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파가 가득한 거리를 홀로 걷는다. 누구를 보지도, 인사를 나누지도 않는다. 그가 원하는 것은 오직 하나. 일본에서 요원이 보낸 새로운 음료다. 그는 홋카이도 특산물이라며 한 번도 맛보지 못한 음료를 보내준다고 예고했다. 과연 그것은 무엇일까?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떨리는 기분으로 상자의 문을 열었다.
Guaraná Antarctica, o original do Brasil
아 뭐야? 일본에서 왜 브라질 음료를 보낸 거야? 삿포로가 아니라 상파울루를 갔나?
홋카이도에서 파는 브라질 국민 음료?
마시즘은 이 음료를 알고 있다. ‘과라나 안타르치카’. 줄여서 ‘과라나’라고도 부르는 이 음료는 브라질의 대표적인 국민 음료다. 브라질 내에서는 코카콜라만큼이나 사랑을 받는 음료다.
그것은 브라질의 ‘아마존’에서 자라는 열매가 바로 ‘과라나’이기 때문이다. 큰 체리처럼 생긴 과라나 열매는 익을 때가 되면 마치 사람의 눈 모양으로 생기게 되는데. 환공포증을 불러일으키지만(?) 효능은 확실하다. 카페인이 커피에 비해 2배 가량 많이 때문에(!) 아마존 원주민들의 각성제로 인기가 있었다고.
그것을 1921년에 음료로 만든 것이 ‘과라나 안타르치카’다. 100년이 넘는 역사 동안 브라질에서 사랑을 받다 보니 아이부터 어른, 할아버지 할머니 모두 과라나를 일상처럼 마신다. 특별히 맛있는 조합은 팝콘과 함께 먹을 때라고.
그런데 이 음료를… 왜 일본, 아니 홋카이도에서 사 온 거냐고?
과라나 음료로 코카콜라를 막아라
그것은 1950년대의 일본으로 돌아가야 알 수 있다. 당시 일본 음료업계에는 큰 불안요소가 있었다. 그 유명한 ‘코카콜라’가 일본에 정식진출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지금이야 언제 어디서든 코카콜라를 마실 수 있지만, 1950년대의 코카콜라는 브루마블의 고수처럼 각국의 주요 도시들의 식생활을 점령하며 다녔다. 냉전체제로 코카콜라가 진출할 수 없는 나라에서 가장 부러워하는 게 ‘미국의 코카콜라’였다고 하니 말을 다 했지. 그게 일본에 온다니, 라무네나 사이다로 코카콜라를 막을 수 있을까?
그렇게 ‘전국청량음료협동조합연합회’가 찾은 것이 브라질이었다. 이곳에서는 코카콜라가 힘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과라나 안타르치카의 인기가 코카콜라를 압도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일본과 브라질은 일찍이 교류를 하던 관계. 일본은 그들의 과라나 음료를 배워오기로 했다.
그렇게 1960년에 만든 것이 일본화된 과라나음료. ‘코업 과라나’였다. 보다 달콤한 맛을 강화했고, 코카콜라를 의식한 듯 비슷한 외관의 병 디자인을 했다. 그리고 드디어 1961년 10월 코카콜라가 일본에 첫 진출을 시작했고…
과라나 음료는 코카콜라를 막지 못했다. 아니, 브라질은 되는데, 우린 왜!
홋카이도에서만 과라나를 파는 이유
코카콜라의 기세는 엄청나서, 일본은 곧 코카콜라의 또 다른 성지가 되었다. 아무리 과라나 음료와 붙여놓는다고 하더라고, 어차피 둘 다 낯선 음료이기에 사람들의 선택은 ‘그 유명한 코카콜라’로 향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일본의 북쪽 ‘홋카이도’에서만큼은 과라나 음료가 인기를 얻고 있었다. 왜냐고?
너무 멀어서… 코카콜라가 3년이나 늦게 진출하게 되었거든.
홋카이도에 코카콜라가 진출하지 않는 사이 모든 과라나음료가 이곳에서 생존게임을 시작했다. 홋카이도 사람들은 이 신기한 음료를 마시기 시작했고, 3년 뒤에 코카콜라가 들어왔을쯤에는 이미 과라나 음료에 입맛이 길러져 버렸다.
여전히 홋카이도 주민의 95%는 과라나 음료를 맛보았으며, 이제는 과라나 음료를 지역특산물로 팔고 있는 상황이다. 심지어 과라나음료의 원조인 ‘과라나 안타르치카’도 홋카이도에서 생산이 된다.
그래서 일본 요원님이 과라나 안타르치카를 보내준 것이었다. 아니 그런데 미국 입맛을 막기 위해 스스로 브라질 입맛이 되어버린 거야?
국민 음료가 갖추어야 할 조건
홋카이도에서 생존한 ‘과라나 음료’의 이야기는 많은 교훈을 준다. 우리가 음료를 고를 때 단순히 맛을 이야기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우리의 선택을 결정짓는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음료와 내가 쌓아온 시간과 이야기다. 브라질에서는 성공했지만 일본에서는 실패한 것. 또 일본에서는 실패했지만 유일하게 홋카이도에서는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맛을 바탕으로 사람들과 축적된 시간’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것이 음료가 되었건, 어떤 브랜드나 상품이 되었건, 사람이 되어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역시 정이 최고야. 정감 있는 홋카이도 특산물(이지만 브라질 국민 음료)을 마셨다. 아우. 아무리 생각해도 이거 이중국적 음료야.
원문: 마시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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