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초 안에 최대한 많은 동물 이름을 대보세요.
이 단순한 질문 하나로 우리의 수명을 예측할 수 있다. 최근 Psychological Science에 게재된 연구는 언어적 유창성(verbal fluency)이 노인의 생존 예측력에서 가장 강력한 단일 지표임을 밝혀냈다(Ghisletta, P., Aichele, S., Gerstorf, D., Carollo, A., & Lindenberger, U. (2025). Verbal Fluency Selectively Predicts Survival in Old and Very Old Age. Psychological Science, 09567976241311923.).
기존 노화에 관한 연구는 주로 일화 기억 감소, 지각 속도 저하 등을 중심으로 논의되어 왔다. 그러나 이 연구는 언어 능력, 특히 언어 유창성이 노년기 건강의 핵심 축임을 강조한다.

언어 유창성은 유일한 인지적 장수 지표다
베를린 노화 연구(Berlin Aging Study)에 포함된 연구 대상자들은 평균 연령 84.92세(표준편차 8.66) 516명이었고, 이들은 크게 4가지 인지 요인으로 평가되었다.
- 언어적 유창성 (semantic & phonemic fluency)
- 지각 속도 (perceptual speed)
- 기억력 (episodic memory)
- 어휘력 (verbal knowledge)
연구진들은 연구 개시 시점부터 최대 18년간 8차례에 걸쳐 추적 연구했으며, 종단적 생존 분석에는 joint multivariate longitudinal-survival model이 적용되었다. 이 분석은 인지 기능의 변화 궤적과 생존 시간의 상호작용을 동시 추정할 수 있는 최신 통계 기법이다.
연구 결과, 생존과 가장 강한 상관관계를 보인 것은 바로 언어적 유창성이었다. 언어 유창성은 기억력이나 지각 속도보다도 더 강한 예측 요인이었다. 연구진은 말한다.
언어적 유창성은 기저값과 변화율 모두에서 생존 기간을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예측한 유일한 인지 요인이다.
언어 유창성이 높다는 것만으로도 기본적으로 오래 살고(기저값), 나이가 들수록 더 오래 살 가능성이 높아진다(변화율)는 뜻이다. 언어 유창성은 지각 속도나 기억력, 어휘력보다도 더 강력한 생존 지표였으며, 나이, 성별, 사회경제적 상태, 치매 여부 등을 통제한 이후에도 그 관계는 유효했다. 다시 말해, 말을 잘하는 능력이 수명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통계적으로 입증한 것이다.

언어적 유창성이 수명을 예측하는 메커니즘은 뭘까?
언어적 유창성 측정은 주어진 시간(보통 90초) 동안 특정 범주(categories)나 초성(word beginnings)에 해당하는 단어를 최대한 많이 산출하도록 하는 과제로 평가한다. 특정 범주 과제는 가능한 많은 동물 이름을 대라거나, 초성 과제는 F로 시작하는 단어를 최대한 많이 말하라는 식이다. 이런 과제는 두뇌의 집행 기능(executive control) 및 의미 기억(semantic memory)을 기반으로 한다.
언어적 유창성은 단지 어휘력의 문제가 아니다. 전두엽(계획, 조절, 판단 기능을 담당)과 측두엽(언어 및 기억 담당)의 협력 작업이다. 다양한 단어를 빠르게 떠올리고, 이를 적절히 조합해 말하는 과정은 뇌의 여러 영역이 유기적으로 작동해야 가능한 고차원적 작업이다. 즉, 언어적 유창성이 좋다는 것은 뇌 건강의 신호이며, 나이가 들어도 뇌가 여전히 민첩하고 유연하다는 뜻이다.
또한, 말을 잘하는 사람은 사회적으로도 더 활발하게 관계를 맺으며, 이는 우울증 예방, 스트레스 조절, 건강한 생활 습관과도 연결된다. 결국 유창하게 말하기는 단순한 표현을 넘어 신체 건강, 사회성, 정서 안정의 거울인 셈이다.
말하는대로는 이뤄지지 않지만, 말 잘하는 대로 오래 살 수는 있다
유창성은 어휘량이나 제한된 범주의 지식만으로 높일 수 없다. 말 많은 노인이 그렇지 못한 노인들보다 오래 사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같은 대상의 사람을 만나 비슷한 주제의 대화만 지속하면 유창성을 높이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주제로 더 자주 대화를 나누고, 자신의 경험에 의미를 부여해 이야기로 끌어내는 훈련이 중요하다.
책을 깊이 있게 읽고, 여러 매체에 귀를 기울이고, 듣는 힘과 표현하는 힘을 함께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이 연구는 언어가 우리의 뇌를 자극하는 가장 자연스럽고도 강력한 도구라는 점이 다시 입증된 연구라 할 수 있다.
‘나는 잘 말하지 못해서…’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말은 나이와 상관없고 언어적 유창성은 연습으로 충분히 향상시킬 수 있다. 매일 조금씩 새로운 단어를 입력(기억)하고 인출(대화)하는 일이, 어쩌면 하루하루 생명을 연장하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 건강한 뇌는 결국, 살아 있는 말에서 시작된다. 말을 잘한다는 것은 뇌가 여전히 건강하고 살아있다는 지표다.
한마디로, 당신의 말발이 곧 당신의 수명이다.
원문: 박진우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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