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촬영을 앞두고 한 배우의 프로필을 받았다. 짧은 영상 콘텐츠에서 연기할 배우를 찾았고, 최종 결정된 사람이었다. 당사자를 만나기 전, 프로필만으로 그가 어떤 사람인지 파악해야 했다. 소위 말하는 무명 배우였다.
선한 웃음의 프로필 사진 아래로 그가 지금까지 연기자로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파악할 수 있도록 이력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영화, 드라마, 광고의 보조출연부터 어느 대학 연극영화과 학생의 졸업 작품 주연까지… 팔만대장경처럼 출연 경력이 이어지고 또 이어졌다.
그중 이름난 작품 몇 개가 눈에 들어왔다. 그가 출연했다는 작품을 본 적은 있지만 아쉽게도 그의 이름도, 얼굴도 기억나지 않았다. 그의 프로필은 뭐가 얻어걸릴지 몰라 머리카락 끝이라도 카메라에 담겼다면 다 적어 놓은 느낌이었다. 몇 장 안 될 문서 안 빼곡히 적힌 텍스트 하나마다 무명 배우의 간절함이 차고 넘쳤다. 그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속으로 생각했다.
뭐가 많긴 한데 눈에 들어오는 건 없네….
며칠 후 촬영 당일, 첫 번째 촬영 장소에서 다음 촬영지까지 그 무명 배우와 한 차를 타고 함께 이동했다. 친화력이 좋은 걸까? 아니면 어색함을 못 견디는 성격의 소유자였을까? 차 안의 침묵을 깨고 입을 먼저 연 사람은 무명 배우였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이제 막 입주가 끝나가는 새 아파트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아파트 제가 지었어요.
네?
촬영 스케줄 없을 때는 아는 형님 따라 막노동 알바해요.
10년 넘게 평범한 회사원으로 일했다고 했다. 수입도 괜찮았고, 생활도 안정적이었다. 스스로 그만두지 않는 한 잘릴 일 없는 탄탄한 회사에 다녔지만, 직장 생활은 늘 갑갑함의 연속이었다. 지금껏 가슴에만 품고 살았던 배우라는 꿈을 펼치고 싶다는 마음에 연기 학원의 문을 두드렸다.
상담해 주던 연기 학원 선생님은 당장이라도 회사를 때려 칠 기세인 연기 꿈나무를 말렸다. 일단 회사 일과 병행하며 취미 삼아 연기를 배워 보라며 주말반 수강을 권했다. 주말마다 부천에서 강남을 오가며 연기를 배웠다. 막연하기만 했던 배우의 꿈을 차곡차곡 키워나갔다.
연기를 배우기 시작한 지 1년 만에 사직서를 썼다. 대작에 캐스팅된 것도 아니고, 탄탄한 소속사에 들어간 것도 아니었다. 그를 전업 배우의 길로 재촉한 건 ’나이‘였다. 그의 나이 서른, 본격적인 연기자의 길로 들어선 거다.
그때부터 부르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갔다. 기다림이 끝이 없는 드라마나 광고의 보조출연부터 상업영화의 단역, 독립·단편 영화의 주연, 홈쇼핑 인서트 배우, 크고 작은 영상 콘텐츠까지… 카메라 프레임 안에서 연기하는 자기 모습을 모니터할 때가 제일 기쁘다고 했다. 실제로 편집되는 바람에 온에어되지 못하는 경우도 있으니, 모니터 하는 시간은 연기자임을 느낄 수 있는 가장 안전한 시간이었다.
배우로만 살고 싶지만, 현실은 그럴 수 없었다. 생계가 어려우니 생활비를 벌기 위해 공사판에 나갔다. 불안정한 일이지만, 그 점이 오히려 배우인 그에게 장점이었다. 언제든 배우 스케줄이 생기면 삽 대신 대본을 들 수 있었다.
그곳에서 다양한 출신과 경력의 형님, 동생들을 만나며 삶의 다양한 모습을 접했다. 그 형님들과 함께 서울과 수도권의 크고 작은 건물을 지으며 배우 일을 이어갔다. 어떤 배역을 맡으면 공사장에서 만났던 형님과 동생들의 캐릭터를 주르륵 나열해 본다. 그리고 그 배역에 적합한 인물의 말투, 행동, 걸음걸이, 눈빛, 버릇을 되새겨 연기한다.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은 살아 있는 연기 교과서였다. 모범생이 교과서를 달달 외우듯 연기 꿈나무는 자연스러운 생활밀착형 연기를 위해 형님, 동생들과 친해져야 했다. 사무실에서는 묵묵하게 일했지만, 무명 배우로 살기 위해서는 친화력을 장착해야 했다. 그의 친화력은 공사장과 촬영장에서 단련된 거였다.
배우의 사연을 듣고 깨달았다. 빽빽한 프로필 사이, 어디에도 빈틈은 없었다. 배우로 살기 위해 카메라 앞에 서지 않는 시간은 더 좋은 배우가 되기 위해 단련하는 배우의 날들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경험만큼 좋은 선생님이 없다. 배우에게는 더더욱 경험이 중요하다. 평면적인 텍스트 속 대사를 하나의 캐릭터로 생명력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생생한 경험이 중요했다. 누군가에게는 때려치우고 싶은 공사장 일이, 무명 배우에게는 생활비를 버는 동시에 캐릭터 탐구를 하는 일종의 연기 연구소였다.
의욕에 비해 현실은 언제나 차갑다. 처음 카메라 앞에 서는 게 아닌데도 배우는 ‘그놈의 카메라 울렁증’ 때문에 세 줄 이상의 긴 대사를 한 번에 쳐내지는 못했다. 그래도 비교적 무난했던 촬영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메일로 왔던 배우의 프로필을 다시 펼쳤다. 왜 그 부분에서는 연기가 자연스러웠고, 어떤 부분에서는 어색했는지 이해됐다.
늘 신선한 얼굴을 찾는 클라이언트의 요구에 그 배우와 다시 만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래도 운이 좋아 어디선가 다시 만나게 된다면 오늘보다 더 능숙한 연기자가 되어 있을 거라 확신한다. 공백을 공백으로 흘려버리지 않고, 언젠가 찾아올 기회를 움켜쥐기 위해 부지런히 단련하는 사람이라면 분명 좋은 연기자가 될 테니까.
원문: 호사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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