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연간, 햇볕정책의 상징이자 실질적 효과는 개성공단과 경의선 복원이었다. 개성공단이 북한의 풍부한 노동력을 활용하여 중국 등지의 임금 상승 압박에 시달리던 국내 경공업 기업에 대한 지원책이자 북한 산업 재건의 초석으로 의도되었다면, 경의선 복원은 북한의 교통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한국과 대륙을 잇는 새로운 방법을 만들기 위한 시도로 의도되었다.
마침 육상 교통 수단 가운데 철도는 에너지 효율성과 저공해성을 갖추었고, 장거리 수송에 적합하며, 북한의 교통 네트워크 가운데 그나마 상태가 낫기 때문에 선택되었을 것이다. 이 두 성과 가운데, 철도는 그 채산성이 의심되는 광물 자원과 함께 북한의 개방을 이끌어 낼 경우 한국에게 가장 큰 이익을 가져올 수단이 될 것이라는 게 사람들의 생각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북한철도는 기술과 설비면에서 너무 낙후되었고, 너무 체제의 중심부에 가까우며, 그 직원을 신뢰할 수 없고, 러시아 방면으로는 궤간전환의 부담이 있는 데다가, 중국 방면으로는 동북 3성 방면을 제외하면 우회가 심하다. 물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설비 투자뿐 아니라 북한철도, 나아가 그에 의존하는 북한 체제 자체의 성격 변동이라는 광범위한 과제까지 완수해야만 한다.
어찌할 수 없는 기술적 사실, 즉 러시아 광궤의 존재와 현 시점에서는 극복할 수 없는 지리적 사실, 즉 중국 방면의 우회 역시 심대한 문제다. 한편 여객열차의 운행 역시 호사가들의 말잔치에 불과하다는 정황이 있다. 이제 이런 문제들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왜 고치기 힘든지 자세히 말해보도록 하겠다.
북한철도의 낙후성
철도 시설의 수준을 국제 비교하기 위한 지표로 총연장, 전철화율, 복선화율 같은 것들이 있다. 총연장이 긴 나라일수록 철도는 국토 구석구석에 뻗고, 전철화율이 높은 나라일수록 비교적 높은 효율을 지닌 전기 동력을 철도운송 동력으로 많이 활용하고, 복선화율이 높을수록 각각의 철도 노선이 많은 열차를 처리하며 속도도 준수한 구간이 많다고 볼 수 있다.
한국철도의 총연장은 약 3,500km 정도며 전철화율과 복선화율은 모두 50%를 막 넘긴 수준이다. 북한철도는 어떨까? 총연장은 남한보다 조금 길고, 전철화율 역시 상당히 높은 80% 수준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철도의 용량과 속도를 좌우하는 복선화는 사실상 전혀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위성 지도로 확인해 보면 평의선(평양~의주)간, 열차가 집중되는 일부 구간에 수십 km 정도의 복선 구간이 존재할 뿐이다. 쉽게 말하면 북한철도의 현재 시설 수준은 시설이 잘 정비된다고 해도 지금 정동진∙강릉으로 가는 열차가 다니는 영동∙태백선의 수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영동·태백선의 전철화는 수십년 전에 완료됐는데 말이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철도차량은 매우 무겁고, 또 제동거리가 도로차량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길다. 단선운행을 할 경우 정면충돌의 위험도 있다. 따라서 엄격한 노반∙궤도 관리가 필요하고, 신호를 통해 열차 운행을 통제해야만 한다. 이런 관리 없이 열차는 고속 주행을 할 수 없고, 신호 자동화가 이뤄지지 못하면 열차 운행 횟수가 제약되게 마련이다.
고쿠부 하야토((国分隼人)의 저서 『장군님의 철도: 북한 철도 사정(将軍様の鉄道: 北朝鮮鉄道事情)』(신초샤, 2007)에는 묘향산 등으로 가는 노선의 열차 내에서 찍은 동영상이 첨부되어 있어 대강의 상황을 추정할 수 있다. 이렇듯 전해지는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볼 때 노반과 궤도의 상태는 결코 고속주행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철도 신호의 경우 선로의 일정 구역에 하나의 열차만 진입할 수 있도록 하여 열차 사이의 간격을 유지하게 하는 시스템인 폐색 시스템에서 문제가 크다는 지적이 있다(유근수, 「남북철도연결에 따른 철도신호제어시스템의 개량 방안」, 광운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2: pp. 30~49). 자동폐색장치가 설치된 선구는 평양지하철뿐이며 선로연장의 60% 정도는 개통은 역무원이 하고 폐쇄는 열차가 진입하면 자동으로 이뤄지는 반자동 폐색장치, 40%는기관사에게 주어진 표식을 보고 선로를 개통시켜주는 전적인 수동 시스템 통표 폐색을 이용한다고 한다.
대량의 물동량을 수용하기 위해서는 이런 신호들을 경부선에 준하는 수준으로 개량하고 현재 북한철도에 전무한 열차 자동 정지장치(ATS) 설비와 같은 것을 설비해야 한다(유근수, 앞의 글, 76~88쪽). 급커브가 워낙 많아서 대규모의 선형 개량이 필요하다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곡선반경 600m는 남한의 새롭게 개량된 철도에서는 급곡선이지만 북한의 설계기준에서는 곡선 가운데 가장 완만한 곡선이다.
물론 이런 지적에 ‘충분한 투자를 하면 될 것이다’ ‘북한의 풍부한 인력을 활용하면 철도 개량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라는 반론도 가능하다. 그러나 철도공사 연구원에 의해 수행된 북한 철도시설 개량에 대한 연구(홍천희∙정상기, 「북한철도 건설인력 수준과 활용 방안 연구」, 2010)를 보면 이런 반론은 북한의 취약한 기술 수준 덕분에 무효가 될 것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요약문에 따르면 북한철도 기능공의 기능 수준은 남한의 15~20% 수준, 무기능공은 30~50% 수준에 불과하다. 소수의 남한측 기능공 투입으로는 철도 개량 공사를 하며 만날 수많은 난점에 쉽사리 돌파구를 열 수 없을 것이라 보는 것이 좋다. 북한측 인력 양성이나, 정말 열악한 근무 환경에 엔지니어들을 대거 보내는 방법 가운데 택일을 하는 것만이 북한철도 개량을 원활히 할 수 있는 방법이지만 무엇이 되었든 애로사항이 꽃피는 것만은 어쩔 수가 없다. 빠른 사업 진행을 꿈꿀 수는 더더욱 없다.
또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남북철도망은 서울이라는 병목을 통과해야만 남한 각지로 연결된다는 점이다. 주로 물동량을 담당할 것으로 예상되는 경의선은 서울역을 통해 경부선과, 용산역을 통해 중앙선과 접속되는데, 이들 선구는 다들 알다시피 사람을 빼곡히 태운 전동차와 고속열차만으로도 선로 용량이 모자란 곳들이다. 이를 우회하기 위해 대곡~소사~안산 방면을 통해 서해선으로 접속되는 철도를 건설하고 있으나, 이는 대곡에서 소사를 지나 시흥 일대까지 지하로 다니는 철도로서, 디젤견인 열차는 다닐 수 없고 컨테이너 이외의 화물도 취급하기 어렵다.
물론 전철과 공용하기 때문에 이 노선의 용량에도 한계가 있다. 석탄이나 양회와 같은 벌크 화물들은 여전히 경부선과 중앙선을 통해 남하해야 하는데, 이는 여객열차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계획으로 채택할 수 없다. 다른 축인 경원선 역시 중앙선과 경부선으로 연결되는 것은 마찬가지다. 또 경원선은 전선 복선에 불과하여 의정부 이남으로는 2복선화를 할 공간이 남아있지도 않다. 동해선이 있다고 반문할 수도 있으나, 제진역과 가장 가까운 남한측 철도역은 직선거리로만 100km 떨어진 강릉역이다(춘천이 직선거리가 더 가깝긴 하지만, 춘천에서 출발한 철도는 속초를 거쳐 갈 것이다).
일부 문헌에서는 원주~춘천~철원을 잇는 수도권 우회선을 짓자는 제안도 하고 있다. 물론 이 노선 역시 최소한 120km 이상의 연장을 지닌 노선이 될 것이다. 여하간에, 서울을 우회하면서도 화물열차 운용에 제약이 적은 철도를 만들기 위해서는 매우 많은 자금과 노력이 필요한 셈이다. 동해선 복원에만 수조 원, 수도권 우회선 추가에도 수조 원이 투입되어야 한다.
요약하자면, 북한철도는 남한철도와 비교도 할 수 없는 수준으로 낙후되어 있다. 비단 시설뿐 아니라 그것을 시공하고 운영하는 인력의 역량 역시 의심스럽다는 보고는 북한철도 복원이란 대단히 장기적인 과제라는 것을 알려준다. 또한 서울 인근의 혼잡을 피하기 위해 새롭게 남측에 건설해야 하는 철도 투자 역시 막막하다. 아마도 동해북부선과 원주~철원선을 모두 시공한다면 10조 원은 너끈히 들어가지 않을까 한다.
남북철도의 원활한 연결을 위한 시설투자에 필요한 노력과 시간, 자금은 막대한 수준이다. 이를 위한 비용을 과연 얼마나 어떤 식으로 부담할 것인지 전문 영역 밖에서는 누구도 분명히 공론화하지 않았다. 철도 연결이 가져올 밝은 미래만 강조하고 그 비용 부담에 관심을 기울이고 싶어 하지 않는 태도로는 합리적인 의사 결정을 하기 힘들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를 보면 북한철도뿐 아니라 남한의 공론장 역시 낙후했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북한의 폐쇄성: 정보와 인적 개방을 장담할 수 있는가
군사정권 시절, 각 역사의 철도 시설물 특히 여객 처리와 관련 없는 부분을 촬영하는 것은 요새 군 기지나 발전소를 촬영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었다. 또, 쏘련의 작전계획에는 유사시 남한에 대한 핵 공격 지점으로 부산항과 더불어 대전조차장이 실려 있다는 소문도 있었다. 이는 철도가 유사시 수송의 중추가 되어 물자와 병력을 실어나르는 통로가 되기 때문이었다.
도로가 몹시 발달한 남한에서도, 여전히 철도가 이렇게 중대한 역할을 가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제일 중요한 것으로 꼽을만한 것은 역시 수송을 통제하기 쉽다는 것이다. 앞서 얼핏 다뤘지만, 철도는 안전을 위해서라도 정밀한 신호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열차 사이의 간격을 유지해야 하고, 또 열차의 행로를 조절해야만 하는 것이다. 기관사는 자력으로 방향을 바꿀 수 없고, 또 육안으로 안전한 간격을 유지할 수 있는 속도 수준은 매우 낮다. 이를 보조하기 위해 신호가 있다. 이 신호 시스템에 실려 돌아다니는 정보를 모두 수집할 수 있다면, 현재 어디에서 어떤 열차가 움직이고 있는지를 모두 밝혀줄 수 있다.
북한의 경우는 남한보다 훨씬 더 철도가 중요하다. 화물의 90%, 여객의 60%가 철도로 수송된다는 통계가 있을 정도이니 말이다. 이는 물자와 인력의 수송을 용이하게 통제하려는 의도 때문이었을 것이다. 또는, 공산권 특유의 개인 차량 통제 방침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북한에서는 다른 모든 집단의 수송력을 합쳐도 철도부를 따라갈 수 없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제, 철도공사의 화물 열차가 평양이나 중국으로 가기 위해 평부선(평양~부산간 선구라는 말로, 실질적으로는 평양~개성간 선구를 지시한다)으로 진입했다고 해 보자. 화주는 화물이 안전히 목적지에 도달하기 바랄 것이고, 철도공사는 직원이 안전하게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길 바랄 것이다. 이를 믿을 수 있으려면, 열차 운행정보를 화주와 철도공사가 실시간으로 받아볼 수 있어야 한다. 현재 한국철도공사는 이런 정보를 제공하고 있고(철도물류정보서비스. 이전에는 누구나 볼 수 있었으나, 철도 동호인의 접속 증가로 인한 트래픽 우려로 인해 회원제 열람으로 전환했다), 여타 철도 사업자 역시 이런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상식적인 일이다. 여기서 내가 우려하는 바는, 북한철도성 측이 자신들의 열차운행정보를 이처럼 공개할 의사가 없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물론 철도공사라고 해서 모든 열차의 운행정보를 일반에 공개하지는 않는다. 대통령 전용열차 “경복호”의 정보는 철도물류정보서비스상에 개재되지 않는다. 아마도 군화물(연보상에 “건설”이라고 써 있는 것이 군용 열차다) 역시 일반에 공개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열차는 이용객을 위해 일반에 공개된다.
북한철도성 역시 모든 열차를 화주 일반에 공개해야 할 이유는 없다. 일부 수송은 누락되어도 화주들에게는 상관 없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철도공사에게는 남북 연계수송과 관련된 간선의 모든 열차 운행정보를 공개해야만 한다. 그래야 원활한 연계 운전과 향후 운전계획 수립에 대한 피드백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한철도성이 이런 민감한 정보를 과연 공유할 수 있을 것인지는 의심스럽다. 북한 철도의 간선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그대로 한국철도공사에 보고한다는 것은 곧 북한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을 상세하게 밝히는 것이나 다름 없는 일이다. 북한측으로서는 매우 부담스러운 일일 것이다.
열차운행정보가 원활히 공유되지 않으리라고 예상하는 것은 북한 철도 사고에 대한 정보가 매우 낮은 수준으로만 알려지기 때문이다. 북한에서 가끔씩 일어나는 열차 사고 소식에 귀를 기울여 보라. 룡천역 폭파사고 이외에는 상세한 보도를 보기가 힘들다. 대북 방송이 탈북자나 조중국경을 오가는 사람들로부터 얻은 정보를 토대로 보도하는 것이 전부다. 철도사고를 이처럼 은폐해서 얻을 것은 사실상 아무것도 없음에도 이런 태도를 취하는 것은, 북한이 운행정보를 제공하는 협력을 과연 순순히 받아들일 것인지 의심스럽게 만든다.
남북철도 직결시, 북한 철도성은 또 다른 부담을 져야 한다. 한국철도공사 직원들이 북한철도의 주요 역에 파견 근무를 나가거나 적어도 자주 들락거려야 한다는 것이다. 앞서 군사정권 시절 역사의 철도 시설물을 촬영하는 것은 꽤 성가신 일이었다는 지적을 했던 바 있다. 이는 역이 열차 운용을 통제하는 핵심 시설이기 때문이다. 이 곳에서 열차를 조성하고, 행로 변경을 하며, 열차 간격을 조절하기도 한다. 이런 활동을 위한 시설물들은 취약한 부분이 있고, 따라서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외부인의 출입이 통제된다.
그렇다면 북한 철도성측은 철도공사 직원을 외부자로 보고, 그들로부터 철도 시설물에 관한 정보를 보호하려 시도할 수도 있는 것이다. 북한측이 자신들의 정보에 대해 보이는 폐쇄적인 태도들은 이런 심증을 강화한다. 이들은 한국철도공사가 자신들의 열차 운용에 개입하는 것을 매우 우려할 일로 여기고 있을 수 있다.
열차 운행에 무엇이 필요한지를 잠시 생각해 보면 이런 심증은 더욱 굳어진다. 예를 들어, 기관사는 자신이 운전할 철도 선로의 상태를 거의 암기하고 있어야 한다. 이는 곧, 철도공사 기관사가 북한 내에서 운전을 하게 된다면 북한 간선 철도의 상태를 외우는 비 북한인이 생긴다는 의미다. 정보 공개에 극히 소극적인 북한이 이런 선택을 할 가망은 낮지 않을까 싶다.
철도 정보를 외국과 공유하고, 외국의 철도 직원이 자국 철도시설물 내로 들어오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던 시절의 유산은 세계 국경지역 철도의 풍경 속에 여전히 남아 있다. 유럽처럼 국경 통과 자율화가 된 곳이 아닌 한, 많은 국경 통과 열차는 국경에서 기관차와 기관사를 교체한다. 선로가 익숙하지 않다는 문제도 있고, 사람이란 컨테이너처럼 세계를 정처없이 떠돌아다닐 수 없는 것이라는 문제도 있지만, 역시 외국인이 철도에 접근하는 것이 껄그럽다는 이유도 빼놓을 수 없다. 북한은 자신의 정보를 밖으로 드러내는 데 어느 나라보다도 소극적인 나라다.
이들의 태도를 바꾸지 못한다면, 남북철도 연결은 열차운행정보조차 제대로 공유되지 않고, 철도공사 직원의 북한철도 진입도 매우 제한적으로만 이뤄져서 열차 운행에 필요한 조건이 확립되었는지 확인하기도 힘든 상황 속에서 열차를 굴리는 상황을 낳고 말 것이다. 북한철도성이 간선의 정보를 명명백백히 밝히도록 유도할 방법을 함께 제시하지 못하는 한, 철의 실크로드는 그 속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암흑의 길로 전락할 수도 있다.
과연 북한철도 직원을 믿을 수 있는가? : 화차 실종 사건
앞서 지적한 문제는 북한 철도성의 전체 방침과 관련된 것이었다면, 지금 지적할 문제는 북한 철도성 직원들의 기강과 관련된 문제다. 북한에 반입된 중국측 화차가 누적 2천량(한국철도공사의 전체 화차 보유량 규모가 약 1.4만량이니, 2천량이 상당한 숫자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규모와 기능이 다르긴 하지만, 철도공사가 수도권 전철을 굴리기 위해 보유하고 있는 전동차의 수효도 2천량 정도 된다는 것을 참조할 수 있겠다)이나 실종되어, 중국측이 북한으로 더 이상 중국 소유 화차를 들여보내지 않겠다는 보도는 북한철도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들어보았을 것이다. 화차를 되돌려 보내지 않고, 사적으로 전용하는 결정을 내리는 것은 아마도 철도성의 최고위급이 아니라 각 역의 중간간부들일 것이다. 이런 전력이 있는 자들에게 화물을 맞길 수 있는지,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검토해야만 한다.
이 <화차 실종 사건>과 유비해 볼 수 있는 현상이 있다. 후진국에서는 중간간부들의 부패로 인해 구호물자 같은 것이 중간에 사라져 정작 구호가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물자가 가지 못하는 상황이 빈번하게 벌어진다. 물론 북한에서도 얼마든지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이다. 화차와 화물은 물론 구호물자와 같은 성격을 지닌 것은 아니지만, 부패한 중간간부의 먹잇감이라는 점에서는 구호물자와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중간간부들의 부패를 막을 대책을 수립하지 않고 북한으로 화물을 진입시켰다가는, 화차와 화물이 모두 실종되는 사건이 화차의 국적을 바꿔서 재발될 것이다.
문제는 쉽지 않다. 대체로 부패는 생활이 불안정해진 자가 저지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 화차 실종 사건 관련 기사를 보면, 낙후된 창고 시설을 대체하고자 유개有蓋화차를 빼돌린 경우도 있다. 소득이 충분치 않고, 인프라가 충분하지 않아서 이런 부패가 빈발하는 것이라면, 결국 북한 철도성의 직원들에게 한국발 화물을 처리하는 댓가로 충분한 임금을 지급하고, 또 각각의 역사를 정비하는 지원을 해야 한다는 것이 아마도 적절한 대응 같다.
하지만 북한은 개성공단처럼 직접 고용관계에 있는 북한인들에게도 남측이 직접 임금을 지급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북한 철도성 직원은 직접 고용관계도 아닌데, 과연 중간간부의 부패를 막을 정도로 충분한 임금을 줄 뾰족할 방법이 있을지는 매우 의심스럽다. 또, 북한 전역 수백개에 달하는 역사를 충분한 수준으로 정비하는 작업은 아주 장기적인 과제가 될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중간간부의 부패로 인한 화차 실종 사건을 방지할 수 있는 장치를 설정하는 것 역시 매우 힘든 일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러시아 광궤 문제
러시아 광궤(1520mm)는 일찍이 유럽 방면에서의 침공을 막기 위해 유럽 대륙에서 쓰는 표준궤(1435mm)와는 다른 규격으로 설정된 것이다. 이것이 지금은 유라시아대륙 횡단 철송의 효율성을 낮추는 장애물이 되고 있다.
궤간이 다르면, 당연히 대차를 바꾸지 않는 한 달릴 수 없다. 아예 다른 화차에 싣는 방법도 있다. 궤간이 변화하는 대차를 도입하는 방법도 있지만, 궤간 가변이라는 키워드로 검색해 보면 철도기술연구원에서 관련 시험이 이뤄지고 있을 뿐 아직 수송에 적용하고 있는 단계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 광궤와 표준궤 열차를 한 궤도에 모두 운용하기 위해 3선을 까는 방법도 있기는 하지만, 국내에서는 관련 연구가 전혀 되지 않을 정도로 기술적으로 취약한 안인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러시아 광궤와 표준궤의 넓이 차이가 85mm 정도에 불과해 4선 궤도를 부설하기는 힘들고, 레일 사용 수준이 균등하지 못한 3선 궤도를 부설해야만 해서(라진 일대에 3선 궤도가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음) 애초에 고려 대상이 되지 않는 듯하다.
환적 부담 또는 궤간가변대차의 비용 부담은 고스란히 운임으로 연결된다. 보도를 보면, 유럽쪽 러시아에 화물을 보내는데 걸리는 시간이 인도양 항로에 비해 두 배 정도 빠르기는 하지만 운임 역시 두 배 비싸다. 또한 남한과 철송 연결이 제대로 되지 않는 현 상황에서도 철도 용량 부족으로 인해 운임이 상승한다는 보고가 들리는 것을 보면, 복선철도의 수송력 자체도 선박에 비하면 그리 대단한 수준은 아니다. 또 유럽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러시아에서 다시 환적을 해야 하므로, 러시아 방면의 화물이 아니면 경쟁력을 갖추기 힘들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러시아 경제가 성장하면서 늘어날 트래픽을 생각하면, 내수 위주로 철도 용량을 사용하려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바이칼 호를 북으로 우회하여, 동해 북단/사할린 대안의 소베츠카야가반에 이르는 BAM 철도가 보조 축선으로 존재하기는 하지만 한반도에서 접근하려면 상당히 우회하는 것이 사실이다.
조봉현이 쓴 <남북한 철도수송 필요성과 과제> 4절에 재인용된 경의선 통과 트래픽 수준과, 교통연구원 성낙문의 발표문, 김명민∙조지현이 쓴 <철도 물류기지 구축을 통한 남북철도 활성화 방안 연구>(유통과학연구 8-2 (2010) 05-12)를 보면 대략적인 수송량 추정치가 실려 있다. 모든 예측에서, 낙관적 예측과 비관적 예측 사이의 규모 차이는 상당하다. 이는 투자가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 여부가 매우 불확실하다는 이야기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남북철도 연결이 열어줄 장밋빛 미래만 이야기한다면, 이는 우호적인 분위기 아래서 이뤄진 학계의 연구성과조차 무시하는 태도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 방면 연결 문제
모든 연구에서 지적하고 있는 것은 중국 방면 연결은 대체로 동북3성 방면 화물에서나 효과를 얻을 것이라는 점이다. 지도를 펼쳐보면 이런 결론은 쉽게 수긍할 수 있다. 북경으로 가는 화물이라고 해도, 매우 좁은 회랑을 따라 움직여야 하고 천진까지 가는 항로에 비해 우회가 심하므로 운임과 시간 면에서 그리 우세하지 못할 것이라고 보는 것이 좋다. 다른 지역은, 아예 바다를 운항하는 선박이 진입 가능한 내륙수로까지 있으므로 굳이 철도를 이용할 필요가 없다.
여객 운송은 무리
사실 지금까지 국내에서 이뤄진 어떠한 연구에서도 북한철도를 통한 여객 운송은 고려되지 않고 있다. 그야말로, 호사가들의 말잔치 말고는 아무런 이야기도 없다. 철도가 인접해 있으며, 정기적으로 남측 사람 수백명이 드나들고 수만 명의 통근 인파가 몰리는 개성공단에서도 정기 여객열차를 굴리는 계획은 없었다. 심지어 잠시 정기 화물열차편을 굴리던 시절에도 정기 여객열차는 진입하지 않았다. 행사용 특별 열차만이 다녔을 뿐이다. 수도권에서 이런 곳이 있었다면, 당장 민원 폭탄을 맞아 철도공사가 곤욕을 치루지 않았을까.
노무현 연간 당시, 해당 구간에 굴릴만한 열차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경의선에 다니던 디젤동차를 진입시키면 그만이었다. 또한 화물열차가 봉동역까지 정기 운행하였으므로, 철도공사에 숙련 기관사가 없는 것도 아니었고, 정기 운행에 따른 절차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물론 개성공단 관련 인원이라는 일 수백명의 정기 수요도 있다. 수백명이면 열차를 굴리기에 적지 않느냐는 지적을 할 수도 있지만, 경북선 같은 한가한 선구의 승객도 그 정도 밖에는 되지 않는다. 화물열차 역시 화물이 별로 없음에도 몇 년간 계속 다닌 바 있다.
게다가 개성공단으로 통근하는 노동자의 숫자는 확실히 철도의 도움을 받으면 좋은 수준인 수만 명에 이른다. 상황이 이런데도 여객열차를 굴리지 못했던 것은 의지가 없었거나 무언가 심각한 제약이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상세한 것은 나로서는 알 길이 없으나, 열차에 탑승한 채로 CIQ(세관Customs∙출입국Immigration∙검역Quarantine의 약자) 를 통과하는 게 문제가 된 것이 아닌가 추정해 볼 따름이다. 열차에 탄 채로 CIQ를 받을 수 있게 만드는 노력이 성공하지 못했다면, 북한을 통한 여객열차 운행은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다.
운좋게 CIQ 통과를 비롯한 각종 장벽이 제거되었다고 해 보자. 개성 관광 정도는 열차로 다닐 수 있을지도 모른다(금강산 방면 연결은 남한쪽 철도가 미비하여 십년 간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 이상은 2, 3절에서 제시한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승객과 승무원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위험천만한 여행이 될 뿐이다.
평양과 중국 동북지역으로 가는 고속선(고속열차가 전속력으로 다닐 수 있는 고규격의 전용선)을 놓고, KTX를 굴리자는 호사가들의 주장도 있기는 하다. 물론 지금 당장 시작해도 행신역에서 북행 KTX를 탈 수 있는 것은 10년은 지나야 하는 일이긴 하다. 여하튼 이 경우, 서울에서 약 200km가 좀 넘게 떨어진 평양까지는 1시간 정도, 400km가 좀 넘게 떨어진 신의주까지는 2시간 정도면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중국 동북은 멀다. 신의주에서 요녕성의 성도 선양까지는 직선거리로만 220km 정도다. 1시간 이상이 소요될 것이다. 현존하는 고속선을 따라가면, 장춘이나 대련까지는 추가로 한 시간 이상, 하얼빈까지는 여기에 추가로 한 시간 이상이 걸린다. 한편 선양에서 북경까지는 684km에 달하며, 평균속도 300km/h로 달린다고 해도 2시간 20분이 걸린다. 사실상 선양에서 하얼빈이나 북경까지는 3시간이 걸린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를 합산하면, 서울에서 선양까지 최소 3시간, 하얼빈까지 5시간 반, 북경까지 6시간이 걸린다는 이야기다. 일본의 사례를 보면, 도쿄 역에서 신칸센으로 약 3시간 20분 정도 소요되는 오카야마를 넘어서면 고속열차보다 항공기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고 한다. 그렇다면 중국 방면 고속철 연결 역시 선양을 넘어서면 항공에 밀릴 것이 자명하다. 인프라 공유를 위한 표준 정비 정도는 이에 비하면 큰 어려움이 아닐 것이다.
결국 북한행 또는 북한 경유 정기 여객철도는 시범사업이 가능한 상황이 있었음에도 실현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전망이 어둡고, 또 주요 목적지가 너무 멀다는 점 때문에 고속철 사업의 경우는 그리 채산성을 기대할 수 없다. 서울발 유럽행 열차 같은 것은 관광열차 수준의 소략한 사업에 불과하니 분석하지 않아도 상관 없을 것이다. 단, 개성공단행 열차조차 굴리지 못하는 상황에서 북한을 관통하는 열차를 기대하는 것은 대단한 시기상조라는 것은 분명한 일이다.
총정리 : 북한 철도에 대한 낙관적 전망을 버려라
북한철도 연결에 수많은 난관이 있을 것이라는 짐작들은 많은 분들이 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물리적 시설 수준과 북한의 기술력 자체가 처참한 수준이라는 것은 생각보다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듯하다. 게다가 남한의 철도망은 북한과의 연결에 적절한 형태로 정비되어 있지도 않다. 또 대륙국가와의 연결로 인한 경제적 이득 역시 생각보다 큰 수준은 아니라는 것이 관련 연구에서 확인된다.
무엇보다도 심각한 문제는, 북한철도의 정보 및 인적 폐쇄성을 바로잡고, 또 해이해진 북한철도 직원의 기강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북한 정권의 행동이 매우 근본적인 수준에서 변화해야 한다는 점이다. 열차운행정보와 사고정보를 정확히 전파하고, 화물과 열차가 중간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정보의 개방과 인적 개방, 그리고 북한철도 직원의 처우 개선이 있어야 하지만 이것은 북한 정권이 현재까지 해 온 행동과 충돌한다.
게다가 철도는 간선 노선만 하더라도 전국 주요 도시를 관통하고 있으며, 열차와 관련 정보가 집결하는 거점인 철도역은 각 도시의 중심이기도 한 만큼 철도 개방의 영향력은 북한정권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클 것이다. 다시 말해, 간선철도와 철도역 그리고 관련 정보에 대한 개방은 사실상 전국 주요 부분에 대한 상당한 수준의 개방을 의미하는 것이다.
남한에서도 철도가 중요하지만, 북한에서는 사실상 모든 수송이 철도로 이뤄진다는 점도 생각해야만 한다. 철도 개방은 특구 지정을 통해 제한적 개방만을 추구해 온 북한정권으로서는 해본 적도, 생각한 적도 없는 수준의 급진적인 개방일 것이다. 결국 광범위한 북한의 개혁개방 없이는 신뢰성 있는 철도 운행은 어렵다. 하지만 이를 어떻게 성취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찾기 힘들다. 현재까지 이뤄진 북한측의 철도 개방은 특구 개발의 장식품 수준에 불과하다.
결국 북한철도 연결이 정말로 철의 실크로드가 되기 위해서는, 호사가들의 말잔치가 아니라 정말로 북한철도를 상당한 수준으로 개방할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현재의 정보 개방 상태에서 열차를 굴리는 것은, 심하게 표현해서 화물과 화차를 실종 또는 사고로 대파되는 길로 내보내는 일이다. 이런 상황을 외면하고, 북한철도 연결이 장밋빛 미래를 열어줄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무지한 행동이자 무책임한 행동이다. 독자 제위의 현명한 판단을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