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권법의 ‘인용’ 조항에 대해서는 많은 출판 관계인이나 언론인, 연구자 등이 궁금해한다. 내 주변에서도, 저작권에 관심 있는 편집자와 작가들이 저작권자 허락 없이도 인용할 수 있다고 알려주면, 깜짝 놀라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인용할 때는 일일이 모두 허락을 받아야 하고, 심지어 피인용 작품의 출판사한테 돈 주고 인용해야 하는 줄 알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건 전혀 잘못된 법적 상식이다. 요 며칠 사이에도 이 문제를 물어보는 분들이 많아서, 이번 기회에 이 저작권법 제28조에 대해 아주 간단히 이야기해 보려 한다.
1.
먼저, 저작권법 제28조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규정되어 있다.
공표된 저작물은 보도ㆍ비평ㆍ교육ㆍ연구 등을 위하여는 정당한 범위 안에서 공정한 관행에 합치되게 이를 인용할 수 있다.
많은 분들이 여기에서 “정당한 범위”를 궁금해하는데, 판례는 다음과 같이 판시하고 있다.
그 표현 형식상 피인용저작물이 부연, 예증, 참고자료 등으로 이용되어 인용저작물에 대하여 부종적 성질을 가지는 관계(즉, 인용저작물이 주이고, 피인용저작물이 종인 관계)에 있다고 인정되어야 한다)
복잡한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인용한 원작품이 아니라 비평, 연구, 교육 내용 등이 ‘주’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원문을 500자 인용해 놓고, 비평은 50자를 달아 놓으면, 이는 원문이 ‘주’가 된 것이어서 정당한 범위를 인용한 것이라 볼 수 없다.
반대로 원문을 100자 정도 인용하고 비평을 1000자 정도 적었고, 그래서 그 글의 ‘주’가 되는 것이 원문이 아니라 비평 부분이라고 인정된다면 이는 정당한 범위에서 인용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단순화한 면이 있지만, 이러한 분량적인 면도 실제로 중요한 기준이 된다.
2.
또 위 규정에서 ‘공정한 관행’이라는 부분도 다소 모호하다. 다만 대법원 판례는 이에 대한 기준을 어느 정도 확립해 주었다.
인용의 목적, 저작물의 성질, 인용된 내용과 분량, 피인용저작물을 수록한 방법과 형태, 독자의 일반적 관념, 원저작물에 대한 수요를 대체하는지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하고, 이 경우 반드시 비영리적인 이용이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 영리적인 목적을 위한 이용은 비영리적인 목적을 위한 이용의 경우에 비하여 자유이용이 허용되는 범위가 상당히 좁아진다.
다소 복잡하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글을 쓰면서, 누군가의 견해를 비판하기 위해 그의 글을 일부 인용하거나 나의 견해를 보강하기 위해 그의 글을 일부 인용하는 식은 공정한 관행에 합치되는 것이라 본다.
여기에서 하나 생각해 봐야 할 점은, 상업적으로 판매되는 책에 다른 작품을 인용해도 되느냐는 것이다. 대법원 판례는 그것도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즉, 상업성(영리성)이 있다고 하여 곧바로 인용이 불가능하다고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것이 보도·교육·연구·비평 등의 영역은 대부분 상업적인 영역과도 결부되어 있다. 비평을 문학잡지에 싣는다고 했을 때 비평가는 원고료를 받고, 문학잡지사는 구독자들로부터 구독료를 받는다. 신문에 보도 기사를 쓰더라도, 신문 구독자나 광고주로부터 역시 돈을 받는다는 점에서 상업성이 있다.
따라서 영리성과 비영리성을 엄격하게 나누는 건 거의 불가능하지만, 비영리적인 목적이 확실하다면 더욱 자유롭게 공표된 저작물을 인용할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공교육 현장 등에서는, 다른 작품의 인용이 매우 관대해진다고 볼 수 있다.
3.
그럼에도 출처는 명시하여야 한다. 인용이 가능하다고 해서 출처 표기 의무에서 면제되는 건 아니다. 저작권법 제37조 제1항은 저작물 이용시 출처 명시 의무를 두고 있고, 이는 인용의 경우에도 예외가 아니다. 출처를 명시하지 않으면, 형사처벌도 받을 수 있다.
4.
결론적으로 말하면, 저작권법 제28조의 인용에 해당하는지에 대해서는 건별로 봐야하긴 하다. 가령 어떤 책에서 유명 작품들의 문장들을 잔뜩 수집하여 별다른 해설이랄 것 없이 ‘어록’ 같은 책을 만들었다면, 이는 인용이라고 보긴 어렵다.
그러나 반대로 어떤 책에서 저자가 분명한 논지를 펼치고 있고, 그 와중에 어떤 작품을 비평하기 위해 일부 인용하거나, 자신의 논지를 강화하기 위해 어떤 작품을 일부 인용하는 식으로 활용하고 있고, 그 저자의 견해가 ‘주’가 되는 것이 분명하고, 인용문은 ‘부종적’으로만 활용되고 있다면 굳이 허락받을 필요도 없이 인용할 수 있다.
이것은 저작권법의 제정 목적을 봐도 타당한 규정이다. 저작권법은 종국적으로 “문화 및 관련 사업의 향상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제1조에서 규정하고 있다. 문화의 발전은 자유로운 토론과 논쟁, 인용과 논평 등을 통해 이루어진다.
저작자의 권리 보호도 매우 중요하지만, 동시에 풍요로운 문화가 성장하는 데 자유로운 소통 또한 간과할 수 없다. 그렇기에 저작권법 제28조가 존재하는 것이다. 이 조항은 가히 저작권법의 감초와 같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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