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 어떻게 관리하시나요?
맛있는 것 먹기, 가족과 의논하기, 늦잠 자기, 문제 해결하기, 기도하기, 잊어버리려 노력하기, 사우나 가기, 쇼핑하기, 영화 보기, 운동하기, 고민 상담 요청하기, 정면돌파하기, 정신승리하기, 현실 부정하기 등 여러분만의 다양한 스트레스 해소 방법이 있으리라 생각된다.
그런데 심리학자들은 사람들의 스트레스 해소 방법들을 몇 가지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일명 스트레스 대처 전략(방략, stress coping strategy)이라고 불리는 개념이다.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대하는 방식은 결국 스트레스의 원인(stressor) 앞에서 어떤 포지션을 취하느냐에 달렸다. 날 힘들게 하는 상사, 잘 풀리지 않는 업무, 가족과의 갈등, 외모에 대한 고민 등등 여러 스트레스원 앞에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포지션은 딱 두 가지뿐이다.
- 정면돌파
- 도망치기
정면돌파는 힘이 많이 든다.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도 있고, 스트레스의 원인이 강력하다면(고시류 시험 부담, 40kg 감량하기 등) 문제 해결을 위해 굉장히 많은 노력과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하지만 정면돌파를 성공하게 되면 얻게 되는 보상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값지다. 금전적 보상, 명예는 물론이고 단단한 자존감과 자아실현, 성숙의 결정적 계기까지 제공한다.
도망치기는 상대적으로 손쉽다. 맛있는 음식과 흥미진진한 여가 활동 등으로 심신의 안정을 도모하며 빠르게 스트레스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하지만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평생 스트레스원으로부터 거리를 둘 자신이 없는 한 지속적으로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외면했을 때의 안도감은 잠시뿐, 장기적으로 볼 때 어쩌면 정면돌파 선택지보다 더 큰 ‘누적적 고통’을 겪게 될 수 있다.
정면돌파와 도망치기, 무엇을 택할까?
예상했겠지만 심리학자들은 정면돌파를 보다 건강한 스트레스 해소 방법으로 간주하고 있다. 정면돌파 방법은 심리학에서 적극적/직접적 대처 방법의 일환으로 여겨지며 ‘문제 해결 대처’라는 표현으로 많이 다루어지고 있다.
그런데 여러분은 알고 있는가? 심리학자들이 바람직하게 여기는 정면돌파 방법이 한 가지 더 있다는 것을 말이다.
- 가족과 의논하기
- 고민상담 요청하기
- 직접 도와달라고 말하기
- 지인의 조언 듣기
흥미롭게도 심리학자들은 위와 같은 ‘사회적 지지 추구 대처’ 또한 적극적/직접적 대처이자 스트레스에 대한 정면돌파 해결법으로 여기고 있다. 사회적 지지 추구 대처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빌려 직접적으로 스트레스원을 제거하려는 일련의 노력을 가리킨다.
하지만 안타까운 점은 사회적 지지 추구 대처가 건강한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바람직한 수단임에도, 어쩌면 스스로 모든 것을 짊어져야만 하는 ‘문제 해결 대처’보다도 더 효율적이고 빠른 길일 수도 있음에도, 외면받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바람직하지 못한 것으로 간주되는 ‘도망치기’ 방법보다도 더 말이다.
제가 이런 고민이 있는데, 같이 해결해 주실 수 없을까요?
솔직히 요즘 힘이 많이 듭니다. 도와주세요.
여러분은 다른 사람에게 자주 도움을 요청하는가? 솔직하게 현재의 어려운 상황을 ‘오픈’하고 평소 알던 지인에게 도와달라고 부탁할 수 있는가?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리 주변에는 다른 사람의 도움을 통해 쉽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음에도 주저하며 혼자서만 모든 것을 끙끙 짊어지려는 이들이 많이 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 개인주의가 만연한, ‘각자도생’을 장려하는 사회적 분위기
- 쉽사리 포기할 수 없는 체면과 자존심
- 도움을 요청할 때의 어색함
- 그리고 무엇보다, 나의 어려움을 ‘오픈’하고 도움을 ‘구걸’하는 행위가 마치 타인에게 약점 잡히는 구실이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소위 ‘직장생활의 현실적인 명언’이라는 명목으로 자주 돌아다니는 표현 중에는 이런 게 있다.
- 슬픔을 나누면 약점이 된다.
- 나의 치부를 드러내면 사람들은 이용하려 들 것이다.
이처럼 속칭 ‘정치질’이 만연하고 공적인 관계가 주가 되는 직장일수록 더욱 자신의 ‘약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어리석은 행동인 것처럼 경계하는 문화가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약점을 노출하는 것만으로도 잠재적 리스크가 될지 모르는데, 하물며 그 와중에 상대방에게 도와달라고 한다? 신세 진 일을 빌미로 나에게 어떤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게 될 줄 알고? 그래서 사람들은 솔직하게 도움을 요청하기를 꺼린다.
물론 어느 정도는 일리 있다. 분명 누군가는 호시탐탐 여러분의 약점을 들추고 싶어 할 것이다. 또 누군가는 여러분에게 베푼 호의를 구실로 삼아 과한 요구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가능성을 우려하여 자신의 상황을 감추고 ‘문제 해결 대처’ 일변도, 즉 혼자서만 끙끙 앓는 것이 바람직한가 하면 심리학적으로 결코 그렇지 않다. 세상에는 혼자서 대처할 수 없는 문제가 더 많다. 타인의 도움 없이 혼자 해결하려다 정신적으로 병나기 십상이다.
그래서 남에게 도통 도와달라고 말하지 않는 당신에게 아래와 같은 질문을 던지고 싶다.
약점 잡힌다고? 애초에 그것을 ‘약점’이라고 규정한 이는 누구인가?
상대는 약점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아니, 약점이라고 생각해도 상관없다. 왜냐면 약점을 규정하는 것도, 이를 통제하는 것도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여러분이 양심에 비춰 부끄럽지 않은 행동을 하지 않는 이상, 그것이 집안 배경이든 성격이든 외모든, 능력 부족이든 다른 그 무엇이든, 여러분이 약점으로 여기지 않는다면 그것은 더 이상 약점으로 기능할 수 없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사회적 지지 추구 대처는 약점을 노출하는 행위라기보다는 오히려 용기 있는 행위로 보아야 마땅하지 않나 싶다. 다른 사람에게 상황을 오픈하고 스트레스에 대한 해결책을 구하는 것은 결코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다. 오히려 심리학적으로는 정면돌파 방법으로서, 스트레스의 원인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다.
때로 나에게 정말 호의적인 사람을 만났다면, 능력이 출중한 사람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같은 정면돌파 방법인 ‘문제 해결 대처’보다 더 쉽고 빠르게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심리학 연구 결과에 따르면 기분 전환에 집중하거나, 문제를 회피/무시하는 사람들보다 다른 사람의 도움을 빌려서라도 스트레스의 근본 해결에 집중하는 사람들이 더 심리적으로 건강하고 안정되어 있음이 보고되고 있다.
그러니 지금보다는 좀 더 솔직하게 여러분의 상황을 드러내고 도움을 구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혼자 짊어지려다 일을 더 그르치는 것보다는 더 현명한 선택이 될 수 있다.
다만 여러분이 그랬듯, 다른 사람들 또한 혼자 해결하기 벅찬 문제를 겪을 수 있으며, 얼마든지 여러분의 도움을 필요로 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하면 된다. 내게 사회적 지지가 필요하다면, 상대방에게도 사회적 지지가 긴요할 수 있다(이렇게 보면 ‘사회적 지지 추구 대처’란 다른 대처 방법들과 다르게 상부상조할 수 있는, 두 사람 이상을 동시에 이롭게 하는 특별한 장점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 추가: 여러분의 처지를 이용하려 드는 사람이 나타난다면? 인생에서 계속 마주쳐봐야 쓸데없다. 이번 기회를 통해 그런 사람 거르게 되어 잘 되었다고 생각하면 그만이다.
원문: 허용회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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