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의 암흑기, 그리고 김응용] 1. LG가 만든 현대적 프로야구와 김응용에 대한 오해에서 이어집니다.
4. 변화된 야구 저변, 강팀의 조건
투수 한명을 완전히 보내버리는 것으로 우승을 하는 시대는 언제 끝났을까? 적어도 ‘1명’을 잡아먹어 우승을 할 수 있었던 시대는 아마 99년 삼성의 ‘애니콜’ 임창용이 끝이 아니었나 싶다. 97년 김현욱 정도까지 포함할 수 있겠고. 좀 더 앞으로 가면 92년 전설의 염종석도 나올 수 있다. 80년대 선동렬/최동원/김시진은 그냥 관행적인 것이니 제외하도록 한다. 물론 이 시기 투수혹사는 지금으로 치면 감독이 사람 취급도 못 받을 일이고 애초에 먹히지도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올해 한화가, 5월은 2007년의 LG, 6월은 2006년의 LG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고 있다. LG의 암흑기는 유심히 보지 않은 사람들 입장에선 그저 봄쥐, 그리고 늘 있는 여름 DTD로 표현되지만 실제로는 그 내역들이 감독마다 다르며, 적어도 2011년엔 확실히 끝낼 수 있었다.
아무튼 그것과는 별개로, 한화는 새로운 암흑기로 접어들고 있다. 그리고 그 문제의 흐름은 00년대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가 두 잠실 라이벌로부터 읽을 수 있다. LG가 본격적으로 이순철 체제에서 암흑기를 맞이하고, 두산이 그 당시만 해도 검증도 뭣도 전혀 되지 않았던 김경문 체제를 맞이하면서, 두 팀은 완전히 처지가 변하게 된다.
발전하는 현대야구, 선수층의 깊이가 중요해지다
현대 야구에서 중요한 것은 선수층의 힘, 그리고 역할의 전문화와 분업화라고 볼 수 있다. 70년대부터 지속적으로 한국은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졌고, 그러면서 자본이 확보되고 영양상태가 개선되면서 프로야구 선수들의 사이즈와 파워, 선천적 재능은 더욱 높아졌다. 투수들의 구속은 더욱 빨라졌고, 타자들의 파괴력은 더욱 강해졌다.
더욱 강해진 상대방을 공략하기 위해서 타선에서는 전문 지명타자와 대주자, 대수비, 대타요원들의 가치가 커졌고, 투수들은 MLB와 NPB에서 쓰이던 새로운 구종을 익히고, 구속을 높이기 시작했다. 전문화된 전력분석에 의해 투수와 타자들은 상대방의 약점에 관한 정보를 미리 받고 ‘전략적으로’ 게임을 하게 되었다.
이러면서 풍부한 선수층의 필요성은 더욱 확대되었다. 프로야구의 수준이 급격하게 향상되면서, 고졸 투수나 야수가 리그에서 괄목할 성적을 낸다든가 하는 일은 매년 줄어들고 있다. 사실상 2010년을 끝으로 고졸 데뷔 첫해에 리그를 폭격하기는커녕 ‘1군에서 쓸만한 수준’인 선수도 드물게 배출된다. 당장 작년에 드래프트 된 선수들 중 1군 엔트리 말고 진짜로 활약을 하는 선수는 ‘없다’.
더 디테일하게 살펴보면, 작년 드래프트 출신자들 중에서 눈에 띄는 선수는 없다. 권희동(NC)이 괜찮아 보이긴 하지만 타석이 너무 적고, 애초에 주전도 아닌 대타 요원이다. 재작년까지 늘려야 비로소 한현희(넥센), 박지훈(기아) 임준섭(기아) 최성훈(LG) 변진수(두산) 노진혁(NC) 홍성민(롯데) 정도가 보인다. 그리고 이들 중에서 노진혁과 임준섭은 사실상 올해가 처음이고 변진수는 작년의 활약을 뒤로 하고 2군에서 기약이 없는 성적을 보이고 있으며, 홍성민도 1군에서 자리를 잡은 것은 아니다. 그나마 한현희가 독보적이다.
2010년에 이루어진 드래프트는 더 심하다. 3년이 지났는데 프로 1군에서 자리잡은 선수는 삼성의 심창민 정도고(이 친구도 어정쩡하다) 전체 1픽 최대어 유창식(한화)은 부진에 부상이 겹쳤으며 애초에 1군에서도 그냥 ‘보기 괴롭지 않은 정도’의 성적만 간신히 냈고, 전체 2픽 임찬규(LG)는 간신히 패전처리 롱맨으로 뛰고 있는 상태다. 쉽게 말해 매년 아마추어 야구에서 나오는 선수들의 선천적인 재능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임찬규는 다소 보여준 것이 있긴 있어서 부진에 가깝다.
올해 드래프트 최대어라는 심재민이나 임지섭 정도의 투수들에 대한 스카우터들의 평가는 그저 그렇고, 작년 최대어였던 윤형배(NC)가 있었다면 단연 전체 1픽이라는 평가가 많을 정도다. 이렇게 전반적으로 프로야구에 진입하는 선수들의 초기 수준이 낮아지고 있는 것은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근본적으로 프로야구가 축구에 비해서 인프라가 열악하고, 수요가 적으며, 페이 불안정성이 크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떨어지는 신인의 수준, 이에 대한 장기적 안목이 강팀과 약팀을 만든다
야구는 고정적 인프라가 많이 소비되는 스포츠다. 고교야구에서 나무배트를 사용하기 시작한 이후 나무배트 가격만으로도 한달에 수십만원이 소비되는 경우가 많고, 야구를 하기 위한 구장 역시 축구처럼 단순하지 않으며 보호용구 역시 많이 필요하다.
거기다 프로야구는 FA가 9년이나 걸리기 때문에, 선수가 큰 몫을 잡기가 정말 어려운 스포츠다. 생각해 보면, 19세에 바로 데뷔했다고 치더라도 군대를 제외하면 9년을 채우면 나이가 30이다. 더군다나 이 시점까지 1군에서 계속 9년을 풀로 채우면서 좋은 활약을 한다고? 투수의 경우 어디 한 군데 탈이 나면 재활에만 2~3달씩 걸리는 경우가 많은데?
그 와중에 월드컵 열기로 인해 축구 인프라와 지원금이 확대되고 저변에 확보되면서 동시에 축구 클럽들의 유소년 FC가 확대되면서 선수자원이 축구 쪽으로 집중되는 경향이 강해졌고, 야구에 입문하는 선수들의 재능과 그 한계가 낮아진 것이 최근 5년간의 트렌드라고 볼 만하다. 이런 흐름으로 인해 프로야구는 최근 소위 말하는 ‘만년 유망주’나 ‘중고신인’에 대한 재활용이 확대되었다. 그 흐름에 있는 것이 LG의 신고선수였다 방출된 서건창(넥센)이나 삼성의 만년 유망주였다가 NC에서 꽃핀 김종호(NC) 같은 선수들이다.
최근의 용병 투수에 대한 높은 의존 역시 결국 신인 투수자원이 너무나 열악하기 때문에, 그리고 투수 리빌딩이 아주 어렵기 때문에, 구단들이 돈이 없는 건 아니니 간편하게 선발투수 기근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서 선택한 것이다. 이른바 ‘선수기근’이 심각해지고 있는 것이 현재 한국 프로야구의 현실이다.
선수기근에 대응하는 세 가지 방법
여튼, 강팀의 고착화는 이 선수기근에 어떻게 대응하는가 하는 문제에서 거의 결정이 난다. 팀에 부족한 선수를 모으는 방법에는 크게 세 가지의 방법이 있다. 어디서 출혈을 감수하고 급한 것을 메우든지(트레이드), 적당한 선수와 돈을 주고 영입하든지(FA), 애초에 좋은 선수를 뽑든지(드래프트). 그리고 좀 예외로 나쁜 선수를 좋게 만드는(….) 감독도 있다고들 한다(김성근).
SK 왕조는 사실 조범현 시대에 이미 정근우, 최정 등의 젊은 유망주들이 들어왔고, 그것이 김성근에 의해 꽃핀 사례다. ‘화수분 야구’로 불리는 00년대 중후반 김경문 체제의 두산은 고창성, 임태훈, 이재우, 이용찬 등 좋은(좋았던) 투수들을 드래프트해 잘 키워냈고, 더불어 하위 픽이었던 양의지의 만개, 정수빈과 허경민, 민병헌, 최주환 등 좋은 선수들을 찍어 좋은 육성 시스템에서 키운 사례들이다.
암흑기에 빠진 LG는 주로 두번째인 FA를 택했다. 물론 이렇게 돈을 들였음에도 불구하고 LG의 성적은 나빴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그런 FA에서의 공격적인 영입은 한화와는 달리 항상 일정 이상의 전력을 온존시키는 길을 만들기도 했다.
한화는 대표적으로 구단의 시스템에 대한 투자가 열악한 팀이다. 2군 구장 및 클럽하우스는 이제야 완공이 됐고, FA에서 타팀 선수를 데려온 케이스는 김민재 정도가 유일하며, 또한 성공사례다. 트레이드 자체는 활발하지만, 거물급의 선수에 대해서는 별로 없는 편. 트레이드 성공의 대표작이 ‘이대수’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최근 10년간 한화가 드래프트를 한 선수의 ‘숫자’다. 한화는 최근 10년간, 단연 가장 적은 수의 선수를 드래프트에서 지명한 팀이다. 더군다나 그 지명도 대체로 투수에 편중되어 있어서, 한화에 사람들이 상상하는 테이블세터가 있었던 기억은 정말 희미할 정도다. 거포의 계보는 장종훈으로부터 김태균, 그리고 한대화 체제에 만개한 최진행, OPS 히터의 교과서인 김태완 등 계속 이어지고 있지만.
00년대 중반, 여기서 한화의 암흑기가 시작된다. 허유강, 황재규 등 유망한 투수들을 지명한 것 자체는 좋았다. 문제는 그걸 육성하고 쓰는 과정이다. 김응용이 앞으로의 암흑기를 만들 거라면, 김인식은 지금의 한화에서 지분이 가장 큰 사람이다. 전임 감독 강병철의 시대에 나름대로 진행되던 리빌딩이 김인식의 시대에 완전히 멈추고 심지어 그 유망주들이 망해버린 것이다.
5. 김인식 체제와 리빌딩
이제는 선수 하나 키우는 데 5년이 필요하다
LG의 ‘오지환’을 예로 들어보자. 올 시즌 처음으로 오지환은 공수 양면에서 사람다운 구실을 하기 시작했다( .272, OPS .790). 오지환이 지명된 것은 08년에 이루어진 09년 신인 드래프트다. 군 문제를 딱히 해결하지 않았으니 오지환을 이 수준까지 끌어올리는데 걸린 시간은 무려 4년이다(09/10/11/12).
두산의 화수분처럼 나오는 선수들이라고 딱히 다른 것은 없다. 두산 선수들의 공통점은 빠르게 군대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인데, 두산은 주로 상무나 경찰청에 선수를 입대시키는 것을 통해 경기 경험과 군 문제를 동시에 빠르게 해결하는 편이다. 그렇다면 일반적으로 야수 한 명을 뽑아서 1군에서 최소한 쓸 만한 수준으로 만드는 데는 어림잡아 3년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얻게 된다.
오지환은 그것도 대단히 무식하게, 그냥 내야 수비를 거의 포기하다시피 해서 키운 케이스다. 이 정도로 무식하게 기회를 준 경우도 드물 정도. 투수의 경우도 거의 비슷하다. 고졸 투수 1년차는 보통 일단 고교시절 혹사로 인한 부상을 체크하고 회복하는데 거의 6개월~1년이 걸리고, 그 뒤에 2군에서부터 프로 수준으로 조련하는데 또 1~2년은 걸린다(최소한도로 프로에서 쓸 수 있는 수준까지 올리는데 그 정도가 걸린다).
대부분의 고교 투수는 피칭 자체의 기본기나 습관이 나쁘게 들어 있어서, 그대로 쓰면 성적이 구린 건 둘째 치고 부상의 여지가 매우 크다. 결론은 간단하다. 리빌딩을 시작하면 최소한 그 결과가 나오는데 아무리 낮게 잡아도 2년, 실제로는 그 감독 임기 내에는 결과물을 얻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롯데가 대표적인데, 강병철의 양아들은 대부분 로이스터 임기에 포텐셜이 폭발하였고, LG의 오지환과 문선재도 실제 드래프트는 김재박 시대에 이루어진 선수들이다.
NC의 예시를 내세워 반론할 수도 있다. NC는 신생팀인데 벌써 괜찮은 경기력을 보이고 있지 않나? 하고. 그런데 이건 사실 김경문 감독의 역량도 크지만, 제반 여건이 더 크다. 선발투수의 품귀에 시달리는 한국프로야구에서 용병을 셋이나 쓸 수 있는데다 20인 외 지명을 통해 모창민 같은 유망주를 데려왔기 때문이다(김종호는 김경문의 눈이 정확했던 것 같다).
실제로 단시간 내에 육성이 불가능한 마무리와 불펜에서는 여전히 리그 최악의 수준에 머물러 있고. 원래 투수 리빌딩은 야수보다 훨씬 어렵다. 심지어 NC가 신인드래프트에서 우선지명으로 미리 최대어들을 쓸어갔지만 윤형배만 하더라도 고교시절 부상 문제 등으로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고, 이민호나 노성호는 딱 1년차의 모습에 불과하다. 이처럼 한 팀을 새로이 만들어가는 과정에는 막대한 시간과 노력이 요구되고, 심지어 운에 좌우되는 부분도 적지 않다. 그러므로 리빌딩은 항상 적기에 제때 이루어지지 않으면 팀이 아예 망해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김인식, 지금 한화의 투수진이 무너질 기반을 착실히 닦다
그러나 김인식 감독은 그 특성상, 리빌딩과는 가장 거리가 먼 감독이다. 김인식은 기본적으로 전력을 ‘짜내’는 성격이 강한 감독이라는 점이 한화에게 있어서 치명적인 문제로 작용했다. 도대체 김인식이 언제적 감독이기에 김응용 문제를 김인식까지 끌고 가냐는 질문도 할 수 있는데, 그건 LG를 보면 알 수 있다.
이순철-김재박 시기에 선수들을 키워내지 못함으로 LG의 주축 선수들은 박용택(35) 이병규(40) 정성훈(34) 이진영(34) 봉중근(33) 정현욱(36) 현재윤(35) 등의 노장과 오지환(23) 임찬규(21) 임정우(22) 문선재(23) 사이의, 지금 전성기를 맞은 선수가 거의 없고 그나마 작은 이병규(30), 정의윤(28), 김용의(28) 정도다. 당장 내년, 내후년 주축 선수들이 본격적으로 노쇠화를 맞이할 경우, LG로서는 그 선수들의 ‘클래스’와 기량 자체가 쉽게 대체가 되지 않는 상태다.
김기태 체제에서 LG는 어디까지나 부분적으로 리빌딩이 진행 중일 뿐, 대체불가능한 선수가 꽤 많다. 그나마 임정우, 윤지웅, 나성용 등 임기 중 활용을 거의 포기하다시피하고 철저하게 미래를 보고 지명한 보상선수들이 있을 뿐이다. 00년대 한번 주축 선수의 양성에 실패한 결과가 지금까지도 영향을 미친다.
구체적으로 김인식 체제에서의 결함을 보자. 김인식의 투수운영은 흔히 소수정예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구위가 좋은 소수의 투수들을 집중적으로 단기간에 활용하는 방식이다. 이 운영은 다음 한 장의 사진으로 압축된다.
2007년 안영명은 61경기 94이닝을 등판하게 된다. 심지어 후반기에는 확연한 구위의 하락으로 좀 덜 등판한 것이 이 정도다. 그리고 사진은 2008년 한화의 마당쇠(라고 쓰고 그냥 노예라고 읽자)였던 마정길인데, 4일 등판-1일 휴식-4일 등판-1일 휴식-4일 등판을 기록한다. 그리고 이 해 9월 23일 결국 주 5일 등판을 하고 만다(…)
결국 이 해 마정길은 무려 64경기 92이닝이라는 엄청난 혹사를 하고, 2009년 그 여파로 출장 이닝이 크게 줄어든다. 그리고 그 마정길의 공백은 한용덕 전 감독대행과 함께 비닐하우스에서 죽어라 연습해 각성한 양훈이 5월에 불펜 등판으로만 규정이닝을 넘어서면서 결국 67경기 90.1이닝이라는 마정길과 별 차이가 없는 혹사를 당하고 2010년 성적이 크게 떨어진다.
2009년은 2008년 2차 5순위로 입단한 황재규 역시 대단한 불펜의 노예였는데, 황재규는 구위가 떨어지기 시작한 양훈의 뒤를 이어 ‘5월 중순부터’ 49경기 72이닝을 등판하게 된다(….) 그것뿐이 아니라 2009년 후반기는 바로 작년에 입단한 허유강이 다시 노예의 배턴을 이어받는다.
물론 이것만이 다는 아니다. 구대성은 무릎 인대 부상에도 불구하고 재활이 끝나지 않았는데 당겨서 썼고, 결국 부상 끝에 2010년 무릎 문제로 은퇴를 하게 된다. 문동환은 2007년 포스트시즌에서 허리부상을 안고 등판을 강행했고, 결국 전신의 상태가 망가지면서 2009년 방출행을 당한다.
그나마 이 두 투수들이 나이가 많았다는 점을 생각하면 어떻게 말하면 강제 리빌딩의 길이기도 했지만, 문제는 안영명(03 1차지명) 양훈(05 2차 4지명) 황재규(09 2차 5순위) 허유강(09 2차 11순위)이 모두 바로 지금 한화에 없는, 20대 중후반~30대 극초반, 즉 팀의 주력이 되어야 하는 투수들이었다는 사실이다. 이 선수들이 모두 혹사와 노예질로 인해 망해버리고 군대에 가거나 트레이드되면서, 류패패패패로 상징되는 한화의 암흑기는 암울한 투수력이라는 한쪽 축을 완성한다.
또 다른 축, 김인식이 망가뜨린 한화 타선의 세대교체
타선에서도 세대교체가 오히려 역행했다. 김인식 감독은 원래 한 물 갔다는 소리를 듣는 노장들을 발굴해 다시 쓰는 역량과 성향이 매우 강하다. 때문에 한화 시절 문동환, 지연규, 고 조성민, 강동우 등을 다시 발굴했는데, 문제는 그 다음이다.
한방은 있지만 극심한 병살타 양산 기계였던 이도형(그의 우익수-2루수-1루수 병살타는 병살계의 신기원이다)과 두산에서 데려온 전혀 쓸모가 없었던 윤재국, 역시나 쓸모없었던 김인철 등을 매우 신임하는, ‘믿음의 야구’를 넘어선 ‘쓸놈쓸’의 성향이 강해지면서, 주축 야수의 육성이 완전히 망해버리고 말았다.
이들에 가로막힌 선수들의 면면이 바로 ‘최진행’과 ‘김태완’ ‘송광민’… 최진행은 결국 한대화 체제에서 김태균이 이탈한 공백을 메우기 위해 붙박이로 기용되면서 잠실에서도 20홈런은 간단히 쳐줄 새로운 한화의 외야 거포로 발돋움했고, 김태완은 모두가 인정하는 선구안과 장타력을 겸비한 우수한 우타 빅뱃이며, 송광민은 우수한 3루 핫코너 수비력과 장타 포텐셜을 가진 선수로서 바로 ‘이범호’의 뒤를 이었어야 했다. 그나마 파워 포지션인 송광민의 3루나 최진행의 좌익은 그렇다 치더라도, 중견-유격-2루의 센터라인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중견수는 원래 타구판단이 좋고 발이 빠르며 강견인 호타준족이 중심이 되는 포지션인데, 강동우는 무려 74년생이다(이병규와 동갑). 고동진은 80년생에 기본적으로 그렇게 발이 빠르거나 수비력이 출중한 중견수는 ‘절대’ 아니고, 타격에서의 한계는 뚜렷하다(통산이 2할 5푼). 김경언 역시 기본적으로 공수 어느 쪽에도 출중한 선수는 아니다. 그리고 이 셋은 모두 30이 넘었다.
그나마 정현석이 외야수 중 타구판단이 좋은 편이고 강견이지만, 애초에 외야수 경력이 너무 짧다(프로 입단 이후에나 타자로 전향). 김태완의 우익수 수비는 올 시즌 재앙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철저하게 보여주고 말았다. 그나마 좌익/우익은 파워 포지션이지만, 중견수에서 타 팀의 배영섭, 이용규, 정수빈, 이대형 등이 가진 스피드와 수비범위를 생각하면, 한화의 중견수는 처절할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다.
유격-2루 키스톤은? 2루수 한상훈은 80년생의 노장에, 심지어 올 시즌 무서운 타격을 보여주고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통산 타율이 .232다(…) 통산 장타율도 2할대고, 수비능력은 평균 정도. 유격수는 81년생의 이대수가 주전이며 이대수의 수비능력은 평균이나 평균에 약간 못 미친다. 이대수는 공격형 유격수다(…) 주전 멤버들의 나이가 이 정도인데 더 큰 문제는 아무런 눈에 띄는 유망주가 없다는 사실. 그나마 89년생 오선진이 차기 2루수 가능성을 보여준 정도고 전체 1픽인 ‘포스트 이종범’ 94년생 하주석은 공수 모두 아직 1군 수준이라 말하기 힘들다.
김인식 시기부터 이미 이 포지션에 대해서 드래프트가 잘 이루어졌어야 한대화 체제에서 가능성을 테스트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명확하다. 같은 암흑기 속에 있는 LG는 한화와는 다른 길을 걷고 있다. 2009년 LG는 투수에 가깝게 분류되던 오지환을 차기 10년을 책임질 유격수감으로 점찍고 육성을 시작했으며, 13년에 90년생 오지환은 공수 양면에서 8할에 이르는 OPS와 발전한 수비로 LG의 기둥 중 하나가 되었다.
2루 포지션은 이미 박경수, 손주인, 박용근 등 자원이 넘치는데다 올해 LG의 최고 히트상품인 문선재는 장기적으로 2루에 자리잡을 것이 거의 확실하다. 오지환의 뒤를 이어 12년에 이미 유격수감으로 강승호를 전체 1픽으로 지명한 상태. 삼성 역시 90년생 김상수를 붙박이 주전으로 키워내어 올 시즌 원래 검증된 수비 말고도 공격력에서 진일보했고, 김상수의 입대를 대비하기 위해서 정현을 지명해 조련하고 있는 상태. 두산 베어스와 같은 팀은 말할 필요도 없다. 두산은 20대 군필 야수들의 힘으로 지탱되니까.
서러운 칭호 ‘야왕’ 한대화
결국 김인식 체제는 투타 양면에서 완전히 세대교체에 실패하다 못해 역행했고, 혹사와 세대교체 역행으로 인해 가뜩이나 난맥이 생긴 선수층 운영은 결국 2010년에만 14명이 군입대 예정 선수로 분류되고 2012년 군대에 있는 한화 선수가 22명이나 되는 참혹한 결말이 났다. 이범호를 대신했어야 할 송광민은 한화의 부실한 선수관리에 더해 ‘시즌 중에 주축 선수가 군 입대를 하는’ 거의 프로야구 역사상 최악의 선수관리 사례가 되고 말았으며, 한대화는 애초부터 성과를 내는 것이 불가능한 전력을 물려받기에 이른다.
그나마 한대화 체제의 리즈시절로 꼽히는 2011년은 30대 후반인 좌완 박정진의 엄청난 혹사와 용병 바티스타를 통해 간신히 안정시킨 계투진, 한용덕의 손에 의해 조련된 김혁민, 안승민/장민제, 간신히 다시 부활시킨 양훈 등의 신진 투수들, 이범호와 김태균의 이탈로 벌어진 무주공산에서 출장기회를 보장받은 최진행, 그리고 이상할 정도로 잘 쳤던 대타 이양기 등으로 설명되며, 이마저도 2012년에는 대부분 한계에 부딪히면서 동시에 FA로 야심차게 영입한 송신영의 먹튀화로 시즌 초부터 끝까지 계-속 8위에 머물고 한대화의 목이 날아간다.
한대화 본인도 유능했다고는 말하기 어렵지만(특히 한대화의 작전은 마치 옛날 암흑기 KIA의 서정환을 연상케 한다), 애초에 한대화는 좋은 성적이 나오는 것이 불가능한 전력을 물려받았고 한번 그런 전력을 물려받은 대가는 박찬호의 은퇴, 송신영의 이적, 류현진의 MLB 진출까지 더해져 결국 2013년 한화가 된다.
6. 팜과 선수 육성의 중요성
원래 한화는 많은 명투수들을 보유했던 구단이다. 더군다나 이 투수들이 전부 한화의 순혈 출신들이라는 것도 놀라운 일. 정민철(대전고), 구대성(대전고), 송진우(청주 세광고), 한희민(청주 세광고), 한용덕(천안 북일고), 이상군(천안 북일고) 등 한국 프로야구 역사에 최소한 20위 안에 들어가거나 10위 안에 들어간다고 평가받는 이 투수들이 전부 한화 이글스의 지역연고에서 등장했다는 점은 정말 대단한 일이다.
90년대와는 다르다! 90년대와는!
그런데 간과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90년대까지의 프로야구와 00년대 중반 이후의 프로야구가 갖는 차이다. 80년대~90년대의 프로야구는 아마추어 야구에 비해서 그리 수준이 우수하지 않았고, 체계적이지도 않았다. 특히 80년대의 경우 김응용 감독이 직접 탈골된 선수의 뼈를 맞춰주고 벌어진 상처에 약을 바르고 붕대를 발라주는(….) 일화가 있었을 정도.
그래서 고교 출신이든 대학 출신이든, 기본적으로 잘 하는 선수들은 프로에서도 1년차부터 활약하는 경우가 많이 있었다. 롯데의 전설, 최동원은 아마추어 시절이 최고였다고 평가받고, 선동렬 역시 고교시절부터 노히트를 하고 다닌 선수다. 김시진 등도 마찬가지. 00년대 중반까지도 기본적으로 ‘잘 뽑으’면 즉시 쓸 수 있는 경우가 꽤 됐다. 특히 00년대 중반은 류현진, 윤석민, 오승환, 정근우, 이용찬, 김광현 등 유래 없이 고교 선수들의 질이 좋았던 시기였다.
그런데 이 시기에 드래프트를 완전히 망친 구단이 있다. 바로 LG 트윈스. 04년 드래프트에서 현재 현역으로 뛰고 있는 선수는 이용규(KIA)와 이학준(한화)인데, 이용규는 남의 집에서 터졌다(….) LG의 05년 드래프트 출신자가 박병호와 정의윤이 대표적인데, 이 선수들이 개화하는데 걸린 시간이 7년이다(…) 그리고 이 두 선수는 모두 초고교급 타자로, 요즘 나오는 타자들과는 차원이 다른 선수들이다.
LG의 드래프트가 제대로 망한 것이 06~07년으로 흔히 평가받는데, 06년을 보자. 1차지명자는 분식집 사장 김기표다. 문제는 2차지명이 더 심하다는 건데, 1라운더 신창호는 그냥 사이버투수였다가 기아로 갔고, 원종현은 팔꿈치 부상에 시달리다 NC로 갔다. LG는 지금도 06년 드래프트 중 1군 레귤러가 아무도 없다. 이 시기 동기들이 누구냐고? 기아의 한기주, 한화의 류현진, 현대의 강정호, 두산의 민병헌 등…
완전히 절정에 이른 2007년 신인드래프트는 더 가관이다. 해외파 특별지명 봉중근과 덕수정보고의 김유선이 1차 지명자인데, 이 김유선은 계약금이 3억 5천인데 1군은커녕 ‘2군에서도’ 한 경기도 나오지 못했다. 부상이라서 그런 거라면 아쉬워나 하지, 문제는 그냥 기량 미달이었다는 사실. 이효봉 해설위원이 스카우터로서 남긴 최악의 작품이 바로 김유선이고, 오죽하면 실제론 김유선이 아니라 구유선이더라(…) 아니면 이효봉이나 구씨 일가의 숨겨진 아들이 아닐까(…) 등의 드립이 유행했다.
이 사이버투수의 입단 동기들이 이용찬, 임태훈, 이상화, 이재곤, 정영일, 김광현, 양현종 등이다. 16년째 LG팬인 필자 입장에선 거의 최악의 기억으로 남을 드래프트로 생각할 때마다 미쳐버릴 노릇이다(…)
김유선이라는 대참사가 발생하면서 LG의 스카우터들이 대규모로 목이 날아가고 나서야 2008년 신인드래프트부터 LG는 정상적인 지명을 하게 된다. 이렇게 지명된 선수가 바로 올해 LG의 후반기를 위해 준비하고 있는 정찬헌과 이형종으로, 당시 아마야구 동호인들은 LG가 어떻게 이 두 투수를 동시에 지명할 수 있는지 놀라워했다. 그리고 2009년에는 바로 그 ‘오지환’과 그 다음 픽인 2011년 60이닝을 2점대로 막아낸 한희, 그리고 대학 간다고 기아가 지명 안했는데 LG가 로또 바라고 지명해서 가져온 문선재(!!!!!)가 7라운더. 그리고 이 선수들이 제몫을 하게 되는 것이 2013년이다.
LG에게서 배우는 한화의 리빌딩 필요 시간
이런 LG의 암흑기에 벌어진 막장 드래프트를 왜 언급하냐면, 한화가 지금부터 준비했을 때 4강 컨텐더급의 강팀이 되기 위해서 어느 정도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지를 논하기 위해서다. 한화가 지금부터 드래프트에서 좋은 선수를 뽑기 시작하면, 최저 3년, 즉 2016년쯤에나 그 선수들이 주전으로 안착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더군다나 NC와 KT로 인해 우선지명 등의 혜택과 더불어 1차지명이 부활하면서, 1픽급 유망주에 대한 선택폭이 줄었다. 단적으로 KT의 우선지명인 심재민과 유희운이 각각 롯데, 한화의 연고지 출신이라는 사실이 보여준다. 당분간 드래프트를 통한 선수지명은 그 양으로도 질로도 예전만 못할 것이 거의 확실하다. 전체 10픽 이하의 유망주들에 한해서 3년을 봐야 할 것이고, 어차피 한 해 드래프트에서 1차지명 성공사례는 50%도 되지 않으며 라운드가 내려갈수록 들어보지도 못한 선수들은 급격히 증가한다.
한화 주축 선수들의 나이를 고려한다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유일한 믿고 맡겨볼 선발투수 김혁민은 군입대가 머지 않았고, 송창식은 이미 버거씨병(손가락 혈행장애) 전력이 있는 선수다. 박정진은 나이를 감안할 때 11년같은 모습을 보여주기는 힘들고, 나머지 투수들은 1군에서 풀타임 보직으로 애초에 쓰기 부적절하거나(김광수), 아예 견적이 없는 경우(임기영 등)가 많은 상태. 윤규진이나 양훈이 제대한다고 할지라도 과연 이들이 좋을 때의 폼을 되찾을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사항이다.
롯데나 SK의 변화는 좋은 자원이 모이는 데에서부터 시작했고, LG는 순수하게 전력이 없어서 11년간 가을야구를 못했던 것이 아니다. 그에 비해 한화가 놓인 현실은 우울하다. 그리고 김응용 감독은 완전히 팀에 대한 핀트를 잘못 잡고 있으며, 한화 이글스라는 구단 역시 팀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그리고 ‘야구 그 자체가 변했다는 사실’에 대한 고찰을 전혀 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