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령, 직업을 불문하고 공부를 하거나 일을 하면서 누구에게나 가장 골치 아픈 것이 있다. 바로 시간의 압박이다.
주위에서는 잘 진행되어가고 있는지를 쉼 없이 물어온다. 지금 이대로는 뭔가 곤란하다고 스스로도 느끼고, 그래서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정작 그 마음처럼 꾸준히 해 나간다는 것이 정말 쉽지 않다. 주위의 환경과 스스로의 다짐이 있으면 조금이라도 더 열심히 해볼 법 한데,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우리는 오늘도 해야 할 일을 자꾸만 미루고 있다.
사실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살아 원하는 바를 이루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계획대로만 된다면 다이어트는 무조건 성공하게 되어 있다. 규칙적으로 정해진 시간 계획에 따라 체계적으로 공부한다면 원하는 시험에 합격할 수 있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계속 미룬다.
기름진 음식은 오늘까지만 먹고 내일부터는 안 먹으면 돼.
오늘 정도는 공부를 쉬어줘야 해.
이렇게 온갖 구실이나 느끼기 마련이다. 차라리 ‘내가 어설픈 변명이나 늘어놓는구나.’라고 죄책감이나 느끼면 다행이다. 많은 경우에 우리는 ‘그냥’ 미룬다. 왜 미루는지도 모른다. 그리고는 나중에 결국 후회하고 마는 것이 대부분의 모습이다. 미루지만 않으면 무엇이든 할 것 같은데, 왜 잘 안 될까? 미루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의 게으름에 대해 스스로를 탓하는 이유
우리가 미루기에 자꾸만 익숙해지는 것은 기본적으로 심리학에서의 자기통제(self-control)와 관련이 있다. 자기통제는 현재 내 목표(goal)와 내 선호(preference)가 일치하지 않는 상황과 관련이 있다.
만약 목표와 선호가 일치한다면 자기통제의 문제에 우리가 관심을 가질 필요는 없다. 오늘 하루 동안은 마음 편히 놀고 싶은데(목표) 내가 좋아하는 게임이 눈앞에 있다면(선호), 그냥 게임을 하며 놀면 된다(목표와 선호의 일치).
자기통제가 중요해지는 시점은 내게 주어진 목표와 당장의 선호가 일치하지 않을 때다. 다이어트 중이라 군것질을 하지 않아야 하는데(목표) 친구가 내게 초콜릿을 나눠주어 그것을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선호) 이는 목표와 선호가 불일치하는 상황, 즉 자기통제력이 필요한 시점이 되는 것이다.
‘해야 할 것’과 ‘하고 싶은 것’ 가운데 무엇을 우선시할 것인가? 자기통제력이 우수하다면 우리는 ‘하고 싶은 것’을 억누르고 ‘해야 할 것’을 선택할 수 있다. 반면 자기통제력이 부족하다면 우리는 단지 ‘하고 싶은 것’에 골몰하게 될 것이다. 결국 해야 할 것을 미루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다름 아닌 자기통제력의 향상이다.
자기통제력을 키운다는 것은 하루아침에 되는 일이 아니다. 오랜 시간 동안 반복적인 훈련이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는 자기통제력이 떨어지고 해야 할 일을 자꾸 미루는 상황에 대해, 자기 자신을 그 모든 일의 원흉(?)으로 지목하는 습관이 있다(심리학에서는 이를 ‘내부 귀인’이라고 한다). 이것에 대해 왜 그러느냐고 ‘질타’를 하기도 뭣한 것이, 게으름에 대해 스스로의 탓으로 돌려버리는 것이 차라리 마음 편하기 때문이다.
운이나 환경 등 외부 요인으로 사태의 원인을 돌려버리면(외부 귀인), 무언가를 자꾸 미루는 행위는 내 스스로가 노력으로 어떻게 극복해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외부 요인이 개선되기를 그저 하염없이 기다리는 것밖에는 할 수 없음을 자인하는 꼴이기 때문이다(통제감 상실).
즉 게으른 것은 내가 열심히만 한다면 극복될 수 있는 것이라고 믿으며, 자신의 통제 하에 두고 싶은 심리가 우리로 하여금 ‘죄책감’을 느끼게끔 만든다. 자기통제력에 대한 우리의 접근도 이와 마찬가지다. 우리는 이렇게 믿고 있다.
자기통제력을 얻기 위해 내 스스로가 열심히 노력만 한다면, 자기통제력을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고 더 이상 해야 할 일을 미루지 않게 될 것이다.
그러나 사실 자기통제력은 스스로의 노력만으로 획득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자기통제력이 부족했다며, 스스로가 한심해서 자꾸 할 일을 미루고만 있다며 자책하기 전에 ‘도대체 어떤 상황이 나로 하여금 게으름을 피우도록 조장하는가?’에 대해 반문해볼 필요가 있다.
스스로 ‘마감 시한’을 정할 경우, 일의 능률이 올라간다
심리학자 Ariely와 Wertenbroch는 자기-부과 마감시한(Self-imposing Deadline)이 미루기에 대처하는 매우 효과적인 전략이 될 수 있음을 제안한다. 자기-부과 마감시한이란 내가 해야 할 일에 대해 외부자가 마감 시한을 부과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마감시한을 설정하는 것을 일컫는다. 가령 대학 강의에서 담당 교수가 리포트 제출 마감 시한을 일방적으로 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 개개인으로 하여금 스스로가 마감 시한을 정하도록 지시하는 것이다.
Ariely와 Wertenbroch의 실험에서는 담당 교수가 강제적으로 마감 시한을 정해주었을 때(통제 조건)와, 학생들 스스로가 각각의 마감 시한을 정하도록 했을 때(실험 조건)의 성적을 비교했다. 그 결과, 자기-부과 마감 시한 조건의 학생들이 통제 조건의 학생들에 비해 더 높은 성적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사실로부터 추론할 수 있는 것은 기존 연구에서 수차례 지적되어 왔듯 자기통제력이 업무 이행 및 성과 향상에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 마감 시한을 부과하는 등 ‘자기통제력’을 발휘하지 않을 수 없도록 환경을 바꿔버리면, 혼자 노력해도 얻어지지 않던 자기통제력이 따라올 수 있다.
그러나 추가로 이어진 실험에서는 자기-부과 마감시한 전략에도 한계가 있음이 드러났다. 참여자들은 공통적으로 100여 개의 문법 오류, 오타가 담긴 텍스트 3장을 교정해야 한다는 과제를 부여받았다. 실험자들은 구체적으로 아래와 같은 조건으로 분류되었다.
- 실험 진행자들이 일방적으로 과제 제출 마감 시한을 정해주되 총 3주에 걸쳐, 1주일에 1장씩 제출하도록 규칙적으로 마감 기한을 부여했다(‘Evenly spaced deadline’ 조건).
- 다른 한 조건에서는 앞선 실험과 마찬가지로 실험자들 스스로가 과제 마감 시한(3주 이내)을 정해보도록 했다(‘Self-imposing Deadline’ 조건).
- 마지막 조건에서는 단지 마감 시한이 3주 후라는 지시만을 들려줬다(‘End deadline’ 조건).
모든 참여자들은 공통적으로 문법 오류, 오타를 정확히 잡아낼수록 더 높은 실험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점, 마감 시한을 초과하면 보상이 줄어들게 된다는 점에 대한 안내를 들었다. 그리고 분석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모든 측면에서 자기통제력이 높아진 조건(‘Self-imposing Deadline’)은 보통 조건(‘End deadline’)보다는 더 나은 성과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자기통제력이 높아진 조건에 비해(‘Self-imposing Deadline’), 비록 자기통제력은 낮아도 마감 시한을 규칙적으로 부과한 조건(‘Evenly spaced deadline’)이 더 나은 성과를 나타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이 있다. ‘Self-imposing Deadline’ 조건의 실험 참여자들 가운데에서도 마감 시한을 ‘Evenly spaced deadline’ 조건과 유사하게 부과한 이들이 그렇지 않았던 이들에 비해 더 높은 성과를 냈다는 사실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의지력’이나 ‘자기통제력’ 만으로는 게으름에 대처하거나 더 나은 성과를 만들어내는 데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자기통제력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자기통제력이 제대로 발휘될 수 있는 효율적인 외부 전략을 찾아내는 것이다.
- 마감은 가급적 직접 정하자.
- 목표를 잘게 쪼개고, 여러 번의 중간 마감을 정하자.
원문: 허용회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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