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말 PC통신 하이텔에서 봤던 사건이다. 한 여중생이 “군인은 월급도 안 받고 일해서 불쌍한 줄 알았는데 월급 받는다면서요? 쌩으로 고생하는 줄 알았더니…”라는 식의 글을 올렸다. 그 학생 아이디로 메일이 빗발쳤다. “그게 월급이냐? 얼마 받는 줄 알고 월급 받는다고 얘기하는 거냐?” 같은 내용들.
개념도 지식도 없는 중학생의 철없는 글이었지만 군필자들이 분노할 만한 글이었다. 그래도 당시 PC통신은 이후 DC 문화가 평정한 웹보다는 훨씬 점잖아서 주로 사실관계의 오인을 지적하며 훈계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그 여중생은 한 달에 만 원도 못 받는 줄도 몰랐다면서 사과의 글을 올렸다.
신기했던 건 그 정도 선에서 이해했다는 것이다. 설사 적당한 수준의 월급을 받더라도 그런 병영환경에서의 복무는 문제가 많다고 해야겠지만 거기까지 논의가 나아가진 않았다. 그냥 당연히, 어쩔 수 없이 갈 수밖에 없다는 게 대체적인 남자들의 생각이었고, 적어도 그렇게 끌려가서 고생한다는 점을 무시하진 말아 달라는 정도가 속내였다. ‘그래서 월급이 얼마나 적은가’는 남자들끼리도 별로 얘기하지 않았고, 여중생이 모를 만도 했다.
초기 우주인은 모두 군인이었다. 우주 비행선은 인간이 지내기에 여러모로 불편했고 개선이 필요했지만 불만 사항은 지상의 공학자들에게 잘 전달되지 않았다고 한다. 군인이었던 우주인들은 그걸 그냥 참고 감내해야 할 것으로 여기고 말하지 않은 것이다. 민간인도 참여하면서 ‘아니, 왜 이걸 이제까지 보고를 안 한 거야?’ 같은 개선점을 발견했다고 한다.
아마도 군필 기성세대는 저런 군인 출신 우주인 같은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불편과 피해를 묵묵히 감수하고 그 대신 우주에 갔다 왔다는 것만 인정받으면 된다는 마음 말이다.
그리고 지금 청년층은 민간인 출신 우주인이다. 청년들의 군대에 대한 불만이 징징거림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징징거리기 시작했다는 것 자체는 발전으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당연히 터져 나와야 할 불평불만이 터져 나오지 않았던 시기가 길었다. 그 불평불만이 차별과 배제를 정당화하기 위한 명분이 되어선 안 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 호소는 더욱 많이 나오고 다뤄져야 하는 것이다.
어찌 보면 청년층 여성 중심으로 페미니즘이 발흥한 것도 그들이 더 이상 불평불만을 묵과하지 않는 이들이기 때문일 수 있다. 엄마와 언니들처럼 묵묵히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버지와 형들처럼 묵묵히 견딜 수만은 없다는 청년층 남성도 여성과 같은 세대다.
중장년층 남성이 더 페미니즘에 우호적이더라도, 청년층 남성이 동년배 여성에 대한 적대감이 더 크다 하더라도, 청년 남성의 같은 세대는 청년 여성이다. 이해관계가 아닌 동질성 수준에서는 그들이 더 한편이며, 그들은 어찌 보면 같은 얘기를 하는 것이다.
다만 여자들이 먼저 자신들의 불평불만을 잘 얘기할 방법을 찾은 것이고, 그것의 민주적 수용까지 모색하고 있다. 남자들은 불평불만을 토로하는 욕망은 찾았으나 아직 그걸 어떻게 전달해야 하며, 민주적으로 수용되게 할지 찾지 못하고 있다.
징징거리되 어떻게 잘 징징거릴 것인가가 문제다. 그리고 민주주의와 인권의 후퇴가 아니라 우리 공동체의 자유와 평등을 증진하는 방향으로 징징거려야 한다. 우주선이 불편하니 타지 말자고 하거나 불편을 감수할 군인만 타자고 하는 게 아닌, 우주선을 더 편리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앞서 나간 이들이 갔던 길로부터 배워나가면서 말이다.
원문: 임현규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