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욕조에 물을 채워놓았다. 수도가 언제 끊길지 몰라서였다. 그러다 장마가 지속되자 액체를 담을 수 있는 대부분의 그릇에 수돗물을 받아놨다. 커다란 고무 대야는 물론이고 세숫대야와 주전자, 물통 및 여러 가지 색깔과 형태의 유리잔에까지… 김애란 ‘물속 골리앗’을 읽다가 대학교 전공도 입시 미술학원에서 정해준 대로 다녔던 나는 졸업 후 미술학원에서 오랜 기간 강사 일을 했다. 별다른 조건도 필요 없이 그저 미술 관련 학과를 졸업했다는 이유만으로 합격한 첫 … [Read more...] about 쨍하고 해뜰날 돌아온단다
어떻게 하면 책을 안 살 수 있을까?
칼바람이 콧날을 스치고 쩌릿쩌릿 발도 시린 게 책 읽기 딱 좋은 날씨다. 하기사 나에게 책 읽기 좋은 날씨란 게 따로 있을 리 없다. 그저 나에게 주어진 모든 시간이 책 읽기에 감사할 뿐. 요새는 어떻게 하면 책을 사지 않을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 빠졌다. 이유인즉 사두고 읽지 않은 책이 ‘난 언제 펼칠 거냐’며 줄지어 서 있기도 하고, 놓을 공간도 (회사건 집이건) 부족하다. 책을 최대한 덜 사거나 그마저도 어려울 땐 종이책이 아닌 전자책을 구입하려고 하지만 그것은 그것대로 난감할 … [Read more...] about 어떻게 하면 책을 안 살 수 있을까?
쓰고 있는 사람이 될 것
내가 에세이를 매주 쓰기 시작한 건 3년 전의 일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때에는 아무도 읽어주지 않았다. 물론, 지금이라 해서 크게 달라진 건 없다. 하지만, 그때에는 정말이지 ‘어느 누가 이런 시시콜콜한 글을 읽을까’하는 두려움과 호기심으로 매번 노트북을 펼쳤다. <최민석 ‘꽈배기의 멋’을 읽다가> 월요일에는 에세이 한 편을 써서 일러스트 작가에게 보내야 한다. 29CM 사이트에선 매주 토요일에 업데이트되지만 일단 일러스트 작업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1차로 쓴 원고를 먼저 … [Read more...] about 쓰고 있는 사람이 될 것
문득 나이 드는 게 겁날 때
본격적인 겨울로 들어서면서 여름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나는 주말마다 집에서 꼼짝 안 하는 습관이 생겨버렸다. 이 습관이 버릇이 되어 아무 데도 안 나가고도 주말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사실 게으름만 장착하면 된다. 근데 문제는 아이다. 괜히 죄책감이 드는 것이다. 어디라도 가야 할 것 같고 뭐라도 보여줘야 할 것 같고. 사실 나는 얘도 일주일 내내 어린이집 다니느라 피곤했을 테니 주말엔 집에서 좀 쉬는 게 낫다, 쪽이지만. 어쨌거나 코에 실바람이라도 좀 불어넣어 줘야 할 것 같아서 일요일 … [Read more...] about 문득 나이 드는 게 겁날 때
바쁜 사람들의 아우라
자본주의의 아우라에서 서로 한 꺼풀 씌어진 채 사랑했구나, 깨달았다. 우리의 사랑은 환경에 따라 부피가 늘었다 줄었다 하는 것이었다. 아무 양념 없이 그를 그로, 나를 나로 받아들이는 것은 처절한 과정이었다. 그리고 사랑하지 않으면 우리가 멈춰 선 이곳은 금세 지옥이 된다는 걸, 깨닫게 했다. - 김선영 『가족의 시골』을 읽다가 인맥이 좁은 나는 알고 지내는 사람이 많아 늘 바쁜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는 아우라가 부담스럽다. 그러니까 그들은 어딘지 나와 다른 세상에 사는 것처럼 여겨진다. 아주 … [Read more...] about 바쁜 사람들의 아우라
야근의 풍경
야근은 힘들다. 힘들지만 가끔 하는 야근은 나름대로 운치가 있다. 행복에 겨운 소리인지 몰라도 나는 야근을 끊은 지(?) 참 오래됐다. 끊었다는 표현이 좀 이상한데, 어느 순간 야근과 거리가 멀어졌다. 가장 큰 요인은 아이를 임신하면서부터다. 회사의 복지가 잘 되어 있고 동료 직원들의 배려 덕에 눈치 보지 않고 정시 퇴근할 수 있었다. 물론 요즘은 퇴근 후 어린이집에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한다는 이유로 야근은 더 멀어졌다. 근데 (좀 재수 없게 들릴지 모르지만) 야근이 그립다. 편집디자인을 … [Read more...] about 야근의 풍경
다음 임무까지 쉬어!
‘얼굴에 팩을 하고 술을 마시면서 아이패드로 애니메이션을 보고 아이폰으로는 트위터를 한다’와 같이 3~4가지 일을 한꺼번에 하는 장면이 휴식으로 설명된다. 많은 사람이 컴퓨터로 동영상을 보다가 ‘그만 자야지’ 하고는 컴퓨터의 파일을 휴대폰에 옮기고 침대에 누워서 본다. 그게 쉬는 것이다. 송길영의 『상상하지 말라』를 읽다가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한 번쯤은 그들이 즐겨 보는 애니메이션에 감사의 마음을 느꼈을 것이다. 그것이 없었다면 내가 밥을 어떻게 먹고 화장실을 언제 가며 꿀처럼 달콤한 … [Read more...] about 다음 임무까지 쉬어!
커피 덕에 쉽게 쓴 카피
일요일 밤이면 출근의 의미를 찾는 다양한 이유를 하나둘 끄집어 내본다. 회사가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월요일 아침 6시 15분에 일어나 정해진 어딘가로 ‘반드시’ 가야 한다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얼마 전 SNS에서 본 공감 일러스트에서 매일 아침 이불 속에서 되뇐다는 그 말 ‘아, 반차 낼까?’를 나도 거의 매일 아침 경험하고 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한 번은 내가 출근하고 싶은 이유는 사무실 내 책상에 앉아서 마시는 따뜻한 믹스 커피 한 잔 때문일지도 모른단 생각을 한 적이 … [Read more...] about 커피 덕에 쉽게 쓴 카피
가격 이상의 가치를 전달하자
별로 문제 될 게 없는 것 같은 문제소설을 묶어 놓은 『2016 올해의 문제소설』을 읽었다. 소설은 시대의 풍향계라고 한다. 나는 동시대 소설을 읽으면서 그 시대를 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지금을 이야기하고 있는 현대소설을 즐겨 읽는다. 그래서 더욱 현재를 비추는 거울과 같은 12편의 단편이 내 마음에 콕콕 박혔을 것이다. 이 중에서 오늘 이야기하고 싶은 문장이 있는 소설은 이의경 작가의 「물건들」이다. 사물, 물건, 상품, 이런 단어에 왜 귀가 솔깃해지는지 알 수 없지만 … [Read more...] about 가격 이상의 가치를 전달하자
컨펌받는 삶 혹은 일
화장실에서 손을 닦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내 일에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가? (손을 닦다가 왜 이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베스트는 아무래도 누군가에게 독한 ‘컨펌’을 받지 않기 때문인 듯하다. 한때는 나도 지긋지긋하게 컨펌만 받는 인생이었다. 허락받는 것에 너무 스트레스를 받은 나머지 (당연한 얘기지만) 회사 가기 싫을 정도였다. 야근하고 밤새는 건 일도 아니었다. 손바닥보다 작은 배너 하나 만들고 상사에게 컨펌받을 때면 텍스트 크기 줄여라, … [Read more...] about 컨펌받는 삶 혹은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