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 글 지망생을 위한 게임업계 취업 가이드 1. 악순환 기업을 피하라 에서는 게임업계에 발을 들일 때 어떤 기업을 피해야 하는지 이야기했다. 이번 글에서는 게임업계에 입문할 때 필요한 능력과 이력서, 포트폴리오 작성법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게임을 좋아하는 열정이 아닌, 게임업계가 원하는 열정
사실 신입 지원자들의 능력은 고만고만하다. 그래서 신입을 뽑을 땐 당장의 능력보다는 소질을 중심으로 검증하게 된다.
소질 중 가장 중요한 덕목은 게임에 대한 열정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지원자들은 이 게임에 대한 열정이 부족해서 악순환 기업을 찾아간다. 뭔가 어폐가 있는 말 같지만, 이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지원자들이 생각하는 열정과 업계가 원하는 열정엔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게임업계에서 일하고자 하는 이유로 ‘게임이 좋아서’라고 말한다. 하지만 게임업계는 게임을 좋아하는 곳이 아니라 게임을 만드는 곳이다. 그래서 단순히 게임을 좋아한다는 것은 개발자가 되어야 하는 이유로는 부족하다. 게임 좋아하는 사람들은 당장 동네 PC방에 가도 득시글거린다.
대부분의 유저들은 한두 가지의 게임을 좋아하고 열심히 한다. 하지만 그게 충분한 이유가 된다면 대한민국 전 국민은 치킨 마스터가 되어있어야 한다. ‘왜?’ 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고 그 답을 적극적으로 찾으려는 자세를 업계에선 열정이라고 부른다. 열정이 있는 기획자는 즐겨 하는 게임 외에 꾸준히 유사한 장르의 다른 게임들을 모니터링한다. 같은 FPS인데 서든은 이렇고 스포는 이렇더라. DOTA2엔 LOL에 없는 ‘디나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런 식으로 동작하고 게임에선 이렇게 사용된다. 등등.
가끔 열정적인 하드코어 게이머가 와서 게임은 예술이어야 한다며 개발자들 사이에서도 유명한 매니아 게임 이야기를 하며 자신의 열정을 어필하는데, 그런 사람은 그냥 취미로 게임을 하는 것이 낫다.
프로그래머 역시 마찬가지다. 프로그래밍 자체에 열정이 있는 사람들은 단순히 남이 짠 코드를 붙여넣기 하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계속 그걸 뜯어보고 자기 소스도 꾸준히 수정하고 모르는 것이 있으면 구글링도 하고 포럼에서 활동도 한다. 이렇게 프로그래밍 자체를 재미있어하는 친구들이 성장한다. 예전에 함께 일한 적이 있는 프로그래머는 프로그래밍 실력은 엉덩이 힘에서 결정되며 이 엉덩이의 힘은 프로그래밍에 대한 사랑에서 나온다는 명언을 남겼다.
그 외 디자인 직군은 따로 말할 것도 없다. 당장은 못 그려도 꾸준히 열심히 그리면 분명히 실력은 늘 수밖에 없다. 참고로 정식으로 미대를 나온 것도 아니고 눈에 띄게 잘 그리는 것도 아니어서 걱정이 되는 후배가 있었는데, 몇 년 동안 정말 미친 듯 그리더니 어느새 존잘이 되어 이름만 대면 알만한 회사의 대형 MMORPG 프로젝트에서 중요한 직책을 맡고 있었다. 만일 꾸준히 했는데 실력이 늘지 않는다면, 소질이 없거나 정성이 부족했다고 생각하고 진로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직군마다 약간씩 다르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특정 게임에 대한 열정이 아닌, 게임을 만드는 작업 자체에 대한 열정을 필요로 한다는 것에는 차이가 없다. 그리고 이런 열정이 없이는 설령 커리어를 시작한다고 하더라도 금방 다른 사람에게 도태되고 만다. 그러니 지원자는 먼저 자신에게 이런 열정이 있는지를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당장의 퍼포먼스보다, 충실한 기본기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인 것처럼, 열정이 아무리 넘쳐나도 이를 제대로 표출할 방법이 없다면 곤란하다. 특히 신입에게 요구되는 것은 잘 표출하는 것 보다는 올바른 방향으로 표출할 수 있는 자세다. 안선생님도 강조하지 않았나? 슛이 들어가지 않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나쁜 버릇이 없는 것이 중요하다고.
그런 의미에서 기획자에게 중시되는 것은 분석적으로 사고하는 습관이다. 보통은 번뜩이는 창의력이라고 생각하는데 이건 정말 엄청난 오해다. 인디 게임계라면 그런 번뜩이는 창의력이 굉장히 중요하겠지만, 주류 상업 게임계에선 그런 창의력보다 분석적인 사고력이 필요하다.
게임이란 건 사람이 만드는 것이다. 돈과 시간과 인력을 써가면서. 이렇게 자원을 투입하는 데엔 이유가 필요하다. 세상에 그냥 만들어지는 게임은 없다. 게임의 모든 요소는 의도를 담고 있다. 애니팡만 보더라도, 하트는 게임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로부터 돈을 지불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카톡으로 하트를 보내는 시스템은 ‘돈을 지불할 의사는 없지만, 게임을 하고 싶은 사람들’로 하여금 게임을 계속 퍼트리고, 그로 인해 경쟁에 참여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이런 것들은 그냥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을뿐더러, 설령 정말 끝장나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고 해도 이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면 그 아이디어를 실현할 수 있도록 다른 사람들을 설득할 수 없다. (물론 사장이 되면 된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분석적인 사고이다. 왜 재미있는가? 의도는 뭔가? 나라면 이걸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까? 등등.
“요즘 무슨 게임을 얼마나 하시나요?”
“그 게임은 어떤 점이 재미있다고 생각하시나요?”
“혹시 그와 유사한 다른 게임을 해보신 적이 있나요?”
“두 게임을 비교한다면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요?”
굉장히 전형적인 면접 질문이다. 물론 지원하는 프로젝트와 관련된 게임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센스는 잊지 말도록 하자. 어쨌든 저런 질문에 대해 약 10분 정도 열심히 혼자 떠들 수 없다면 분석적 사고력이 부족한 것이므로 자신의 소질에 대해 다시 한 번 성찰해보고, 평소부터 분석적으로 사고하는 습관을 기르자.
내 주업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 바닥에서 10년 정도 밥 먹으면서 주워들은 다른 직군 이야기를 해보겠다. 우선 프로그래머의 경우, 지망생들은 3D 그래픽을 할 수 있다거나 뭐 이런 걸 어필하던데, 실제로 내 주위 프로그래머들은 그런 것들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신입한텐 그런 것은 안 시킨다. 만일 시킨다면 그 신입이 존 카멕 급의 천재거나 그게 아니라면 신입에게 그런 것을 시킬 수 밖에 없을 만큼 인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보다 자료구조나 알고리즘과 같이 학부 시절에 배운 내용들을 잘 숙지하고 있는지를 중점적으로 검토했고, 부가적으로는 버그가 잘 발생하지 않도록 방어적으로 짜고 남들이 보기 쉬운 코드를 쓰며 주석을 꼬박꼬박 다는 친구들을 기본기가 있고 성장 가능성이 있다고 봐서 채용하곤 했다.
들어본 중 가장 황당한 사례는 과제에서 4중 포인터를 사용한 케이스였다. 무엇보다 더 황당했던 것은 과제를 제출한 사람이 그 이유를 몰랐다는 것이었다. 그냥 인터넷에 올라온 소스를 보고 복사했을 뿐, 원래 소스를 만든 사람이 왜 4성 장군 포인터를 썼는지도 모르고 왜 면접관들이 그걸 보고 경악하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이렇게 소스 자체에 대한 애정이 없으면 소질이 없는 것이다. 물론 본인이 이걸 설명할 수 있었어도, 겉멋만 들었다고 떨어졌겠지만.
그 외 원화, UI, 모델링, 애니메이션 등 아티스트 계열이야 뭐 일단 게임 만들지 않고도 포트폴리오를 뽑아낼 수 있고, 이를 통해 기본기가 바로 드러나므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그리고 아마도 ㅍㅍㅅㅅ 독자들 중에서 업계 관계자들이 ‘이의 있소!’라고 댓글을 달 것이니 꾸준히 여기 댓글을 모니터링 해보는 것도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이력서와 포트폴리오 작성법
그런데 앞에서 말한 두 가지 요소는 사실 면접을 보고 이야기를 해봐야 알 수 있는 부분들이다. 그런데 면접이라는 게 지원자뿐만 아니라 면접관에게도 피곤하고 귀찮은 작업이고 면접하는 시간 동안 누가 자신이 할 일을 대신 해줄 것도 아니니 딱히 면접을 볼만한 가치가 없다고 생각되면 서류 단계에서 많이 걸러진다.
많은 지원자들이 자기소개서에 굉장히 신경을 많이 쓰는데 사실 자기소개서라는 것은 면접장소에서 면접관이 질문할 게 마땅치 않을 때 질문거리 찾느라 보는 커닝페이퍼에 불과하다. 면접을 볼지 말지 결정하는 요소는 사실 이력서와 포트폴리오에 있다. 아니면 믿을만한 사람이 추천(보증)했거나. 그러니 지원자는 이력서와 포트폴리오에서부터 자신의 소질과 기본을 어필해야 한다.
일단 자신이 제작한 게임이 있다면 이건 무조건 면접으로 가는 하이패스다. 굉장히 잘 만들면 가산점을 듬뿍 받겠지만, 테트리스처럼 굴러다니는 소스 가지고 만든 것이 아니라면 무조건 면접까지 간다. 게임을 완성한다는 것이 그렇게 어렵고 열정이 필요한 일이다. 인디게임 공모전 같은 곳에서 상을 받으면 더 좋겠지만, 어쨌든 게임을 만들어봤으면 무조건 면접까지 갈 수 있다.
참고로 글쓴이와 함께 인디게임 공모전에서 금상을 받은 친구들은 모두 졸업 전에 N으로 시작하는 큰 회사에 채용되었으며, 장안을 떠들썩하게 했던 동인게임을 제작한 사람들도 유학 간 한 명을 제외하고 다들 N모사에서 일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러니 일단 게임은 만들고 보자. 정 안되면 혼자서 북치고 장구를 쳐서라도 만들자.
그런데 사실 자신이 만든 게임을 포폴로 제출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부분은 그 외 포트폴리오로 채용된다. 특히 기획자에게 중요한 포트폴리오는 역기획서다. 어차피 게임을 만들어본 적이 없는 신입 레벨에서 쓰는 기획서라는 것은 흰색은 종이요 검은색은 글자라는 것 외엔 아무런 가치가 없다. 가끔 ‘3천 년 전 전설의 용사가 사악한 드래곤을 물리친 후…’로 시작하는 어설픈 기획서를 가장한 설정자료 비슷한 서류를 가져오는데 이건 포폴이 있어도 면접을 거부할 수 있는 사유가 된다. 그러므로 기획자 지망생은 역기획서를 준비하는 것이 좋다.
보통 역기획서 쓰라고 하면 스크린샷 열심히 떼다 붙이면서 각각의 구성요소들에 대해 열심히 설명하는데, 그런 역기획서를 보는 사람이 알 수 있는 것은 이 사람이 노가다를 굉장히 잘한다는 사실밖에 없다. 그리고 센스가 부족하다는 것도. 중요한 것은 각각의 구성요소에서 의도를 캐치하고 이를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이다. 여기서 분석적 사고력이 드러난다.
대부분의 온라인 게임은 전체 게임을 대상으로 역기획서를 쓸 필요도 없고 사실 그게 가능하지도 않다. 특정한 시스템(이를테면 던파에서의 아이템 강화 시스템)이나 컨텐츠(특정 던전) 등 포커스를 잡고 역기획을 진행하면 된다. 그리고 일단 하나를 완성하고 나서 유사 장르의 다른 게임과 계속해서 교차 역기획을 쓰면, 각각의 의도와 특징이 선명하게 드러나고 자연스럽게 분석적 사고를 익힐 수 있다. 그리고 이를 정리하면 훌륭한 포트폴리오가 된다.
기획자를 기준으로 만일 이런 포트폴리오를 제출하지 않았는데 면접을 보자는 연락이 왔다면, 그 회사는 강하게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게임을 만들어본 적도 없는 상태에서 만들지도 않은 게임의 기획서를 포폴로 제출했는데 연락이 왔다? 그럼 자신이 엄청난 실력자거나 그런 당신을 채용해야 할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그 회사는 무시하고 N으로 시작하는 회사에 한번 제출해보자. 그럼 역기획서를 쓰고 싶은 의욕이 무럭무럭 솟아날 것이다.
아티스트들이야 뭐 자신이 만든 것들을 정리해서 포폴로 정리하면 될테고… 프로그래머는 사실 뭘 포폴로 내는지 잘 모르겠으니 주변 사람들에게 한번 물어봐라. 그 외에 게임과 관련해서 활동한 것이 있다면 이력서에 추가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게임 한글화 팀에서 활동했다거나, 게임 대한 블로그를 쓰고 있다거나, 기타 등등. 포트폴리오와 달리 이런 이력들이 면접에 직접적으로 연관을 주진 않지만, 어쨌든 유리한 것은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