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구박받는 거 멈춰주기 위해서라도 제발 2번 이재명 후보 찍어주셔야 한다.
- 안철수/국민의힘 공동선대위원장
이재명 후보를 지지한다.
- 손학규/전 바른미래당 대표:
이재명 대통령을 모시고 확실하게 대한민국을 지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필승!
- 한기호/국민의힘 의원
이번 선거에 대해서 아예 투표하지 않겠다는 분들이 굉장히 많으셨습니다. 그런데 이제야 이재명의 진심, 아니 김문수 후보의 진심…
- 나경원/국민의힘 공동선대위원장
이번 선거 국면에서 국민의힘 인사들이 한 말들이다. 처음에는 해프닝으로 웃고 넘어갔다. 그러나 발언이 한두 번이 아니다. 손학규 전 대표, 안철수, 나경원, 한기호 의원까지… 정치 베테랑들이 줄줄이 상대 후보를 지지하는 듯한 말실수를 반복했다. 실수의 반복에는 언제나 구조가 있다.
이쯤 되면 물어야 한다. 왜 하필 ‘이재명’이라는 이름이 그렇게 자주 튀어나오는가? 정치 공방이 치열할수록, 말실수는 단순한 언어의 미끄러짐이 아니라 심리의 노출이 된다. 이를 설명해주는 몇 가지 심리 이론이 있다.
아이러니 처리 이론(Ironic Process Theory)
-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게 된다.
하버드 심리학자 다니엘 웨그너는 유명한 실험을 했다.
흰 곰을 생각하지 마세요.
그러자 사람들은 흰 곰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 실험은 뇌가 어떤 생각을 억제하려 할수록 오히려 그 생각을 더 떠올리게 되는 구조를 보여준다. 이를 아이러니 처리 이론, 생각 억제 효과(thought suppression effect)라고 부른다.
이번 대선에서 국민의힘은 이재명 후보에 대한 언급을 통제하고, 비판의 수위를 조율하고, 칭찬으로 오해받지 않도록 말조심을 해야 하는 상황에 몰려 있었다. 하지만 이런 억제 시도는 오히려 ‘이재명’이라는 이름을 뇌리에 각인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말을 꺼내는 순간, 가장 강하게 떠오른 단어는 오히려 피해야 했던 이름, 바로 이재명이었다.
역설적 긍정 강화 효과(Paradoxical Priming)
- 반복된 비판은 오히려 이름을 강화시킨다.
특정 단어를 자주 들으면 그 단어는 기억 속에서 더 빨리 인출된다. 문제는 그 단어가 비판의 맥락에서 등장했더라도, 단어 자체는 자극 빈도 효과(frequency effect)로 인해 인지적 우선권을 얻게 된다.
지속적으로 “이재명은 안 된다”, “이재명은 문제다”, “이재명은 위험하다”라고 말했지만, 결국 청자나 화자 모두의 뇌에서 가장 많이 들리고 말한 이름은 “이재명”이다. 비판은 오히려 언어적 활성화 수준을 높이고, 의도와 무관하게 이재명이 자동으로 먼저 떠오르며, 발화 실수로 연결될 확률도 커진다.
자동화된 언어와 인지 과부하(Cognitive Overload)
- 말이 생각보다 먼저 나간다.
우리는 빠른 사고(시스템 1)와 느린 사고(시스템 2) 두 가지 시스템으로 생각하고 말한다.
- 빠른 사고: 익숙하고 자동적인 반응 (예: 언어, 습관, 인상)
- 느린 사고: 논리적이고 통제된 사고 (예: 말 실수 수정, 메시지 조율)
선거철 연설이나 인터뷰 상황은 인지 부하가 극심한 순간이다. 메시지를 공격적으로 설계해야 하고, 상대 후보를 비판하면서도 품격을 잃지 않아야 하고, 당 내부 노선을 고려한 표현 조절도 필요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느린 시스템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면, 가장 익숙한 이름이며 가장 반복적으로 떠올랐던 단어인 이재명이 무의식적으로 먼저 튀어나오는 것이다. 이는 단지 기억에 남아서가 아니라, 언어 시스템이 자동 완성하듯 익숙한 단어를 먼저 발화한 결과다.
같은 맥락에서 정서적 긴장과 정서 역설(affective interference)이 발생할 수 있다. 쉽게 말해, 감정적 억제는 오히려 언어의 부조화를 유발한다는 것이다. 긴장 상태에서 사람은 감정 표현을 억누르려 하지만, 그 억제가 인지적 자원을 소모한다. 이로 인해 언어-의도 간 일치가 무너지고, 정서적으로 억눌렀던 말이 돌출된다.
이재명 후보에 대해 강한 반감, 정치적 긴장, 감정적 대비를 내면에서 조절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그 감정이 말로는 부정되어야 하는데, 실제 언어에서는 이상한 긍정의 형태로 나타나는 부조화가 발생한다.
개념 간 활성화 모델(Spreading Activation Model)
- 연상망에서 가장 활성화된 개념이 먼저 튀어나온다.
우리의 기억과 언어는 개념 네트워크로 저장되어 있다. 특정 단어가 떠오르면 그 주변에 연결된 개념들이 함께 활성화된다. 선거 유세장에서 “후보”, “정책”, “대통령”, “정권 교체” 같은 단어가 언급되면, 그 주변에서 가장 강하게 연상되는 이름이 “이재명”일 수 있다. 이는 그가 정치 담론에서 가장 두드러진 인물로 떠올라 있기 때문이다.
즉, 자당 후보를 말하려다가도 뇌의 네트워크에서 먼저 떠오르는 이름이 “이재명”이라면, 그 이름이 말 앞머리에 실수처럼 튀어나올 가능성도 커진다. 이건 기억력 문제도, 실수도 아니다. 가장 두드러진 개념이 인지적 우선권을 가진다는 구조적 문제다.

말실수의 본질은 ‘실수’가 아니다
사람들은 말실수를 무능, 헷갈림, 착오로 치부하지만, 심리학은 다르게 본다. 이런 실수는 의식적으로 통제하려는 심리, 과잉 억제 피로, 인지적 과부하, 자동화된 언어 반응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심리적 구조물이다. 결국 그 실수는, “이재명을 의식하지 않기 위해 애쓴 결과, 이재명만 생각하게 된” 아이러니한 심리의 결과물인 셈이다.
실수처럼 보인 그 말은, 정치인의 뇌에서 가장 먼저 떠오른 단어였다. 억누르려는 생각이 가장 강하게 떠오르는, 정치적 아이러니의 심리적 메커니즘이다.
원문: 박진우의 브런치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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