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
닭에 밀가루 따위를 입히고 튀겨 만든 요리. 굽기도 한다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1. B. C. (Before Chicken)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닭 요리는 백숙입니다. 고기가 귀하던 시절 더 이상 달걀을 낳지 못하는 닭을 푹 끓여서 양을 불릴 수 있는 형태로 나타난 것이죠.
백숙 이후에는 일제강점기에 계삼탕이 나타났습니다. 계삼탕은 삼계탕의 원래 이름인데요. 인삼과 닭은 모두 귀한 요리 재료였기 떄문에 당시에는 특권층들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어요. 우리가 복날 흔하게 삼계탕을 먹을 수 있게 된 것은 1963년 이후 사료 산업이 발전되고 양계산업의 규모가 커진 이후입니다.
요새는 닭이 일상 음식이 되었지만, 옛날에는 특별한 날에 먹는 음식이었어요. 크리스마스나 Thanks Giving Day에 주한 미군들은 고국에서 공수한 칠면조 요리를 먹었는데, 이것을 보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따라 했다는 거죠. 하지만 칠면조는 구할 수 없으니까 대신 닭을 먹었다고 합니다.
2. 태초에 전기구이 통닭이 있으라
우리나라에서 처음 등장한 치킨은 1960년 명동영양센터의 전기구이 통닭입니다. 현재도 가게가 남아있어요.
전기구이 통닭은 굽네치킨과 오빠닭 등으로 대표되는 오븐 치킨의 전신이죠. 여기에 강한 양념을 더한 것이 숯불구이치킨이고, 2005~6년쯤에 유행했던 불닭을 거쳐 현재는 훌랄라와 지코바로 남아있죠.
3. 압력튀김기가 이 땅에 이르러 닭을 튀겼나니
1970년대 말 압력튀김기가 국내에 수입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튀김옷이 있는 후라이드 치킨이 등장하게 됩니다. 치킨에 대해서 알기 위해서는 먼저 튀김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튀김에는 간단하게 습식과 건식이 있어요. 습식은 물반죽, 건식은 파우더를 묻혀 튀깁니다. 물반죽으로 만든 치킨을 ‘민무늬 치킨’이라 부르고, 건식으로 만든 치킨은 ‘엠보치킨’이라 부릅니다. 습식과 건식을 합쳐 볼륨감을 주는 방식은 KFC와 같은 크리스피 치킨이 되고요.
가장 먼저 등장한 것은 파우더를 묻혀 건식으로 튀겨낸 엠보치킨이예요. 보드람, 치킨뱅이, 둘둘치킨, 림스치킨처럼 호프집에서 파는 치킨(?)의 형태를 띠고 있죠. 림스 스타일이라고도 불리는데요. 1977년 등장한 한국 최초의 치킨 프랜차이즈인 림스치킨에서 시작했기 때문이예요.
엠보치킨은 작은 닭을 한방염지액에 담근 뒤, 파우더를 얇게 묻혀 촉촉하게 흡수시킨 다음에 압력 튀김기에서 튀겨냅니다. 그래서 닭이 작고, 독특한 한약 맛이 나는 것이 특징이죠.
4. 치킨에 양념이 배거늘 많은 이들이 감읍하여 그를 믿고 따르리라
엠보 치킨 이후에는 습식으로 튀겨낸 민무늬 치킨이 등장했어요. 1980년대 시장에서 파는 ‘닭전’에서 시작되었죠. 이후 치킨 1세대 브랜드로 불리는 페리카나(1981년), 맥시칸치킨(1985년), 처갓집 양념통닭(1988년), 멕시카나(1989년), 장모님치킨(1989년)가 민무늬 치킨으로 영업을 시작했어요.
민무늬치킨이 이렇게 유행할 수 있었던 데에는 먼저 1982년 프로야구 출범, 1988년 서울올림픽 등 80년대 스포츠 열풍의 덕이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양념치킨의 등장이 큰 역할을 했어요. 민무늬 치킨은 표면이 매끄러워 양념소스에 버무리기 좋았고, 염지 자체가 독특한 향미를 지닌 엠보치킨보다 양념에 적합했죠.
양념치킨은 프랜차이즈 등록 시기(1982)가 가장 빨랐던 페리카나가 자신이 원조임을 강조했었죠. 하지만 현재는 멕시칸 창립자인 윤종계씨가 양념치킨의 개발자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윤종계씨는 1985년 양념통닭 요리법을 개발해 ‘계성육계’라는 개인업체를 운영하고 있었고, 1986년부터 ‘맥시칸 양념통닭’으로 사업을 확대했어요.
이 맥시칸 치킨에서 생겨난 업체만 70여 개가 넘는다고 합니다. 대표적으로 ‘처갓집양념통닭’은 맥시칸 기계제작 공장장과 영업부장이 시작한 사업이죠.
5. BBQ 가로되 안방에서도 KFC 치킨을 허락하라 하더라
KFC, BBQ처럼 바삭한 튀김옷이 특징인 치킨을 크리스피 치킨, 업계 용어로는 ‘물결무늬 치킨’이라고 합니다. 크리스피 치킨을 만들기 위해서는 염지 닭에 튀김가루를 묻히고, 물반죽코팅(배터믹스)에 담갔다가 다시 튀김가루에 묻혀야돼요. 이때 좁은 통에서 튀김가루를 묻히면 닭이 서로 눌려 튀김옷의 컬이 잘 잡히지 않기 때문에, 큰 통에서 많은 양의 튀김가루를 담아 묻혀야 하죠.
이처럼 크리스피치킨은 원가가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KFC에서만 먹을 수 있는 고급 치킨이었어요. 1990년대 말이 되어서야 등장한 또래오래, BHC에서 크리스피치킨을 선보였는데요. 1995년 당시 BBQ의 컨셉은 ‘안방에서도 KFC 치킨을 즐길 수 있다’일 정도였죠.
원문: 사소한 것들의 역사
참고
- 정은정. (2014). 대한민국 치킨전. 따비.
- 대법원 1997. 2. 5. 선고 96마364 판결.
함께 읽으면 좋은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