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적으로 결혼에는 ‘날로 먹겠다’는 심보가 약간은 포함되어 있기 마련이다. 가령 상대가 너무 요리를 잘하면, 나는 요리를 못하더라도 상대가 차려주는 맛있는 음식을 날로 먹고 싶다는 마음이 약간은 있을 것이다. 상대가 너무 깔끔하면, 내가 조금 더럽거나 게을러도 깨끗한 집에 살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상대방이 재력이 뛰어나거나 벌이가 괜찮으면 그 경제적 이익을 나도 누릴 수 있겠구나, 하는 마음도 있을 법하다. 상대가 너무 성격이 좋아도 무언가 ‘날로 먹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나는 성격이 별로고 감정 기복도 심하지만, 상대방은 성격이 좋으니 내가 노력 안 해도 행복하게 살 수 있겠구나, 싶은 생각을 할 수도 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처럼 ‘상대의 것(돈, 능력, 성향 등)을 날로 먹고 싶다’는 마음도 몇 조각씩은 있기 마련이다. 두 사람이 평생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려면, 그렇게 날로 먹고 싶은 마음이 잘 맞을 필요도 있다. 나는 너의 요리 실력을 날로 먹되, 너는 나의 청소 실력을 날로 먹는다. 나는 너의 재력을 날로 먹되, 너는 나의 성품을 날로 먹는다. 물론 그쯤 되면 등가교환이 되는 셈이기도 하다.
그런데 막상 결혼을 해서 살다 보면, 날로 먹은 것들은 탈이 날 가능성이 높지 않나 싶다. 혹은 날로 먹을 줄 알았던 것이 날로 먹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기도 한다. 청소도 잘하고 요리도 잘하는 백점짜리 연인이라 생각해서 결혼했지만, 막상 결혼하고 보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혼자 살 때야 가능해도 같이 살면서는 반반을 요구할 수도 있고, 나랑 같이 게을러질 가능성도 있다.
더군다나 아이라는 ‘공동의 막대한 책임’이 생기기 시작하면 ‘반반’의 문제가 더 중대해진다. 결혼 전에는 아무리 깔끔한 완벽주의자도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는 너무 힘들어서 집안이 엉망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도 ‘너는 원래 깔끔한 걸 좋아하는 성향인 줄 알았는데 실망이야.’라고 말해버리면 무언가 심하게 잘못된 것이다. 함께 사는 삶에서는, 날로 먹고 싶었던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스스로 책임감 있게 노력해야만 하는 순간이 오고야 만다.
물론, 사람에 따라서는 유난히 이타적인 사람을 만난 유난히 이기적인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거의 없다. 대부분은 비슷한 사람들이 만나 비슷하게 주고받게 된다. 서로가 ‘각자’일 때는 서로에게서 ‘날로 먹으면 된다’고 생각했던 게, 서로가 ‘함께’가 되면 둘이서 함께 나눠서 하고 함께 나눠 먹어야 하는 일이 된다. 그래서 함께 사는 삶이란, 각자 사는 삶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가 된다.
함께 살면서 가장 좋은 마인드는, 나도 ‘다 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필요에 따라서는 내가 요리도 하고, 청소도 하고, 운전도 하고, 돈도 벌고, 아이랑 놀 수도 있고, 아이를 가르칠 수도 있고, 성품과 외모도 가꿔나가는 일종의 만능 로봇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좋다. 아니면 몇 가지는 내가 절대 못 하는 대신, 나머지는 완벽하게 하겠다는 합의를 확실히 하든지 말이다.
함께 살면 사실상 날로 먹는다는 게 환상이었다는 걸 알게 된다. 모든 것은 트레이드 오프 또는 등가교환이고, 날로 먹을 수 있는 건 없다.
원문: 정지우의 페이스북
이 필자의 다른 글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