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오브 인터레스트 (The Zone of Interest, 2023)
악의 평범성, 그리고 지옥과의 거리
지난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그동안 아카데미에서는 주목받지 못했던 크리스토퍼 놀란이 <오펜하이머>를 통해 드디어 작품상과 감독상을 수상하는 일종의 ‘대관식’으로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지금까지 꾸준히 화제와 논란이 되는 건 바로 <존 오브 인터레스트>로 장편국제영화상을 수상한 조나단 글레이저 감독의 수상소감이다. 유대인 영국감독인 조나단 글레이저가 홀로코스트에 관한 이 영화로 수상하며 현재 진행 중인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세력 하마스의 전쟁을 비판했기 때문이다.
이 전쟁으로 인해 희생된 무고한 이들을 언급하며 하마스는 물론 이스라엘 역시 비판한 이 수상소감은 대부분의 유대인들의 심기를 몹시 불편하게 했다. 특히 유대인들이 더 분노했던 이유는 ‘다른 것도 아니고 홀로코스트에 대한 영화로 수상하면서 이럴 수 있느냐’는 불만이었다. 이 논쟁은 유대인들 사이에서도 찬반 균열을 일으킬 정도로 논란이 되었고 현재도 진행 중이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역사와 여러 영화, 드라마 등을 통해 접할 수 있었던 홀로코스트에 관한 영화다. 하지만 기존 작품들과는 전혀 다른 시선을 담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기존 홀로코스트 영화들이 나치의 잔혹함과 악마성을 강조하기 위해 유대인들의 고통을 체험하고 들여다보는 피해자 중심의 작품이었다면, 이 작품은 철저하게 가해자들의 입장에서 아니 그들의 삶 자체에 집중하고 있다.
피해자가 존재하는 실제 역사나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면 사건을 묘사하는 것(감상하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고 불편한 것이 사실이다. 자극적인 측면을 강조해 관객의 호기심과 욕망을 더 이끌어낼 수는 있을지는 모르지만, 반드시 그 (고통받는) 장면이 필요했는가를 따진다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설령 필요하더라도 더 나은 다른 방법을 찾으려는 노력이 충분했는지 되묻고 싶은 경우도 많다. 이런 면에서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보여주지 않으므로써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교과서 같은 작품이다.
또한 근래 우리가 자주 접하게 되는 ‘악의 평범성’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악마 같은 행위를 저지르는 악인들이 모두 악마 같은 성품을 갖고 있고, 일상생활은 불가할 것만 같은 아주 특별한(불편한) 이들이 아닐까 싶지만, 실제로는 매우 평범한 이웃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개념이다.
이 영화는 바로 홀로코스트를 자행했던 독일군 장교 가족의 아주 평범한 일상을 묘사한다. 너무나도 단란해 보이는 가족. 군인으로서 맡은 바 일을 더 잘 해내기 위해 고민하고 연구하는 아버지와 가정을 꾸리고 집과 정원을 가꾸는 것에 정성인 어머니. 그리고 이들과 함께 행복한 일상을 누리고 있는 아이들까지. 이들 가족의 삶은 평범하고 행복해 보인다. 하지만 이들이 일상을 지내는 집은 바로 유대인 포로수용소와 담 하나를 두고 있을 뿐이다.
영화는 단 한 번도 담장 너머 아우슈비츠의 끔찍한 학살현장을 보여주지 않는다. 하지만 이 가족의 집이 등장하는 모든 장면에서 담장 너머 수용소의 소리들이 마치 생활 소음처럼 존재한다.
생활 소음이라는 표현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조나단 글레이저는 유대인들이 수용소에서 총을 맞고, 가스실에서 죽음을 맞는 순간 비명을 지르고, 불타 재가 되는 순간 새어 나오는 삶의 마지막 소리를 강물이 흐르고 나무 위에서 새가 지저귀고 마당에서 아이들이 뛰어노는 생활 소음들과 같은 레벨로 들려준다.
그리고 이 가족들에게는, 그저 다른 생활 소음과 유대인들의 고통의 비명소리가 다를 바 없다. 이 사실을 강조해서 묘사했다는 표현도 사실 적절하지는 않다. 왜냐하면 이들의 집과 아우슈비츠가 담 하나로 갈릴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는 게 영화적 설정이 아니라 실제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이 영화의 사운드는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그리고 영화는 철저하게 사운드를 재현한다. 늦은 밤 침대에서 잠을 청하는 아이들의 평범한 일상에 사람들의 비명 소리와 소각로가 가동 중인 잡음이 섞여 있다. 이 사운드는 24시간 밤낮을 가리지 않고 끔찍한 학살이 자행되었다는 사실을 아무런 시각 정도 없이도 극대화해 전달한다. 이는 시각적으로 자극적이었던 그 어떤 홀로코스트 영화보다도 더 고통스러운 경험이다.
아무 말도 못 하고 극장을 나오며 앞선 조나단 글레이저의 수상 소감을 다시금 떠올려 보게 됐다. 그리고 영화 속 루돌프 회스 가족의 집과 아우슈비츠의 거리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다.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었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라는 게 가장 잔인한 사실이라면,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다면 괜찮은 것일까? 과거가 아닌 지금도 우리 주변과 먼 곳에서는 여전히 끔찍한 전쟁과 학살이 존재하는데, 물리적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다면 이런 고통들은 그저 무시해도 괜찮은 걸까.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인간 존재에 대한 여전한 의문을 담은 동시에 과거를 통해 현재를 바라보게 만드는 힘이 있는 작품이었다.
원문: 아쉬타카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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