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1편 오타쿠 1세대와 3세대의 차이와 원인과 2편 오타쿠 문화에 투영된 일본의 오늘날이 나온지 6개월이 지났습니다. 까먹어서 이제 내놓습니다(…)
아즈마 히로키(東浩紀/あずま ひろき): ]1971년생. 도쿄대학 대학원 통합 연구과 수료. 전공은 철학, 표상 문화론. 저서로는 [존재론적/우편적], [동물화하는 포스트 모던](제21회 산토리 학예상 수상) , [우편적 불안들]등이 있다. 현재 일본에서 가장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는 중인 대중문화 연구가이자 사회 평론가. 최근 한일간 서브 컬쳐 관계자 들의 모임인 ACCF(아시아 문화 컨텐츠 포럼)의 일본측 간사.
일본에 만연하는 젊은이와 그들의 문화에 대한 적대감
아즈마: 이야기한대로 원래라면, 50-60대 세대들에게 지금 20-30대 세대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려주는 인터페이스 역할을 해야 할 일본의 40대 세대가 아주 급격하게 보수화되고 있어서… 즉,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오타쿠 세계 안에서만 세대간 격차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각 세대간의 인식대립이 일본 내의 여기저기서 충돌을 일으키고 있는 판국이죠.
예를 들면 “최근의 젊은 놈들은 위험해”, “젊은 놈들은 안돼”라든지 하는 젊은이 전체를 악인처럼 취급해서 일본의 모든 사회 문제를 젊은이들 탓으로 돌린다든지 하는 경향이 40대 세대에게는 만연하고 있습니다. 두말할 것도 없이 이건 아주 위험한 현상이죠.
이현석 : 왜 그런 현상이 벌어지는 걸까요?
아즈마 : 간단합니다. 일본인에게, 일본이라는 국가에게 ‘버블 경제 붕괴’는 너무나 커다란 충격이었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1990년대 중반의 버블 경제 붕괴 이후에 사회인이 된 젊은이들은 이제 직장을 옮기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아니 평생 같은 회사에 근무하는 걸 바보같은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아예 처음부터 이 일본이라는 사회 자체가 글러먹은 사회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전에 일본 경제가 최절정기였던 1980년대에 20대가 되어 사회인이 된 사람들은 일단 안정된 회사에 취직하여 그 회사에 충성을 바치면서 맡은 일을 확실히 해나가는 것이 사회인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의무라고 생각을 했죠. 이렇게 너무나 다릅니다. 즉, 인생설계에 대한 감각 자체가 너무나 판이하죠.
이러니 40대 이상 세대의 눈에는 최근 니챤넬을 중심으로 모여서 이런저런 소동을 벌이는 니챤네라 (주: 니챤넬을 통해 정보를 공유하는 니챤넬 이용자를 가리키는 말)나 골방에 틀어박혀서 온라인 게임이나 뿅뿅거리고 하는 놈들이 아주 기분 나쁜 놈들로 비쳐지는 게 당연한 것이죠.
그러나 지금 20대의 눈에는 지금 회사 취직해봐야 이 회사라는 게 회사 언제 망할지도 모르는 노릇이고, 그런 불안을 느끼며 회사에서 노예처럼 힘들게 일을 할 바엔 인터넷 공간에서 의견 맞는 사람들이랑 시간 보내는 게 훨씬 즐겁게 보이는 거죠.
이현석 : 어떤 의미에서 세대간에 강렬한 적대감이 존재하는 거군요…
아즈마 : 네. 하지만 일본 전체의 젊은이들이 모두 이렇다면 일본사회 망해버릴 거 아닙니까? 다 그렇지는 않은데도 최근의 일본사회 전체에 젊은이에 대한 불신감이 횡행하고 있는건 확실해 보입니다.
왜 최근 수준 높은 작품들이 사라지고 있는가?
이현석 : 이야기를 조금 되돌이키자면…그러나 최근 일본 서브컬쳐 전반에서 과거에 비해서는 좋은 작품이 잘 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만…. 의견이 다르신지요?
아즈마 : 아니요, 저도 일반적으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동의합니다. 저의 생각으로는… 역시 근본적인 곳에 문제가 있어서… 서브 컬쳐 전반을 지금 다 이야기하는 건 무리니까… 이야기를 애니라는 장르에 한정시킵시다.
음, 지금의 일본인이라는 사람들은 애니메이션을 어쨋든 엄청나게 많이 보는 사람들입니다. 즉, 어린시절부터 애니메이션이 주변에 넘치고, 좋든 싫든 애니메이션과 함께 성장해야만 하는 환경이거든요. 작품을 어떻게 만들것인가? 라는 점을 생각할 때 일반적으로는 작품을 만드는 제작자들에게 초점이모아지기 쉽습니다만…
더욱 중요한 것이 작품의 수용자-소비자의 ‘리터러시'(주 : ‘literacy’ – 직역하자면 읽고 쓰는 능력이지만 여기서는 미디어에 담겨진 내용을 자기 나름대로 올바르게 이해하고 다시 미디어에 그것을 표현하는 능력을 가리킨다 ) – 작품에 대한 독해력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일본 국민의 애니메이션에 대한 이 리터러시가 매우 높은 수준에 도달해있다고 생각합니다. 좌우간 주변에 만들어지고 소비되는 애니메이션의 숫자가 이렇게 많으니까요.
이건 외국이 도저히 따라올 수 없는 것입니다. (일본 아닌 외국에서) 우연히 천재작가가 등장할 수는 있겠습니다만… 모든 국민이 몇 십년간 애니메이션을 보고 있는 환경이란 게 다른 나라에선 흉내낼 수 없는 것이죠. 애초에 이런 환경이었고 이런 환경의 핵심, 정점에 오타쿠라는 계층이 존재해 온 겁니다.
그런데 최근 이들 오타쿠들이 애니메이션에 관심을 잃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소설이나 게임과 같은 다른 분야에 더욱 흥미를 가지는 판이죠. 최근의 경향을 보자면 게임이나 소설을 애니로 만들어서 DVD, CD같은관련 상품을 내고는 그걸로 끝이죠.
애니의 텔레비전 방송도 태반이 새벽 2시, 3시에 다른 사람 다 잘 시간에 하는 심야방송입니다. 더 이상 애니메이션이 소설이나 다른 미디어가 보여 준 그 이상의 세계관을 보여줄지 모른다는 기대감이 사라져가고 있다는 것이죠.
재패니메이션的 애니 – 어린이용 애니라는 양극화
아즈마: 이리하여 최근 일본 애니에서 어떤 경향이 나타나고 있는가 하면, 최근 공개된 [가지 – 안달루시아의 여름]과 같이 하이퀄리티에다가 국제시장에서의 평가를 노리고 만들어지는 이른바 ‘재패니메이션’이라는 방향의 애니이거나 아주 어린 애들 시장을 노리고 만들어지는 [꼬마마녀 도래미]같은 ‘어린이 애니메이션’으로 완전히 갈라져 버렸지요.
이게 아주 아주 안 좋은 현상입니다. 사실 일본 애니메이션의 강점은 위의 두 가지 특징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거든요. 전자의 경우에는 미야자키 하야오, 오시이 마모루씨가 어쨋든 분발하고 있고, 후자의 경우에도 뭐 그럭저럭 좋은 작품들이 나옵니다…
하지만 그 중간 영역에 해당하는 작품은 최근 거의 전멸 상태입니다. 이렇게 되면 기껏 일본 사회가 지금까지 축적해온 수준 높은 애니메이션을 알아보는, 높은 독해력(라이터러시)을 가진 팬을 잃어버리게 되는 겁니다. 이런 팬의 이탈현상은 이미 눈에 띄게 진행되고 있어서…
저의 주변을 둘러보더라도 지금의 젊은이들은 애니메이션을 그다지 보지 않고 있습니다. 보아도 인터넷으로 다운로드 받아서 빨리 감기로 휘리릭 훑어보고는 ‘봤다’라고 그러는 정도죠. 이건 뭐 완전히 애니를 보는 시각도 완전히 다르고… 애초에 애니에 대한 애착같은 건 전혀 없습니다. 아마 더욱 나이 어린 세대는 이런 경향이 더 심하겠죠. 이런 현재의 상태가 한 20년 정도 지속되면 아마 지독한 상태가 될 겁니다.
이렇게 되면 후일 좋은 재능있는 애니 작가가 나타나도 이미 그를 받아줄 시장이 사라져 있을 거구요. 즉, 정리하자면 지금 일본은 기껏 몇십년에 걸쳐 길러놓은 수준 있는 애니 팬을 잃어가는 중이란 겁니다.
진정한 일본적인 걸작 애니가 사라진 이유
아즈마: 음 …그렇지만 말입니다.., 저는 ‘대체 왜 좋은 애니가 지금 나오지 않는가?’라는 질문에는 확실한 대답을 내어 놓을 수가 없습니다. 잘 모르겠습니다. 왠지 모르게 디지털 애니가 일본 애니를 망치고 있다는 느낌도 들고…
이건 저 개인의 개인적인 생각일지 모릅니다만… 일본은 애니에 관한 장인정신이 너무 투철했던 나머지 새롭게 다변하는 최근의 경향에 잘 대응할 수 없었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일본의 애니메이션 업계라는 곳이 지독한 제작환경을 얼마나 참고 견디나를 시험받고 거기서 살아남은 사람만이 애니를 만들 수 있게 하는 그런 구조잖아요?(주 : 한국 일반인들의 인식과는 다르게 일본의 애니 제작현장의 노동환경은 최저 근로기준에도 못 미치는 열악한 것으로 하루 12시간 일하고도 임금이 겨우 한달 8만엔에 그치는 곳도 있다)
그러다 보니 역시 최근의 애니를 만들고 있는 사람들이 애니메이션 밖에 모르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지독한 환경을 참고 애니를 만들려는 사람이 애니에 미친 사람, 세상에서 애니밖에 눈에 안 들어오는 사람이 아니면 누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과거 일본의 애니메이션을 보고 있노라면 다른 장르 즉, 영화로부터의 영향도 눈에 띄고… 가령 영화에서 쓰이는 구도로 애니 화면을 만든다든지… 오시이 마모루 감독도 그런 경우고요.
그런데 요즘 나오는 애니들을 보면 이건 뭐 이전에 등장한 애니들의 모방으로 밖에는 안 보여서, 인간이 원래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잘 관찰해서 만들었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가 않습니다.
즉, 이건 이제 ‘데포르메’ (주 : 원래는 ‘데포르마시옹’ 실재 사물을 묘사하면서 그 사물의 일정한 특성을 과정해서 표현하는 것. 만화는 원래 이런 데포르메를 기본 베이스로 깔고있는 장르이다)가 아니라 이미 캐릭터의 움직임을 흉내내고 있을 뿐이죠. 기존의 애니 작품에서 이리저리 잘라서 오려붙이는 것일 뿐이라는 겁니다.
이현석 : 앗 그거야 말로 앞서 말씀하신 데이터 베이스적 소비로군요.
아즈마 : 그렇죠. 정말 이럴거면 차라리 캐릭터의 일러스트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일러스트하고 스토리만 존재하면 되니까… 앞서 이야기한 갸르게만으로도 충분한 거지요. 데이터 베이스 소비란 한마디로 “기호의 소비”입니다. 이 단계까지 가면 움직임 같은 건 필요가 없으니 어떤 대상이 움직임을 통해 시작적 쾌감을 전달하는 장르 – 애니메이션은 애초에 그 영향력이 약한 것이죠.
이 : 으음 저의 생각으로는 애니만이 아니라 만화 산업의 경우도 좋은 작가는 줄어들고… 개인적인 작가가 증가하고 있고 그러다보니 좀 더 폭넓은 대중에게 읽힐 만한 만화가 점차 줄어들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만… 아즈마 선생의 말을 들어보자면 그것은 단순히 한 분야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일본 전체의 문화가 그렇게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군요.
아즈마 : 네, 그렇습니다. 최근 일반인을 위한 소설 작품은 찾아볼 수도 없잖습니까? 요즘’일반인을 위한 작품’이러면 [춤추는 대수사선]같은 영화나 텔레비전 드라마 정도 수준밖에는 안되니까요. 특정장르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특정장르의 마니아들만을 위한 작품을 만들어선 아무것도 안되죠.
이 : 으음… 슬슬 마무리를 지어 볼까 합니다. 아즈마 선생은 한글을 나름대로 공부하시고 한국을 직접 방문하신다든지, 한국의 사정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계시고 최근에는 한일간의 대중문화 연구가들의 모임까지 결성을 하셨습니다만… 이유가 있으신지요?
아즈마 : 일본의 경우는 역시 국내의 마켓이 지나치게 크기 때문에 외부에 대해 적극적으로 진출을 하려고 하질 않지요. 그래서 외부의 마켓이 어떻게 되어있는지를 전혀 모르고, 예를 들어 한국에서 재미있는 게임이 수입된다든지 하는 것에 대해서 전혀 인식을 못하고 있지요. 실제로는 [라그나로크] 같은 게임이 수입되어서 꽤 팔린다든지 하는 데도 말입니다.
역시 일본이라는 이 나라는 문제가 많습니다… 일단 국내의 정보조차 제대로 파악을 못하는 판이니까요. 가령 정부가 외국의 어떤 일에 대하여 조사를 한다고 합시다. 그러면 누군가 그 분야의 관계자 2-3명을 찾아가거나, 불러서 1시간 정도 인터뷰 조사를 하고, 그 사람이 뭐라 뭐라 말해주면 그걸 가지고 “아아 그렇구나”하고서는 “자 그럼 돈을 이정도 내면 되는 거네?”하고 정책을 결정하는.. 이런 한심한 실태죠.
그리고 거꾸로 일본의 무언가를 외국에 알릴 때도 마찬가지고요. 사실은 별로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우연히 외국에 초빙받아서 나가서 별로 맞지도 않은 소릴 어쩌구 저쩌구 하면 그게 그대로 일본의 실상이 되어 버립니다. 이런 상태라서 좀 더 실질적이고 본질적인 정보 교환을 이룰 네트워크라는게 절실히 필요하다고 실감을 했지요.
그래서 이런 먼저 근처의 한국이라는 나라와 교류를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이번의 모임도 만들게 된 겁니다. 뭐, 이런 움직임 자체도 한국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 : 좋은 이야기 감사드립니다. 정말 많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아즈마 : 별 말씀을,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