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날, 그리고 우리의 마음
월급날에 마음이 넉넉해진 경험, 직장인이라면 다들 한 번쯤 해봤을 것이다. 통장에 찍힌 숫자를 보며 “이번 달엔 가족 외식?”, “친구들과 커피 한 잔?”과 같은 고민이 자연스럽다고 생각된다면, 베풂은 여유에서 나온다는 말을 공감할 것이다.
그런데 내 월급의 몇십 배가 되는 돈을 버는 부자들을 생각해 보자. 돈 많은 부자들이 더 탐욕스럽지 않은가? 가난한 사람들은 서로의 처지를 공감하고 배려할 수 있지만, 부자들은 그렇지 못하다. 그렇다면 과연 내가 버는 돈은 나를 더 착한 사람으로 만들까, 나쁜 사람으로 만들까?
2025년 Psychological Bulletin에 실린 「Social Class and Prosociality: A Meta-Analytic Review」라는 논문은 이 궁금증을 파헤쳤다. 전 세계 60개 사회에서 56년간(1968~2024) 쌓인 471개 연구, 무려 234만 명의 데이터를 분석해 사회 계층(social class)과 친사회성(prosocial, 남을 돕는 행동)의 관계를 확인했다.
Wu, J., Balliet, D., Yuan, M., Li, W., Chen, Y., Jin, S., … & Van Lange, P. A. (2025). Social class and prosociality: A meta-analytic review. Psychological Bulletin, 151(3), 285.

두 가지 시선: Risk Management Perspective vs Resource Perspective
연구진은 두 가지 상반된 이론적 관점에서 이 질문을 던졌다.
1. 위험 관리 관점(Risk Management Perspective)
자원이 부족한 사람들은 불확실하고 위태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전략을 택한다는 주장이다. 상호 의존적 관계망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 더 공감적이고 협력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사는 게 팍팍할수록 서로 도와야 한다”는 현실 인식을 반영한 설명이다.
2. 자원 관점(Resource Perspective)
자원이 많은 사람은 도움을 줄 수 있는 여유가 더 크기 때문에 타인을 도우려는 행동도 부담 없이 할 수 있다는 관점이다. 바로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속담이 이 논리를 잘 요약한다.
당신에게 보다 익숙한 관점은 무엇인가? 가난한 사람들이 의리있게 서로 돕는 것에 끌리지 않은가? 부자들이 착하면 왠지 안 될 것 같다. 부자들은 형제 간의 우애도 좋으면 안 되고, 너무 착해도 안 된다. 우리는 은연 중에 이런 기대를 갖고 산다.
하지만 실제 현실은 다르다. 부자도 얼마든지 착할 수 있고, 미인박명이 아니라 미인도 오래 살 수도 있으며, 천재가 재수 없는 게 아니라 온정적인 천재도 있을 수 있다. 아무런 상관이 없는 변수들에 대해 “신은 공평하다”는 기대를 갖는 현상을 심리학에선 〈공정한 세상에 대한 착각(just world fallacy)〉이라고 부른다.
데이터가 말하는 진실
그렇다면, 부자와 가난한 사람 중 실제로 누가 더 친절할까? 연구진이 밝힌 결론은 이렇다. 사회적 지위가 높을수록, 조금 더 친사회적인 행동을 보였다(r = .065, 95% CI [.055, .075]). 이 수치는 작아 보일 수 있지만, 전 세계, 전 연령대, 모든 문화권에서 일관되게 나타난 패턴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효과 크기 r = .065는 심리학에서 ‘작지만 신뢰할 수 있는 수준’으로 간주된다. 마치 매일 아침 1분씩 더 걷는 것이 결국 건강에 의미 있는 영향을 주듯, 이 작은 차이도 수백만 명의 행동에는 실질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특히, ‘마음’보다 ‘행동’에서 그 차이가 더 뚜렷하게 드러났다.
이 연구에서 사회 계층(social class)은 객관적 vs 주관적, 두 가지 방식으로 측정했다.
- 객관적 사회 계층(objective social class): 소득, 교육 수준, 직업적 위신 등 실제 자원 수준
- 주관적 사회 계층(subjective social class): “나는 사회에서 어느 위치에 있다고 느끼는가?”에 대한 개인의 인식
의도보다는 행동
두 방식 모두 친사회적 도움 행동과 관련이 있었지만, 실제 자원이 많은 사람들(객관적 상위 계층)이 자신을 상위라고 느끼는 사람들(주관적 상위 계층)보다 더 실제 행동에서 친사회성을 보였다. 요컨대, 마음보다는 현실적 여력이 행동으로 전환 가능성에 더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행동은 의도보다 친사회성이라는 특성을 더 높여주었다. 구체적으로 의도(Pro-social Intention)가 친사회성에 미치는 영향은 약한 관련(r = .039)이었지만, 행동(Pro-social Behavior, 기부나 시간을 들여 도운 경우)이 친사회성에 미치는 영향은 더 강한 관련(r = .079)을 보였다.
이 연구는 단순히 착한 마음을 먹는 것보다 실제로 돕는 행동에서 사회 계층의 차이가 더 뚜렷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즉, 부자는 마음만이 아니라 지갑과 시간을 여는 데 익숙하다.
비공개보다는 공개
사람들은 공개 상황(Public Context)에서 즉, 남이 볼 때, 더 적극적으로 친사회성을 보였지만, 비공개 상황에는 그러한 관련이 나타나지 않았다. 재미있는 사실은 다른 사람들이 보고 있을 때 돈 많은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들에 비해 더 잘 베푼다는 것이다. 돈이 많을수록 ‘티 안 나는 선행’보다 ‘인정받는 친절’ 에서 더 크게 베푼다.
문화적 보편성
이 효과는 국가 경제 수준·불평등 정도·종교성·인구 밀도·문화 규범 등 다양한 사회문화적 변수와 무관하게 나타났다. 다시 말해 사람들이 사는 곳·나이·문화와 상관없이 이 패턴은 일정하게 유지됐다. 국가 간·문화권 간·나이대 간의 큰 차이는 없었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보편적 인간의 심리에 가깝다.
물론, 보편적 경향이 존재한다고 해서 국가 간 차이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리투아니아· 말레이시아·브라질·베트남·튀르키예·불가리아·핀란드·네덜란드 등은 사회 계층이 높을수록 친사회적 행동이 많음이 상대적으로 더 강하게 나타났고, 반대로 루마니아와 멕시코·대만·태국 등은 사회 계층이 높을수록 오히려 덜 친사회적이거나, 낮은 계층이 더 친사회적 행동을 보이는 패턴이 나타났다. 이 국가들의 공통점은 관계지향적 문화, 또는 비공식적 네트워크가 중요한 문화일 가능성이 높다.
결론적으로 문화적 맥락이 전체 통계에 영향을 미칠 만큼 크지는 않지만, 문화, 제도, 사회 자본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는 틀렸다
65년 간의 심리학 연구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돈이 없으면 가오도 없다.” 그렇다고 돈이 없는 사람이 덜 착한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착한 마음을 행동으로 옮기기 힘들 뿐이다. 돈이 없으면 가오를 부리고 싶어도 그러기가 힘들다.
하지만 연구가 보인 또 하나의 진실은, 우리가 어떻게 해서든 행동으로 옮기면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당신의 좋은 의도를 행동으로 옮길 때 더 쉽게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 의도보다는 행동이 더 좋은 사람을 만든다.
원문: 박진우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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