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대략 10년 전, 기업 및 비즈니스·경영 관련 학계에서 ‘혁신(Innovation)’이라는 화두가 먹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 모든 기업이나 경영 관련 학계들이 인공지능, 빅데이터, IoT, 블록체인을 떠들듯이, 그 당시에는 혁신 및 혁신에 관련된 사례 연구과 관련 방법론에 대한 것이 묻지마 관광처럼 횡행하던 시절이다.
Innovation Framework (혁신 방법론)
Six-Sigma, Lean Thinking, TRIZ, Lean Startup, Lead User Research, Deep Dive, Systems’s Thinking, Design’s Thinking, Agile…
그 당시에 ‘혁신’과 관련된 업무를 했거나, 전사적으로 혁신 프로세를 도입하고자 했던 기업에 몸 담은 적이 있다면 위에 언급된 혁신 도구들 중 최소한 한 가지 이상은 들어 봤을 것이다. 그리고, 기업에서 저러한 방법론을 한 가지라도 범사적으로 적용해본 적이 있는 실무자들이라면, 저런 혁신 방법론들의 대부분이 전혀 실효성이 없는 뻘짓이라는 잘 알 것이다. 오늘은 이에 대한 이야기를 다뤄보고자 한다.
오늘 글은 무언가를 까는 글이다. 무언가를 까는 주장을 할 때 대부분 까는 누군가가 누구인지를 먼저 확인하게 된다. 아무것도 모르는 이가 깐다면 그야말로 허튼소리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선 나에 대해서 먼저 밝혀 두고자 한다.
1. 시작하기
나는 여러 가지를 하는 사람이다. 현재 부캐는 사이버 정보보안에 관련된 연구를 하는 연구원이고, 본캐는 전산학과 교수이고, 수학을 좋아하는 수학 비전공자이다. 4~5년 전에는 경영대학원 교수였고 혁신 방법론에 대한 연구를 했고, 모 기업에 있을 때는 식스시그마와 트리즈를 사내 직원 대상으로 강의를 했었다. 물론 기업에 있을 때의 내 본캐는 기술 분석 및 관리(Technology Intelligence & Management)였고, 식스시그마와 트리즈는 부캐다.
경영대학원 교수 시절에 MBA 학생들을 대상으로 Lean(Thinking & Startup)과 DeepDive, Design’s Thinking을 가르쳤고, 관련 논문들도 다수 있다. 기업에 있을 당시 전사 차원 경영 혁신의 일환으로 여러 혁신 방법론을 강제적(?)으로 수행해 본 경험 또한 다수 있다. 혹시라도 Lean Thinking에 대해서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다음 논문을 참고 하시라.
이렇게 나에 대해서 구구절절 설명하는 이유는 적어도 내가 저런 혁신 방법론을 모르지 않는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이에 대한 비판을 할 만한 충분한 자격이 되지 않을까 싶다.
2. 혁신 방법론(Innovation Framework) 기본 구조
기본 구조를 알면 이해가 쉽다. 모든 혁신 방법론에는(해당 방법론에 대한) 철학, 프로세스, 도구들이 존재한다. 어떠한 혁신 방법론이라도 위의 3가지를 파악하면 전체적인 맥락을 파악하기 쉬워진다. 많이 알려진 혁신 방법론을 예로 들자면,
식스시그마
- 철학: defect free (오류 없음)
- 프로세스: D-M-A-I-C 혹은 D-M-A-D(O)-V (DFSS)
- 도구: 통계학 기본(가설검정, 가우시안 분포 등), DOE, RCA, HOQ 등
린 싱킹
- 철학: waste free (낭비 없음)
- 프로세스: VI-Kaikau-Kaizen (혹은 VI-VSM-F-P)
- 도구: Kino diagram, Fishbone, VSM, Pokeyoke, Genchi 등
디자인싱킹
- 철학: 예술적(design)인 공학
- 프로세스: E-D-I-P-T
- 도구: Brain Storming, BigData,… (aka. 딱히 정해지지 않음)
이런 식이다. 최초에 언급한 다른 혁신 방법론들도 유사한 방법으로 정리가 가능하다. 프로세스적 관점에 있어서 모든 (적어도 내가 공부한) 혁신 방법론의 프로세스는 그 이름은 다르지만,
문제 파악·문제정의 → 문제 해결안 도출 → 테스트·적용 → 확인
이 문제 해결 순서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각각 다르고 특별해 보이지만, 그런 거 없다. 물론 각각의 혁신 방법론을 따로 알고 있는 전문가들은 나의 이야기에 동의하지 않겠지만, 그게 사실이다.
3. 마케팅의 산물
위에 언급된 혁신 방법론이 처음부터 대중에게 알려진 게 아니다. 사실 처음에는 그 이름조차 없던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예를 들자면, 식스시그마는 모토로라에서 처음 시작한 제조 공정 개선 방법이었다. 린 또한 토요타가 개발한 생산공정 방식이었다. 디자인스 싱킹은 애플이 제품을 설계할 때 기존 제조사들과 다른 방식으로 설계한 게 모태가 되었다. 각자의 영역에서 별도로 출발하다 보니 같은 과정임에도 그 이름들이 다양했고, 심지어는 명확한 이름조차 존재하지 않기도 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어떠한 철학, 프로세스, 도구들을 가진 혁신 방법론이라도 귀결되는 지점은 ‘문제 해결’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혁신 방법론이라고 하는 것들은 그냥 간단하게 문제 해결 방법론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하지만 왠지 혁신 방법론이라고 하면 왠지 있어 보인다.
비슷한 문제를 가지고 있는 영역에서 같은 영역의 체계화된 혁신 방법론을 도입하는 건 상당히 도움이 된다. 예를 들자면, 제조업의 모토로라가 만든 식스시그마를 같은 제조 업종인 GE에 적용한다든지, 토요타의 린을 비행기 제조를 하는 보잉에서 가져다 쓴다든지 하는 것 말이다.
애초에 처음에는 혁신 방법론들의 사용이 제한적이고 아는 이들도 한정적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혁신 방법론들이 회사를 이끄는 리더 수준의 이들에게 알려지게 된 데는 해당 문제 해결 과정에 대해 이름을 붙이고 ‘띄우는’ 작업들이 수반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마케팅 방법은 비단 디자인싱킹, 린 싱킹과 같은 혁신 방법론에만 국한된 게 아니라 요즘 뜨고 있는 빅데이터, IoT, 블록체인, 메타버스와 같은 기술용어들을 마케팅적으로 띄우는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게 용어가 한번 뜨게 되면 너도 나도 그 용어를 사용하게 된다. 인기 용어의 남발하는 것은 관련 전문 지식에 대한 판단을 흐리게 만든다. 심지어 원래의 지식과는 전혀 관련 없는 내용들을 떠들고 다니는 사기꾼을 양성하는 빌미를 주게 된다.
4. 사짜 글쟁이
그리고 이러한 빌미로 사짜가 판치는 기폭제 역할을 하는 이들이 있었으니, 그들은 바로 글쟁이들과 비니지스·경영학”만”아는 교수들이다. 위에 언급했듯이 특정 용어들이 유명해지면 너도 나도 해당 용어들을 가져다 쓰는데, 특히 글쟁이들이 그러한 경향이 심하다.
한창 식스시그마가 유행했을 때는 식스시그마라는 이름을 달고 나온 경영지침서, 자기계발서등이 판을 쳤다. 린 싱킹이 뜨던 때는 ‘린-○○’라는 이름의 책들이 홍수를 이루었다. 이들 서적들을 가만히 읽어보면, 실질적인 혁신 방법론과 전혀 관련 없는 작가의 주관이 깊이 관여하거나 이 기업, 저 기업의 성공사례를 입맛대로 갖다 붙인 내용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새로운 용어가 뜰 때마다 이러한 악순환은 계속되고 있다.
지금도 생각만 하면 열 받는 베스트 셀러가 있다. 원래의 린 싱킹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데도 떡하니 『린 스타트업』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책이다. 물론 책에서는 린 싱킹을 스타트업 운영에 접목시켰다고 떠들고 있지만, 제대로 알고 있는 내 입장에서는 개뿔 씨나락 까먹는 소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스테디셀러가 되었고, 심지어 경영대학원의 기업가 정신, 창업 같은 과목의 중요 참고 서적으로 사용되었다.
보다 큰 문제는 토요타의 린 싱킹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이들이 그 책을 보고 린 싱킹을 배운다는 점이다. 둘이 전혀 다른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사짜 글쟁이 하나 때문에 아주 엉뚱한 걸 배우고는 린 싱킹을 배웠노라고 이야기하는 황당한 상황이 되어 버린다. 혁신 방법론에 따라 차이가 있긴 하지만,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철학과 프로세스 관련 도구들을 모두 제대로 알고 있어야 한다. 한 가지만 빠져도 해당 혁신 방법론을 제대로 안다고 할 수 없다.
이런 류의 책들이 가지는 가장 큰 해악은 제대로 된 혁신 방법론을 대중에게 알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리고 글쟁이들은 혁신 방법론을 구성하고 있는 중요한 요소를 전혀 모르면서도 해당 혁신 방법론의 전문가인 듯이 어깨에 뽕이 들어간다는 것이다.
또 하나, 현장실무자들 입장에서 더 큰 해악이 있다. 똥인지 된장인지 구별도 못하는 리더가 어설프게 사짜 글쟁이들이 쓴 책 몇 권 읽고는 전사적으로 적용 하겠다고 난리치는 경우다. 이럴 때는 정말이지 답이 없다(참고로 난 이런 경우 여러 번 봤다).
5. 경영학/비지니스 연구
교수라는 직업 특성상 소위 말하는 연구를 하기 위해 이것저것 갖다 붙여 보고, 괜찮은 결과가 나오면 (논문 형태의)연구 실적이 된다. 이건 비단 경영학 교수만 해당하는 건 아니다. 적어도 연구를 하는 교수라면 본인의 연구 주제를 이런 식으로 잡아가는 게 지극히 당연하다. 하지만 경영학 관점에서 이러한 연구 방식이 가지는 가장 큰 약점은 적용할 실체가 없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공학의 경우는 이것저것 갖다 붙여서 제품(소프트웨어도 포함)이 나오거나, 실험 결과를 내놓을 수 있다. 하지만 경영이라는 학문 자체는 그 자체로 실체를 드러내는 게 불가능하다. 기업이나 사업군에 적용을 해서 가시적인 무언가를 보여야 한다. 그렇기에 경영학에서 이러한 연구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경영학적인 지식도 알아야 하지만, 적용하고자 하는 기업이나 사업 영역에 대한 지식도 충분히 깊게 알아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인기 있는 기업이나 사업영역은 IT나 공학과 관련이 깊다. 해당 경영 연구 분야가 자동차라면 자동차 산업에 대한 내용을 알고 있어야 하고, 공정 혁신 분야의 연구라면 자동차 생산 공정에 대해서 알고 있어야 하고, 기술·경영에 대한 연구라면 자동차 기술 분야에 대해서 해당 전문가만큼의 지식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경영학을 전공한 입장에서는 해당 영역의 지식을 그 분야 전문가만큼 아는 데 한계가 따를 수밖에 없다. 아니,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래서 제대로 경영 관련 연구를 하기 위해서는 부족한 해당 분야의 현장 지식을 커버할 수 있는 모종의 조치가 수반되어야 한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해당 분야의 전문가와 협업하는 것이다. 즉 관련 현장 지식을 검증해줄 수 있는 전문가와 같이 일하는 방식이다. 사실 이건 경영 분야 논문의 질을 판단하는 중요한 수단이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자동차 기술 관리에 대한 연구 논문을 내면서 자동차 기술 자체에 대한 전문가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면 그 논문은 신뢰하기 힘들다.
두 번째 방법은 본인이 직접 관련 분야를 섭렵하는 경우다. 현재는 경영학 연구를 하고 있지만 본인은 공학을 전공했다든가, IT회사에서 개발을 해봤다든가, 자동차 기업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든가, 경영 연구 외 관련 사업군에 대한 기술을 알고 있는 경우에도 제대로 된 경영 연구가 가능하다. 사업군이 본인의 경험에 한정된다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적어도 해당 사업분야에 대한 경영연구는 제대로 할 수 있다.
참고로 나 같은 경우는 이러한 사업군이 I T쪽이다(정확하게는 휴대폰 관련). 그래서 경영대학원에 재직했을 때, 이와 관련한 연구를 하기도 하였다.
6. 경영학”만” 아는 교수
하지만 경영학 교수들 가운데에서도 사짜 글쟁이와 같이 해악을 끼치는 교수들도 존재한다. 이들이 바로 경영학”만” 아는 교수들이다.
무슨 이야기냐 하면, 경영학과에서 연구와 강의를 하는 교수들 가운데는 이전의 나처럼 공학 전공+IT기업+경영(관련) 박사와 같이 경영학 외의 지식을 가지고 교수가 된 경우도 있지만 경영학부 전공, MBA 전공, DBA(경영학 박사)를 받은 경우들도 존재한다. 특히 외국에서 공부를 하고 젊은 나이에 국내에 부임하는 경우에는 이런 경우가 흔하다. 설령 직장경력이 있다 하더라도 해당 직군의 기술·공학 분야가 아니라, 경영 자체(마케팅, 회계)의 직장 경력인 경우가 많고, 이게 실제 경영학과 교수 임용에는 더 유리하다.
물론 위에서 언급했듯이 경영학만 한 경우라도 해당 분야 전문가들과 제대로 협업을 한다면야 문제 될 것이 없겠지만, 실상은 그 반대인 경우가 많다. 즉, 관련 분야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서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이 전문가 행세를 하고 다니는 경우가 훨씬 많다는 점이다. 사짜 글쟁이와 마찬가지로 이런 교수들은 학생들에게 해악을 끼친다. 이들은 마치 경영학만 제대로 하면 세상의 기술이나 공학 등은 몰라도 되고, 경영이 제조나 기술 자체보다 우위에 존재한다는 뻘소리를 한다. 연구·개발보다 마케팅이 중요하고 선전하는 중요하다는 귀신씨나락 따먹는 소리를 학생들에게 주입하는 것이다. 이런 부류의 교수들은 숙주(사업영역)가 존재하지 않는 경영학이라는 건 존재할 수 없고, 경영연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경영이 아니라 숙주 자체라는 걸 인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부류의 교수들이 꼭 이쪽 용어 저쪽에 갖다 붙이고, 저쪽 용어 이쪽에 갖다 붙이면서 뭔가 새로운 연구를 한 것인 양 포장을 한다. 문제는 이러한 포장이 먹힌다는 것이다. 별 것 아닌 용어도 뜨고 나면 유명해지고 회자되는 것처럼,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용어도 뜨고 나면 그 용어를 띄운 교수를 단박에 전문가로 만들어 버린다. 한때 식스시그마가 유명해졌을 때 ‘식스시그마 리더십’이라는 게 생겼다. 이 말을 쓰고 다니던 교수는 유명해져서 강연을 다녔고, 식스시그마 리더쉽을 기업에 컨설팅해주기까지 한다. 그럼 그 교수가 식스시그마를 제대로 아느냐? 아니올시다이다. 식스시그마를 제대로 안다면 그걸 리더쉽으로 연결 시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거든.
이러한 용어들 가운데에는 태생 자체가 불분명한 용어들도 있다. 다들 전문가라고 떠들고 다니지만, 정작 실체는 불분명한 용어 말이다. 디자인싱킹(혹은 디자인스 싱킹)이 바로 그런 용어 중 하나다.
7. 디자인스 싱킹에 대한 팩폭
내가 디자인스 싱킹(Design’s Thinking)을 처음 접한 건 경영대학원 교수로 부임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애플에 대한 사례 연구를 하는 도중에 디자인스 싱킹이라는 용어를 처음 접했다. 그 당시 하버드 경영대학원에서 얻은 자료를 보면서 확인한 바로 디자인스 싱킹은, 예술적인 의미의 디자이너의 마음으로 제품을 설계한다는 게 기본 골자였다.
조금 더 설명하자면 이런 거다. 통상적으로(공학적으로) 동작이 가능한 제품을 만든다고 했을 때, 디자인과 충돌이 나는 경우가 흔히 발생한다. 이럴 경우 (디자인적 마인드와 반대되는) 공학적인 마인드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잘 동작하게 만들기 위해 디자인을 포기하는 방향으로 개선이 이루어질 것이다. 하지만, 디자인스 싱킹은 디자인을 위해 공학적인 부분을 바꾼다. 이상적으로는 디자인을 살려두는 동시에 기능도 제대로 동작할 수 있도록 개선한다.
이 일련의 활동들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애플이 제품을 만들 때 하는 활동과 흡사했다. 그게 바로 디자인스 싱킹이었다. 그러나 그 당시에 경영학과 교수들에게 디자인스 싱킹에 대해서 정의하라고 하면,
디자인스 싱킹 = 애플이 제품 개발하는 방식
이라고 떠들고 다녔다(실제로 지금도 저렇게 생각하는 교수들이 많다). 그리고 디자인과 성능의 두 마리 토끼를 어떻게 해서든지 다 잡기 위해서 창의적인 발상이 하고, 이러한 창의적인 발상이 혁신을 이룬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었다. 이러한 헛소리는 몇몇 유명한 경영학과 교수들의 연구 과제가 되었고, 그렇게 쓰여진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되어 버리면서, 더 이상 헛소리가 아닌 상황이 되어 버린다.
내가 디자인스 싱킹이 헛소리라고 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그중 한 가지는 디자인스 싱킹이라는 게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디자인스 싱킹의 원류를 찾아보면 심리학에서 말하는 방법론이 튀어나온다. 그 당시의 이름은 디자인스 싱킹이 아니었다. 이 방법론이 디자인으로 옮겨지게 된 게 2000년이고, 이때 디자인스 싱킹이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하게 된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디자인스 싱킹은 공학과 예술(혹은 기능과 디자인)의 충돌이 났을 때 어떻게 하면 디자인에 비중을 두면서 공학적인 부분을 해결할 수 있느냐에서 출발했다. 그래서 여기서 말하는 디자인과 공학의 대상이 명확하다. 하지만 이후 디자인스 싱킹이라는 단어가 유명해지면서, 이 단어를 여기저기 다 갖 다붙이기 했다. 그래서 어김없이 나온 게 ‘디자인스 싱킹 리더쉽’, ‘디자인스 싱킹 협업’ 등의 단어다.
앞서 언급했지만 식스시그마나 린 싱킹과 달리, 디자인스 싱킹은 그 원류가 불분명하여 별도의 도구가 존재하지 않는다. 보다 엄밀히 말하면, 없다는 의미라기보다는 생산성 향상을 위해 사고의 발산을 도와주는 모든 도구들을 다 포함하기 때문에 단어 자체가 명확하지 않다. 거기에 너도 나도 이것저것 갖다 붙이다 보니, 그리 된 것이다.
디자인스 싱킹이 헛소리인 두 번째 이유는 원래 가지고 있는 근본 철학, 즉, 미적인 요소를 위해 공학적인 요소를 포기하거나 개선해야 한다는 자체가 문제이기 때문이다. 물론 S/W나 서비스처럼 물리적인 제품이 아니라면 그나마 양보할 여지가 있다. 하지만 실제 동작하는 물리적인 제품이라면 저 이야기는 정말이지 개똥철학이다. 휴대폰 개발을 할 때, 이런 소리를 지껄이던 애들이 바로 상품기획 팀이다. 디자인팀에서 만든 깔쌈한 휴대폰 디자인을 들고 와서는 하드웨어 개발팀에게 무조건 이대로 해달라고 조르는 게 디자인스 싱킹이다.
휴대폰이 제대로 동작하기 위해서는 적정의 공간이 확보되어야 한다. 그래야 안테나나 배터리 최적화 설계가 용이하다. 물론 디자인도 중요하다. 특히 자동차나 휴대폰처럼 디자인으로 인해 호불호가 갈리는 경우에는 더 그렇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문제는 상품기획을 하는 사람들이나 디자인을 하는 사람들이 전혀 하드웨어 지식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하드웨어 팀에서 디자인을 거부했을 때, 귀찮아서 거부한 건지 정말 안 되는 거라 거부한 건지 가늠을 못 한다. 그러면서 “애플도 디자인싱킹해서 끝내주는 제품을 만들었는데, 왜 안 되나요”라고 대답하면 정말이지 할 말이 없다. 여기에 대표가 한술 더 떠서 애플 벤치마킹한답시고 디자인스 싱킹을 전사적으로 전파하겠다고 말하면 더 한숨 나오는 상황이 된다.
백번 양보에서 디자인스 싱킹이 유용하다고 치자. 제대로 디자인인스싱킹을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디자인적 마인드가 아니라 공학적인 마인드다. 그래서 중요한 건 수학과 물리에 대한 마인드가 된다. 이걸 아는 CEO는 이제껏 만나본적이 없다.
결국 중요한 건
혁신 방법론은 그 태생에 따라서 각기의 장점들을 가지고 있다. 관련 도구들이 체계적으로 발달되어 있는 일부 혁신 방법론은 같거나 유사한 도메인에 적용했을 때 예상외의 금전적 효과를 가져다 주기도 한다. 문제 해결이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는 모든 혁신 방법론이 문제를 해결하는 길잡이 역할을 해 주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혁신 방법론은 원래 태생했던 도메인을 넘나들면서 기존의 도메인이나 사상과는 전혀 관련 없는 곳에 무분별하게 사용되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원래도 불분명했던 실체가 완전히 사라진 채로, 오로지 단어만이 구천을 맴도는 형국이 되었다. 너도 나도 가져다 쓰면서 글쟁이가 되고, 너도 나도 전문가 놀이를 한다. 자기들도 모르는 걸 거품 물며 선전하면서 모르는 이들을 현혹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이러니 숙주에 해당하는 현장 실무자들만 고생하는 거다.
결론은 이렇다. 디자인싱킹이나 린스타트업, 애자일 같은 혁신 방법론보다 해당 도메인의 역량에 더 집중하길 바란다. 다양한 혁신 방법론을 다뤄본 전문가가 여러분에게 드리는 조언이다.
원문: Amang Kim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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