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A Wealth of Common Sense에 기고된 「The News is Making You Miserable」을 번역한 글입니다.
1.
최근 미국 미시간에서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현재 미국의 경제 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응답자 중 단 35%만이 훌륭하다(6%) 또는 좋다(29%)고 답한 반면 65%는 그리 좋지 않다(28%) 또는 나쁘다(37%)고 답했다.
하지만 요즘 들어 개인 재정 상황은 어떠냐는 물음에 많은 이들(61%)이 자신의 상황이 훌륭하다(9%) 또는 좋다(52%)고 답한 반면, 38%만이 그리 좋지 않다(25%) 또는 나쁘다(13%)고 답했다. 따라서 응답자들의 일반적인 심리는 “내 상황은 좋지만, 국가 경제는 그리 좋지 않다”라는 것이었다. 의구심을 자아내게 하는 결과다.
이렇게 감정이 상충하는 곳이 미시간만은 아니다. 갤럽의 설문조사에 의하면, 미국인들은 국가 전체가 나아가고 있는 방향보다 자기 상황에 대한 만족도가 5배 높았다.
요약하자면 ‘미국은 지옥을 향해 가고 있지만, 나의 모든 것은 장밋빛’이라는 태도다. 받아들이기에 기이한 태도다. 이런 종류의 생각을 보여주는 다른 사례도 있다.
‘미국의 교육 시스템은 우리 아이들에게 좋지 않지만, 내 아이의 교육은 잘 되고 있다’는 의미다. 새로운 현상은 아니지만, 많은 경우에 있어서 점점 더 안 좋아지는 느낌이다.
마찬가지로 도전적이었던 팬데믹 환경 내내 미국 가구들은 자신의 재정 상태가 좋다고 느꼈지만, 지역과 국가 경제에 대한 시각은 다르게 유지되었다.
2.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이러한 정서 중 일부는 정치적이다. 경제에 대해 공화당 지지자들은 공화당 대통령이 국가를 운영하고 있을 때 긍정적이고, 민주당 대통령일 때는 보다 부정적이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그 반대다. 하지만 분명히 팬데믹과 그 이후의 인플레이션이 일반 정서를 끌어내린 것은 맞다.
이어서 인간 본성이라는 요소가 있다. 사람들은 자신에 대해서는 보다 긍정적으로 생각할 때에도, 나머지 세계에 대한 시각은 다소 부정적으로 유지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사람들을 비참하게 만드는 가장 큰 요인은 뉴스라고 본다. 역사책을 읽어보면 세상은 항상 혼란스러웠다. 항상 문제가 있었다. 항상 끔찍한 사람들이 있었다. 달라진 점이라면, 이제 우리는 끊임없이 과거를 떠올린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몇 세기 전 사람들이 일생 동안 접했던 것보다 더 많은 뉴스를 단 하루 안에 접하고 있다. 신문에서 시작해서 라디오, 텔레비전까지. 우리는 지난 몇십 년 동안 인터넷, 소셜 미디어, 스마트폰을 통해 접하며 이런 과정을 가속화했다. 우리의 두뇌는 이렇게 많은 정보를 받아들이도록 설계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는 단순히 정보 과부하의 문제도 아니다. 우리가 보는 정보의 상당수가 부정적이라는 사실도 문제다. 과거에도 나쁜 일이 빠른 속도로 일어났다. 차이점이라면 우리 조상들은 나쁜 일에 대한 경고, 24시간 나오는 뉴스, 그리고 소셜 미디어 포스트로 넘쳐나는 세상에 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들은 더없이 무지했다. 우리는 더 이상 무지한 상태로 남아있기 불가능해졌다.
3.
온갖 부정적인 것들을 퍼뜨리는 언론사들과 소셜 미디어 플랫폼을 비난하고 싶지만, 그들은 다지 우리의 행동을 바탕으로 삼아 우리가 원하는 것을 제공하고 있을 뿐이다.최근 한 연구는 인터넷상에서 3.7억 건 이상의 이야기를 살펴보고, 부정적인 언어가 뉴스 소비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살펴보았다. 그 결과, 헤드라인이 부정적일수록 사람들이 이야기를 클릭할 가능성이 높았다. 무엇에 관한 이야기든 상관없었다.
이제 화를 내기 위해 이야기 전체를 읽을 필요도 없다. 헤드라인만 읽거나 스크린샷을 보기만 해도 된다. 부정적인 내용은 시선을 끈다. 『죽도록 즐기기』의 저자 닐 포스트먼은 정보 소비와 관련하여 무엇이 잘 팔리는지 썼다.
제가 과장된 표현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을 위해 ‘맥닐-레러 뉴스 쇼’의 편집장이자 공동 앵커인 로버트 맥닐의 텔레비전 뉴스에 대한 설명을 소개합니다.
“모든 것을 간결하게 하고 주의를 분산시키지 않는 대신, 다양성·참신함·액션·움직임을 통해 지속적으로 자극을 제공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한 번에 몇 초 이상 어떤 개념, 어떤 캐릭터, 어떤 문제에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야 합니다. 뉴스 쇼를 지배하는 가정은 한입에 쏙 들어가는 것이 최선입니다. 복잡함은 피해야 합니다. 뉘앙스는 필요 없고, 자격지심은 단순한 메시지를 방해하고, 시각적 자극은 사고의 대체물이며, 언어적 정확성은 시대착오적이라는 것입니다.
1985년에 나온 책이라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그때 이후로 상황은 더 악화되기만 했다. 다만 슬픈 것은, 일반적으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상황이 나아졌다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의 종으로서 수많은 진보를 이뤄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장기적으로 이루어진 진보는 클릭을 이끌어낼 만한 헤드라인이 아니다. 사람들은 매일 밤 집에서 안전하게 지내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보다 자동차 사고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읽으려고 한다. 『주목하지 않을 권리』에서 저자 팀 우는 관심을 끌기 위한 ‘바닥치기 경쟁’에 대해 이야기한다.
진정으로 영향력이 없는 의사소통은 무시하거나 ‘듣지 않는 법’을 배우는 의사소통뿐이다. 자크 엘룰은 그렇기 때문에 농촌 거주자나 도시 빈민과 같은 단절된 사람들만이 진정으로 선전에 면역이 있는 반면, 모든 것을 읽고 의견을 주장하며 스스로 선전에 면역되었다고 생각하는 지식인이야말로 사실 쉽게 조종당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모든 것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고 하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나쁜 일에 대한 뉴스만을 강박적으로 확인하려 하기 때문에 조종하기 제일 쉬운 사람들이 된다.
인류의 모든 문제를 무시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인터넷은 모든 나쁜 일들을 더 쉽게 볼 수 있도록 만들어주지만, 동시에 불우한 이웃을 돕는 일도 더 편리하게 만들어 준다. 하지만 계속해서 뉴스를 본다고 해서 아무것도 해결되지는 않는다. 단지 세상의 상태에 대해서 더 부정적이고 더 우울해질 뿐이다.
밖으로 나가자. 운동을 하자. 스포츠를 즐기자.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자. 책을 읽자. 이러한 활동이 뉴스를 소비하는 것보다 더 좋다.
원문: 피우스의 책도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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