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수학 덕후 이과생, 공돌이로 업그레이드
리: 자기 소개를 해 보자.
임: 글치 공학도로서, 대학생활을 하고, 석사 학위를 마친 후, 직장생활 5년 하다가, 급 인문사회 저자로 전환했다. 지금은 글 써서 생계 유지하는 전형적 삶을 꾸려가고 있다.
리: 글쓰기가 업인데, 어쩌다 고등학교 때 이과로 갔나?
임: 어릴 때는 글쓰기를 안 했다. 글쓰기 싫어했고, 글 쓰는 사람을 부러워해 본 적도 없고… 그냥 글 쓰는 걸 싫어했다. 나는 수학적 간결함, 수학의 추상성과 논리가 좋았다. 그래서 글을 보면, ‘뭐 이리 말이 많어…’란 생각을 했다. 특히 산 속 풍경 하나를 묘사하는데, 두 페이지 넘어가는 글을 보면 ‘사진 찍어서 보내주면 되지…’ 이런 식이었다. 그야말로 순수 이과생이었다.
리: 책은 많이 읽지 않았나?
임: 만화책은 많이 읽었고… 소설은 중학교 때까지만 읽고, 고등학교 들어서는 거의 안 읽었다.
리: 그러면 뭐 했나?
임: 수학문제 많이 풀었다.
리: ……
임: 당시 주로 본 책이 기본 정석과 실력 정석이었는데, 이걸 완전히 독파했다. 퍼즐을 맞추는 느낌으로, 뭔가 진리를 추구해 나가는 과정이 너무 재미 있더라. 문과는 정말 싫었다. 학력고사 세대다 보니 그냥 암기과목이라는 생각이 강했다.
리: 학력고사는 잘 봤나?
임: 국영수 다 합쳐서 2점 틀렸다. 수학은 만점이었으니, 국어, 영어에서 1점씩 나갔을 거다.
리: 우와… 수학만 잘 했다더니, 님 천재네요.
임: 나는 문제 풀이 기계였다. 논술 세대면 좀 곤란했을 것 같기도 한데… 있었다면 거기 맞춤형으로 공부했을지도 모르겠다.
리: 신문에 나올 급으로 공부 잘 한 건가?
임: 93학번이 입학할 때 학력고사가 너무 쉬웠다. 수석… 이런 급은 아니었다. 그래도 성적이 되게 잘 나온 건 사실이다. 아무 데나 지원하면 되는 점수였으니까.
리: 왜 의대를 가지 않고 공대를 간 건가?
임: 그래도 그때는 공대도 인기가 높았다. 서울대 전기전자제어계측공학과학군은 당시 공대 중 커트라인이 가장 높은 과였고. 부모님은 의대 가기를 바랬는데 내가 적록색약이라, 서울대 의대에서 원서를 안 받더라.부모님도 원하고 나도 딱히 어디 가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는데, 이때문에 의대가 아닌 공대를 택하게 됐다.
리: 아쉽다. 의대 갔으면 제2의 시골 의사가 됐을 텐데…
임: 돈독 올랐을지도 모르지.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는 마르크스의 말처럼, 나도 돈 잘 벌었으면 싹 바뀌었을지 누가 알겠나?
별 생각 없이 읽은 자본론, 순수한 청년을 좌빨로 만들다
리: 대학 오더니 갑자기 좌빨이 된 이유는 뭔가? 보통 운동권처럼 동아리인가?
임: 그건 아니다. 공대이다 보니 운동권이 과에 별로 없다시피 하고… 그냥 혼자 사회과학 서적을 찾아 읽었다. 머리에 똥만 차는 것 같아서, 대학생 되면 왠지 읽어야 될 것 같았다. 그렇게 자본론을 봤는데 이해가 정말 안 되더라. 그래도 오기가 생겨서 열심히 읽었다. 그런데 어느 정도 이해를 하고 나니 매트릭스에서 네오가 빨간 약을 먹고 깨닫고, 사도 바울이 예수의 가르침으로 눈꺼풀이 벗겨지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리: 에? 자본론을 독학했다고?
임: 독자들이 읽으면서 재수없다 그러겠다;;; 그런데 정말 열심히 노력했다. 이해하다 보니, 이해하려 노력하다 보니 어느 순간 그 메시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리: 운동권 동아리와는 아예 연줄이 없었나?
임: 안 했다. 그때도 공대생은 그런 거 할 여유가 별로 없었다. 학과 공부를 열심히는 안 해도 중간 정도는 계속 했다. 과 공부가 재미있지는 않아도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하고, 대신 남는 시간에 이것저것 관심 가지고 그랬다. 어쨌든 자본론 읽고 많은 충격을 받고,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진 건 사실이다.
리: 그 외에 감명 깊게 읽은 책이 있는가?
임: 레닌이 쓴 ‘유물론과 경험 비판론’이라는 철학 서적을 인상 깊게 봤다. 마르크스의 유물론적 세계관을 굉장히 잘 풀어쓴 책이다. 어릴 때라 100% 이해했다고 이야기하기는 힘들지만, 당시 공대생에게 인상적인 책이었다. 이거, 독자들이 임승수 생빨갱이라 그러겠네…
리: 맞으니까 별로 할 말은 없을 거다.
임: …….
리: 공대생이 자본론에 왜 끌렸을까? 신기하다.
임: 자본론은 착취구조를 잉여가치론으로, 즉 수식으로 증명한 책이다. 충격적이었다. 지금도 이공대생은 ‘경제학이 어떻게 과학이야. 웃기네…’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과학은 법칙성 있어야 하고 그 법칙이 항상 관철돼야 하는데, 사회과학처럼 사람을 대상으로 한, 랜덤한 왜곡요소가 있는 것을 과학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자본주의 사회의 착취구조를 숫자로 풀어 증명하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리: 그밖에 매력적인 요소가 있다면?
임: 역사유물론이다. 수식은 아니지만, 역사발전에도 법칙성이 있다는 주장에 놀랐다. 생산력과 생산관계 모순이라는 법칙은 엄청나게 충격적이었다. ‘이건 진짜배기다’라고 생각했다. -_-
리: 수치로 따지면 주류경제학에서도 매력을 느껴야 하지 않겠나?
임: 주류경제학 수업을 듣기는 했다. 나는 주류경제학도 마르크스 경제학과 마찬가지로, 특정 관점에서 본 일정 정도의 진실을 충분히 담고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 관점과 방향이 다르다. 주류경제학도 미시 경제학 보면 수학적 아름다움이 있고,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 자본주의 사회의 가장 큰 문제인 빈부격차의 부조리함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에서 한계를 느꼈다.
리: 거시 경제학, 재정학 등을 생각하면 좀 다르지 않나?
임: 거시는 나에게 의미가 있었다. 물리에서 기체역학 보면 거시경제랑 비슷한 측면이 있다. 기체 분자 하나는 제 멋대로 왔다갔다 하지만, 크게 보면 그 경향성이 드러난다는 점에서 마찬가지다. 거시경제학은 개체의 개별적 움직임보다, 그 전체 구조적 문제로 접근하니 상대적으로 미시경제에 비해 사회를 바라보는 측면에서 장점이 있었다.
리: 그럼에도 왜 주류경제학을 다루지 않은 건가, 돈도 좀 더 잘 될 텐데.
임: 어쨌든 마르크스 경제학만이 가지는 강점은 역사 유물론적 시각이다. 우리 자본주의 사회가 인류 발전과정의 종착점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하는 역사발전 과정의 한 중간 정거장이며, 우리는 또 다른 사회로 나아갈 가능성이 내재되어 있다는 것… 그런 것을 볼 수 있는 시각을 주는 차이가 있다. 요약하자면 자본론은 착취구조를 수학적인 엄밀함으로 구성했다는 점, 그리고 그것이 주류경제학이 설명하지 못한 부분을 잘 설명했다는 점에서, 내게 충격을 가져다 주고 이후에도 공부해 나가게 만들었다.
리: 당시 대학에서 시끄러웠던, 한국 사회의 다양한 모순에 대해서도 좀 열심히 팠는가?
임: 민족모순, 계급모순 이야기 많이 하는데… 그런 이야기를 듣고 근현대사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리: 이것도 혼자서 했나?
임: 되게 재수 없어 보일 것 같은데… 이것도 혼자 했다.
리: 아무튼 공부해 보니 어떻던가?
임: 지금 총리 인선으로 시끄러운 문창극 씨… 어떻게 보면 나와 대척점에 있는 전형을 보여주는 것 같다. 지금 경제를 많이 이야기하는 분들은 공시적 차원에서 많이 이야기한다. 그런데 내가 다음으로 준비하는 책이 대한민국 경제사다. 미군정부터 지금까지 통시적으로 죽 다뤄보려 한다.
리: 어차피 책 광고하려고 하는 인터뷰지만 시작부터, 다음 책 광고하면 곤란하다…
임: 그게 아니라 경제에도 역사성이 있지 않나. 지금 마르크스 경제학 대중서 쓰는 입장에서 생각 해봐도, 우리 사회의 현재가 있게 된, 즉 현재의 모순이 형성되기까지의 과정이 있다. 그런데 최근 일반인은 물론이고 지식인에게서도 몰역사성이 많이 보인다. 이는 우리 사회를 제대로 이해하는데 한계를 드러냄은 물론, 근본적 원인을 찾아가는 데 있어서도 장애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리: 그런 사람이 혁명해야지, 대학원은 왜 갔나?
임: 전문연구요원이라고, 석사학위 소지자를 대상으로 정부에서 지정한 병역특례 업체에서 일하면 군복무 대체 기간으로 인정해줬다. 당시 공대생이 그걸 하는 게 유행이었다. 루시드 폴도 그거 비슷한 걸 했고.
리: 군대 가기 싫었다는 이야기를 참 길게 한다. 그때 생활은 좀 재미있었나?
임: 석사 마치고 벤처기업으로 갔다. 우리 때 또 벤처가… 허와 실을 많이 느꼈다. 그렇게 5년 벤처만 돌아 다녔다. 큰 데 보다 조그마한…
리: 성공은?
임: 전혀… 그런 거 없었다. 월급이나 꾸역꾸역 받았고, 이미 그때 나는 다른 거 해야 된다는 생각으로, 이 기간만 끝나라는 식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일 하면서 살고 싶었다.
리: 참 나쁜 직원이다. 자본가에게 투철해야지.
임: 생각이 바뀌니까 행동도 바뀌더라. 우리 사회를 좀 더 진보시키고 모두가 함께 잘 사는 세상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은 일종의 소명의식, 소영웅주의일수도 있는 그런 생각이 절실히 들었다. 그래서 병특 하면서도 민주노동당 활동을 꾸준히 했다. 남들 다 야근하는데, 혼자 퇴근시간이라고 빠져나가서 미움도 받았다.
리: 사내 왕따 당하지 않았나?
임: 그런 건 없었다.
리: 친화력이 좋은 것 같다.
임: 그게 아니라 그때 벤처 버블도 심해서 시도 때도 없이 망하고 옮겨 다녔다.
리: ……
임: 덕택에 할 줄 아는 일은 많아졌다. 회로 설계도 하고, 휴대폰 부품 관련 일도 하고, 제품 포장도 열심히 하고… 그 과정에서 기업이라 하는 공간이 이윤 추구만 너무 우선하다 보니, 사람을 쥐어 짜는 걸 많이 느꼈다. 한 업체는 가족처럼 일한다고 해서 뭔가 했더니 침대를 보여주더라. 냉장고 안의 야식도 보여주고;;;
리: 민주노동당에서는 주로 어떤 활동을 했나?
임: 서울 금천구 쪽에서 지역 활동 주로 했다. 병특이 끝난 2006년에는 지방선거에 구의원 후보로 나가기도 했다. 10%도 안 나오고 낙선했지만 나름, 열심히 했다. 이후 서울시당에서 교육부장 일도 하고, 이래저래 당내 활동을 했다. 그리고 그 기간에 베네수엘라 차베스에 대해 연구하다가 2006년 “차베스, 미국과 맞장뜨다”는 책을 내게 되는데, 이가 인생의 큰 계기가 됐다.
리: 어떤 과정을 거쳐 첫 책이 나오게 됐나?
임: 인터넷을 통해 관심 있는 사람을 모아 베네수엘라 혁명 연구 모임을 꾸렸다. 확보해둔 관련 자료를 제본해서 나눠주고, 2주 1회 연구를 꾸준히 진행했는데 나중에 그것을 모아서 사례 연구 발표회 같은 것을 했다. 중앙당에서 사람이 몇 십 명 와서 듣더니, 아까우니까 책으로 내라는 의견을 줘서 마침 인연이 닿은 출판사랑 이야기했다. 처음에는 기대도 안 했다. 지구 반대편 베네수엘라 이야기를 누가 들을 것인가? 낸다는 의미만 갖자고 생각했는데, 이 책이 어느 순간 교보문고 벽에 걸려 있더라.
리: 그렇게 뜬금포로 저자 데뷔?
임: 첫 책의 반응 좋다 보니 책이 가지고 있는 가능성을 많이 느꼈다. 이후 강의도 다니고, 이 책 덕택에 베네수엘라까지 다녀왔다. 그리고 내가 가진 목적을 돌아봤다. 결국 우리 사회를 평등하고 다수 사람이 함께 살기 위한 세상으로 만들고, 노동하는 사람이 정당한 대가를 받는 사회를 만드는 데 책이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음을 알았다.
좌빨 베스트셀러 작가가 말하는 진보정당의 길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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