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승수 인터뷰: 수학 덕후가 자본론 덕후가 되기까지에서 계속됩니다.
책을 잘 쓰면 결혼도 할 수 있다
리: 저자 생활로 돈을 벌기 힘든데, 신기하게 결혼도 했다. 어떻게 했나?
임: 아내가 기자 출신인데, 나를 취재하다가 알게 됐다. 그때 정말 개털 신세에 불알 두 쪽만 있었는데… 아내가 정상적 사고를 가진 여자가 아니었다.
리: 어떤 면에서 비정상적이었나?
임: 정상이었다면 나랑 결혼 안 했겠지.
리: ……
임: 현실보다 이상을 꿈꾸는 여자다. 나와 인생의 지향점이 같다. 아내가 기자 된 것도 그런 고민 가지고 된 것이고, 일간지 기자로 살며 현실과 타협이 힘들었다고 한다. 주변에서 다 그렇게 현실에 쩔어 있는 사람만 보다가 돈키호테처럼 풍차를 향해 맹목적으로 돌진하는 사람 보니까 마음이 동한 것 같다. 어쨌든 책이 결혼까지 시켜준 셈이다. 내가 책 쓰지 않고 계속 공대생으로 살았으면 여자는 더 이상은 NAVER.
리: …… 아무튼 결혼은 언제 했나.
임: 2009년 5월 23일… 어찌 정확히 기억 하냐면, 그 날이 노무현 대통령 서거일이다. 아내가 기자다 보니까, 하필 그 날 그런 안타까운 일이 생겨서 동료 기자들이 거의 못 왔다. 그 둘이 겹치니 참 잊혀지지 않는다.
리: 부인에게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겠다.
임: “최상의 명의”라는 만화책에 내 기억이 맞는다면 대략 이런 구절이 나온다. 똑똑하고 멋진 여자들이 누굴 좋아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그 답으로 ‘이상을 꿈꾸는 남자’가 등장한다. 아내가 바로 그런 여자라 생각한다. 어쨌든 이상을 꿈꾸고 고민 많이 하니까. 아내도 연애할 때 나름 걱정 됐는지, 친구 만나서 진지하게 이 남자 만나야 되는지 상담했다고 하더라. 계속 만나면 결혼해야 하니까. 그래도 만나서 이야기하며 같이 보내는 시간이 좋으니까 허락해 준 것 같다.
리: 집안 반대는 없었나?
임: 우리 집이야 어서 옵쇼고…
리: ……
임: 처가집에서도 반대가 별로 없어서, 스무스하게 성공했다. 둘이 결혼 전 공저로 “세상을 바꾼 예술 작품들”을 냈다. 둘이 만나서 책도 잘 내는 모습을 보니까 좀 신뢰하기도 했던 것 같다. 만나서 삐그덕대지 않고 화학작용 내는 경우가 많지 않은데, 우리 부부는 그런 쪽인 듯 하다.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이 된다. 둘 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 서로를 봐줄 수도 있고 공저로 책을 낼 수 있는 건 정말 좋은 일이다.
자본론 강의하고 민노당 출신이라 국정원에 신고까지
리: 지금 나름 인기 저자가 되는데 어떤 계기가 있었나?
임: 그냥 꾸준히 활동한 결과물이 아닐까 한다. 세간의 화제가 된 적은 경희대에서 강의할 때인데… 경희대에는 후마니타스 칼리지라고 인문 교양 담당 단과대가 있는데, 학생들이 주축이 된 후마니타스 칼리지 대학생위원회가 학교 측과 교섭 잘 해서 자신들이 원하는 10개의 과목을 개설할 수 있게 됐다. 거기에 내 강의가 들어가게 됐다.
리: 강의 평가는 좋았나?
임: 물론이다. 배움학점제 최고강의였다. -_-v
리: ……
임: 내가 입빨 하나는 자신 있다. 출판사에서도 하는 말이 보통 사람이 글빨과 입빨 다 갖추기 힘들다는데, 나는 둘 다 된다고 칭찬하더라. 사실 책 써서 먹고 살려면, 이것도 중요하다.
리: 그래서 그 강의 하다가 어떻게 유명해졌다는 건가?
임: 어느 날 학교에서 전화가 와서 무슨 일 없느냐고 묻더라. 무슨 일이냐고 되물으니, 어떤 학생이 나를 국정원에 신고했다고 메일이 왔다는 거다. 자초지종 들어보니 큰 일은 아니었다. 한 학생이 국정원 홈페이지에 나를 신고한 후, 그 화면을 캡처한 것이었다.
리: 나이 들면 가스통 짊어질 리틀 애국보수로군(…)
임: 그런데 신고 사유가 민주노동당 간부 경력, 내가 낸 좌파 쪽 서적이 전부였다. 그건 신고감이 전혀 안 되는 것이었고, 오히려 이것은 전화위복, 새옹지마라는 생각이 들었다.
리: 어떤 면에서?
임: 어쨌든 내 인생에 이렇게 인지도 올라갈 기회가 얼마나 되겠나.
리: ……
임: 뭐, 솔직히 정말 기분 나빴다. 별 일은 아니겠거니 생각하면서도, 혹시 어버이연합이 누구 고소하고, 그 명분으로 수사에 들어가는 일종의 역할분담이 아닌가 의심도 들었다. 그런데 학생이 나를 고소한 이유 중 하나가 이석기 의원이 지금 소속된 통합진보당의 전신이 민주노동당 아니냐, 거기 간부 아니냐… 이런 이야기를 학교측에서 전해 들었다. 그리고 이건 개인 문제이기보다 사회 전반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가만히 있지 않고 대응하기로 결심했다.
리: 진중권을 향한 변희재의 역고소 같은 것인가?
임: 그건 아니고, 진지하게 오마이뉴스에 칼럼을 써서 보냈다. 그러자 오마이뉴스가 1면 탑으로 제일 잘 보이는 자리에 걸었다. 그리고 이게 트위터 한참 떠돌더니 언론사에서 막 연락이 오더라. MBN 방송도 타고, 경향은 1면 탑으로 내고, 그러니 다른 언론사에서는 물 먹었다며 막 뒤늦게 취재 들어오고… 덕택에 이 사람 쓴 책 뭐냐 하는 궁금증에 판매지수가 막 올라가고…
리: 노이즈 마케팅 같다…
임: 실제 내 지인들은 진심으로 의심하고 있다. 니가 학생 시켜서 신고하게 한 거 아니냐고. 내가 의도한 바는 절대 아니지만, 나름 반사이익을 짭짤하게 봤다.
진보정당과의 끊을 수 없는 인연
리: 민주노동당은 언제 탈당했나?
임: 민주노동당이 통합진보당으로 될 때 탈당했다. 유시민의 참여당과 합당하게 됐는데… 나는 이게 굉장히… 진보라는 정체성이 모호해지고 선거공학적으로만 접근한다고 봤다. 물론 그걸 추진한 쪽의 입장은 유의미한 득표를 얻어 당세를 키워나가려는 나름의 로드맵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것이 가져올 단기 이득보다, 나중에 진보의 정체성도 무너지고 분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리: 작두 타시네요. 정치 평론 하세요…
임: 실제로 어떻게 되었건 간에, 올바른 생각이 아니라 생각했다. 개인적으로는 그걸 마지노선으로 삼았기에 바로 탈당했다. 내가 그… 나의 어떤 모든 것을 걸 수 있는 정치적 정당이라고 할 수 없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리: 유시민이 노무현 밑에서 보수적인 정책을 내놓았기 때문인가?
임: 나는 기본적으로 보수 양당제를 깨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김대중 대통령이 6.15 공동선언 이끈 성과 등은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전체 기조로 봤을 때 그 기간 동안 신자유주의 강화를 부인하기 힘들다.
이라크 파병, FTA 추진 등에 있어 유시민은 계속해서 정부를 옹호했다. 그러면서 민주노동당에 표를 주면 사표라고 막 깠다. 그렇게 해 놓고 통합진보당 소속이 되니 또 노무현 정부 때 실책인 것 같다고 이야기한다. 너무 아전인수격인 게 많았고, 그다지 신뢰가 안 간다고 생각했다. 사람이 너무 자신의 어떤 입장에 따라 쉽게 바뀌고 하는 게 보이니까…
리: 뭐, 그게 다 표를 얻기 위한 지혜이자 방편일 수도 있지 않겠는가?
임: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진보정당이 보수양당제를 깨고 새로운 정치 세력으로 부각되기 위해서는 이런 식의 선거공학적 접근이 아니라, 우리가 가진 정체성을 대중화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합당 당시 유시민 계열에서 어느 정도 자기반성이 있었던 것 같지도 않고, 무엇보다 그쪽 계열이 노동을 싫어하는 그런 정서가 있다. 나는 그런 식의 합당은 대안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리: 하지만 2000년대 초반 민주노동당이 작게나마 힘을 얻고도, 이후 힘을 키우지 못하지 않았나?
임: 사람마다 평가가 달라야겠지만 개인적으로 너무 선거에 매몰되고 국회의원 자리에만 눈 돌리는 건 장기적으로 악재라고 본다. 진보정당이란 노동자, 농민, 서민의 정당이다. 그리고 그 핵심은 그들과 긴밀하게 호흡하는 것, 대중적 저변을 넓히는 것이다. 그런 대중활동보다는 선거와 의회 안에서의 활동에 너무 매몰된 것에 대해 반성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리: 정당 자리잡는 당연한 과정이라 생각한다. 결국 선거에서 지면 말짱 황이지 않나?
임: 진보정당은 규모가 크지 않다. 보궐선거만 있어도 일상적인 당 활동, 교육사업이나 당원들을 만나며 바닥을 다지는 사업이 모두 중단되고 선거에 몰빵하게 된다. 선거가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다. 다만 선거는 그 동안의 활동을 추수하는 결과지,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선거를 통해 정치권력이 변화하는 건 사실이지만, 선거가 모든 목적인 것처럼 활동하면 진보의 가치와 건강함이 희석되게 마련이다.
리: 오오… 역시 좌빨…
임: 앞서 내가 비판했던 요소들을 우리 쪽 용어로는 의회주의, 계량주의, 선거주의라고 하는데, 나는 참여당과의 합당이 그 변질을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내 생각이 좌편향이라고, 잘못 됐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난 선거운동만으로 세상을 바꾸려는 생각에 매우 부정적이다.
단결해서 사람들이 응집된 힘을 내고, 선거는 그 과정이 보여주는 결과일 뿐이라 생각한다. 진보정당이 빼앗기고 소외되고 이 세상에서 힘들게 사는 사람들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활동이 부족하지 않았나… 물론 다른 정당 비하면 많이 했다. 그래도 부족했다.
리: 민주노동당의 분당에 대해서는 어떻게 받아들였나?
임: 나는 분당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학생운동 안 해서 NL도, PD도 아니다. 중간에 끼어 있으니 참 답답하더라. 결과가 빤히 보이는데, 왜 이렇게 서로 싸우기만 하는지…
리: 둘의 골이 꽤 깊지 않나? 우선하는 가치도 다르고.
임: 물론 노선 차이는 있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 정말 당을 쪼갤만큼 중요한가… 결국 자리싸움, 당내 위치의 문제다. 물론 그때 당권파, 소위 말하는 NL에서 패권적으로 한 거 맞다. 그러면 과연 NL이 들어오기 전, PD 쪽에서 본인들이 힘을 갖고 있을 때 안 그랬나? 나는 그 시대를 다 봤기 때문에… 이쪽 이기든 저쪽 이기든 권력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솔직히 NL이든, PD든 자기들 챙기려는 모습은 거기서 거기였다… 아무튼 그런 문제로 당이 쪼개지니, 그때부터 많이 힘이 빠졌다. 그래도 민주노동당에 좀 남아 있다가, 통합진보당 되면서 탈당하게 됐다. 정말 진보 세력의 근본적 반성과 재구성이 필요하다. 너무 감정의 골이 깊고 그렇기에… 단시일 안에 돌파구는 없을 테니…
리: 다시 진보 정당으로 들어갈 생각은 없나?
임: 지금은 당적을 가질 생각 자체가 없다. 이렇게 쪼개져 있어서는 내 스스로가 대안이라 흔쾌히 동의하기 힘들다. 그러면서도 당연히 잘 되기를 바란다. 나도 계속 진보 세력 통합하고 힘을 가지는 데 노력할 생각이고, 작게나마 씨를 뿌리고 싶다. 하지만 다양한 대중 활동을 하는 내가 지금 특정 정당에 들어가는 건 좋지 않은 듯하다.
* 인문사회 저자가 말하는 글쓰기와 우리 사회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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