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거룩한 자리가 짬처리 되었다는 썰이 있다
막내에게 가장 무거운 짐이 전가되는 고전적 패턴이 올해 바티칸에서 벌어진 것 같다(?). 바로 2025년 5월, 새로운 교황으로 선출된 로버트 프레보스트, 교황명 레오 14세가 그 주인공이다(들리는 말로는 추기경으로 임명된 지 2년 차 막내라고…) 그런데 그의 표정이 영 미묘했다. 수많은 추기경들이 환히 웃는 가운데, 본인만 굳은 얼굴로 교황으로서 인사하려 등장한 듯한 느낌이었다.
물론 정확히 말하자면 교황 선출은 ‘책임을 안고도 마지못해 수락하는’ 방식이라기보다는, 교황령에 따라 엄격한 전례 절차와 서약을 거친 후 추기경단의 폐쇄 투표를 통해 ‘지명되는’ 구조다. 후보자들이 “제가 하겠습니다!” 하며 나서는 자리는 아니고, 오히려 “제발 나만은 아니기를…” 바라며 서로 눈을 피하는 분위기 속에서 한 사람이 뜻하지 않게 선출되는 경우에 가깝다는 것이다.


※ 주의사항
물론 이 글의 소재와 ‘떠맡은 리더십’을 연결 짓는 방식은 다소 무리한 시도일 수 있다는 걸 독자 여러분께 말씀드리고 싶다. 교황 선출은 주변 사람들의 눈치 속에 책임이 밀려오는 ‘짬처리’ 상황과는 엄연히 다르니 말이다. 다만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뜻하지 않게 막중한 책임을 떠맡게 되는 감정, 수락 여부를 두고 느끼는 인간적 갈등이라는 점에서는 현재의 리더십 상황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는 점에서, 참고삼아 이 이야기를 꺼내 본다.
“우리 회사에서는 왜 자꾸 나더러 팀장 맡으라고 하나요?”
교황도 도망가는데, 난 왜 조별 과제 리더를 하고 있죠?
우리 주변에도 ‘떠맡은 리더’들이 있다. 자기가 하겠다고 한 적은 없는데, 분위기상 떠맡게 되는 포지션들이다. 대놓고 사람들이 “너밖에 없어”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고, 그냥 아무도 안 나서니 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이 자동으로 맡게 되는 경우도 많다. 대체로 끝까지 안 물러난 사람이 마지막에 남아 리더가 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조별과제에서 다들 말을 아끼고 있을 때, 제일 먼저 입을 연 죄로 발표자까지 도맡게 된 어느 복학생. 회의 중에 침묵이 흐를 때 어색함을 못 참고 말을 꺼냈다가 그 기획안을 책임지게 된 신입사원. 혹은 단톡방에서 모두가 확인만 하고 아무 말 없을 때, 결국 한 명이 용기 내어 의견을 정리하다가 자연스럽게 프로젝트 리더가 되어버리는 그런 상황.
특별히 성격이 착하거나 리더십이 뛰어나서가 아니다. 그냥 가만히 못 있고 제일 마지막까지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걸 보는 사람들은 말한다. “그래, 역시 너밖에 없다.” 하지만 그건 칭찬이 아니다. 사실상 일종의 책임 전가다. 하라는 사람 따로 있고, 욕하는 사람 따로 있는 구조는 언제나 그렇다. 교황만 그런 게 아니다. 세상의 모든 ‘대신 떠맡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리더십은 이제 감정 쓰레기통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Responsibility Avoidance, 즉 ‘책임 회피 성향’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명확히 정립된 하나의 이론이라기보다는, 다양한 연구에서 관찰되는 행동 패턴이나 심리적 경향을 설명하는 용어로 사용된다. 특정한 성격 유형이나 고정된 기질이라기보다는, 개인의 경험, 조직 내 분위기, 사회적 기대 등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반응이다.
책임 회피 성향은 최근 들어 심해지는 추세다. 특히 MZ세대를 중심으로 책임이나 리더십에 대한 거부감이 늘어나고 있는데, 그 배경에는 몇 가지 사회심리학적 변화가 있는 것 같다.
첫째, 권위에 대한 불신이다. 과거처럼 위계적 구조에 대한 수용이 당연시되지 않으면서, 리더라는 위치가 더 이상 명예로운 것이 아니라 ‘타깃’이 되기도 한다. 둘째, 리더가 되더라도 실질적인 권한은 없고 책임만 커진다는 구조적 불균형이다. 셋째, ‘퍼포먼스 피로감’이다. 리더는 조직 내에서 언제나 완벽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다. 이 모든 것이 맞물리면서, 사람들은 점점 ‘책임을 지지 않는 위치’를 선호하게 되고, 책임 회피 성향은 시대적 흐름으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요즘 사람들은 단지 일을 시키는 것만이 아니라, 책임을 지는 것 자체에 피로감을 느낀다. 그래서 리더 자리를 제안받으면 고민보다 ‘반사’가 먼저 나오는 것이다.
제가요…? 아니요, 그냥 지금 이대로도 벅차요.
요즘 리더들은 과거 리더들만큼 권위주의적일까? 권위주의적이어도 될 만큼의 막강한 권한이 주어지는가? 아마 긍정적으로 답하기 힘들 것이다. 그만큼 세상이 변했으니 말이다.

요즘의 리더는 과거처럼 권한을 휘두르는 자리가 아니다. 팀원들의 감정을 살피고, 분위기를 조율하며, 문제를 중재하는 일까지 도맡는다. 사실상 감정노동의 최전선에 서 있는 셈이다. 책임은 무겁고 권한은 제한적이다. 교황, 회사 팀장, 가족의 보호자 역할을 맡은 사람들 모두가 겪는 현실이다.
레오 14세가 ‘레오’라는 교황명을 선택한 이유는 전통을 이어가겠다는 의지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선출 직후 그의 얼굴 표정은 마치 이렇게 말하고 있는 듯했다.
내가 왜 이 자리에 앉아야 하지?
그 표정, 낯설지 않다. 회사에서도, 가정에서도, 모임이나 동아리에서도 비슷한 상황은 반복된다. 아무도 나서지 않을 때, 결국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던 누군가가 그 일을 맡게 된다. 그리고 그 표정이 따라온다. 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어쩌다 보니 떠맡게 된 사람의 표정. 아마 우리 모두 한 번쯤은 그런 얼굴을 지어봤을 것이다.
누군가는 하긴 해야 하니까… 그래서 당신이 걸린 겁니다
영화 〈우리에겐 교황이 있다〉에서 교황은 자신을 기다리는 수많은 신도들을 보며 위축된다. 나는 그럴 사람이 아닌데, 모두가 나를 지도자로 바라본다. 그래서 교황은 도망친다. 그 모습은 너무 인간적이다. 실제 교황직도 마찬가지다. 하루 14시간 일하고, 1년 365일 근무하고, 종신직이고, 사생활도 없다. 화려한 금박 장식 뒤에는 과로사와 외로움, 무한한 상징성과 책임감이 있다.
가끔 우리도 그런 자리에 앉는다. 내가 아니라도 될 것 같은데, 정작 남은 사람이 나뿐일 때. 모두가 한 발짝 뒤로 물러날 때, 나는 제자리에서 버틴 죄로 짬을 떠맡는다. 결국에는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뭐, 내가 하지.
그리고 우리는 희한하게도 그런 사람을 칭찬한다. “그래도 너밖에 없지.” “너는 그런 자리 잘 어울려.” 그렇게 말하면서 사실은 짐을 넘긴 것이다. 책임을 대신 들어준 사람에게 박수는 보내되, 무게까지 함께 들어주지는 않는다.
그러니 여러분, 때로는 도망쳐도 됩니다
현실의 레오 14세는 도망치지 않았다. 반면 영화 속의 교황은 끝내 거부한다.
나는 여러분이 기다리는 그런 지도자가 아닙니다.
멋진 말이다. 그리고 우리가 스스로에게도 해줄 수 있는 말이다. 교황도 도망치고 싶다는데, 내가 뭘 더 하라고요? 오늘 하루쯤은 짬을 거절할 권리, 여러분도 가져봤으면 좋겠다. 내가 꼭 하지 않아도 되는 일, 사실은 생각보다 많을지도 모르니까.
누구나 잠시 도망칠 권리가 있다. 반드시 돌아와야 한다는 보장은 없고, 어쩌면 도망친 끝에서야 비로소 ‘내 자리가 어디인지’ 보이기도 한다. 따라서 도망치겠다는 선언은 부끄러운 고백이 아니라, 용기 있는 호소이다. 오늘 당신도 한발 물러나서 말해도 된다.
이번 짬은… 다음 사람에게 넘길게요.
원문: 허용회의 사이콜로피아
작가의 말
심리학적 글쓰기, 직장심리, 자존감, 목표관리, 마음건강, 메타인지, 외로움 극복, 공간활용의 심리학 등 다양한 주제로 강연 가능합니다. 출강 제안도 환영합니다. 허작가의 사이콜로피아 홈페이지에서 제 소개글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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