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크림
우유, 달걀, 향료, 설탕 따위를 넣어 크림 상태로 얼린 것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시작하기 전에
날씨가 많이 더워졌습니다. 부쩍 땀 흘리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땀을 흘리고 나면 달달하고 시원한 것이 떠오르는데요. 바로 아이스크림이 제격이죠.
저의 최애 아이스크림은 구슬아이스크림의 바나나스플릿입니다. 놀이동산에서의 행복한 기억과 겹쳐져서일까요? 아니면 유원지에서만 판매해서 평소에 자주 먹지 못하기 때문일까요? 이젠 코엑스에서 대용량으로 살 수 있다고 하니 조만간 방문해 봐야겠습니다.
아이스크림의 역사를 알아보기 전에 알아두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바로 우유가 들어가야 아이스크림으로 인정된다는 것인데요. 따라서 단순 얼음과자와 같은 내용은 최대한 배제했습니다. 다음에 얼음의 역사를 다루게 된다면 그때 해당 내용을 다뤄볼게요.
제가 아이스크림의 역사에서 얻은 교훈은 ‘혁신은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니다’ 입니다. 콘을 원뿔모양으로 만드는 것, 음료수에 막대를 끼워 얼린 워터아이스, 막대기를 꽂아 아이스크림 바를 완성시킨 버트의 사례들이 그렇죠.
1. 최초의 아이스크림
최초의 아이스크림은 중국 당나라에서 등장합니다. 이 아이스크림은 소나 염소 또는 물소의 젖을 발효시킨 뒤 곡물가루와 장뇌*를 넣고 끓였고, 이 혼합물을 얼음 구덩이 안에 넣어서 얼려서 만들었죠.
중세 시기 아랍인들은 샤르바트(Sharbat)라는 차가운 음료를 마셨습니다. 이 샤르바트는 이탈리아로 건너가 얼음 또는 눈과 설탕, 과일즙을 섞어서 만든 디저트, 소르베토(Sorbetto)로 발전합니다.
소르베토에 아이스크림인 조건인 우유가 들어가게 되는 시점은 안토니오 라티니(Antonio Latini)가 『현대의 집사』라는 책에서 우유를 넣은 소르베토를 소개하면서부터입니다. 그는 레몬, 딸기, 초콜릿, 솔방울 등을 더해 맛을 더하기도 했죠.
- 장뇌 : 물파스 등에 함유되는, 특유한 싸한 냄새를 내는 녹나무에서 추출할 수 있는 천연수지물질
2. 기술의 발달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설탕과 크림, 향미료를 용기에 담아 소금과 얼음을 채운 통에 넣습니다. 그런 다음 용기 안의 내용물을 몇 시간 동안 쉬지 않고 저어줍니다.
이렇게 노동집약적인 생산 방식은 기계의 발전으로 해결되었죠. 1843년 낸시 존슨(Nancy Johnson)이 핸드 크랭크가 달려있어 손잡이 몇 번 돌려주면 자동으로 크림을 저어주는 아이스크림 제조기를 만들어 냈거든요.
그로부터 10년 뒤에는 제이컵 푸셀(Jacb Fussell)이 최초의 아이스크림 공장을 세웠습니다. 이때부터 대량생산을 통해 가격을 낮춰 많은 사람들이 아이스크림을 즐길 수 있게 되었죠.
그리고 1870년 독일의 과학자 카를 파울 고트프리트 폰 린데(Carl Paul Gottfried von Linde)가 기계적 냉동기술을 개발했습니다. 1888년에는 최초의 냉동시설을 갖춘 철도 차량이 등장해 아이스크림을 미국 전역으로 운송했죠. 1920년에는 자동 아이스크림 포장기기가 등장합니다.
3. 소비 공간의 변화, 사랑방에서 개인주의로
A. 카페
1686년 파리에는 르 포로코프(Le Procope)라는 카페가 열렸습니다. 이 카페는 문을 연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폴레옹, 볼테르, 빅토르 위고, 발자크, 벤저민 프랭클린 등 유명한 문학가와 정치가가 자주 찾는 명소가 되었죠. 이곳에는 커피, 다과와 얼음과자를 판매했어요.
B. 소다 파운틴
19세기 후반 미국에서 아이스크림은 주로 약국에서 판매했습니다. 소다 파운틴(Soda Fountain)이라는 장치가 약국에 설치되어 소다수와 아이스크림을 섞은 ‘아이스크림 소다’를 판매했기 때문이죠. 약국에서 판매가 된 이유는 소다수에 치유 효과가 있다고 여겨졌기 때문이에요.
1920년 금주법이 발효되자 소다파운틴의 인기가 더 높아졌습니다. 술집을 운영하던 사람들, 심지어는 앤하이저부시(Anheuser-Busch)와 같은 맥주 회사도 아이스크림 제조 및 판매로 업종을 바꾸었죠. 1933년 금주법이 폐지되기 전까지 소다파운틴은 미국 전역에서 볼 수 있었어요.
C. 찾아오는 서비스
19세기 중반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웠던 이탈리아에서는 많은 사람이 다른 나라로 이주했습니다. 이들 중 일부는 생계를 위해 아이스크림을 만들어 팔았습니다. 이들이 파는 아이스크림을 호키포키(hokey pokey)라고 불렀죠. 호키포키 장수 에드먼드 포르테(Edmund Forte)는 노점 장사로 크게 성공하고 ‘포르테 앤드 선스’라는 아이스크림 공장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최초로 아이스크림 바를 만든 해리 버트(Harry B. Burt)는 미국에서 굿 유머(Good Humor)라는 회사를 설립하고 냉동고가 장착된 트럭을 몰고다니면서 아이스크림을 판매하는 전략을 구사했습니다. 트럭에 종을 달아 아이스크림 장수가 왔다는 것을 알리고, 아이스크림 판매원 유니폼으로 흰색 유니폼에 빳빳한 모자를 채택해서 깨끗하고 순수한 이미지를 부각시켰죠.
D. 마트에서 사다먹는 아이스크림
1950년대가 되면 사람들은 아이스크림 장수에게서 아이스크림을 사는 것보다는 마트에서 포장된 것을 사먹는 걸 선호하게 됩니다. 2가지 기술적 변화가 이유였는데요. 첫째는 가정용 냉장고가 보편화되면서 냉동실에 아이스크림을 보관할 수 있게 된 것이었죠. 두 번째 이유는 자동차의 보편화로 사람들이 교외에 살면서 자동차를 타고 장을 보러 다니는 라이프스타일로 바뀌게 된 것이었는데요.
이 라이프스타일에 발맞추어 드라이브스루가 되는 패스트푸드점이 부상하게 되었고, 반대로 소다파운틴의 인기는 크게 떨어졌습니다. 1976년에는 굿유머 아이스크림 트럭까지 사라졌죠.
4. 신제품 탄생의 순간들
A. 아이스크림 소다
소다 파운틴 인기의 주역이었던 ‘아이스크림 소다’는 19세기 후반에 등장한 아이템입니다. 발명자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한데요. 유력한 후보 중 한명은 로버트 그린(Robert Green)입니다.
그린은 1874년 필라델피아의 프랭클린 연구소 설립 50주년 기념 축제 때 소다수를 팔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음료의 맛을 낼 때 쓰던 크림이 동나면서, 아이스크림을 소다수에 넣어 판매하면서 탄생했다는 것이죠. 또 다른 설에는 디트로이트의 프레드 샌더스(Fred Sanders)가 매장에 있는 크림이 모두 상하자 소다수에 아이스크림을 넣으면서 만들었다고도 합니다.
B. 아이스크림 콘
1903년 뉴욕 거리에서 아이스크림을 팔던 이탈로 마르키오니(Italo Marchiony)는 컵처럼 생긴 아이스크림 콘의 특허를 냅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원뿔모양의 아이스크림 콘은 아니였죠.
아이스크림 콘이 제대로 등장한 것은 1904년 세인트루이스 만국박람회에서 입니다. 박람회장에는 어니스트 함위(Ernest Hamwi)가 서아시아 지역의 와플인 잘라비아를 팔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장사가 잘 되지 않았죠. 고민하던 함위는 근처 아이스크림 노점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꼬깔 모양의 와플 위에 아이스크림을 얹인 음식을 판매하기 시작합니다. 아이스크림 콘이 인기를 얻자 함위는 코르뉴코피아(Cornucopia Waffle Company) 와플 컴퍼니를 세워 본격적으로 판매하게 되죠.
사실 옛날부터 콘은 있었습니다. 일찍이 13세기 프랑스에서 웨이퍼(wafer)가 등장했는데요, 이 웨이퍼를 납작하게 구운 뒤 원통이나 원뿔 형태로 말기도 했죠. 이렇게 만들어진 콘은 주로 고급스러운 디저트를 장식할 때 사용되었습니다.
C. 아이스크림 바
아이스크림 바는 1922년에 출시된 에스키모파이(skimo Pie)로부터 시작됩니다. 에스키모파이는 바닐라 아이스크림에 밀크 초콜릿을 입힌 제품이었어요. 아이스크림 가게 주인이었던 크리스천 넬슨Christian Nelson 이 아이스크림과 초콜릿 캔디바 가운데 무엇을 살지 고민하는 손님을 보고 영감을 얻었다고 하죠.
에스키모파이는 초콜릿을 입힌 아이스크림으로 1922년 특허도 받았지만, 이후에는 새로운 발상이라고 보기 힘들다는 이유로 특허가 취소됩니다. 사실 특허 취소가 무색하게 에스키모파이는 엄청난 인기를 얻었습니다. 혼자 초콜릿 시장을 먹여 살렸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죠.
당시만 해도 에스키모파이는 완전한 아이스크림바는 아니었습니다. 바 형태이긴 했지만, 막대기가 꽂혀있지 않아서 손으로 들고 먹어야 했거든요. 아이스바에 막대를 꽂는 아이디어는 해리 버트(Harry B. Burt)가 1923년 최초로 특허를 받았습니다. 그는 이 특허를 가지고 굿유머를 설립해 아이스크림 트럭 사업을 시작하죠.
비슷한 시기 아이스크림바와 비슷한 물에 과즙과 향료를 섞어서 얼린 워터아이스도 만들어집니다. 레모네이드 노점을 운영하고 있던 프랭크 에퍼슨(Frank Epperson)은 문득 어릴 적에 만들어 먹던 막대 얼음과자를 판매할 생각을 했죠. 음료에 막대를 담가둔 채 베란다에 하룻밤을 두어 막대와 함께 얼어붙은 음료였어요. 그는 이 제품에 팝시클(Popsicle)이라는 이름을 붙여 1923년부터 판매하기 시작합니다.
5. 우리나라 아이스크림의 역사
1900년대부터 경성 시내에는 일본식 빙수점이 등장합니다. 이곳에서는 곱게 갈아낸 얼음에 설탕, 시럽(심지어는 날계란!)등을 첨가해 만든 일본식 빙수인 ‘가키고리’를 팔았죠.
1910년대에는 한강에서 채취한 얼음으로 즉석에서 빙수를 만들어주는 상인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천연얼음을 사용하다보니 세균 감염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일부러 위생 문제가 있는 얼음을 사용해서 이윤을 남기려는 사람도 등장합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조선총독부에서는 아이스크림 장사를 하려면 ‘행상증’을 발급받도록 했죠.
1940년대에는 소규모 제빙이 가능해지면서 색소를 탄 물에 설탕을 넣어 나무 막대를 꽂아 얼린 아이스케키를 파는 상인이 등장합니다. 아이스크림이라고 하기에는 빈약한 간식이었지만, 이마저도 1937년 중일전쟁과 1941년 태평양전쟁으로 귀한 존재가 됩니다. 그렇게 한국전쟁이 끝난 후에는 아이스케키가 번성하게 되죠. 나중에는 점차 발전해서 단팥과 우유물을 혼합한 아이스케키도 판매했어요.
이때까지만해도 아이스크림의 주원료인 우유가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아이스크림이라고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1962년 삼강에서 ‘삼강 하드’를 출시하면서 드디어 제대로 된 아이스크림이 등장하게 됩니다. 삼강하드는 한 시대를 풍미한 간식이 되었고, 이때부터 ‘하드’가 아이스크림을 지칭하는 보통명사처럼 쓰이게 되었죠. 이후 1970년에는 해태제과의 브라보콘과 롯데삼강의 쮸쮸바가 출시되며 오늘날에 이르고 있습니다.
6. 아이스크림 기업의 역사
- 하겐다즈
오랫동안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일해 왔던 매터스(Mattus) 부부는 1959년 자신들만의 아이스크림 사업체를 차리기로 결심합니다. 매터스 부부는 품질 좋은 천연 재료를 쓰고, 일반 아이스크림에 비해 공기 주입량을 줄이고 유지방 함량을 높여 진하고 풍부한 맛을 내는 고급 아이스크림을 판매합니다.
그리고 고급 이미지를 주기 위해서 발음하기 힘든 외국어 같은 ‘하겐다즈’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아이스크림 포장지에는 스칸디나비아반도의 지도까지 그려 넣었죠. 스칸디나비아어에는 하겐다즈라는 말이 존재하지도 않았지만요.
그래도 이들의 고급 전략은 시장에 잘 먹혔고, 소비자들뿐만 아니라 미국 전역의 이름난 레스토랑에서도 앞다투어 하겐다즈 아이스크림을 디저트 메뉴에 올렸습니다.
- 베스킨라빈스
제 2차 세계대전 중 병사들의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한 품목으로 아이스크림이 채택되었습니다. 미 국방부는 해상 전선에서 작전 중인 병사들에게도 아이스크림을 공급하기 위해서 아이스크림 생산 설비가 설치되어있는 수송선을 운영했죠. 이 아이스크림 생산 선박에 복무 중이었던 사람 중에 어니 라빈스(Irvine Robbins) 와 버튼 배스킨(Burton Baskin)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여기서 배운 노하우를 토대로 1945년 종전 후 각각 스노 버드 아이스크림 스토어(Snow Bird Ice Cream Store)와 버튼스 아이스크림 숍(Burton’s Ice Cream Shop)을 각각 오픈합니다. 1948년에는 아예 회사를 합쳐 배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Baskin Robbins Ice Cream)를 설립하죠.
베스킨라빈스는 ‘매일매일 다른 맛을 즐길 수 있다’는 슬로건으로 31가지 맛을 선보였고, 캘리포니아 전역에서 인기를 얻게 됩니다. 1960년대에는 미국 내 400개 이상의 매장을 열고 70년대에는 일본, 사우디아라비아, 호주 등에 진출하죠.
한국에는 1986년 명동 1호점을 시작으로 들어오게 되는데요. 당시 국내 시장에서는 마트에서 파는 아이스크림밖에 없었기 때문에 배스킨라빈스의 아이스크림이 큰 인기를 얻습니다. 국내 아이스크림 시장의 절반 이상을 점유하고, 전 세계 브랜드 매출의 약 10%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였죠.
- 설빙
설빙의 창업자인 정선희 대표는 일본에서 유학하며 제빵 기술과 푸드 코디네이터 과정을 공부했죠. 이후 한국으로 귀국한 뒤 2010년 부산 남포동에서 ‘시루’를 오픈합니다. 이곳에서 여러 가지 한국식 디저트를 만들었는데요. 2013년 4월 탄생한 제품이 우유를 갈아 만든 얼음 위에 콩가루를 뿌린 뒤 먹기 좋게 자른 인절미 떡과 아몬드 슬라이스를 올려 만든 인절미설빙이었죠.
인절미설빙이 인기를 얻어 서울에서 부산까지 빙수 원정을 오는 손님도 생기자, 정선희 대표는 인절미설빙 인기를 발판 삼아 코리안 디저트 카페 설빙을 론칭합니다. 2016년에는 일본에 진출하여 일본 내에서 큰 인기를 끌고 6개 지점을 오픈하기도 했지만, 일본에서 설빙을 맡았던 파트너사가 파산하면서 일본 매장은 문을 닫았어야 했죠.
인기는 예전만 하진 않지만, 인절미 설빙은2019년 누적 판매량 2,500만 개를 돌파해 단일 메뉴로 6년간 약 1,975억 원 매출을 기록했습니다.
- 디핀다트 (구슬 아이스크림)
구슬 아이스크림을 저온물리학자인 커트 존스(Curt Jones)가 액체질소를 이용한 연구를 하다가 우연히 발명한 겁니 그는. 1988년 디핀다트(Dippin’ Dots)를 설립하고 ‘미래 아이스크림’이란 슬로건으로 유원지를 중심으로 판매하며 인기를 얻죠.
디핀다트의 구슬 아이스크림은 전 세계로 판매되기 시작하면서, 구슬 아이스크림을 판매하는 다른 회사가 등장하게 되는 데 바로 한국의 미니멜츠였죠. 디핀다트는 특허침해로 고소를 했는데, 문제는 특허권이 인정되지 않습니다. 미국 법상 특허는 개발된지 1년 안에 등록해야 특허권이 인정되는 데, 디핀다트는 회사 설립 이후 4년 뒤에나 1992년에 구슬 아이스크림 제조 방식에 대한 특허를 등록했기 때문이죠.
오히려 미니멜츠가 디핀다트에게 시장독점 혐의로 고소했는데, 미니멜츠가 승소하면서 디핀다트는 수백만 달러의 보상액을 지불하지 못하고 2011년에 파산합니다.
원문: 사소한 것들의 역사
참고 문헌
- 로라 B. 와이스. (2013). 아이스크림의 지구사. 휴머니스트.
- 심효윤. (2021). 냉장고 인류. 글항아리
- 주영하. (2021). 음식을 공부합니다. 휴머니스트.
- 작가미상. (2022). [장수브랜드 탄생비화]한국적인 맛으로 승부…코리안 디저트 설빙. 뉴시스. URL : https://mobile.newsis.com/view.html?ar_id=NISX20220107_0001716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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