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선호출기
호출 전용의 소형 휴대용 수신기. 수신기에 가입자 번호를 부여하여 그 번호를 누르거나 돌리면 부호화되어 신호 전파가 기지국을 통하여 발사되어 수신음을 내거나 숫자를 표시한다.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1. 반도체가 들어간 최초의 제품
무선호출기, 그러니까 삐삐는 1928년 보스턴의 순찰차에 장착된 것이 최초의 사용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 장치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찾기 어렵네요.
그로부터 약 20년 뒤인 1949년, 알프레드 그로스의 특허에서 삐삐는 다시 나타납니다. 바로 1년 뒤에는 상용화도 됩니다. 뉴욕에 있는 리브사운드 사(Reevesound Company)에서 의사들을 위한 무선 호출기를 판매한 것이죠.
1962년에는 벨 시스템이 시애틀 세계 박람회에서 벨보이 무선 호출 시스템을 선보이는데요. 이 장치는 트랜지스터, 그러니까 반도체가 소비자 제품에 들어간 최초의 장치이기도 했어요.
그리고 1964년, 모토로라에서 드디어 Pageboy 1이라는 이름으로 본격적으로 판매하기 시작했습니다. 한때 핸드폰으로 유명했던 블랙베리 사도 1990년대 삐삐를 만들던 회사였죠(당시 회사 이름은 ‘리서치인모션’이었습니다). 당시에도 QWERTY 키보드가 달린 제품으로 유명했죠.
2. KT의 첫 제품, 삐삐
국내 삐삐의 역사는 KT의 역사와 함께 시작됩니다. 1982년 기존의 체신부에서 통신 서비스를 담당하는 한국전기통신공사(KT의 전신)를 분리하게 되는데요. 그해 바로 한국전기통신공사에서 삐삐 250대를 도입합니다.
초기의 삐삐는 수신자가 서울에 있어야만 작동했습니다. 단말기 가격은 15만 원, 월 사용료는 1만 2천 원으로 당시 기준 상당히 비싼 가격이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약에 1,500여 명이 몰리며 약 8대 1의 경쟁률을 보였습니다.
처음에는 주로 관공서나 국회, 병원, IT기업 등에서 사용했는데요. 한 기업에서는 삐삐를 장착한 CS팀을 꾸려서 빠른 AS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사용했고, 외무부는 국장급 이상 간부들을 대상으로 삐삐를 의무적으로 차도록 제도화했죠.
3. 삐삐가 없었으면 SKT도 없었다?!
초기 삐삐는 디스플레이가 없었기 때문에 어디서, 왜 보냈는지는 알 수 없었어요. 그래서 미리 정해놓은 호출 대상에게만 신호를 보낼 수 있도록 했죠. 1986년이 되어서야 화면이 생기는데요, 화면에 호출한 사람의 번호를 표시하여 누구나 메시지를 보낼 수 있게 되었죠.
그러다 보니 기기 값이 20만 원으로 더 비싸졌지만 판매량은 급증하고, 많은 사람이 삐삐를 사용하게 됩니다. 1987년 서울과 부산에서만 서비스되던 삐삐는 88서울올림픽을 전후로 전국적으로 서비스되기 시작하게 되죠.
이전까지 한국전기통신공사에서 직접 판매 및 서비스하던 삐삐는 1988년부터 제조업체에서 자체 공급망을 활용해 판매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현대전자와 맥슨전자, 삼성반도체통신, 금성반도체, 한국모토로라 등 다양한 업체가 시장에 뛰어듭니다…만, 한국모토로라의 점유율이 65%로 압도적이었죠.
1982년에 보급된 삐삐는 1986년 3만 8천 명, 1988년 10만 명의 가입자를 돌파하게 됩니다. 이렇게 사용자가 급격하게 늘어나자 정부는 이동통신 서비스에 민간업체를 참여시키는데요. 동부, 쌍용, 코오롱, 동양그룹, 포항제철, 선경의 치열한 경쟁 끝에 최종적으로 선경이 이동통신 사업자로 선정됩니다. 바로 SKT의 탄생이었죠.
4. 012, 015 그리고 시티폰
1991년에는 가입자 수용량을 늘리기 위해 무선호출 전용망을 구축하는데요, 이때 별도 식별번호 012를 부여합니다. 이제 지역번호 없이 012 번호만 누르면 곧바로 호출할 수 있게 된 거죠.
한국이동통신의 012와 더불어 1993년에는 제주이동통신, 충남이동통신, 전북이동통신, 수도권의 나래이동통신과 서울이동통신, 부산과 경남에 부일이동통신, 충북의 우주이동통신, 대구와 경북은 세림이동통신이 015 식별번호를 부여받으면서 등장하게 됩니다.
삐삐의 전성기는 시티폰이 등장한 1997년부터인데요. 시티폰은 발신만 가능한 휴대용 전화기로, 삐삐로 호출받으면 시티폰으로 전화하는 식으로 많이 사용했죠. 나중에는 삐삐 기능이 들어있는 시티폰도 출시되었습니다. 이 시티폰은 City Phone으로 국내에 알려졌는데요. 사실 유럽에서 처음 등장했을 때 CT-2(Cordless Telephone)라는 명칭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CT폰이었다고 하네요.
잘나가던 삐삐는 90년대 말 휴대폰이 대중화되기 시작하면서 시티폰과 함께 몰락합니다. 삐삐 가입자는 1997년 1천500만 명에서 1999년 300만 명으로 줄어들죠. 게다가 IMF까지 겹쳐 대부분의 삐삐 관련 사업자들은 폐업했고, 2009년 리얼텔레콤이 폐업하면서 012 번호도 사라지게 됩니다.
5. 진동벨 부활
그렇게 완전히 사라질 것 같았던 삐삐는 의외의 곳에서 부활합니다. 바로 식당 및 카페에서 사용하는 진동벨로 말이죠. 이 진동벨은 1990년대 초 대기 손님이 다른 식당으로 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개발되었는데요, 정확히 누가 언제 개발했는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국내에서는 리텍에서 2004년 아웃백을 시작으로 베니건스,롯데리아 등에서 진동벨을 도입하기 시작하고, 2006년에는 카페에 공급하면서 널리 쓰이게 됩니다. 이 리텍은 1998년에 설립되었는데요. 원래 삐삐를 제조하던 회사였는데, 리텍의 대표 이종철 씨가 미국의 진동벨을 보고 개발에 나선 것이었죠. 2017년 기준 리텍은 국내 시장 점유율 80%, 세계 시장 점유율 20%로 세계 3위 진동벨 업체입니다.
원문: 사소한 것들의 역사
참고문헌
- 김문기, 「’삐삐’ 무선호출기(上)… 청약 가입했던 시절[김문기의 아이씨테크]」, 아이뉴스24
- 장은진 「삐삐 제조사에서 진동벨 1위 기업으로, 리텍의 변신」, 통계뱅크
- Jeffrey Selingo 「HOW IT WORKS; Coaster With a Message: Your Table Is Ready」, NY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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