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공동체가 책임져야 할 참사가 일어나니 또 여기저기서 베충이들이 튀어나온다. 이제 ‘베충이’란 말은 더 이상 일베 이용자만을 지칭하지 않는다. 당당하게 반사회성과 악의를 표출하는 자들에 대한 대유법이라 할 수 있다. 선의(善意) 그 자체를 혐오하는 이들이므로 나는 저들을 ‘악자(惡者)’라고 일컫고 싶다.
이 악자들은 으레 간주되는 것처럼 극우라고 보기도 어렵다. 극우 또는 집단주의는 뚜렷한 내집단/외집단 구분을 바탕으로 응집성과 통일성이 강한 사회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기 때문이다. 자주 반사회적으로 행동하며 구성원 간 선의의 기능을 부정하는 악자는 강력한 집단주의 사회에 적응하기 어렵다. 사실 보수적 교회가 오히려 집단주의에 가깝다. 그래서인지 일베충은 교회를 비롯해 종교에 대해서도 반감이 강하다.
2.
그럼 이 악자들의 근본적 특징은 무엇인가? 사회가 존속되기 위해 꼭 필요로 하는 선의를 싫어한다는 것이다. 겉으로는 과도한 정서 표현을 싫어하는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 자신들은 거리낌 없이 분노와 증오 같은 정서를 표출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감정을 자제한 채 논리적으로 사회적 의무를 설파해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들이 근본적으로 거부하는 것은 공감, 연민 같은 감정 이전에 타인에 대한 선의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선의의 표현 자체가 일종의 손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장기적, 사회적으로 봤을 때 선의는 손해가 아니며 공동체의 건전한 유지와 발전을 위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선의를 베푼다.
그런데 이 악자들은 그게 견딜 수가 없다. 자신들이 틀렸다는 방증이기도 하거니와 자신의 행동 양식을 부정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한 이들의 말과 행동이 자신들에게 직접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자신들을 공격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거리낌 없이 증오의 말들을 내뱉는 것이다.
3.
이들이 북한에 적대적인 이유도 투철한 이념적 성향 때문이 아니다. 북한에 대한 유화적, 협력적 정책에 깃들어있는 선의 자체가 싫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념과 무관한 난민 수용도 싫어한다. 그리고 지금은 중국을 적대하고 대만을 응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만약 대만인들에게 선행을 펼쳐야 할 일이 벌어지면 또 싫어할 것이다.
결코 일어나선 안 되는 일이지만 만약 대만이 침공당하면 상당수의 대만 난민이 한국으로 유입될 것이다. 그럴 때 저들이 대만인들을 환영하고, 대만 난민들을 위해 우리의 자원이 투입되는 것을 기꺼이 인정할까? 전혀 그러지 않을 것이다.
페미니즘을 싫어하는 것도 자신의 전통적 가치관과 충돌하기 때문이 아니다. 종교적 신념 때문이거나 여자와 남자는 역할이 다르다는 전통적 관념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냥 여성에게 선의를 베푸는 것이 싫은 것이다.
다른 사회적 약자, 예를 들어 아동이나 장애인, 성소수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이 악자들은 항상 저들이 약자나 피해자가 아닌 이유를 제시한다. 그런데 그걸 논리적으로 반박해봤자 소용이 없다. 왜냐하면 저들은 사회적 약자가 피해자가 아니어서 싫어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 선의 자체를 싫어하므로 설사 피해자가 맞는다 해도 베풂에 대한 반감은 여전하다.
4.
이들은 실제로는 패배자들이다. 그래서 다수의 선의가 사회를 움직이는 것을 목격할 때마다 굴욕감을 느낀다. 내부에 그런 뒤틀린 감정이 존재하므로 선의에 그렇게나 적대적인 것이다.
독재자 같은 역사적 악인들은 자신이 사회에 기여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으며 선을 추구한다고 여겼다. 그런데 소위 ‘베충이’라 불리는 악자들은 저런 악인들과도 또 다르다. 이들은 선의 추구 자체를 싫어하고 사회를 부정한다. 실로 순수한 의미에서 악, 악자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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