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모든 인명에 대한 애도는 당연하고, 정권에 대한 충성이니 하는 정치적 해석도 재개발 방식에 대한 문제 제기도 마땅하지만, 여기에선 마이너한 ‘그 외’의, 주로 담론유통이나 사회의 분업화된 전문성이나 저널리즘 관련한 중구난방 잡상들을 얘기해본다.
토막 하나. 전철연의 폭력시위를 비난하는 것과 서울시경의 폭력진압을 비난하는 것은 얼마든지 동시에 할 수 있다… 둘 다 쌤쌤이라고 함으로써 양비론의 함정에 빠지지만 않는다면. 스러진 목숨들에 대한 애도와 그렇게 스러지게 만든 어리석은 과정에 대한 비판도 얼마든지 동시에 할 수 있다… 목숨 자체를 폄하하는 막장 짓만 하지 않아준다면. 물론 이런 자명한 균형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일이기에, (항상 그렇듯) 민심 잃고 싶어 안달이 난 청와대 발언 같은 것도 나오는 법. 정말이지, 레토릭의 ㄹ도 모르는 것들이 용케도 그곳에서 버티고 있구나.
토막 둘. 걱정되는 것은 자신들의 입장을 두둔하기 위해서 엄청난 분량의 자료조작질이 온라인상에서 뿌려지리라는 것. 물론 이미 시작은 이미 했는데, 최근에 본 흥미로운 사례는 이것.
소스는 CBS의 사진들인데(여기, 여기, 여기), 한 사람의 연속사진인 것처럼 병렬 편집해놨다. 그런데 실제로는 포착된 사람이 한 사람이 아닐뿐더러, 사진의 시간순서마저 그 순서라고 보장할 수 없다. 사진을 찍은 시간과 기사로 업로드하는 시간은 다르게 등록될 수 있고, 그나마 기사 업로드 시간도 그 편집본의 순서와 다르다. 한마디로, 조작. 물론 각종 음모론용 짤방들도 이런 범주에 들어가고, 조만간 수도 없이 쏟아지겠지. 그런데 이런 조작 자체도 자체지만, 더 중요한 건 역시 이런 조작을 더욱 열심히 널리 뿌리는 행위다(사료에 대한 집착을 바탕으로 반대파들을 공격하는 것을 자기 캐릭터성으로 하는 몇몇 유명 극우성향 역덕들도 그 과정에 적극 동참하며 자폭하고 있는 것은 무척 코미디다). 분노든 혹은 분노하는 이들에 대한 경멸이든, 그것이 주는 어떤 고양된 위기의식이 섣부른 자료 자체의 조작에 대한 경계심을 늦추는 것은 참 슬픈 일이다. 자료가 있고 입장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입장이 있고 거기에 자료를 만들어 끼워 맞춘 후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만든 자료로 입장을 만들라고 뿌리는 허접한 세태는 좀 졸업했으면 하는데 말이지. 그런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소방어책은 결국 ‘소스로 돌아가 보기’이지만(쓰다 보니 ‘백투더소스 캠페인‘ 용 사전 떡밥).
토막 셋. 진압의 효율성이니 그런 거 말고. 시위 상황에서 화재로 번질 위험이 있는 경우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매뉴얼이 없었던 건가? 신나 화재 현장에 소방헬기로 소화제 살포가 아니라, 밑에서 무려 최루액 섞인 물대포를 뿌리고 있다니. 그리고 뛰어내릴 수 있도록 하는 공기 매트나 빈 상자들은? 에에, 혹시 인명 구조 프로토콜 없이 그냥 테러부대 소탕 플랜으로 뛰쳐들어간 거야? 설마 경찰조직이 그 정도까지 야매인거야? 정권에 과잉충성을 하려는 의도라든지 하는 건 뭐 그렇다 쳐도(아니 그렇다 칠만한 사소한 사안은 아니지만), 너무 후지잖아. 공권력의 집회시위 관리 능력에 대한 안 그래도 얇은 신뢰가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누가 제발 반증 자료를 좀 알려주시면 감사.
이 기사에서 언급된 진압과정 가운데 외부에서도 목격 가능했을 장면들을 보면, 경찰특공대가 옥상을 점거해서 일부를 체포하고, 망루 안에 들어간 이들을 추가 연행하기 위해서 노력한 듯. 여기까지는 상식적인데… 문제는, 타고 온 컨테이너로 망루를 밀어서 흔들었다는 대목. 이봐, 그 속에 신나와 염산은 물론 어떤 위험물질이 더 들어있을지 모른다고! 위험관리 그런 건 아웃오브안중인거야??? (지금까지) 사망자가 6명만 발생한 게 오히려 기적이구나 싶다.
토막 넷. 사실 이런 상황으로 몰고 가는 것은 막판에 투입되는 공권력 이전에, 조합이 고용하는 용역깡패들이다. 이번 상가 농성에서도 밑층에 죽치고 앉아서 열심히 해코지하고 있었다 하는데, 신비롭게도 나중에 보면 항상 이들은 초점에서 벗어나 있다. 최소한 공권력은 피하지 못하고 자기가 저지른 짓에 대해서 까발려지는데, 돈쟁이들이 고용한 이들은 무척 쉽게 사바사바 사라진다. 살인정권 물러가라는 말은 들불처럼 여론화가 되지만, 살인기업(용역깡패들을 고용한 개발조합도, 용역깡패들을 거느리는 용역회사도) 물러가라는 말은 좀처럼 퍼지지도 않을뿐더러 건물 새로 짓고 나면 기억에서 깨끗하게 사라진다. 교훈: 돈은 공권력보다 조낸 강하다(…).
토막 다섯. “언제부터 그렇게 철거민 신경 써줬느냐, 네 재산이라도 다 털어서 기부하지그래”라는 신종 찌질 정서가 일각에서 퍼지는 듯(이외에도 2등국민 운운한다든지 병맛의 퍼레이드는 길고 길지만, 너무 그딴 거에 뇌세포 낭비하지 말자). 에에… capcold의 경우, 철거민은 물론 사회의 어떤 현존하는 혹은 잠재적인 마찰도 원만하게 해결하도록, 그것을 담당하는 전담기구인 ‘국가’에 각종 세금을 꼬박꼬박 내고 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더 많은 일들을 더 잘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 만큼은 세금을 더 낼 용의도 있다(필요할 때 세금을 더 낼/더 걷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자가 좌파나 진보 운운하면 그건 105% 사기꾼이다). 그래서 그 돈으로 제대로 임무들을 수행하고 있는지 가끔 궁금하고, 자기 역할을 제대로 못 하고 있는 모습이 보이면 한심해할 줄 안다. 나는 평소에 철거민에 신경도 돈도 써주지 않는다. 하지만 국가 조직이 철거민에 신경 써주는 것에 대해서는 신경도 돈도 이미 충분히 쓰고 있다.
토막 여섯. 진압과 화재의 초기 실시간 현장보도 동영상의 가장 널리 퍼진 소스가 진보신당의 칼라TV나 기타 UCC 동영상들이라는 것은 좀 저널리즘적 차원에서 심각한 문제다. 아니, 웹 세대의 기동성으로 보면 무척 바람직하지만, 제도권 저널리즘의 근무태만으로 보자면 좀 거시기하다. 25시간 만에 긴급 진압이 들어간 이명박 정권식 조급증 패턴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사태 발생 전부터 이미 서울 도심의 핵심 재개발 현장에서 건물 농성이 들어가고 용역깡패들과의 마찰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인데 도대체 무슨 정신으로 뉴스거리가 부족하다고 실시간 사전준비와 방송 편성이 되지 않았던 것인가. 사안의 공공적 함의도(뉴타운, 삽정신, 조급증, 양극화… 엮을수록 끝이 없다), 현장성의 매력도(싸움구경, 화염병… 그러니까 불구경) 부족하다고 볼 구석이 없다. 특정 연예인들 뒤꽁무니 쫓아다니거나, 인터넷에서 마이너 삼류 언론들 뒤져가며 해외토픽 카피해오는 것보다는 훨씬 알찬 뉴스고. 뉴스가치라는 것에 대해서, 뉴스 생산자도 소비자도 뭔가 입으로는 맨날 공공성이니 현장성이니 외치지만 실상은 규범론적 상식에서 좀 많이 벗어나 있다는 것을 새삼 상기시켜주는 단초.
한편 용산사태 너머, 재개발 철거 문제 자체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는지 궁금해하시는 분들을 위한 개인적 소견이라면, 모처에 남긴 리플로 대신하고자 한다.
“제도보다 주먹구구가 가까워서” 입니다. 이번에 문제가 된 것은 상가의 세입 점포들인데, 예를 들어 권리금만 해도 브랜드가치를 계산한 자산평가를 통해 산정되지 않고 그저 세입자들끼리의 주먹구구 시한폭탄돌리기 관행이 되어버려서, 법적으로 보장해줄 방도가 없어요. 물론 그 와중에서 땅주인은 여하튼 시장가치가 상승했으니 재계약 때마다 열심히 돈을 올려받아 이익을 얻어놓고는 나 몰라라 하기도 하죠. 그렇다고 아예 세무처에 신고된 영업실적에 따라서 보상금을 산정하자고 하면, 평소 주먹구구로 적당히 세금 축소 신고하고 다니던 자영업자들이 얼굴이 노래질 겁니다. 게다가 지주조합이 용역깡패들 고용해서 영업방해 깽판 쳐도 경찰도 동사무소도 단속에 미치도록 소극적이라는 한국적 재개발 관행까지 겹쳐서 총체적 개판인데, 하물며 법적, 제도적 루트를 뚫어서 빽이 되어주어야 할 이익단체라고 있는 것이 하필이면 현지 철거민들을 도구 삼아 강성이벤트 벌이는 것 말고는 뭐 할 줄 아는 게 없는 전철연.
뭐, 결국 공적 중재위 운영, (평가자료 없는) 권리금의 불법 규정, 용역깡패업체에 대한 거액 민사소송 루트 확보 등 여러 제도개편을 같이 해서, 용역깡패도 전철연도 공권력도 애초부터 개입할 틈이 없게 만드는 게 정석이죠. 물론 세부적인 제도 설계는 저같은 동네 논평꾼이 아니라 전문가들이 해줄 몫이고.
원문: 캡콜드 님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