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의 암흑기, 그리고 김응용] 1. LG가 만든 현대적 프로야구와 김응용에 대한 오해
[한화의 암흑기, 그리고 김응용] 2. 김인식이 망친 한화와 LG 가을야구의 진실 에서 이어집니다.
7. 김응용 체제의 문제들
전체적으로 2013년 한화는 원래 전력이 나빴던 00년대 후반의 문제가 전혀 개선된 것이 없다. 오히려 류현진이라는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승리를 안겨줄 가능성이 높은 초특급 투수를 잃어버림으로써 연패를 끊어줄 길이 거의 끊긴 상태다.
그러므로 한화의 암울한 지표들이 전부 김응용의 문제냐고 말하면 그건 아니고, 김응용에 대해서 가끔 보이는 해태-기아쪽 야구팬들의 변호 아닌 변호 역시 대부분 이쪽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엔, ‘승률’이라는 문제에 대해서는 김응용의 책임이 그리 많지 않지만 ‘팀’이라는 차원에서는 김응용의 책임이 상당히 많다. 정확히 말하면, 김응용이 부임한 그 2013년 한화 이글스의 체제 자체가 문제가 많다.
전혀 입증되지 않은 코칭스태프
김응용 감독이나 김성한 수석코치에 대해서는 그렇다 치더라도, 송진우 1군 투수코치와 조경택 1군 배터리코치, 이대진 투수코치, 이종범 주루코치, 김종모 타격코치에 대해서 필자는 상당히 의구심을 갖고 있다. 이들의 역량도 역량이지만, 코치로서의 ‘준비’도 문제다. 전자는 조경택과 김종모, 후자는 송진우와 이대진, 이종범이 해당한다.
물론 모든 코치들이 코치로서 준비가 필요하거나 준비를 받아야만 결과를 내놓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그런 준비되지 않은 사람들이 선임되는 것이 절박한 상황의 팀을 재건하는데 과연 ‘일반적으로 유효한 답안이 될 수 있는가?’라는 것. 어떻게 말하면 이 질문은 프로야구 전체에 해당한다. 프로에서 뛰던 선수가 은퇴하자마자 코치가 되어서 아마추어도 아니고 프로의 누굴 가르치는 현상. 필자는 이런 일을 볼 때마다 대학생에게 고교생이 과외를 받는 것이 떠오른다.
심지어 정민철이나 한용덕은 분명 성과를 내놓은 전력이 있는 사람들이기나 하지, 송진우나 이대진, 특히 이대진은 전혀 코치로서의 경력이 없고, 애초에 지도자를 준비하긴 했는지도 의문이다. 이종범 주루코치야 애초에 주루플레이라는 것이 큰 의미가 있는 일이 아니니 중요하지 않지만, 투수코치와 타격코치는 단순히 야구는 잘하는 사람이 잘하는 거라고 생각하고 넘어갈 만한 보직이 못 된다. 이대진이 은퇴를 작년에 했는데 올해 1군 투수코치를 하고 있다는 것, 도대체 이것이 가당키나 한 일인지? 무엇을 보고?
이대진, 이종범같은 기묘한 김응용 사단의 초보 코치들은 접어두더라도, 송진우와 조경택 역시 이상할 정도로 중용이 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필자는 선수로서의 격과 코치로서의 자격은 전혀 다른 문제라고 생각하며, ‘라뱅’이 타격 코치를 하고 있는 상황을 잘 상상하지 못한다. 조경택이 한화의 배터리 코치로 있었던 것이 2011년부터고, 심지어 전혀 조경택은 타격으로서 대단한 포수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2009~10년에는 타격코치로서의 재임기간이 있다.
거의 모든 구단들이 갖고 있는 문제지만 한화 이글스는 특히 학연과 지연, ‘팀연’이라는 순혈주의가 강한 구단이고, 실제로 이 순혈주의가 전력보강을 위한 FA에 소극적인 면이나 코치 인선 문제 등에서 잘 드러나는 편이다. 이른바 ‘칰무원’으로 통하는 한화 이글스의 무능력 코치의 대명사였던 ‘상군매직’ 이상군부터 시작해서 조경택 역시 3년차이지만 한화는 지명하거나 영입한 포수의 수만 많을 뿐 아무도 1군 풀타임으로서 쓸 만한 기량을 보여주지를 못하고 있고 신경현을 그리워하게 만들고 있을 뿐이다(심지어 신경현은 통산 2할 5푼인데 수비형도 아닌 공격형 포수에 가깝다).
송진우 코치는 그나마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연수를 하고 왔지만, 무슨 성과가 있어서 1군으로 선임된 거냐고 물어보면 할 말이 없다(심지어 정민철도 박정진이라는 성과는 있었다). 오히려 필자는 올 시즌 2군에서 처음 올라온 김경태 투수의 투구폼이 박정진과 비슷했던 것을 보고 커맨드만 향상된다면 충분히 좋은 역할을 해줄 것 같다고 생각했었는데, 어느새 김경태의 투구폼은 1군에서 어정쩡한 이중 키킹과 비슷하게 변했고 성적은 수직낙하를 하는 것을 보고 송진우 자체의 역량조차 의심스러워졌다.
결국 요약하면 최소한의 검증이 된 건지 의심스러운 코칭스태프와 열악한 자원이 결합한 결과, 아예 갈피를 못 잡고 있는 셈이다. 투수코치나 타격코치에 의해 자신의 지론이 흔들리지 않을 정도의 선수는 한국 프로야구에 거의 없으며, 신인이나 무명의 투수들이 많은 한화는 특히나 그런 성격이 강하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말이다.
투수에게 제일 중요한 건 뭔가? 무엇을 중심으로 투수들의 상태를 개선할 건가? 투수들의 보직은 뭔가? 출루에 집중할 것인가, 아니면 적극적인 공격에 집중할 건가? 아니면 일발 장타를 살리는 방향으로 갈 것인가? 과연 지금 한화 코칭스태프들의 어떤 ‘일관된 코칭’이 한화에 보이나?
보직, 시스템, 로테이션의 붕괴
프로야구는 126경기를 하는 거고, 기본적으로 전승을 목적으로 하는 종목이 아니다. 리그전에서 중요한 것은 시즌 단위에서의 승률이다. 그렇기 때문에 버릴 경기는 과감하게 버리고, 이길 경기에는 다소간의 무리를 할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프로야구 팀의 투수운용은 순서와 상황에 맞게 이루어져야 하고, 그 보직은 시즌 전에 미리 80%는 가이드라인이 잡혀 있어야 한다. 애초에 시즌 전에 전력구상은 다 되어 있고, 위험요소들을 관리하면서 보내는 것이 프로야구 팀이 ‘시즌’을 보내는 방식이다. 그러나 김응용 체제에서는 그 모든 것이 무너져 있다.
사실 한화의 4월은 다소 운이 없었다고 생각한다. 질 수 있다. 개막 후 13연패,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13연패에 대한 답안이 선발투수를 1이닝 던지고 내리고, 닥치는 대로 엔트리의 투수들이 다 올라오는 것이라면 그건 답안이 되지가 않는다. 5선발 체제와 투수의 분업화가 이루어진 것은 그것이 선수생명을 길게 끌고 가는 일이기도 하지만, 장기 시즌 승률을 봤을 때 일반적으로 가장 나은 방식이기 때문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방식에서 누가 퍼즐이 될 것인가 하는 것은 이미 시즌 전에 아무리 낮게 잡아도 절반은 구상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누구 경기는 가능한 한 잡는다, 누구 경기는 경험을 주는 쪽에 집중한다, 누구 경기는 상황을 본다“ 같은 계획, 그 계획이 지금 한화에는 전혀 없다. 감독이라는 사람은 선발투수에 대한 질문에 “글쎄, 어차피 다 거기서 거기지 않나”라 말을 하고 있는데, 이것이 정상적인 관점에서 프로야구 팀이 보내는 시즌이겠느냐 하는 말이다.
불펜 운영 역시 미스테리하기 그지없다. 선발 투수의 5인 로테이션을 뻑하면 당기다가 바티스타의 구위가 급격히 하락하고 유창식이 어깨 통증으로 이탈했다는 것 자체도 문제지만, 불펜에서 누가 어느 상황에 나올 것인가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송창식을 제외하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송창식은 7회까지 이기면 8회에 나온다. 2이닝 막는다.
OK. 무식하지만 그렇다고 치자. 그러면 다른 경우는? 누가 롱맨이고, 누가 원 포인트고, 누가 추격조고, 누가 셋업 역할을 할 것인가? 아, 물론 한화의 투수진이 열악하다는 건 안다. 그런데 누군가는 해야 할 것 아닌가? 2군에서 올라왔던 언더핸드 임기영이나, 최근의 조지훈은 보직이 뭔가? 자그마치 ‘스나이퍼’ 장성호와 바꿔온 송창현에 대한 견적은 있나? 어떤 선수가 무엇을 해야 할지, 왜 그것을 1군에서 그것도 시즌 중에 팬들 속을 뒤집어 놓으면서 정하나? 이런 팀이 세상에 어디에 있나?
물론 이런 운영에 과거의 임창용이나 송유석이 있다면 기적같은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불펜 투수 하나가 계투로 규정이닝을 채우고 2~3점대를 찍어주면 말이다. 그런데 그렇게 운영을 하고 싶다고 해서, 임창용이 대전에서 다른 선수로 환생을 하나? 투수력 열악한 작년 LG나 올해의 두산도 이렇게 운영하지는 않는다(다만 김진욱 감독은 최근에는 김응용 감독에 가까워지는 느낌이 든다).
야수도 마찬가지다. 1군에서 못 하니까 2군에서 올려본다, 좋은 발상이다. 단지 그러려면 이 선수가 앞으로 장래 1군에서 코너 외야수다, 중견수감이다, 유격수감이다, 2루수다, 아니면 유틸리티로서 적합할 것 같다고 하는 기용에 대한 생각과 발상, 인내가 필요하다.
오지환의 성장은 엄청나게 많은 실책과 그로 인한 패배, 심한 비난 속에서 이루어내고 있는 현재진행형이다. 김현수나 손아섭조차 국가대표 외야수로서 정착하는 데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했고, 모든 선수는 유틸이 될 수 없다(다만 두산의 김진욱 감독은 그럴 수 있다고 믿는 것 같기도 하다). 심지어 타격이 안되면 수비도 안되거나, 수비가 되면 타격도 덩달아 올라가는 선수들도 많다. 야구가 스포츠이긴 하지만 멘탈 스포츠이기 때문이다.
투수를 키우는 데는 조심스러워야 하고, 야수를 키우는 데는 과감해야 하지만 김응용 체제는 투수를 키우는 데는 막무가내고, 야수를 키우는 데는 일반적으로 우유부단하고 갈피를 못 잡는다. 왜 신인이 매일 극단적인 만루 상황에 등판해야 하나? 2군 선수들에게 동기를 주기 위한 것이라면 거기서 끝내야 한다. 그저 못하니까 내리고 잘하니까 올린다는 무감각한 야수운영, 아무나 그나마 상태 좋은 놈이 나간다는 식의 투수운영은 80년대에나 통하던 아마추어 야구이다.
근본적으로 그런 야구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한두 선수의 선수생명 정도는 제물로 바쳐야 한다. 아마 그럴 수 있는 선수는 송창식 정도일 텐데, 혈행장애가 재발해서 송창식의 손이 까맣게 썩어버리면 한화라는 팀의 미래도 더 썩을 것이다. 송창식의 손을 보고 선수들은 한화라는 구단 자체를 증오하게 될 테니까. 한화행을 많은 선수들이 기피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거의 기정사실이다.
목적성과 색깔이 없는 야구
최근의 김응용 체제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대체 당시의 ‘해태’는 정확히 뭘 하는 팀이었지? 선발이 오래 던졌던가? 불펜이 오래 던졌던가? 빅뱃으로 승부하는 팀이었나, 아니면 쌕쌕이로 승부하는 팀이었나? 공격으로 승부하는 팀이었나? 수비로 승부하는 팀이었나?
요컨대 지금 한화라는 팀에 대해서 계획이 없는 건 둘째치더라도 어떤 식으로 야구를 하는 팀을 만들 것인지를 전혀 알지 못하겠다는 의미이다. 물론 과거의 해태와 지금의 한화가 다르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 부분은 오해를 피하고자 한다.
물론 김성근 감독의 말처럼, 이기는 야구야말로 재미있는 야구인 건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돌이켜 SK 왕조를 생각하면, 이기는 ‘방법론’이 있다. 이른바 빠른 투수교체, 정확한 작전수행, 다수의 불펜투수들을 기용하는 벌떼 마운드나 전원이 갭 파워를 보유한 기관포 타선같은, 이기는 방법 말이다.
롯데는 어떤가. 로이스터 체제의 롯데는 장원준, 조정훈, 사도스키 등의 선발을 길게 끌고 가면서 핵타선의 힘으로 경기를 잡는다는 복안이 있었고, 양승호-김시진 체제에서는 불펜이 강화되면서 이기는 방법론이 타선에서 불펜 쪽으로 조금씩 이동하는 추세다. 김경문 시대의 두산은 이닝이터 용병 등판에서 토종 불펜들을 최대한도로 아끼고, 어정쩡한 선발들의 경기에서 KILL로 대표되는 불펜을 총동원해 실점을 막으면서 치고 달리는 야구로 득점한다는 방법론을 갖고 있었다.
최근의 류중일은 원래 팀의 전력이 양적으로, 질적으로 우수하니 그 전력을 시즌 중에 항상 최선의 상태로 유지하면 승리는 따라온다는 생각을 가졌고, 김기태는 수비를 안정화시키고 불펜을 강화하면서 점찍은 야수를 밀어줘 타선의 유기성을 강화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김응용 체제에서 한화는 ‘어떻게 이기’지? 승리에 대한 공식이 뭐지? 그건 약팀이니 없다고 치고, 그러면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이기는 팀을 만들 거지? 그러니까 팀컬러의 확립에 대한 부분.
팀 컬러로서 해태를 생각한다면 그건 통하지 않을 것이다. 해태는 류현진 이상의 필승카드인 선동열이 있었고, 선동열 이후에도 조계현, 이강철 등의 투수 레전드들이 있었고, 이종범이 있었으니까. 그리고 해태라는 팀의 조직력이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연고로 묶인 강한 위계질서가 있었기 때문이니까.
그러나 프로야구 자체도 변했다. 정신력, 눈빛, 근성도 좋지만 일단은 잘 던지고 잘 치는 게 우선이고, 기량을 향상시키는 일과 분석을 하는 일이 더 중요하며, 선수보다도 선수‘층’을 만드는 일이 중요해졌다. 선수층이 약한 팀은 꾸준히 중간에 꺾였고, 살아남은 팀들은 모두 강한 선수층을 동반하고 있다. 좋은 선수를 만들어 좋은 팀을 만드는 시대지, 좋은 팀에서 좋은 선수가 나오는 것이 아니게 된 것이 프로야구인 만큼, 팀을 육성하는 데 있어 어떤 명확한 목적성을 가져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지금 원석이라도 이 선수가 앞으로 어떤 역할을 어느 정도로 해 주기를 기대하고, 그리고 그런 선수들이 묶인 팀이 어떻게 변해야 한다는 목적성을 갖추지 않으면 리빌딩이 될래야 될 수가 없다. 리빌딩은 우울한 플레이와 참혹한 패배를 항상 동반한다. 그렇기 때문에 잘 나갈 때 항상 선수들을 조금씩 육성하고 신인들의 동기부여에 신경을 써야 한다.
그러나 결국, 이왕 리빌딩을 목적으로 삼는다면 이기는 횟수보다 이기는 방법론을 창출해야 한다. 그게 옛날 한화같은 9점 내주고 10점 내는 뻥야구든, 마운드의 힘으로 찍어 누르고 좌타 쌕쌕이로 점수를 쥐어짜는 야구든. 이기는 야구를 해야 강팀이 되지만, 이기는 야구는 이기는 방법이 있어야 가능하지, 이기려는 마음으로 가능한 일이 아닌 셈이다.
김응용 체제는 거기에 대해서 아무런 해답을 주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놀랐던 일이 라형진, 임동규, 김진웅 등 과거의 2~3류 선수들에게 ‘몸 만들라’는 지시를 김응용 감독이 최근에 한 것 같다는 소식이었는데, 김인식이 한화의 기둥뿌리를 썩게 만든 일이 김응용 시대에 반복되는 것은 꽤나 웃긴 일이다.
물론 현대 야구는 더 이상 그런 선수들이 보탬이 될 만큼 만만하지 않으니까 김응용 감독의 희망사항은 물거품처럼 사라질 것이다. 펜스가 넓어진 대전구장에서 더 이상 뻥야구는 통하지 않을 거라 보지만, 하다못해 뻥야구든 달리는 야구든 최종적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목적지가 있을 때 비로소 육성을 통해 팀이 강점을 갖게 되고 강점으로 승리하는 것 아니겠는지?
시즌을 포기함으로 리빌딩이 되는 것이 아니라, 팀을 위한 목적성을 위해서 시즌을 포기하는 것을 통해 리빌딩이 되어가는 것이다.
8. 한화와 LG, 전력의 순환 구도
한화의 암흑기는 진행중이고, 적어도 김응용 체제에서는 이렇다 할 변화를 얻기 힘들다. 김응용의 야구는 현대 야구에서 고승률을 거둘 만한 야구가 근본적으로 아니고, 오히려 장기 레이스에서는 더욱 불리한 형태다.
그러나 김응용이 맞이한 상황은 결국 김인식-한대화 체제에서 발생하고 해결되지 못한 문제들의 집합체고, 김응용 체제에서는 그들이 하지 못했던 일을 행해야 할 수밖에 없다. 가장 가까운 예시라면 LG의 김기태 체제가 될 듯. 김기태 체제에서 LG가 암흑기를 끝낼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지만, 적어도 LG라는 팀의 전력이 가면 갈수록 향상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LG에게서 배우는 리빌딩
LG는 항상 FA시장에서 인기있는 팀이고, FA 금액으로 선수를 실망시키는 구단은 아니었다. 실제로 정성훈, 이진영, 이택근 등 LG는 항상 FA에서는 과감한 팀이었고, 그 결과가 팜의 황폐화였고 일명 ‘탈쥐효과’의 주인공(박병호와 같은)이지만 동시에 암흑기를 딛고 일어나려는 LG의 모습이기도 하다.
LG는 00년대 후반부터 재능 있는 원석인 임찬규, 오지환, 한희, 이형종, 정찬헌, 신정락 등을 알아보고 지명하기 시작했고, 3~4년이 된 지금 슬슬 그들 중 일부가 팀의 주축으로 성장하고 있다. 또한 조인성, 이택근, 송신영 등의 선수들이 빠져나갈 때 김기태는 윤지웅, 임정우, 나성용 등 자신의 임기 내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지 매우 의심스러운 선수들을 과감하게 지목했다.
현재 윤지웅은 퓨처스리그 최고의 좌완 중 하나이며 임정우는 이미 1군에서 추격조로 활용하면서 1픽 임찬규의 군대 문제를 해결할 여유를 얻게 되었다. 또한 만년 유망주 정의윤을 꾸준히 출장시키고 주전을 보장하면서 정의윤은 자신의 잠재력을 발산하고 있고, 4년 전에 복권으로 집어 놓은 문선재는 6월 LG의 최고 히트작이다.
중요한 것은, 김재박 체제에서 LG가 이미 좋은 원석들을 지명해서 팜을 채웠고 김기태 체제에서도 팀의 나중을 본 결단을 꾸준히 내렸다는 사실이다. 삼성과의 3-3 트레이드는 1픽 포수 조윤준과 미래의 2루수 문선재를 성장시킬 시간을 벌면서 동시에 즉시전력을 벌충하는 효과를 얻었고, 류제국의 합류 역시 이형종과 정찬헌이라는 군대 문제를 해결한 영건들을 위한 시간을 벌어주고 있다.
시간을 벌어주니 선수들이 성장할 수 있고, 유망주들 중 두셋만 기량이 상승하면 LG의 문제점인 노장들의 체력을 최대한 온존시키면서 시즌을 진행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노장들이 체력을 회복해 돌아오면 신진들이 사이클이 꺾이더라도 노장들이 경기를 가져올 수 있다. 문선재와 김용의 페이스가 33연전 후반에 떨어졌지만, 후반에는 부상에서 복귀한 이진영과 컨디션을 회복한 정성훈의 화력으로 경기를 이끌어나간 것이 33연전의 LG 타선이다.
리빌딩은 조급하게 이룰 수 없고, 닥치고 유망주를 1군에서 막 굴린다고 되는 일도 아니다. 적어도 한국 프로야구에서의 팀 리빌딩은 FA를 통해 투타에서 팀의 경기력이 지탱될 기둥을 미리 세우고, 남는 자리에서 유망주들을 장기적으로 기회를 주면서 이루어지는 장기 프로젝트다. 대형 선수를 유망주 몇과 손쉽게 교환할 수 없는 리그 구조상, 리빌딩의 핵심은 명확한 목적성을 가지고 시간과 자본을 들이는 데 있다.
즉, 김응용이 정말로 한화를 ‘강팀’으로 만들고 싶다면 그 결과물을 승률로 뽑을 생각이 아니라 선수로 뽑을 생각을 해야 하고, 팬에게 이해를 받든 말든 거기에 모든 힘을 기울이면 비로소 김응용의 계약 시기 이후에나 서광이 비칠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김응용이라는 감독은 그런 궂은 일의 중요성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할 것이라 필자는 믿지 않는다. 그랬다면 한화가 이 정도로 승률에 비례하며 팬들의 희망을 빼앗고 있지는 않을 것이고.
9. 결론
리빌딩은 장기 프로젝트, 승리가 아닌 선수를 얻어야
선수층의 ‘뎁스’가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경기력의 한계를 높여주는 것이 아니라 경기력을 일정하게 유지시키기 때문이다. 경기력이 일정하게 유지되면 연패를 당하지 않고, 연승을 할 수 있게 된다. 전력에는 위아래가 있고 좌우가 있는데, 뎁스는 좌우를 의미한다. 한화는 경기력의 위아래도, 좌우도 확보되어 있지 않은 상태고, 한화는 딱히 FA 보상선수에서 아쉬운 선수가 없다. 그렇다면 FA에서 극도의 오버 페이를 해서라도 선수 쇼핑을 하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하면 일단 전력의 위아래가 확보가 된다.
전력의 위아래가 확보가 되면 비로소 신진의 기용이 여유로워진다. 주축 선수들이 쉬어가면서 신진이 기회를 얻으면 어느 순간 신진의 기량이 상승하면서 주축 선수들은 경쟁에 돌입하고 아울러 주축 선수들은 휴식을 통해 경기력을 일정하게 유지할 수가 있다. 더군다나 신인 선수들의 기량과 재능이 예전과 같지 않은 이상 육성에 걸리는 시간은 길게 잡아야 하고, 팀의 리빌딩은 장기 프로젝트로 변한다.
감독과 팀이 목적으로 삼아야 하는 것은 어떻게 말하면 팀의 승률이 아니라, 선수 개개인의 기록이다. 좋은 선수가 발굴되어야 좋은 선수들로 승률이 확보되기 때문이다. 팀의 승률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것은 4강 티켓을 놓고 싸우는 비등비등한 팀들의 얘기고, 실제로 올 시즌 넥센, LG, 롯데, 기아, 두산, SK와 같은 팀들 사이에서의 싸움은 순간의 결정이 많이 좌우한다.
하지만 팀의 기둥을 새로 세우고 명가를 재건할 기반을 만드는 팀의 결정은 달라야 한다. 건축 경연대회를 하는 것이 아니라 살 집을 세우는 것이니까. 팀은 장기적인 목표를 수립하고 좋은 자원을 수급하고 관리하는 일에 전력을 다해야 하고, 감독은 긴 안목과 안목을 믿는 자신감, 유망주의 만개를 위한 인내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게 리빌딩이고, 고집과 강단이 있는 김응용이라는 감독에게 팬들이 정말로 기대하는 것이다.
팬들은 예전처럼 닥치고 이기기만 하면 된다는 식으로 야구를 보지 않는다. 지면 괴로워하지만, 지금의 패배가 나중의 승리가 될 수 있다는 ‘정신승리 거리’를 내놓으면 어찌 되었던 만족은 한다.
야구는 변했다, 중요한 것은 이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감독에 대한 얘기가 길어졌지만 구단의 역할이 실제로는 더 중요하다. 한화는 불과 몇 년 전까지 2군 구장이 없어 계룡대 연습장을 빌려 썼고, 이래가지고는 애초에 2군의 성장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한화 2군은 퓨쳐스리그 꼴찌다).
최근에 간신히 클럽하우스를 완공했지만, 좋은 선수를 뽑고 체계적으로 육성하는 노하우는 하루 아침에 쌓이지 않으며 팜의 강함으로 유명한 두산이나 삼성과 같은 팀에서 배워야 하는지도 모른다. 선수의 약점과 강점을 분석하는 일, 좋은 재목을 알아보는 일은 감독 단위에서만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고 오히려 감독에게는 선택의 폭이 좁다. 있는 선수를 쓰는 것이 감독이기 때문에. ‘야구는 선수가 하는 것’이라는 말은 언제나 유효하고, 좋은 선수들이 모여 맞춰진 퍼즐이 그 팀만의 이기는 노하우다. 이기는 노하우가 적립된 팀이 이기고, 강팀이 된다.
야구는 변했다. 자본의 싸움이고, 분석의 싸움이며, 전력의 싸움이다. 아니, 프로야구는 원래 그렇다. 단지 예전이 이상했을 뿐이다. 야구는 반은 전력이고 반은 운이다. 진인사대천명이라고는 하지만, 운도 준비가 되어 있어야 먹히는 법이다. 한화 이글스의 암흑기는 아직도 진행형이고, 김응용 감독의 특유의 강단이 바뀐 생각과 함께 해도 김응용 감독 임기 내에 암흑기가 끝날 가능성은 낮다. 단지 그 이후를 위한 자산이 점차 쌓여나갈 뿐이다.
그러나 지금의 김응용 체제는 한화 이글스가 가진 모든 문제들을 오히려 극대화시키는 방향일 뿐이고, 결국 2천년대 최악의 팀이 될 가능성까지도 현재로서는 보이고 있다(그나마 글을 쓰는 이 시각 경기는 한화가 삼성을 상대로 이기고 있더라). 팀이 하위권에서 노는 것 자체는 분명 문제지만, 하위권에서 놀아도 어떻게 하위권에서 노는지가 더 중요하다. 투수는 맞더라도 자기 공을 던질 수 있어야 하고, 타자는 못 치더라도 자기 스윙을 해야 한다. 팀도 마찬가지다. 물론 팬들이 원하는 것은 이기는 것이지만, 지금의 비난을 이겨내고 나중을 위한 결단을 내린다면 그건 최소한 문제를 악화시키지는 않는다.
길게 갈 것도 없다. 4월의 한화, 5월의 한화, 6월의 한화가 그렇다. 4월 한화는 기록적인 연패를 당했고, 5월의 한화는 투수들을 당겨쓰고 굴리는 것을 통해 간신히 승률을 호전시켰다. 그러나 6월의 한화는 4월보다도 훨씬 심각한 상태다. 패배는 그냥 일상적이고 만성적인 질병이 됐고, 이기기 위한 무리수가 오히려 선수단과 팬들의 멘탈을 땅으로 꽂아버리고 있지 않은가. 마치 하락한 바티스타의 구속처럼 말이다. 선순환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떤 시발점이 필요하다.
다만 그것이 김응용 체제에서 가능한 일일지는, 글을 끝맺는 이 순간에조차 의문을 남기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