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승환 : 먼저 자기 소개를 부탁 드립니다.
김캐리 : 훗… 말이 필요한가요? 김캐리인데…
리승환 : ……
김캐리 : ……
리승환 : 뭔가 엄청나게 근거 없는 자신감이 돋보입니다. 엄재경 해설위원의 만화를 보면 굉장히 경험이 많아요. 골프 강사 자격증에, 음악 카페에서 아마 통기타 가수로도 활동했고, 여기에 프로게이머, 게임해설가까지. 어렸을 때부터 다재다능했던 건가요?
김캐리 : 아니에요. 오히려 평범한 학생이었어요. 반대로 성장하고 나서 하고 싶은 걸 다 했어요. 골프니, 기타니, 전부 늦은 나이에 시작했어요.
리승환 : 먹고 살기 바쁜데 왜 그런 비효율적인 선택을 한 겁니까?
김캐리 : 할 수 있을 때, 하고 싶을 때 해야겠다는 생각이었죠. 먹고살기 바쁘다고 안하면, 더 늦어지면 더 먹고 살기 바빠지고 하고 싶은 거 못하게 될 테니까요.
리승환 : 그래서 이것저것 해보니까 어떻던가요?
김캐리 : 해보니까 생각보다 재능이 없더라고요.
리승환 : ……
김캐리 : ……
김캐리가 홀로 게임방에 가서 세계 1위가 되기까지…
리승환 : 게임도 마찬가지였나요? 게임도 원래 그리 잘하지 않았다?
김캐리 : 게임은 달랐죠. 이거는 지금까지 해온 것과는 완전히 달랐어요. 오락실 게임은 정말 장난 아니었죠. 보충 수업도 빼고 맨날 게임만 했어요. 유독 게임 쪽은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주 미쳤죠.
리승환 : 스타크래프트는 언제 처음 접하게 됐나요?
김캐리 : 그 때가 제대한 다음이니까… 25살이죠.
리승환 : 25살에 게임이라니, 미쳤군요(…)
김캐리 : 요즘 세상으로는 말이 안되죠. 우리나라 가뜩이나 게임에 대한 편견이 심한데, 그 때는 더 심했죠. 이걸 25살에 한다니까, 얼마나 한심하게 봤겠어요.
리승환 : 그 때는 대회나 상금도 없던 시절 아닙니까?
김캐리 : 상금이 아니라 프로게이머 자체가 없었어요. 아예 프로게이머라는 말이 없었죠. 대회, 리그, 게임단, 아무 것도 없었어요.
리승환 : 그런데 왜 갑자기 게임에 미친 거죠?
김캐리 : 그 때가 IMF 때였어요.
리승환 : 잘렸군요.
김캐리 : 네(…)
리승환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김캐리 : 그 때가 골프장에서 일할 때였어요. 제가 아마 골프 강사 자격증이 있어서, 군대 가서 사단장님 골프병을 했거든요. 우리 사단에 저 혼자였어요.
리승환 : 한 명 뿐이었다던 우편배달병 아니셨나요?
김캐리 : 사단장님이 바뀌었는데, 골프를 안 치더라고요. 그래서 보직변경 됐어요.
리승환 : ……
김캐리 : 아무튼 그렇게 스타크래프트를 접하게 됐어요. 그런데 늦은 나이 하니까 참 고민이 많았어요. 그 때는 스타크래프트로 먹고 살 길이 없었으니까요. 재능도 있고 하고 싶은데 기회가 없었던 거죠.
리승환 : 그런데 지금은 스타크래프트로 먹고 살고 있습니다?
김캐리 : 재능이 있고 열정이 있어도, 사람은 운때라는 게 있어야 하잖아요. 그 때는 정말 고민이 많았어요. 나이도 찼고 장래를 위한, 길게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하는 시기인데 미래가 보이지 않았어요. 제가 일하던 골프장이 문을 닫아서 갑자기 백수가 됐는데, 일할 곳은 없고…
리승환 : 눈물이 글썽글썽거리는 게 김캐리의 눈물 시즌 2를 찍을 것 같습니다(…)
김캐리 : 아니오… 오히려 그 때 많이 느꼈어요. 뭐냐면… 최악으로 몰리고 정말 길이 안 보이는 그런 불행이 찾아와도, 꼭 불행만은 아니라는 거죠. 살면서 불행이 무조건 안좋은 게 아니라 반전의 기회일 수 있다는 걸 알았어요. 저에게는 그 힘든 시기가 되려 기회였던 거죠.
김캐리의 눈물……
리승환 : 백수가 기회다? 책 제목으로 써도 되겠습니다.
김캐리 : 솔직히 백수가 되고 나서 일자리를 알아봤는데, 그 때 자리가 어디 있겠어요. 그 때 당시에 PC방, 속된 말로 게임방이 생겼고 시간 때우려고 생각 없이 PC방에 갔어요. 거기서 처음 접한 게 스타였어요.
리승환 : 엥? 친구와 같이 간 게 아니라 그냥 혼자?
김캐리 : 네. 혼자. 저 혼자 스타를 시작했어요.
리승환 : 그래서 PC방을 가 보니 어떻던가요?
김캐리 : 들어가보니 중고딩 애들부터 어른들까지 다 스타를 하는 거에요. ‘이게 그렇게 재밌나?’하는 마음에 시작했죠. 그렇게 시작됐고, 해보니까 재밌는 거죠. 그렇게 하다보니 래더 랭킹을 시작했어요. 진짜 그 때 제대로 빠졌던 것 같아요. 3일 밤낮을 잠도 안 자고 스타를 했어요. 제가 원래 한 번 하면 끝을 봐야 하는 성격이거든요. 그러다보니 어느새 1등이 되어 있었어요.
리승환 : 정말 제대로 끝을 봤군요(…)
김캐리 :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못하죠. 제 나이에 어떻게 1등을 해요? 한 가지 재미있는 건 운이 맞아 떨어졌던 게… 당시 스타크래프트가 미성년자 불가 게임이었어요. 그게 저에게는 기회가 된 거죠. 게임 잘하는 중고딩이 같이 했으면 못하죠. 아무튼… 그런 어떤 게 맞물려서 시작하게 됐어요. 그래서 제가 항상 운때가 중요하다고 하는 거고요. 아무리 재능 있고 하면서 행복한 일이라도 이런 시운이 없으면 못하는데, 제가 마침 삼박자가 맞아 떨어진 거죠. 이게 다 맞아 떨어진 건 정말 로또 같아요.
리승환 : 그야말로 문재인의 ‘운명’이로군요.
김캐리 : 운명적… 정말 운명적이었죠. 그 때 IMF가 터졌고, 저도, 저희 집안도 피해를 받았어요. 그런데 IMF 때 피해받은 사람들에게 못할 말이지만, 솔직히 저에게는 반전의 기회였죠. 그리고서는 세계 1위까지 되고…
백수 김캐리, 언론의 주목을 받는 스타가 되다!
리승환 : 래더 1위가 되기까지는 얼마나 걸렸나요?
김캐리 : 시작하고 3-4개월 걸렸죠.
리승환 : 헐;;; 겨우 3-4개월? 무슨 길드에서 활동하셨길래…
김캐리 : 로카 길드라고 있기는 했는데, 그게 스타만을 위한 길드는 아니라 엄청 도움 받고 한 건 없어요. 오히려 로카가 저 때문에 많이 떴죠. 깐죽깐죽.
리승환 : 깐죽대지 마시고… 세계 1위가 된 기분이 어떻던가요?
김캐리 : 미치도록 게임 해서 1위가 됐는데…
리승환 : 됐는데…
김캐리 : 되고 나니까 제가 미쳤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리승환 : -_-…
김캐리 : 진짜 뒤도 안 돌아보고 도전했어요. 어쨌든 정상에 갔는데… 그 순간 갈 데가 없잖아요. 그 때 정신이 들었죠. ‘내가 뭐하고 있나, 나 미쳤구나…’ 이렇게 현실이 눈에 들어오는 거에요. 장가도 가야 하고, 앞으로 먹고 살 일 걱정해야 하고… 순간 벙 찌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원래대로 가자고 일자리를 막 알아보고 다니는데 갑자기 스포츠조선에서 연락이 왔어요.
리승환 : 오오… 스포츠조선이 뭐라고 하던가요?
김캐리 : 인터뷰 좀 하자고 하길래 ‘무슨 인터뷰요?’라고 되물었어요. 이번에 스타크래프트 세계 챔피언 하지 않았냐고 인터뷰를 하자는데, 좀 어이가 없었어요. 그 때는 게임을 하는 저조차도 게임에 대한 인식이 지금같지 않았거든요. 아무튼 그냥 별 생각 없이 했어요. 비중 두지도 않았고. 그리고서는 기자님이 기사 나왔다고 해서 신문을 샀는데…
리승환 : 충격! 경악! 20대 얼짱女! 이런 기사로 나왔나요?
김캐리 : 그게 아니라 대문짝하게 나온 거에요. 한 면을 다 제 이야기로 도배하고, 사진도 막 깔고…
리승환 : 오오… 무슨 생각이 들던가요?
김캐리 : 이 기자가 미쳤나?
리승환 : ……
김캐리 : 물론 그 분의 도움으로 여태 여기까지 컸죠. 그런데 정말 어이가 없었어요. 저 본인 스스로… 근데 언론이 다 그렇잖아요. 하나 나오면 여기저기서 이어서 가는, 그런 게 있으니까 그때부터 막 여기저기 전화가 오고… 조선일보 같은 각종 메이저 신문부터 시작해서, 오죽하면 레이디경향까지 취재하러 왔어요.
리승환 : 연예인이 된 기분이었나요?
김캐리 : 아니오. 이 사람들 다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_-;
리승환 : ……
김캐리 : 그런데 이 때 알았어요… 순식간에 휩쓸려 가는 거 있잖아요, 내 의지 상관 없이… 며칠을 그랬어요. 그러면서 더 조바심을 느꼈죠. 이럴 때가 아니라 정신차리고 일할 때라고 마음을 다잡으면서요. 그런데 사람 의지 관계 없이 겹친다는 게… 뭐냐면…
리승환 : 저기요… 이거 ’60초 후에 공개합니다’도 아니고, 그냥 말하세요(…)
김캐리 : 그 때 더 대박이 왔죠. KBS에서 제 3지대라는 다큐 비슷한 프로그램을 방영했는데, 저를 촬영하러 온 거에요. 그 때 즈음해서 최진우도 저랑 같이 있었는데, 그 때 진우는 고등학생이었어요. 웬 고등학생이 자기 게임 가르쳐 달라고 찾아와서 같이 나갔죠. 그리고 iTV에도 나가고… 뭐… 연예인도 아닌데 아무튼 그랬어요. 한 번 그 물결이 정말 엄쳥나게 쳤죠.
리승환 : 그러면 이기석, 신주영, 이런 선수보다 김캐리가 프로게이머 먼저인가요?
김캐리 : 걔네들은 제 뒤죠. 제가 무조건 처음이에요.
김캐리, 최초의 프로게이머에서 최초의 게임 해설가로…
리승환 : 20대 백수의 성공기를 보는 듯하군요.
김캐리 : 저도 그러고서 그 뒤로 뭔가 없을 줄 알았어요. 순간적인 가십거리, 이슈거리라고 생각했고, 일자리도 알아봤어요. 마침 골프장에 취업이 돼서 다시 나가기로 했는데 또 전화가 왔어요.
리승환 : 이번엔 또 어디인가요?
김캐리 : 그 때는 온게임넷 없었으니 투니버스… 지금 온게임넷 본부장으로 계신 황형준 피디님이 전화와서 ‘스타크래프트 리그를 하나 만들 건데 해설해 볼 생각 없냐?’고 하더라고요.
리승환 : 오오… 그래서 뭐라고 답했습니까?
김캐리 : ‘무슨 게임 가지고 해설을 해요?’ 라고 답했죠.
리승환 : 참으로 쿨시크하군요(…)
김캐리 : 본부장님도 나중에 그 이야기 하더라고요. 너처럼 쿨하게 답하는 애 첨 봤다고. 그 때 만약 제가 ‘죄송합니다. 본업으로 돌아가야 해서…’라고 했으면 지금의 김캐리는 없었겠죠.
리승환 : 집에서는 뭐라고 하던가요?
김캐리 : 그 때 당시에는 나쁜 쪽이 아니라… 집과 잠시 인연을 끊었어요. 제 앞가림을 해야하는 시점이었으니까요. 방황의 시기였기 때문에… 제가 자리를 잡기까지는 집이랑 잠깐 소원했죠…
리승환 : 나중에 잘되니까 좋아하던가요?
김캐리 : 아유~~~~ 좋아하는 정도겠어요? 아들 티비 나온다고 동네방네 자랑하죠.
리승환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김캐리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리승환 : 그런데 왜 세계 1위가 게임 계속 안하고 해설의 길을 걷게 된 겁니까? 그것도 나름 신기하군요.
김캐리 : 아… 제가 그 때 이미 게이머에서 한 발 물러서 있었어요. 그 때는 에이스 팀이라고 국내 최초의 프로게임단을 운영하고 있었거든요. 매니저랑 같이 하나로통신에 쳐들어 가서 후원을 얻었는데, 기업 후원 팀으로는 국내 처음이었어요. 아… 국내 최초면 세계 최초일텐데. 후후후… 제가 이래저래 좀 선구자입니다. 후후후…
리승환 : 저기요… 자기 자랑하지 말고 질문에 대답하세요. 게이머 왜 접은 겁니까… -_-;;;
김캐리 : 사실 저는 그 때 이미 제가 선수로 뛰는 것은 아닌 걸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오히려 팀을 끌어나가는 역할을 했죠. 최진우부터 해서 워3로 유명했던 김대호도 데리고 있었고 여성최강 김경미도 제가 데리고 있었고…
리승환 : 실력이 아깝지는 않았나요?
김캐리 : 아니오. 전혀. 사람은 그걸 알아야 해요. 최고였을 때, 그게 계속 가는 게 아니란 걸 알아야 하거든요. 그 때 어린 친구들 너무 많았고, 실력적으로 안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어린 친구들 키우는 데에서 보람을 찾은 거죠.
리승환 : 그러면서 지금 해설 잘하는 어린 친구들 많은데, 왜 해설은 은퇴 안하십니까?
김캐리 : ……
리승환 : 죄송합니다…
김캐리 : 괜찮습니다… 인터뷰 계속 하시죠…
김캐리, 여자에게 약한 멋진 남자의 모습…
리승환 : 아, 마지막! 엄재경 해설위원 만화에 따르면 평소 술을 안마시다가 옆에서 스타걸이 권하니 막 폭주했다고 하던데, 서연지입니까?
김캐리 : 이런 것까지 대답해야 하나요. 뭐, 이런 인터뷰가… -_-;;;
리승환 : 죄송합니다. ㅍㅍㅅㅅ가 좀 막되먹은 매체라서(…)
김캐리 : 연지는 아니에요. 어린 친구라서 그런 자리는 안 부르고… 백지현이라고 있어요.
리승환 : 평소 술을 안하더니 그 날은 필름 끊길 때까지 마신 겁니까?
김캐리 : 아니에요. 그냥 몇 잔 마셨죠……
리승환 : 몇 잔이 몇 잔입니까?
김캐리 : 그냥 몇 잔(…)
리승환 : 알겠습니다. 아무튼 여자에게 약한가 봅니다.
김캐리 : 여자한테는…
리승환 : 여자한테는…?
김캐리 : 약해야죠.
리승환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김캐리 : 의도적으로라도!!! 이거는 뭐 당연한 거에요!!! 남자가 여자에게 강해서 어디다 써먹어요!!!
리승환 : 스타걸에게 넘어가는 걸 볼 때 예쁜 여자에게 더욱 약한 것 같습니다.
김캐리 : 예쁜 여자에게 약한 거!!! 당연하잖아요!!! 모든 남자가 똑같은 거 아니에요?!!!
리승환 : 네… 잘못했습니다(…)
김캐리 : 그렇다고 무조건 여자. 무조건 예쁜 여자에게 약한 건 아니죠. 좀 돈 따지고 그런 여자한테는 제가 절대 안 약해요.
리승환 : 그런 여자들도 해설위원님 안 좋아할 겁니다.
김캐리 : 그렇죠(…)
리승환 : ……
김캐리 : ……
2편 ‘김캐리, 스타크래프트의 15년 추억을 회상하다’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