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즈마 히로키(東浩紀/あずま ひろき) 프로필: 1971년생. 도쿄대학 대학원 통합 연구과 수료. 전공은 철학, 표상 문화론. 저서로는 [존재론적/우편적], [동물화하는 포스트 모던](제21회 산토리 학예상 수상) , [우편적 불안들]등이 있다. 현재 일본에서 가장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는 중인 대중문화 연구가이자 사회 평론가. 최근 한일간 서브 컬쳐 관계자 들의 모임인 ACCF(아시아 문화 컨텐츠 포럼)의 일본측 간사.
이현석 : 안녕하십니까.
아즈마 : 안녕하십니까?
이현석 : 에 또… 오늘은 아즈마씨에게서 오늘날 일본 대중문화의 현재에 대해서 좀 들어보려 합니다. 먼저 한국에서는 여러 가지로 오해를 받고 있는 오타쿠라는 사람들이란 어떤 사람들인지 간단히 설명해주시겠습니까?
아즈마 : (웃음) 제가 오타쿠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 일본에는 싫어하는 사람들이 잔뜩 있습니다만.
이현석 : (웃음)한국에는 그런 사람이 없으니 마음놓고 이야기하셔도 됩니다.
아즈마 : 음, 일단 지금 일본에서 오타쿠라 불리는 사람들은 1970년대부터 눈에 띄게 됩니다만. 오타쿠라는 단어 자체는 1983년에 등장하게 됩니다. (주 : 1983년 만화 잡지 [만화 브릿코]에서 나카모리 아키오씨가 오타쿠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음… 애니메이션이라든지, 피규어라든지 게임이라든지 SF소설이라든지.. 컴퓨터 통신이라든지 이런 것들은 얼핏 모두 따로따로 나눠진 제각각의 장르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매우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지요.
‘서브 컬쳐'(주 : sub-culture 직역하자면 하위문화. 사회의 주류를 이루는 사회계층이 향유하는 메인 컬쳐에 비하여 주류라고 생각되어지지 않는 계층이 향유하는 문화로 주로 정의된다. 최근에는 주류문화와 하위문화의 구분이 모호해지고 있으나 일본에서는 만화, 애니, 게임 등을 뭉뚱그려 표현할 때 자주 서브컬쳐라는 용어를 이용한다)라는 큰 범위 안에 이러한 특정 장르로 만들어진 작은 범위의 틀이 존재하는 것이죠. 이런 취미를 중심으로 한 공동체라는게 있고 이런 취미의 공동체라는 것이 낳은 사람들이 ‘오타쿠’이지요.
이러한 “취미의 공동체”라는 것이 언제 만들어지느냐 하면 1970년대죠. 그리고 이런 오타쿠 집단을 낳는 취미의 공동체가 확실히 윤곽을 드러내는게 전 일본에 코믹마켓이 등장하고 난 뒤입니다만… 즉, 코믹마켓이라는 공간이 자신들에게 주어짊으로 인해서 이 오타쿠라는 사람들이 자신들은 서로 닮은 공간과 문화를 향유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것이죠. 이들이 1970년대에 등장하여 80년대에 널리 퍼지게 되고 90년대에는 일반화하게 되어 지금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죠.
그러나 오해하지 말아주었으면 하는 것은 이런 오타쿠적 특성과 성향을 갖춘 사람들 자체는 1950년대, 1960년대에도 존재는 했습니다. 단지 이들이 숫적으로 늘어나고 SF나 만화, 애니등을 중심으로 공동체를 형성하기 시작한 것이 1970년대 들어서라는 겁니다.
오타쿠의 세대 구분 – 제1세대와 제3세대
이현석 : 오타쿠의 세대 구분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아즈마 : 저의 생각에는 오타쿠라는 사람들도 구체적으론 몇가지 세대로 나눠집니다. 먼저 1960년대에 태어난 오타쿠들이 오타쿠 제1세대, 1970년대 경에 태어나는 사람들이 제 2세대, 1980년대에 태어난 사람들이 제3세대죠. 이건 제가 만든 구분이고 꼭 그 해에 태어났다고 해서 그 세대인 것은 아닙니다만… 일단 ‘전반적으로 크게 이렇게 나눌 수 있다’라는 정도로 생각해 주십시오. 같은 오타쿠라도 현재 40대의 오타쿠들과 20대의 오타쿠들은 상당히 다릅니다.
뭐가 다른가 하니 먼저, 제1세대인 40대 오타쿠들이 ‘오타쿠적 교양’의 중심으로 삼은 것은 SF소설이라든지 애니였었죠. 그러나 지금 제3세대, 20대 오타쿠들은 소설의 경우에는 SF보다는 미스터리를 주로 읽는다든지 커뮤니케이션을 공유하는 공간도 코믹마켓이 아니라, 인터넷 등의 가상공간이 되어있다든지 애니보다는 게임을 중심으로 삼는다든지 하는 식으로 차이가 납니다.
뭐 이미 일본에서는 오타쿠의 역사라는 것이 이미 30년, 40년을 헤아리니까요. 이미 세대차이가 생겨나고 있는 것이죠. 때문에 제1세대가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애니가 제3세대 오타쿠에게는 먹혀들지 않게 된다든지 제3세대 오타쿠 사이에서는 큰 반향을일으킨 일이 제1세대 오타쿠에게는 완전히 무시당한다든지 하는 일이 종종 벌어지는 중이죠.
이 : 그들 각 세대 안에서 인기있는 대표작을 하나씩 들어주신다면 이미지가 쉽게 떠오를 것 같습니다만…
아즈마 : 으음 대표작이라… 그보다는 [신세기 에반게리온]이라는 애니를 각기 어떻게 수용하는가에 따라서 달라진다고 봐도 되겠군요. [에반게리온]을 [기동전사 건담]에서 쭈욱 이어지는 SF애니메이션 계보를 따르는 작품으로 해석해서 “1980년대 일본 로봇 애니의 총결산” 같은 애니로 생각할 것인가, 아니면 그런 것에 전혀 연연하지 않고 최근 등장한 [아야나미 레이 보완계획] 같은 게임에서 보듯 완전한 “캐릭터 모에(주 : キャラックタ─萌 ; 직역하자면 ‘싹이 돋아나다’ 등의 뜻이지만, 최근 일본 오타쿠 문화 안에서는 특정한 캐릭터나 만화적인 기호 등에 과민하게 집착하거나 감정이입을 하는 것을 일컫는다) 적인 작품”으로 생각해서 “레이가 좋아, 아스카가 좋아”라는 식으로 밖에는 보지 않는다든지…
다른 예를 더 들자면 [별의 목소리]라는 애니가 있지 않습니까…이 애니는 기본적으로 제3세대의 젊은 층에게는 크게 어필했습니다만 40대 이상 제1세대는 “이건 애니메이션 [건 버스터 -톱을 노려라!]의 모방이니 어쩌니 저쩌니” 이런 소리만 늘어놓으면서 전혀 평가를 하지 않는다든지… 이렇게 같은 작품을 놓고서도 전혀 다른 의견을 내어놓지요.
또 하나는 역시 ‘갸르게'(주: ギャルゲ ; 소녀를 뜻하는 영어 ‘걸girl’에서 파생된 일본어 – ‘갸르’와 ‘게임’의 합성어. 미소녀가 등장하는 일러스트와 스토리를 가진 텍스트로 구성되며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이 특징)입니다. 최근의 일본 애니같은 경우에는 이 갸르게의 영향이 매우 커서… 예를 들어 최근 등장한 [당신이 원하는 영원]같은 애니는 갸르게로부터 이식된 작품이고… 갸르게가 그대로 애니가 된다든지 하는 경우가 기획 단계에서 대단히 늘어나는 추세입니다만…
하지만, 지금의 제1세대 오타쿠들은 갸르게 같은 것은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요즘 애니는 과거에 비해서 재미가 없어졌다”는 의견만 내놓는 중이죠. 하지만, 최근의 제3세대 오타쿠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요즘 애니라는 것은 이미 갸르게에서 파생된 파생물의 하나로 밖에는 생각 안 합니다. 뭐 이런 갸르게들에 대한 평가에서도 보이듯 제1세대 오타쿠와 제3세대 오타쿠 사이에는 대단히 큰 감각의 차이가 존재하죠.
커다란 이야기 이론과 데이터 베이스적 소비
이 : 으음… 저는 아즈마 선생님은 이러한 현상의 요인으로 자신의 책인 [동물화하는 포스트 모던]내에서 ‘커다란 이야기 이론’과 ‘데이터 베이스적 소비’라는 표현을 빌려서 설명을 하고 계시다고 생각했습니다. 한국의 독자분 들에게 이런 이론은
매우 생소합니다만 간단하게 설명을 부탁드릴까요.
아즈마 : 으음 그걸 설명하자면… 이제부터는 사회 분석같은 이야기가 됩니다만… 왜 일본이라는 국가에서 오타쿠가 탄생하는가? 오타쿠가 탄생하는 것이 1970년대라고 설명은 해 드렸죠? 1970년대란 일본의 전후 역사 중에서도 매우 중요한 시기이면서도 미묘한 시기입니다. 일단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학생운동이 좌절되고 고도 경제성장도 어떤 정점을 지나가게 되지요. 이런 정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불꽃놀이가 1970년의 ‘오사카 만국박람회’ 입니다만.
뭐 일본은 이 뒤에 점점 부자는 되어가지만 반대로 일본 전체가 어떤 목표를 점점 상실해가는 그런 시기를 맞이합니다. 이러한 목표를 상실해가는 시기에 오타쿠가 탄생하였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점으로, 이러한 시기에 생겨난 초기의 오타쿠들이 선호한 작품이 [기동전사 건담]이라든지 [우주전함 야마토] 등입니다. (주: 일본 오타쿠 문화의 출발점에 위치하는 것이 [우주전함 야마토]붐 이었다)
국가적인 목표의 공백을 가상의 허구로 메꾸다 – 오타쿠 제1세대
이현석 : 하지만 야마토와 건담은 현재의 작품과 굉장히 거리가 있습니다.
아즈마 : 네. 즉, 이러한 어떤 ‘커다란 이야기(집단, 국가, 혹은 이데올로기등)를 위해서 자신(개인)의 목숨을 바친다는 상당히 국가주의적(내셔널리스틱)인 작품들이 인기가 있었다는 것’인데요. [기동전사 건담]같은게 전형적인 예이지요. 뭐… 주인공 아무로가 커다란 흐름에 저항을 하니까 이야기가 좀 복잡해집니다만… 기본적으로는 전쟁이라는 시대적 상황 내에서 개인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와 같은, 일단 커다란 이야기라는 전제가 있은 뒤 그 안에 개인이 존재했지요. [우주전함 야마토]같은 경우에는 뭐 두말할 필요도 없이 인류를 위해 적에게 자폭 공격하는 내용 아닙니까.
하지만, 당시의 일본이란 이미 전쟁을 포기한 상태였고 미국이 제공하는 핵우산 안에서 안전하게 보호받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일본은 전쟁이라는 것을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가 없으면서도, 목표도 별다른 게 없지만 그럭저럭 윤택해져 갔던 것이죠…
이런 상태에서 원래대로라면 국가가 제시해 줄만한 그러한 ‘커다란 이야기’ – ‘내가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삶의 의미’- 라는 것을 애니라든지 만화라는 허구의 세계를 통해 찾아내려 했던 사람들이 오타쿠들이었던 겁니다. 또 이렇게 오타쿠 세계가 구축되자 새롭게 이런 것들을 찾는 사람들이 오타쿠 세계에 흘러 들어오게 되고요. 특히 이런 현상은 남성들의 경우에 많이 나타났던 것이고, 여성들의 경우는 이게 또 미묘하게 다릅니다. 그래서 좀 이야기하기 곤란한 측면도 있습니다만 일단 남성 오타쿠들의 경우는 이러했던 것이죠.
커다란 이야기를 개인-개인간의 인간관계로 해체시키다 -오타쿠 제3세대
이현석 : 그렇다면 3세대는 어떻게 정의하십니까?
아즈마 : 그러나 최근엔 이러한 움직임-가상세계를 통해 커다란 이야기를 보충하려는 인식- 그 자체가 사라지고 있다고나 할까요… 뭐 그다지 애니를 통해 이 세상을 살아나가는 의미를 찾으려는 움직임 자체가 눈에 띄게 사라지고 있어서… 예를 들어 갸르게라는 것은 예컨대 학교 내의 사회에서, 나와 당신 간에 벌어지는 아주 작은 이야기들입니다. 이러한 아주 아주 작은 이야기들이 점차 선호받게 되어가는 과정… 앞의 세대와 다음 세대의 터닝 포인트에 [에반게리온]이라는 작품이 존재하는 것입니다만…
앞서 말한 국가가 제공해줘야 할 살아가는 의미를 뭐 가공이고 허구적인 것입니다만, 일단 이걸 애니와 만화가 대신 제공해주던 것이 [에반게리온]이 등장한 1995년이라는 시간을 기점으로 꽤 변화하게 되는 겁니다. 이 변화하는 과정에서 등장하는 것이 캐릭터에 대한 ‘극단적인 감정이입’ – ‘모에’가 등장하게 되지요. 저는 이런 작품 속의 캐릭터에 대한 감정이입 “캐릭터 모에”, “데이터베이스적”소비라고 표현을 한 것입니다. 즉, 작품에서 바라는 것이 변화한 것입니다.
이현석 : 데이터베이스적 소비는 어떻게 등장했을까요?
아즈마 : 음… 그리고 이런 데이터 베이스적 소비나 캐릭터 모에라는 개념은 여성들 사이에서 먼저 생겨난 것이라고 자주 이야기되어 집니다만, 남성들이 어떤 커다란 이야기를 요구하며 작품을 소비한 것이라면 여성들은 전혀 다른 형태로 작품을 소비해온 것이죠. 여성들은 남자들처럼 그런 커다란 이야기를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캡틴 츠바사], [은하영웅전설]이라는 작품이 있다고 합시다. 전자는 가슴에 일장기를 달고 일본이라는 국가를 대표하여 축구를 하는 내용이고 은하영웅전설은 뭐 두말 할 것도 없는 커다란 이야기 – 거대한 국가와 국가 간의 대 전쟁 서사시죠. 그런데 여성들의 경우에는 이런 원작을 등장인물 개개인간의 인간관계에 얽힌 이야기로 읽어냅니다. 즉, 원래 작품에 존재한 커다란 이야기를 소비과정에서 부숴버리는 거지요. 이러한 소비경향이 유행하게 되는 시기가 오고 전 이런 경향을 “데이터 베이스적 소비”라고 표현한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