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말 기준 국내 화장품 판매 업체가 3만 개를 넘어섰습니다. 2017년 1만 개를 넘어선 지 6년 만에 무려 세 배 이상 증가한 것인데요. 역사상 가장 많은 화장품 브랜드가 국내 시장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열풍의 주인공은 이른바 ‘인디 화장품 브랜드’로 불리는 작은 규모의 신생 화장품 브랜드입니다.
실제로 올리브영, 다이소 등의 오프라인 커머스와 뷰티 컬리, 지그재그 등의 온라인 커머스를 살펴보면 다소 생소한 이름의 ‘인디 화장품 브랜드’를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과거 K-뷰티를 이끌었던 브랜드가 아모레퍼시픽, LG 생활건강 등의 대기업 브랜드였다면, 최근에는 인디 화장품 브랜드가 ‘하드 캐리’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인디 화장품 브랜드의 ‘대세’는 2~3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잘나가는’ 인디 화장품 브랜드 사례도 끊임없이 등장하고 있죠. 한 해 매출 1,000억 원 이상을 달성하는 인디 화장품 브랜드가 여러 개에 달하고, 가파른 매출 및 영업 이익 증가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자금력이 풍부한 대기업과 사모 펀드는 인디 화장품 브랜드의 가능성을 보고 M&A 시장에 뛰어들고 있고요.


화장품 브랜드의 증가는 낮은 진입 장벽과 시장의 성장 덕분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더 궁금해집니다. 화장품 산업의 진입 장벽은 왜 점점 낮아지고 있는지, 브랜드 파워가 약한 인디 화장품 브랜드도 어떻게 고객의 선택을 받게 됐는지 말이죠. 그 이유를 소비의 변화, 마케팅의 변화, 생산의 변화 관점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소비의 변화
가장 큰 변화는 ‘소비’에 있습니다. 소비가 뒷받침 되지 않으면 성장은 없죠. 첫번째 소비 변화는 ‘성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고객의 증가입니다. 예전에는 화장품 성분을 세세하게 살펴보는 소비자가 많지 않았습니다. 또한 온라인 상품 페이지에 성분 표시가 제대로 안 보이는 상품도 많았죠. 모델 광고와 제품 콘셉트를 통한 브랜드 파워로 제품 판매를 견인하는 흐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성분’ 정보 중심으로 소비가 발생합니다. 브랜드 파워는 약하더라도 성분이 좋아 ‘제품력’이 뛰어나면 장바구니에 담기죠. 좋은 성분에 합리적인 가격과 긍정 리뷰까지 더해지면 ‘히트 제품’으로 올라서게 됩니다. 건강에 민감한 소비자가 늘어나며 ‘성분’을 꼼꼼히 따지는 소비자가 늘었습니다.
성분 중심 화장품 소비의 큰 배경은 ‘성분’을 알기 쉬워진 환경도 한몫했습니다. ‘화해’와 같은 화장품 플랫폼에서는 각 화장품마다 어떤 성분이 들어있는지, 위험한 성분은 없는지 시각적으로 잘 보여줍니다. 지그재그는 아예 ‘성분’ 탭을 만들어 제품의 추천 성분과 전 성분의 배합 목적을 상세히 보여주고 있죠. 또한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도 뷰티 제품을 추천할 때 ‘성분’ 분석으로 이야기하고요.



이런 성분 중심의 소비 덕분에 ‘제품’ 자체가 좋으면 구매가 일어나게 됩니다. 이말인즉슨, 신생 브랜드 또는 인디 브랜드더라도 제품이 좋으면 승산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덕분에 주목받는 인디 화장품 브랜드가 꾸준히 등장하고 매출 천 억원 이상의 메가 브랜드로 성장하게 됐습니다.
두 번째 소비 변화는 ‘K-뷰티’의 인기입니다. 몇 년간 이어진’ K-컬처’의 인기로 인해 ‘K-뷰티’ 역시 주목받게 됐습니다. 특별한 점은 ‘중국’ 이외 국가에서의 높아진 관심인데요. 이전에는 ‘화장품 수출’하면 중국을 가장 먼저 떠올렸습니다. 한국 화장품의 수출 국가로 중국은 독보적이었죠.
하지만 최근 수출 지형도를 보면 미국, 일본, 유럽 등으로의 수출이 높은 성장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24년 6월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중국 수출액은 2억 8000만달러로 23년 같은 기간 보다 2.9% 증가에 그쳤으나 2위 미국(2억7000만달러)은 60.5% 크게 뛰었고 3위 일본(1억7000만달러)은 18.3% 늘어났죠. 미국 수출액이 중국 수출액을 곧 넘어설 것이라는 예상까지 나옵니다. 미국에서는 코로나 이후 온라인으로 화장품을 구매하는 흐름이 생겼고, 덕분에 아마존에서 화장품 분야별 Top10에 우리나라 브랜드를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수출이 활성화되면서 ‘시장 파이’가 커지게 되었고, 인디 화장품 브랜드도 충분히 판매 경로를 마련할 수 있게 됐습니다. 국내에서는 성분 중심의 ‘제품력 위주’의 소비가 인디 화장품 브랜드에게 ‘기회’를 제공했고, 해외에서는 K-뷰티의 인기 덕분에 글로벌 수출이 늘어나 매출과 영업이익이 파격적으로 늘어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마케팅의 변화
마케팅의 변화도 인디 화장품 브랜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첫 번째는 바로 ‘플랫폼’의 성장입니다.
이전에는 화장품 브랜드가 로드샵을 보유해야 했습니다. 직접 보고 테스트 해보고 사야 하는 화장품 제품의 특성상 오프라인 매장이 꼭 필요했죠. 그래서 아리따움, 에뛰드, 스킨푸드, 이니스프리, 네이처 리퍼블릭 등의 기성 화장품 브랜드는 로드샵 늘리기에 노력했고, 이는 자본이 넉넉한 대기업 화장품 브랜드가 잘할 수 있는 분야였습니다. 진입장벽이 높았다고 볼 수 있죠.

하지만 이제 화장품 구매는 오프라인 ‘플랫폼’에서 일어납니다. 다이소, 올리브영 등이 대표적입니다. 이곳에서는 수 많은 화장품 브랜드를 한곳에 모아 판매합니다. 덕분에 인디 화장품 브랜드도 ‘전국’ 오프라인에서 소비자를 만날 기회가 생겼습니다. 매대 중 일부만 우리 것으로 만들면 되기 때문이죠.
일례로 24년 6월에 진행한 올영세일 데이터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세일 기간 매출액 기준 인기 상품 Top10의 모든 상품이 ‘인디 화장품 브랜드’였습니다. 플랫폼의 성장이 인디 화장품 브랜드가 적은 자본으로도 오프라인 고객 접점을 만들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이죠.

두 번째는 ‘디지털 마케팅’입니다. 화장품을 적극적으로 소비하는 1020세대는 SNS에 친숙한 세대입니다. 이전에는 화장품 알리기가 TV, 오프라인 광고 등으로 진행됐다면 이제는 ‘디지털’로 진행됩니다. SNS 마케팅, 구글 애드센스 등을 통해 과거와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으로도 화장품을 홍보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습니다. 또한 인플루언서 마케팅이 커지면서 신생 브랜드도 얼마든지 입소문 버즈를 만들어낼 수 있게 됐고요.

오프라인 플랫폼의 성장, 그리고 디지털 마케팅으로의 마케팅 변화가 인디 화장품 브랜드도 적절한 타깃에게 발견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만들었습니다.
생산의 변화
마지막은 생산의 변화입니다. 요즘 화장품 업계에서는 화장품을 잘 아는 사람보다 ‘사업’을 더 잘 아는 사람이 몰린다는 이야기가 들립니다. 그 이유는 화장품 전문 지식이 없어도 충분히 훌륭한 제품을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인데요. 바로 ‘ODM’ 시스템 덕분입니다.
인디 화장품 브랜드 대다수는 공장이 따로 없습니다. 화장품을 전문적으로 연구, 제조, 생산하는 한국콜마나 코스맥스와 같은 화장품 제조업자 개발생산(ODM) 업체에 위탁을 맡기고 있죠. 이전에는 연구와 개발은 브랜드가 하고 ‘제조’만 맡기는 OEM 방식이 성행했다면, 최근에는 연구와 개발까지 위탁하는 ODM 방식이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ODM 업체들은 오랜 기간 다수 브랜드의 화장품 위탁 생산을 해오면서 표준화된 ‘화장품 레시피’를 보유하게 됐고, 이를 통해 ‘화장품 컨설팅’ 기업으로 거듭나게 됐습니다. 그 결과, 한국콜마는 2023년 한 해만 고객사 253곳과 신규 계약을 체결했고, 2024년에는 매출 1조를 넘기며 인디 화장품 브랜드가 꼭 거쳐 가는 ‘성지’가 됐습니다.

이런 생산의 변화로 인해 ‘제품 아이디어’만 있다면 ODM 업체와의 협의를 통해 1년 안에 ‘시제품’을 만들 수 있게 됐습니다. 코스맥스는 브랜드 콘셉트 제안부터 상품 개발, 패키지 디자인 개발, 심지어 네이밍 설계까지 전 과정을 컨설팅해 주는 전담 조직까지 세팅했죠. 화장품을 모르는 ‘사업가’도 충분히 화장품 브랜드를 만들 수 있는 환경이 된 것입니다.
마치며
지금까지 인디 화장품 브랜드가 어떻게 끊임없이 생겨날 수 있게 됐는지 살펴봤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이유 외에도 더 다양한 이유가 있습니다. 화장품 특성상 마진율이 높다는 점(통상 50%), 긴 유통기한으로 재고 관리가 쉽다는 것 등 산업의 구조적 특징도 인디 화장품 브랜드 전성시대의 원인으로 꼽힙니다.
결국 돌아보면, 새로운 브랜드가 등장 하기 위해서는 ‘환경적 요인’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소비, 마케팅, 생산의 변화가 새로운 화장품 브랜드가 태어나고 쑥쑥 성장할 수 있는 토대가 됐죠. 시장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업가들이 몇 년전부터 화장품 브랜드 창업에 욕심 내는 것도 같은 이유일테고요.
인디 화장품 브랜드를 바라보는 시선은 나뉩니다. ‘K-뷰티’ 2막으로 인한 글로벌 시장의 성장으로 인디 화장품 브랜드 전성시대는 더 지속될 것이라 보는 분이 있는 반면, 경쟁이 가열되어 어느덧 포화에 다다르게 될 것이라 보는 분도 있습니다. 대기업과 사모펀드에 브랜드를 넘기고 엑시트를 하는 인디 브랜드 화장품 창업가가 점점 많아지는 것이 포화의 시그널로 받아들이는 분도 있죠.
3만 개까지 늘어난 화장품 브랜드는 어떻게 될까요. 인디 화장품 브랜드가 ‘메이저’ 화장품 브랜드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인디 화장품 브랜드가 ‘원 히트 브랜드’가 아닌 지속 가능한 브랜드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을 고민해야 할까요. 이런 고민에 답을 잘 찾은 브랜드가 몇 년뒤에도 접하는 ‘메가 브랜드’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원문: 생각노트
참고자료
- “너도 나도 화장품 사업가”…ODM·인디브랜드 성장 언제까지?
- [기획특집] ‘K-뷰티 새로운 주역’ 인디 브랜드, 왜 주목받나?
- [K뷰티, 지구촌 매혹하다②]일본서 큰 성공 거둔 한국 화장품…그 뒤엔 가입자 1750만 명 ‘직구’ 플랫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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