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금전적 인센티브와 기업
경제학에서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방법으로 크게 인센티브와 페널티를 꼽는다. 경제학을 조금이라도 공부했거나 회사를 운영해 본 사장님들은 페널티보다는 인센티브가 더 (어렵지만) 나은 방법이라는 걸 알고 있다. 그래서 많은 회사들이 성과급을 주거나, 상품과 같은 금전적인 보상으로 인센티브를 준다.
하지만 금전적인 인센티브, 즉 돈은 마약이다. 돈은 직접적이다. 바로 효과가 나타난다. 직원들은 고무되어 회사 생활 열심히 해보겠다고 다짐한다. 하지만 그 효과는 짧다. 돈을 지속적으로 받으면 더 큰 보상을 원하고, 원하는 돈의 크기는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그러다 실적이 안 좋아 보상이 끊기게 되면, 상대적 박탈감을 더 심하게 느낀다. 이는 마약을 맞기 시작하면, 끊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돈을 인센티브로 사용할 때는 신중해야 한다. 짧게 사용해야 한다. 금전적인 인센티브가 장기화되면, 이는 더 이상 인센티브가 아니라 당연한 것이 된다.
실제로 매년 연봉의 50%를 상여금으로 받는 모 전자 사업부의 경우, 직원들은 50%를 받는 게 당연하다고 느낀다. 그렇게 못 받으면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이야기하는 이들도 왕왕 볼 수 있다(실제로 그만둘 것인가는 별개의 문제고). 혹자, 특히 사업하시는 분들의 경우 이렇게 말한다.
우리 회사는 그래서 복지를 중요시합니다.
우리 회사는 자기계발의 기회를 제공합니다.
워라밸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에는 가장 중요한 게 빠져 있다. 이러한 모든 정책들이 금전적 인센티브를 대체하는 성격이라는 점이다. 무슨 이야기냐 하면, 앞서 언급한 모든 정책들에는 “(당신이 원하는 높은 연봉 대신에) 복지를 줍니다.”, “(당신이 원하는 높은 연봉 대신에) 워라밸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라는 뜻이 들어있다는 점이다. 즉, 대부분의 다른 가치들 또한 금전적인 인센티브와 그리 다르지 않다. 이렇게 말하는 사장님들도 있다.
우리 회사는 비전(Vision)과 가치(Value)를 공유하고 공감합니다.
사실, 앞서 언급한 금전적 인센티브의 문제는 경제·경영 분야에 나오는 단골 주제 중 하나다. 그래서 나오는 이야기가 (돈이 아닌) 비전이나 가치를 공유하자는 것이다. 정말로 직원들이 사장과 같은 비전에 공감하고, 이윤이 아닌 가치에 공감한다면 가장 이상적일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현실성 없는 소리에 불과하다.
우선, 사장과 직원은 같은 비전을 가질 수 없다. 사장인 당신은 회사를 위해 어떤 희생도 할 각오가 되어있겠지만, 직원들은 아니다. 이들은 각자의 목적이 있어 회사에 들어온 사람들이다. 그 목적이 그들의 비전이기에 당시의 비전과 직원들의 비전이 같을 수 없고, 같은 비전을 강요해서도 안 된다.
두 번째로 아무리 멋져 보이는 비전이라도 기업이 지닌 태생적인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 기업의 태생적인 비전은 바로 이윤 추구, 즉 돈이다. 기업이 존재하는 첫 번째 이유는 이윤이다. 어떠한 기업도 이 기본 전제를 벗어날 수 없다. 혹자는 이렇게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아니다. 돈 버는 것보다 내 회사의 비전을 알리는 게 훨씬 중요하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을 하고 싶다.
당신의 회사가 부도 위기에 처해 있다. 그런데 어떤 투자자가 와서 ‘비전을 바꾸면 부도를 막고 합법적인 자본금을 대 주겠다’고 말했다. 이럴 경우 당신의 선택은?
만약 기업을 책임감 있게 운영하는 사람이라면, 자본금을 선택하는 게 당연하다. 비전을 지키겠다고 자본금을 포기하는 사장이라면 이상한 사람일 것이다.
결국 기업에서는 비전(즉, 돈 이외의 가치)이 돈을 이길 수 없다. 그러니 기업의 최우선 가치는 ‘이윤 추구’가 될 수밖에 없다. 어떠한 좋은 비전이 있더라도 돈이 없으면 기업은 망한다. 좋든 싫든 그게 팩트다.
2. 금전적 인센티브와 교육
이러한 내용은 아이들을 키울 때도 똑같이 적용된다. 보통은 공부 시키려고 이런 공약을 건다.
이번 시험 100점 맞으면 장난감 사줄게.
몇 등 하면 용돈 올려줄게.
이런 게 바로 금전적 인센티브에 해당한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해서는 절대로 아이들이 공부를 잘할 수가 없다. 참고로 내가 아이들에게 썼던 방식은 “공부는 네가 하는 거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성적이 잘 나오는 것도 아이가 책임지는 것이고, 못해도 아이가 책임지는 것이다. 이런 말이 통하기 위해서 아이는 공부하는 목적을 스스로 찾아야 한다. 돈은 제외된다.
이 점에 있어 내가 아이들에게 해줬던 이야기는 두 가지다. 한 가지는 ‘성적과 공부(실제로 아는 것)는 별개의 문제’라는 것이고, ‘공부는 재미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가르친다고 아이들 모두가 공부를 잘하거나 시험성적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둘을 깨우치고 나면 공부를 스스로 하게 되고, 성적이 잘 나왔다고 부모가 금전적인 보상을 할 필요도 없게 된다.
그렇다면 금전적인 보상을 대체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인센티브는 무엇일까? 바로 ‘재미’다. 재미가 있으면 돈이 개입되지 않아도 된다. 재미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본능적이고 감각적인 재미도 있고, 지적이거나 이성적인 재미도 있다. 모든 재미 요소는 이 둘을 양극으로 하는 스펙트럼의 형태로 존재한다.
본능적인 재미는 운동하고, 연기하고, 춤추고, 노래하고, 그림을 그리는 등 몸을 써서 활동하는 즐거움에 해당할 것이다. 반대로 지적인 재미는 이성으로 감정을 넘어서는 단계가 해당될 것이다. 물리, 화학, 생물 등의 자연을 배우는 재미가 있을 것이고, 역사나 문학 등 인문학을 배우며 인간군상을 배우는 재미가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감각적이고 본능적인 재미가 아닌, 이성적이고 지적인 재미를 접할 기회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초, 중, 고등 과정의 공부를 제대로 배워야 한다. 이렇게 모든 재미를 접해 보고도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이 예체능이라면 존중해야 한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시간과 노력이 든 후에야 알 수 있는 재미를 전혀 경험하지 못한 채 겉보기에 화려한 업계에 몰두한다면 개인의 인생에서 엄청난 손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고등학교 수준의 최소한의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내가 이렇게 이야기한다고 아이들이 알아들을 리는 만무하다. 하지만 적어도 돈보다 중요한 가치를 존중하는 가치관이 부모의 생활이 된다면, 그런 가치관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공부할 이유를 스스로 찾게 될 것이다. 최고의 가치로 돈을 숭상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소중히 하는 ‘가치’로 삶을 살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3. 개인의 올바른 인센티브
기업이 이윤 추구를 최고의 가치로 삼는 건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인간 개인이 가지는 최고의 가치가 돈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돈을 최고로 가치로 생각하게 된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돈 이외의 꿈이나 행복, 사랑, 창작 활동, 노력 등 무형의 가치들은 무의미해진다는 거이다. 반대로, 돈으로 환산만 된다면 의미 있는 것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왜 이런 사고방식을 갖게 될까? 바로 이런 가치관 때문일 것이다.
원하는 무언가를 하기 위해서는 돈이 있어야 한다.
완전히 틀린 사고방식이다. 뭔가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다. ‘자신이 원하는 뭔가’가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다. 이를 찾는 건 절대 쉬운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평생 따라다니는 문제에 가깝다. 차라리 ‘자신이 원하는 것’을 돈으로 상정하고 버는 게 쉬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렇게 살게 될 경우, 가난한 이들은 ‘돈만 더 있었으면…’이라고 후회하게 되고, 부자는 부자대로 ‘돈 있어도 딱히 하고 싶은 게 없네…’라며 남은 인생을 지루하게 보내게 될 것이다. 혹은 돈으로만 할 수 있는 본능적인 자극을 좇게 될 것이다. 생각보다 흔하게 보는 경우다.
문제는 대한민국 최고의 가치가 ‘돈’이 된 지 너무 오래되었다는 것이다. 혹자는 안정된 직장, 혹자는 미래, 혹자는 하고 싶은 일을 위해 돈을 번다고 한다. 하지만 이 모든 예시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가 ‘돈’이라는 결론에는 변함이 없다.
한번 돈맛(?)을 알면 그것을 벗어나서 다른 가치를 찾기 불가능하다. 마약을 시작하면 끊기 불가능한 것처럼 말이다. 당신은 아니라고 장담하는가? 그렇다면 다음 질문에 대답해 보라.
당신 미래의 가치를 위해 지금의 돈(기업 이윤, 연봉, 자본금 등)을 포기해야 합니다. 할 수 있습니까?
지금 포기하지 못한다면, 미래에도 당신은 돈을 포기하지 못할 것이다.
마무리하며
지금 대한민국에서 발생하는 모든 고질적인 문제들을 생각해 보자. 저출산 문제, 의대 쏠림 현상, 자발적 취업 거부, 수도권 쏠림 현상, 노년층 우울증 등. 이렇게 수많은 문제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는 근본적인 원인에는 돈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는 대한민국의 가치관이 기저를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사람들은 자신이 정말로 원하는 것을 돈, 혹은 잘사는 것으로 등치시킨 채 치열하게 인생을 산다. 그 미래에는 어떤 것이 기다리고 있을까? 감당 안 되는 박탈감으로 자존감이 바닥을 치는 것이거나, 어느 정도 성공하더라도 돈으로 대신하지 못하는 재미에 대한 허기짐으로 현타를 맞이하는 것이다.
돈으로 같은 크기의 재미나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더 큰 돈을 필요로 한다. 이는 마약 중독자가 같은 행복감을 느끼기 위해 더 많은 용량의 마약을 필요로 하는 것과 일치한다. 돈이 마약인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원문: Amang Kim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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