탓-편집자)
아즈마 히로키(東浩紀/あずま ひろき): ]1971년생. 도쿄대학 대학원 통합 연구과 수료. 전공은 철학, 표상 문화론. 저서로는 [존재론적/우편적], [동물화하는 포스트 모던](제21회 산토리 학예상 수상) , [우편적 불안들]등이 있다. 현재 일본에서 가장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는 중인 대중문화 연구가이자 사회 평론가. 최근 한일간 서브 컬쳐 관계자 들의 모임인 ACCF(아시아 문화 컨텐츠 포럼)의 일본측 간사.
이현석 : 자아 실례지만… 아즈마 선생은 지금 연세가 어떻게 되십니까?
아즈마 : 1971년생 입니다. 32살이지요. 아..한국식 나이로는 다르겠군요. (주 : 이건 10년 전 인터뷰다…)
이현석 : 네, 한국 나이로는 34살이십니다.
아즈마 : 거 참 슬프기 그지없는 일입니다 그려 (웃음)
1980년대 오타쿠와 95년 이후 오타쿠의 변화
이현석 : (웃음) 그렇다면 1980년대 오타쿠 문화 전성기의 당사자인 셈이 되십니다만… 1980년대의 이야기를 좀 들려주시겠습니까?
아즈마 : 으음.. 역시 1980년대의 일본사회와 1995년 이후의 일본사회의 분위기는 아주 다르죠. 일단 1980년대라는 시대는 말이죠… 정보가 엄청나게 증대하는 시기였습니다. 말하자면… 전 도쿄에서 살고 있었습니다만… 당시에는 여러 가지 재미있는 작품이 나오는 시기였고 또한, 당시 도쿄는 세계에서 가장 윤택한 도시였다고 흔히 이야기되어집니다만 그러한 윤택한 환경에서 엄청난 양의 정보를 섭취할 수 있는 시기였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오타쿠 관련정보들을 축적해가는 것이 제 또래의 중고생들에게는 아주 멋지게 비쳐지던 시기였죠.
이현석 : 95년 이후는 어땠습니까?
아즈마 : 1995년도 이후엔 양상이 아주 다릅니다. 지금의 젊은 청소년들을 보고 있자면 ‘히키코모리'(주 : ひきこもり 젊은이가 사회생활의 스트레스를 감당하지 못하고 등교하길 거부한다든지 자신의 방안에서 틀어박혀 나오길 거부하는 현상. 최근 일본의 심각한 사회문제 중 하나)가 문제가 된다든지 하는데요…
이렇게 각자 심적인 상처를 입고는, 정보 노이즈로 가득한 바깥 세상에 참가하기보다는, 이런 외부로부터의 정보 노이즈를 가능한 한 차단해서 “자기의 내부에서 좀 더 순수한 세계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좀 더 강해지는 중이죠. 즉, 젊은이들의 심리적인 지향성, 방향성이 매우 크게 바뀌는 중이라고 생각합니다.
이현석 : 방향성 변화의 예를 들자면…
그런데, 예를 들어 ‘코믹마켓 이라든지, 성우 이벤트라든지 하는 오타쿠 공간의 분위기마저 완전히 바뀌어 버렸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아요. 단지 요구되는 작품이 변하고 있다는 느낌만 듭니다. 인간의 행동 양식이라는 게 그렇게 금새 바뀌는 것도 아니고.. 가령 저는 [우르세이 야츠라]라는 작품을 아주 좋아했습니다만… 이 러브 코메디 작품은 만화도 그렇고 애니도 그렇고 한마디로 아주 시끄러운 작품이에요. 제목이 그렇잖아요? (주: 우루세이うるせい는 일본어로 ‘시끄러운’이라는 뜻)
이 작품의 성우들은 이미 당시 아줌마들이었고 요즘같이 귀여운 미소녀는 없었습니다. 이들이 연기하는 시끄럽고 강렬한 캐릭터들이 잔뜩 등장해서 ‘우당탕탕탕!’하는 요란한 소동이 이어지는 그런 전개가 아주 좋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소비자들에게 요구되고 있는 작품은 어떤가 하면…
단적인 예가 [아즈망가 대왕] 같은 작품이죠.. 이 작품 내에서 구현되는 세계관은 굉장히 단촐하고 깔끔한 세계입니다. 5명의 여학생과 선생님같은 소수의 캐릭터만 제대로 그리고 그외의 학생들은모두 배경으로 간단하게 처리되어있지요. 그리고 스토리의 전개라는 것도 별다른 눈에 띄는 갈등도 없고 이들 주인공이 벌이는 일상생활이 그저 만화 안에서 평이하게 반복해서 전개되어 있을 뿐입니다. 이렇게 같은 코메디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요구되는 작품세계관은 전혀 다릅니다.
이현석 : 그렇군요. 같은 장르의 작품 임에도 불구하고 두 작품을 비교하면 각 세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즈마 : 네, 지금 젊은층의 오타쿠들에게 1세대가 즐겼던 작품인 [더티 페어]나 [우르세이 야츠라]같은 작품을 보여줘도 “뭐야 이거, 이런게 뭐가 재밌다는거야?!”하며 이해를 하지 못 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전혀 그 캐릭터들에 모에-감정이입을 하는 게 불가능한 것이지요. 캐릭터가 애니 안에서 워낙에 요란하게 연기를 하고 있으니까요.
지금 일본사회에서 오타쿠는 차별을 받고 있지 않은가?
이현석 : 예전에 이 지면을 통해 소개한 미야다이 신지 교수의 의견에 의하면 최근 벌어지는 오타쿠들 청년들의 소비행태나 유행하는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섬 우주화’등에 의한 커뮤니케이션 능력퇴행으로 인해 서브 컬쳐 전반의 쇠퇴가 벌어지고 있는 것 이라는 의견을 내어놓는데요…
아즈마 : 음.. 전 미야다이 교수정도 되는 40대 세대와 지금 젊은 친구들의 중간 정도에 위치하고 있어서 제1세대와 제3세대, 양측의 의견을 부분적으로 듣는 것이 가능합니다만… 뭐, 그러나 미야다이 씨처럼 “지금의 젊은 놈들은 억압을 받지 않고 있으니, 그런 억압을 창작의 원동력으로 삼았던 과거처럼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없어서 지금처럼 수준낮은 작품들이 유행하는 거다”라는 의견에는 동의하기 힘듭니다.
그러나 이건 단지 미야다이 교수만의 의견이 아닙니다. 현재 30대 후반에서 40대 중반의 나이 든 사람들은 모두 그런 소리를 하니까요. 뭐 그리고 이들이 왜 이런 의견을 내어놓는지도 이해는 가능하고요.
이현석 : 전 오타쿠 집단이란 성적인 열등감이나 주류사회에서 인정받기 힘드니까 자기들 나름대로 오타쿠 세계를 만들고 이 세계 안에서 자기들 나름대로 지위를 높이고 인정 받을려고 하다보니 수준 높은 작품들이 등장해왔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러한 사회적인 차별이 차차 사라지다 보니 이러한 동기 부여가 불가능하게 되어서 그다지 수준높은 작품이 나오지 않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만…
아즈마 : (단호하게) 아니요. 오타쿠는 지금도 차별을 당하고 있습니다. 확실히요. 그리고 자신들도 분명히 차별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고… 애니메이션, 만화, 게임이라는 장르 자체도 주류 사회에서 분명히 차별적인 대우를 받는 중입니다. 이런 상황은 1980년대와 비교해도 전혀 바뀌지 않은 상황입니다.
1980년 초반 만 해도 나카모리 아키오씨가 [오타쿠]라는 단어를 만들어내기 이전부터 (주 : 한국에서는 오타쿠라는 단어가 방 안에서 틀어박혀서 나오지 않는 사람들을 가리키면서 만들어졌다고 와전되어 있으나 이 단어는 1983년 나카모리 아키오씨가 만화 브릿코라는 잡지에 연재하던 자신의 칼럼에서 사용하면서 정착되었다) “애니나 게임에 빠진 녀석들 왠지 기분 나쁘지 않아?”하는 인식은 확실히 존재해 있었고…
그런데 일본에서 오타쿠 차별이 극심해진 것은 1988년에서 1995년 사이입니다. 즉, ‘미야자키 츠토무 사건'(주 : 1989년에 발생한 엽기 살인사건. 오타쿠였던 미야자키 츠토무가 나이 어린 아이들을 납치, 성폭행 후 살해하여 소포로 시체를 발송한 사건이다. 당시 그의 방에서는 6000개의 유아포르노 테잎과 대량의 만화, 애니메이션이 발견되었다)이 발생한 때부터 [에반게리온]이 공개될 때까지지요. 말하자면 [에반게리온] 이후에는 일반의 인식이 과거의 상태로 돌아왔을 뿐이죠.
저만 해도 1989년부터는 주위 사람들에게 “나 애니메이션 보고 있다”고 절대로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실제로는 저는[미소녀 전사 세일러 문]이나 [나디아]같은 작품을 보고 있었습니다만 그걸 숨기지 않으면 안되는 분위기였죠. 그러니 최근의 오타쿠들이 차별을 당하지 않게 되었는가 하면 그런 것은 절대로 아니고 단지 1989년부터 1995년까지가 차별이 특히 극심했던 것 뿐이란 겁니다.
이현석 : 한국에서는 말입니다. 이상하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내에서는 자국의 애니나 만화, 게임에 대한 일반국민의 인식은 아주 좋을거라는 신앙에 가깝다고 해도 좋을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만… 그게 실재로는 다르다는 것이죠?
아즈마 : 물론입니다. 이상하게 외국의 관계자분들은 모두들 그렇게 상상하시는 분이 많습니다만 실상은 아주 다릅니다. 너무나 다르죠.(쓴웃음)
외부에서 생각하는 일본과 실재 일본의 괴리는 어디서?
이현석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이외의 타국에서는 일본의 애니나 게임, 만화같은 오타쿠 상품이나 서브 컬쳐 파생물들에 대한 평가가 지극히 높습니다. 어떤 나라에서는 애니는 사회의 아주 높은 지위의 엘리트 계층이 향유하는 문화처럼 통용되기까지 할 정도인데요… 도대체 이 괴리감은 뭘까요? 왜 일본인 자신은 외국에서 높이 평가받는 자신들의 문화상품에 대해 평가해주기를 싫어하는 겁니까?
아즈마 : 좋은 지적입니다. “일본이라는 나라, 일본이라는 사회는 기본적으로 아시아 각국에서 평가받는 것을 ‘평가’라고 인정하지 않는 나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이나 중국, 대만 등지에서 아무리 일본의 만화가, 애니가 팔려봐야 신경도 안 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을 지배하는 주류사회는 일전에 미야자키 하야오 씨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미국에서 아카데미 상을 받은 거 정도나 평가해 줄려고 하지요.
한 예가 무라카미 타카시라는 현대 미술가가 있습니다만, 이 사람은 만화나 애니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공언하는 사람이고 작품에서도 애니나 만화의 영향이 짙게 배어나지요… 루이비통과 같이 일하고 프랑스 등지에서도 명성이 높은 미술가입니다. 이 사람도 일본 주류사회로부터의 평가도 높고 메스컴도 아주 수준있는 사람으로 다뤄주지요. 그러니까 “미국에서 아카데미 상 받았습니다”, “프랑스 현대 미술계에서 명성이 높습니다”, 이러면 애니메이션에 좀 주목을 하는게 일본의 평가라는 것이고요…
이런 외국(서구)에서 평가가 좀 있으니까 일본의 정부 – 총무성이나 문화청이라든지 경제 산업성이 애니메이션 산업 등에 관심을 가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표면적으로 그런 것 뿐이고 실상은 별반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이건 제가 그쪽 관료들과 몇번 이야기해보고 실감한 사실이고요.
이현석 : 으음 그렇긴 합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과 같은 곳에서 일본의 애니, 게임등에 대한 평가는 매우 높습니다만…
아즈마 : 그건 “도대체 무엇을 보고 평가할 것인가”라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가령 얼마나 팔리는가?라는 점을 가지고 평가한다면 당연히 일본의 그러한 상품들은 대단한 평가를 받고 있지요. 그러나 “얼마나 세인들의 입에 오르내리는가?”, “얼마나 신문기사화 되는가?” 라는 걸 가지고 평가기준을 삼으면 전혀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하죠. 즉, 국회의원, 정치가나 관료에게는 전혀 평가를 받고 있질 못하다는 겁니다.
아즈마 : 뭐, 이건 일본 국내의 정보 유통 루트에 대한 문제, 구조적인 문제이기도 합니다. 실제 마켓에서는 대단히 인기있고 잘 팔리고 있는데도 이것이 정책결정을 하는 사람에게 전혀 알려지지 않는다든지… 신문에 전혀 실리지 않는다든지.. 하지만 이건 특별히 만화, 애니, 게임만 그런게 아니고 일본이라는 나라의 온갖 장르가 다 그렇습니다.
다른 예로 인터넷 사이트 중에 유명한 것으로 ‘니챤넬’ (주: ‘2ちゃんえる’, 한국에서는 2ch, 투채널로 통한다.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종합 정보 게시판으로, 연예계 소식에서 기업 부정 폭로, 해킹기술, 학술정보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정보가 오고가는 게시판. 물론 특유의 비꼬는 듯한 말투와 과격한 용어의 범람, 익명성을 빌린 허위정보 만연등의 문제도 동시에 가지고 있다. 한국에서는 혐한 감정 조장으로 유명한 게시판이다)이라는 게 있습니다만… 일본에서 인터넷을 이야기할 때 이미 2ch이라는 사이트는 빼놓을 수 없을 정도로 유명합니다.
이현석 : 세대간의 갭이 크게 느껴지는 부분이군요.
아즈마: 현재 일본의 40대는 이 2ch에 대해서 그런대로 이해를 하고 있지만 50-60대는 전혀 이해를 가지지 않고 있는데요…이런부분에서 40대는 역시 중간에서 50,60대 세대와 20대 젊은 세대를 연결하고 서로간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전달해야할 책임을 내팽개치고 있는 겁니다.
이러니 각종 미디어가 이 2ch을 다룰 때는 무슨 벌레보듯이 지극히 비판적인 시각으로만 다루고 일본의 정보사회론을 선도하는 훌륭하신 학자분들이나, 정치가들은 지금 당장이라도 “2ch 같은 건 쳐부숴 버려!!”라고 외치고 있을 정도이죠.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이건 이 나라가 안고 있는 아주 커다란 문제라는 거죠. 젊은 세대 안에서, 지금 현재 새롭게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사회전반에 알려주는 정보 유통 시스템이 엉망이 되어있는 것이죠.
일본 걸작 애니는 왜 사라졌는가? [아즈마 히로키 인터뷰]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