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캐리, 백수에서 최초의 프로게이머, 최초의 게임해설자로 서기까지
[인터뷰] 김캐리, 스타크래프트의 15년 추억을 회상하다
[인터뷰] 스타 해설자에서 롤 진행자로 변신한 김캐리, 그가 말하는 LOL 에서 이어집니다.
리승환 : 자, 그러면 협회 떡밥을 꺼냅시다. 많은 팬들이 ‘협회를 죽입씨다, 협회는 나의 원쑤’라 외치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캐리 : 음……… 협회도 e스포츠의 정립을 위해 굉장히 필요한 존재였어요.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체계적인 뭔가가 필요했고, 그걸 갖추기 위해서라도 제도를 정비해야 돼요. 사실 이런 분야라는 게 정부의 지원도 필요하거든요. 장기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사회적인 인식 변화가 따라줘야 하니까요. 이런 점에서 협회는 어찌됐든 필요한 거죠. 선수들의 안정을 위해서라도 e스포츠 전반에 관해서 창구 역할을 할 수 있고, 제도적으로 유지해달라 할 수 있는 존재가 필요해요. 그래서 우리에게는 사실 굉장히 필요한 게 협회였어요.
리승환 : 하지만 협회가 너무 독단적으로, 방송사와 팬들이 만든 구조에 숟가락 얹는다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어 보입니다.
김캐리 : 앞서 말한 것처럼 협회의 필요성에 공감하면서, 저도 비판할 수밖에 없는 게… 조직은 덩치가 클수록 무겁잖아요? 빨리빨리 안되고. 밖에서 보면 정말 소통이 안 돼요. 이게 계속 문제를 유발시켰죠. 소통이 안 되니 독단적 느낌까지 줬고. 그러니까 불협화음이 많이 생겼죠. 협회는 협회 입장대로 모든 걸 통제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자기들이 중심이 되려고 했던 건 사실이기도 하고…
리승환 : 그러한 협회의 시도는 결국 실패했습니다.
김캐리 : 중심이 시작이 협회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건 불가능했어요. 시작은 온게임넷, 방송사로 출발한 거잖아요? 방송사가 프로게이머 제도 등 뭔가를 좀 갖추고, 이런 모양새를 잡아나가고 있는데 협회가 끼어드니 숟가락 얹기로 보일법도 하죠. 되돌아보면 거기서 오는 문제였던 갈등이었던 것 같아요. 협회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한 거고, 그러다보니 중계권 사태가 나온 거고… 이런 입장 차이가 있었는데 처음 겪는 일이다보니, 양 쪽 모두 해결이 쉽지 않았어요.
스타 2, 기득권을 둘러싼 신경전의 슬픈 결과
리승환 : 그게 스타 2에까지 영향을 준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김캐리 : 실타래가 좀 많이 꼬였죠… 꼬인 실타래 풀기가 진짜 어렵잖아요? 그런데 초기에 풀면 의외로 쉽게 풀 수 있어요. 제일 좋은 건 애초에 안 꼬이게 하는 것이지만, 이왕 잘못됐으면 실타래라도 빨리 풀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죠.
리승환 : 실타래가 어떻게 꼬였다는 것입니까?
김캐리 : 지금 스타2가 나온지 2년이 됐어요. 판을 키울 시간을 한참 지났죠. 그런데 이제서야 서로 같이 힘을 합치고자 하는 분위기가 겨우 만들어졌죠. 사실 애초부터 저희는 스타2와 스타1이 함께하는 꿈에 부풀어 있었어요. 스타2 처음 오픈할 때 뒷담화 형태로 재경이형이랑 미국에 갔는데, 그 감동이 엄청났어요.
리승환 : 감동이라니요? 우주모함(캐리어)이 더 강해져서인가요?
김캐리 : -_-…… 그동안 스타1이 정말 잘했고, 2가 나오면 자연스럽게 그 인기를 이어나갈 수 있으리라 기대했어요. 그 과정에서 1과 2가 모두 인기를 끌면 어떻게 할지도 생각했어요. 같이 인기 끄는 건 e스포츠인으로 정말 행복한 고민이잖아요.
리승환 : 블리자드가 곰TV와 독점 계약한 게 문제라고 생각하시는지요?
김캐리 : 물론 곰티비가 그간 잘해왔고, 내실을 키우면서 성장도 잘했어요. 하지만 문제는 그간 스타1이 인기를 얻고 있었고, 이 기반에는 방송사와 협회가 있었거든요. 그런데 스타2가 블리자드와 곰티비의 독자적인 길을 걸으면서 자연스럽게 이어질 고리가 끊어진 건 아쉬워요. 그러니까 그 꼬인 실타래를 지금이라도 풀어야 한다는 게 제 생각이죠.
리승환 : 사실 스타1 시절 곰티비를 좀 따돌렸다는 문제도 있긴 합니다.
김캐리 : 그렇죠. 곰티비는 또 무슨 죄에요… 지금 막 온게임넷과 협회에서 주도적으로 스타2를 내밀려 하니, 곰티비 측에서는 니들이 뭔데 이제 난리냐는 반발심이 생길 것 같기도 해요. 왜 꼬일대로 꼬이게 만들어 놓고, 뒤늦게 해결하려 드느냐고 따지면 미안하긴 하죠… 그래도 결국 전부 문제가 있다는 선상에서 출발해야 해요. 누구 하나 잘못으로 몰아가봐야 꼬인 실타래는 안 풀리거든요.
리승환 : 아무도 자기 이익을 내려놓으려 하지 않은 건가요?
김캐리 : 여기 기득권 싸움 되게 치열해요. 뭐 하나라도 가지면 안 놓으려 하고… 이제는 여기서 벗어나야 해요. 서로 다같이 해서 꼬인 실타래를 푸는 분위기가 됐으면 좋겠어요.
리승환 : 결국 스타2가 시작할 때부터 서로 자기 이익 챙기려다 지금에 이르렀다는 것이군요.
김캐리 : 스타2 발매 때부터 붐업하고 푸시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죠. 이건 협회, 방송사, 블리자드 다 욕먹어야죠. 곰티비를 탓할 문제는 아니에요. 곰티비 입장에서는 억울하겠지만 이제 파트너십을 가지고 스타2를 살려 나가야죠. 저는 지금도 곰티비 박탈감이 이해가 가요. 뒤늦게 숟가락 얹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죠. 그래도…
리승환 : 스타를 사랑하는 것도 좋지만, 좀 진정하십시오. -_-;;;
김캐리 : 제가 방송사 소속이긴 하지만… 정말 이런 모습들 보면 다 엎어버리고 싶을 때가 많아요. 우리 다같이 해보자는 마음을 일찍부터 가지고 적극적으로 협력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죠. 이쪽 분야 한정된 이야기는 아니겠지만, 여러 조직이 생기다 보니 함께 해나가기가 정말 힘들더라고요.
리승환 : 주도권을 쥐고 있는 블리자드도 참 답답할 것 같습니다.
김캐리 : 블리자드도 좋을 거 하나 없어요. 솔직히 발등에 불 떨어졌죠. 스타크래프트 전체 시장 중 한국 시장이 작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한국은 스타크래프트는 물론 e스포츠를 선도했잖아요? 또 스타크래프트에 있어 가장 앞선 시도를 해왔고, 앞으로도 할 수 있는 곳이고요. 그런데 냉정하게 한국은 롤이 대세가 되어버렸고, 이제 스타2 군단의 심장 나와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 되어 버렸어요. 이런 답답한 상황에서 벗어나려면 블리자드도 적극적으로 나서야죠.
스타2 군단의 심장, 제2의 붐업을 이끌 수 있을까?
리승환 : 결국 협회와 방송사가 스타2를 택한 방식이 스타1과 스타2의 병행 프로리그였습니다.
김캐리 : 결과적으로 실패죠. 이런 병행보다 좀 늦더라도 두 종목을 죽 같이 가져갔어야 하는데… 나름 사정이 있었으니까요.
리승환 : 스타2가 나오자마자 모두가 협력해서 붐업시켰다면 스타2의 위상이 지금같지 않다고 생각하십니까?
김캐리 : 하아………. 일찍 했으면 분명히 달랐겠죠. 이미 몇 년 지나고 나서 하는 후회이지만, 지금까지도 가장 안타까워하는 부분이에요. 출시 때부터 기대치가 있었는데, 그 붐을 전혀 이어가지 못했어요. 시작부터 중계했다면, 당장 PC방 점유율이 달랐겠죠. 지금은 PC방에서 스타2 하는 사람 찾기도 힘든데 참 안타까워요.
리승환 : 제 입장에서는 제가 좋아하는 스타1 플레이어들이 스타2에서 고전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김캐리 : 그것도 흥행 저조 요인 중 하나죠. 스타급 선수들은 흥행에 있어 매우 중요한 요소니까요.
리승환 : 만약 스타2가 출시되자마자 스타1 선수들이 스타2를 했다면 지금 스타2에서 충분히 실력을 발휘하고 있을 거라 생각하십니까?
김캐리 : 물론 최고급이죠. 지금 스타2에서 잘나가는 프로게이머도, 다 스타1하던 친구들이 대부분이에요. 솔직히 스타 1에서 잘하던 애들은 정말 사람이 달라요.
리승환 : 그 선수들은 어떤 게임을 해도 적응력이 좋다?
김캐리 : 스타1은 피지컬적 측면에서 난이도가 엄청 높은 게임이에요. 그에 비하면 스타2는 스타1보다 피지컬 난이도가 많이 떨어져요. 이를 두고 스타2가 설계를 잘했다고 말하고, 그건 맞는 이야기죠. 하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RTS(Real Time Simulation ;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는 피지컬을 무시 못하거든요. 저는 웬만한 게임 다 해봤지만, RTS가 세상에서 제일 어렵다고 생각해요. 순수 APM(Action Per Minute ; 분당 명령 횟수)이 400인 사람을 일반인이 이길 수 없어요.
리승환 : 김캐리의 사랑 송병구는 손이 느리지 않습니까?
김캐리 : 안 느려요. 200에서 300도 일반인들과 비교가 안되게 빠른 거고, 또 헛손질이 적은 것도 있으니까요. 물론 피지컬 차이를 전략으로 극복은 할 수 있죠. 그런데 그것도 어느 정도 피지컬이 되는 사람들끼리의 이야기에요. 애초에 피지컬 차이가 나면 다전제에서 따라갈 수가 없어요.
리승환 : 곧 군단의 심장이 나옵니다. 과연 스타2는 스타1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을까요?
김캐리 : 쉽지는 않을 거에요. 왜냐면 이미 주위에서 스타2 플레이하는 친구들이 많지 않거든요. 그 많은 갈등을 겪는 시간 동안에 롤이 이미 대중적이 게임 문화로 자리잡기도 했고요. 여기서 군단의 심장이 그걸 역전할 수 있느냐면… 힘들 것 같기는 하지만, 지금보다는 분명히 나을 거에요. 티비 파급력도 생각을 해봐야 되거든요. 저도 곧 해설로 복귀할 생각이고, 저를 비롯해서 e스포츠 사람들이 많이 노력해야죠. 힘들겠지만.
리승환 : 스타2에 대해서는 보는 재미가 떨어진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김캐리 : 음… 그건 화면 문제가 더 커요. 스타1은 엄청 오래 돼서 구식 TV로 봐도 상관 없지만,스타2는 3D에다가 해상도가 받쳐주지 않으면 글자도 제대로 안 보여요. 3월부터 온게임넷도 공사에 들어갈 테고, 아마 4월 정도가 되면 HD 송출이 가능할 테니까, 그 때 되면 좀 달라지지 않을까 싶어요.
리승환 : 아무리 그래도 한 방 싸움이 많고, 가위바위보가 너무 뚜렷하다는 비판이 많지 않나요?
김캐리 : 그런 문제가 없지는 않죠. 하지만 군단의 심장이 나오면 좀 달라질 거에요. 스타1도 부르드 워가 나온 이후부터 제대로 탄력 받았잖아요. 게임 내용적 측면은 시간이 지나면서 밸런스가 맞아지고, 게이머들이 발전하면서 해결될 문제라고 생각해요.
사랑해요, 김캐리. 우유빛깔, 김캐리.
리승환 : 3시간을 넘은 인터뷰가 대충 마무리 지을 시간이 됐습니다. 자신이 e스포츠에 기여한 게 있다면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김캐리 : 글쎄요… 제가 뭐 큰 의미에서 뭔가 해냈다… 사실 이런 건 없다고 봐요. 그보다 작지만 함께 했다… 처음부터 함께 했다는 그게 저한테는 중요한 것 같아요. ‘내가 이 정도 했다’, ‘나 이런 사람이야’라는 거만함은 없어요. 그저 새로운 문화를 처음부터 함께 한 사람이라는, 그런 눈에 띄지는 않지만 자기 역할을 소화하면서 계속 함께 해왔던 사람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낍니다.
리승환 : 그렇다면 e스포츠가 이렇게 성장하는데 기여한 다른 분들을 꼽아 주신다면 누가 있을까요?
김캐리 : 한두명이 아니죠… 정말 누구 한 사람 꼽기 힘들어요. 당장 저와 함께 했던 해설자들, 중계진들, 온게임넷 직원 분들, 기타 관계자… 모두들 다 너무 고생하신 고마운 분들이죠. 무엇보다 e스포츠가 발판을 마련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해준 건 사실 또 팬이 있기 때문이에요. 이거는… 다 똑같은 사람들이고, 다 똑같이 기여했어요. 지금까지 한국의 e스포츠가 이렇게 커 온 것은 게임을 사랑하는 한 사람, 한사람이 함께 만들어낸 거라고 봐요.
리승환 : 갑자기 막판에 멋있는 이야기를 하니 굉장히 어색합니다…
김캐리 : ……
리승환 : 그러면 마지막 한 말씀을 부탁 드립니다.
김캐리 : 뭐… e스포츠 많이 사랑해 주시고 롤의 건전한 채팅한 문화를 선도해갈 수 있게 도와주세요. 그리고 군단의 심장 나오면, 또 다시 새롭게 시작되는 스타리그 많이 사랑해주시고요. 그리고 김캐리도 많이 예뻐해 주세요.
리승환 : ‘예쁘게’라니… 좀 멋있게 이야기해 보세요.
김캐리 : 김캐리의 앞날을 여러분들이 잘 좀 캐리해 주십시오.
리승환 : ……
김캐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