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신년 계획입니까, 올해 계획은 어디로 갔나요?
시작부터 시비(?) 걸어서 죄송하다. 여러분의 연말연초 풍경은 어떤가? 많은 사람들이 다가오는 한 해만큼은 계획했던 것들을 다 실천하며 열심히 한번 살아보자고 다짐한다. 조금 더 부지런한 사람들은 플래너·다이어리를 산다. 금연, 다이어트, 자격증 따기, 승진하기, 연애·결혼하기, 취업하기 등등 큼직한 목표를 세우고, 조금 더 시간이 있다면 세부 행동 계획까지 마련해 본다.
문제는 여러분도 알고 나도 아는 그것이다. ‘실천의 부재’. 사실 계획 탓을 할 필요는 전혀 없다. 우리가 세우는 계획들은 모두 훌륭하기 이를 데 없다. 계획이 예언하는 대로 돈도 많이 벌고, 건강도 챙기고, 사람들과 더 자주 어울리며,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으리라. 하지만 작년 말에 스스로에게 던졌던 질문을 떠올려 보자.
내 2023년 계획이 뭐였지? 이룬 게… 딱히 없는데?
그렇다. 우리는 작년의 계획도 그냥 날려 먹었다. 실천은커녕 무슨 목표를 세웠었는지 기억도 안 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만약 하던 대로 한다면 올해도, 내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거창한 신년 계획을 세우고 꿈에 부풀어 있는 것도 잠시, 연말이 다가오면 어느새 내가 뭘 계획했었는지, 시도를 하기나 했는지 허탈해하는 일이 반복될 것이다.
이번에는 달라져 보자. 맘에 드는 신년 계획을 세우고 이번에는 정말 진짜, 제대로 부지런히 실천을 해보자. 운동도 열심히 하고, 담배나 술은 좀 줄이자. 남는 시간에 자기 계발도 해보고, 독서나 음악감상같이 고상한 취미도 누려보자. 사랑하는 가족들과 더 소중한 시간을 보내며 추억도 만들어 보자.
100% 성공하는 신년 계획을 위해, 심리학자들이 전하는 비법을 소개한다.
보상 계획을 함께 수립하라
여러분이 학업 계획, 업무계획 등 계획을 세울 때 가장 흔히 범하는 실수가 무엇인지 아는가? 그것은 바로 해야 할 일만 생각하지, 보상 계획을 전혀 수립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보상 계획이 빠진 신년 계획은 그저 스스로에게 잔소리하고, 닦달하고, 몰아붙이는 것밖에는 안 된다.
- 술/담배 좀 줄여보자 → ‘나’야, 술/담배 좀 줄여라, 응?
- 한 달에 한 번 책을 읽자 → ‘나’님아, 가끔은 책도 읽자
- 올해에는 부업을 시작하자 → ‘나’야, 너 이대로 만족해? 부자 되고 싶지 않아?
- 헬스장 등록하자 → 지금 네 몸 꼬락서니를 봐라 좀
- OO를 배우자
- OO를 다녀 보자
- OO에 도전하자……
곰곰이 생각해 보자. 여러분이 신나게 적어 놓은 계획들을 죽 읽고 실천해야 하는, 미래의 여러분 자신의 심경을 말이다. 얼마나 답답하고 막막할까?
계획을 실천하고 나면 돌아오는 보상이 뭔지 명확히 설정되어 있지가 않다. 그냥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온갖 잔소리만 가득할 뿐. 어느 누가 질리지 않을 수 있을까. 이렇게 되면 현재의 ‘나’와 미래의 ‘나’ 사이의 갈등만 깊어질 뿐이다
(이를 심리학적으로 표현하면 현재-미래 자기연속성self-continuity 이 낮아졌다, 라고 한다. 자기연속성이란 과거, 혹은 미래의 나 자신을 얼마나 가깝고 친하게 인식하는지를 나타내는 개념이다).
미래의 ‘나’가 열심히 신년 계획을 위해 노력하길 바라는가? 그렇다면 여러분은 계획 중간중간에 적절한 보상을 제시해야 한다. 과업을 세팅하고, 세부 달성 미션을 설정했다면, 다음으로 각 미션을 마쳤을 때 자신에게 무슨 보상을 줄지 적어놔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점, ‘보상도 엄연히 계획의 일부’라는 점을 잊지 않아야 한다. 열심히 노력한 자신에게 수고했다고,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며 계획대로 보상을 제공해야 한다. 스스로가 계획을 존중하지 않으면, 미래의 ‘나’ 자신도 그 계획을 존중하지 않는다.
보상을 어떻게 배치하죠?
미션과 보상 간에는 밸런싱이 맞아야 한다. 예를 들어 ‘다이어트하기’가 신년 목표이고, 1단계 세부 미션으로 ‘3일간 간식 끊기’를 달성했다고 해 보자. 미션을 완수한 자신이 너무 대견하다며 갑자기 1개월 해외여행을 선물해 버린다면? 아니, 처음부터 너무 좋은 걸 선물해 버리면 나중에 10단계 미션 달성 시에는 도대체 스스로에게 뭘 주려고 그러나?
그러므로 해야 할 일과 마찬가지로, 보상 계획 또한 점진적으로 세팅하는 지혜가 요구된다. 각 미션별 소요되는 노력의 양을 가늠하고, 그에 걸맞은 보상을 배치하는 것이 현명하다.
한 가지 더. 자신의 현재 여건에 맞는 보상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사회초년생이고 월급도 적은데 갑자기 명품 시계와 가방을 넣어놓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지금 당장 쉽게 마련할 수 있는 보상부터, 조금만 노력하면 준비할 수 있는 보상까지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궁리해 보자.
근데 자신에게 뭘 줘야 할지 모르겠어요
보상 계획도 같이 세워보자, 라고 결심했다면 앞으로 한 해 동안 여러분 자신에게 선물할 보상의 종류들을 목록으로 작성해 보자. 그런데 아마 몇 줄 쓰다가 막힐 것이다. 한우 먹으러 가기, 갖고 싶던 전자기기 구입하기, 국내여행 다녀오기 등 처음에는 금방 쓰지만 신년 계획에 꽉꽉 채울 만큼의 보상 목록을 짜내는 일은 마음처럼 쉽지 않을 것이다. 왜일까?
평소 자신에게 뭘 좋아하는지 물어볼 생각을 안 했으니 당연하다. 우리는 놀라울 정도로 자신의 욕망에 무지하다. 고기도 먹어본 자가 그 맛을 안다고, 어떤 보상이 가치 있게 느껴지려면 충분히 먼저 경험해 보고 이를 자신의 욕망으로 발전시키는 과정이 필요하다.
우리가 아이를 다룰 때에도 마찬가지이지 않나. 이거 좋아하니? 아니면 이게 좋니? 하면서 이것저것 제시하고 체험시켜 보면서 그 아이의 욕망을 발견하려 하지 않던가. 똑같은 원리다. 여러분 자신에게도 그렇게 해야 한다.
때문에 보상 계획·목록을 세운다 함은 곧, 자기 탐색과 성찰의 과정이기도 하다. 여러분의 숨겨진 욕망들을 발견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된다.
마치며
필자가 강연에서 이 ‘보상 계획’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나면 으레 따라오는 청중들의 질문이 있다.
‘보상’을 받아도 되는 걸까요? 자신에게 보상을 주자니 너무 일찍 샴페인을 터뜨리는 것 같아 죄책감이 들어요. 의지, 정신력의 문제 같아요.
이에 대해 필자는 다음과 같이 답변한다. 의지와 정신력은 허상이라고. 인간은 지극히 자극에 따라 움직이는 동물이라고 말이다(이 점을 깊게 파고들어 한 시대를 풍미했던 심리학자가 바로 스키너다. 행동주의 심리학, 스키너 상자. 어쩌면 들어봤을지도 모르겠다).
따라서 의지와 정신력을 믿는 대신 우리는 자신에게 아낌없이 당근을 내 걸어야 한다. 먹고 싶지? 갖고 싶지? 스스로에게 유혹하면서 움직이도록 만들어야 자신을 ‘길들이기’ 수월하다.
그렇게 외적 보상을 통해 목표를 이뤄 나가다 보면 때가 올 것이다. 그 일을 해 나가는 과정에서 느껴지는 재미가 곧 보상이 되는 순간이 말이다. 이른바 자기결정성 이론에서 주장하는 내적 동기의 발현이다. 하지만 어떤 일이든 처음부터 자발적인 내적 동기를 갖긴 어렵다.
시작은 ‘당근’으로, 끝은 ‘자아실현’으로, 원래 계획이란 건 그렇게 끌고 가는 거다.
원문: 허용회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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