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얼마 전 책 읽기 동아리 활동을 하는 학생들과 스마트폰 올바르게 쓰는 자세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말머리에 ‘균형’이라는 말을 먼저 꺼냈다. 하루에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시간이 1시간이라면 종이 책을 적어도 1시간 정도 읽자는 뜻에서였다.
이것은 최소한의 조건이다. 나는 말 끄트머리에 종이책 읽는 시간이 스마트폰 사용 시간을 훨씬 넘어서야 한다며 책과 책 읽기의 가치와 의미를 강조하였다.
몇 가지 근거를 들었다. 종이책 매체와 인터넷 매체 간의 역사적인 검증 상황의 차이가 하나다. 우리 인류는 기원전 3천 년 무렵 문자를 발명하여 쓰기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5천 년 동안 내용과 형식, 영향과 가치 등의 차원에서 종이책 매체를 다채롭게 검증해 왔다.
이와 달리 인터넷 매체는 세상에 출현한 것이 반세기 정도에 불과하여 앞으로 살펴봐야 측면이 많다. 인터넷 기반의 소셜 미디어가 갖는 역할과 의의를 놓고 장밋빛 청사진의 예찬론 일색이던 출현 초창기 분위기와 다르게 지금은 에스엔에스(SNS)의 폐해나 부정적인 결과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무척 높다.
2.
무엇인가를 과신하거나 과용하는 태도는 우리를 해로운 지점으로 이끌어 갈 가능성이 높다. 나는 학생들에게 세계 유수의 IT회사들이 밀집해 있는 미국 실리콘밸리의 아이티 전문가들이 저(底)기술 생활이나 반(反)기술 교육에 눈길을 주는 사례들을 두 번째 근거로 들었다.
자칭 미래교육 전문가들은 첨단 아이티 기술을 접목한 교육 수단을 옹호하는 경향이 강하다. 대개 이들은 공통적으로 스마트폰과 스마트 패드 등 각종 디지털 기기의 장점과 의의를 강조하는데, 정작 이들 기기를 발명하고 확산시키는 일을 하는 기술 전도사들이 자기 자녀나 어린이들이 전자 기기와 접촉하는 것을 꺼린다는 사실에는 애써 눈을 감는 것 같다.
네덜란드 저널리스트이자 사상가인 뤼트허르 브레흐만은 화제작 『휴먼 카인드』에서 소셜 미디어를 ‘독성 사업’이라고 규정했다. 그 근거로 페이스북이나 구글 같은 회사의 관리자들이 자기 아이가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에서 보내는 시간을 엄격하게 제한한다는 점을 들었다.
나는 브레흐만이 책 미주에 소개한 비즈니스 인사이더의 2018년 2월 18일 자 기획 기사 「Silicon valley parents are raising their kids tech-free: And it should be a red flag」를 찾아 읽었다. 거기에는 기사를 쓴 클리스 웰러 기자가 취재한, 저기술 및 반기술 육아의 사례들이 다양하게 실려 있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전 최고경영자 빌 게이츠는 자기 자녀들이 14살이 될 때까지 전화기를 소유하지 못하게 하는 지침을 만들어 시행했다고 한다.
애플의 전 최고경영자 스티브 잡스는 2011년 <뉴욕 타임즈>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자기 자녀가 새로 출시된 아이패드를 사용하는 것을 금지했다고 밝혔다.
현 애플 최고경영자인 팀 쿡은 자기 조카가 온라인 소셜 네트워크에 가입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한다. 웰러 기자는 이와 같은 의외의(?) 사례들을 들면서 이렇게 말했다.
저기술 및 반기술 양육이 실리콘밸리의 거물들 사이에서 조용한 필수품이 되었다.
3.
지난 2018년 10월 2일 사회학과 통계학 분야에서 권위가 있는 국제 학술지 <사회과학연구> 최신 호에 호주 국립대학교 사회학과와 미국 네바다대학교 응용통계학과, 국제통계센터 공동 연구진이 한 편의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진은 OECD에서 언어 능력, 일상 속 수학 문제 해결 능력, 컴퓨터 조작 관련 능력 등의 3개 지표를 조사하는 국제성인역량조사(PIAAC) 데이터 중 2011년부터 2015년까지의 5년 치 자료를 분석하였다. 그 결과 집에 책을 쌓아 두는 것만으로도 언어 능력, 수학 능력, 컴퓨터 능력 영역의 교육 성취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놀라운 사실을 밝혀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집에 쌓여 있는 책들을 읽지 않았더라도 단지 책이 “있었다”는 기억만으로 사람들의 인지 능력과 학업성취도가 향상되었다는 것이었다.
수년 전 우연히 이 기사를 접하고 교실에 있는 학급 문고 서가를 알차게 채우는 일에 부쩍 큰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얼마 전 전체 교직원 회의 때에는 발언 기회를 얻어 가용 학교 예산을 들여 각 학급의 학급 문고용 도서를 확충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조만간에는 학교 도서실 업무를 담당하는 선생님께 올해 도서 구입 계획 일정과 규모를 여쭤보고 우리 학교 학생과 선생님들이 함께 읽었으면 하는 책들을 신청하려고 한다.
나는 평소 넓게 알고 깊게 생각하려고 애쓰는 삶 속에서 경험을 통한 배움과 성장이 더 값진 결실을 가져온다고 믿고 있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으로 책과 책 읽기보다 더 좋은 매체나 매체 활동은 없을 것이다.
스마트폰을 집에 놔두고 집 근처에 있는 도서관에 가서 책을 펼쳐 읽는 부모와 자녀들이 더 많아지는 세상을 꿈꾼다. 책과 책 읽기가 일상의 시간과 공간의 다수를 차지하는 학교와 교실을 상상해 본다.
원문: 정은균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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