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는 패전의 길로 가고 있다. 만약 핵무기까지 푸틴이 사용한다면 단순한 패배가 아니라 러시아 연방까지 해체될 수 있다. 이번 전쟁에서 푸틴은 형편없는 전쟁 수행 능력을 보여주었다. ‘바보 이반’ 푸틴과 ‘전쟁의 신’인 칭기즈칸을 비교해보자.
“전쟁의 명분은 충분히 갖추었는가?”
몽골 초원을 정복한 칭기즈칸은 1211년 마침내 중국으로의 원정 전쟁에 나선다. 전쟁에 앞서 칭기즈칸은 몽골고원에 쿠릴타이(일종의 간접 민주주의)를 개최한다. 칭기즈칸은 몽골 선조 중 한 명인 제2대 암바가이칸을 기리는 제사를 한다. 금나라는 암바이칸을 유괴하여 사로잡아서 목마에 못 박아 목숨을 잃게 한 민족의 원수였다. 분노한 초원의 병사는 만장일치로 전쟁에 찬성한다.
그렇지만 칭기즈칸은 이를 거부한다. 그는 하늘의 뜻을 물어보겠다고 하고 신성한 부르칸산으로 올라간다. 칭기즈칸은 영리한 늑대였다. 고작 2~3만에 불과한 몽골 연합군으로 당시 중국 대륙의 절반을 차지한 100만 금나라 군과 싸우기 위해서는 명분과 사기가 필요했다. 초조하게 거의 일주일을 기다리는 전사들 앞에 나타난 칭기즈칸은, 푸른 하늘이 전쟁을 명령했고 몽골군은 승리한다는 신탁을 받았다고 증언한다. 물론 개뻥이다. 그렇지만 초원의 전사와 민중은 이를 믿고 만리장성을 넘어 결국 금나라와 송나라를 정복한다. 전쟁에서 명분과 사기는 이만큼 중요하다.
푸틴을 보자. 그는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에 앞서 침략을 절대 비밀로 했다. 물론 미국 방첩망이 다 알고 있었지만, 그는 병사는 물론 장군들도 속였다. 영문을 모르는 병사들이 명령을 받고 우크라이나 영토에 들어섰을 때 그들은 왜 전쟁을 해야 하는지 몰랐다. 보급이 떨어지고 전황이 불리해지자 러시아군은 일제히 도주했다. 왜 싸워야 하는지를 모르는 병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자신의 목숨이기 때문이다.
“병사들의 사기를 끌어올렸는가?”
1221년, 칭기즈칸의 군대는 중국 만리장성에서 장강 북쪽을 다 차지했다. 이제 양쯔강을 넘어 송나라를 쳐야 하는데 불행히도 몽골군에게 해군이 없었다. 무엇보다 몽골군은 중국 남방의 습한 기후에 지쳐 떨어졌고, 게다가 말을 살찌울 수 있는 초지가 없었다. 칭기즈칸과 유목부대는 후덥지근한 중국을 벗어나 새로운 건조지대를 정복 목표에 추가했다. 그것이 바로 중앙아시아다.
칭기즈칸은 푸틴처럼 무턱대고 중앙아시아를 쳐들어가지 않았다. 그는 먼저 상대의 반응을 보았다. 100여 명의 교역 사절단을 중앙아시아의 점령자인 호레즘 샤에게 보냈다. 그런데 몽골군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모르는 호라즘 제국의 샤는 이 사절단을 죽여버렸다. 칭기즈칸이 사과를 요구하는 전령을 보냈으나, 겁대가리를 상실한 샤는 전령들의 수염을 깎아 돌려보냈다. 당시 수염은 남자의 상징과도 같은 것이어서 이를 깎는다는 것은 거세와 비슷한 굴욕이었다.
사절단이 몰살당하고 전령들이 수염이 깍여 돌아오자 칭기즈칸은 속으로 웃었을 것이다. 전쟁의 명분을 찾은 것이다. 먼저 칭기즈칸의 장군들과 보르지오 가문이 들고 일어섰다. 이런 모욕을 참을 수 없다는 것이다. 다시 초원에서 쿠릴타이가 개최되었다. 칭기즈칸은 분노하며 외쳤다.
사절단을 죽이고 전령들의 수염을 깍은 것은 나에 대한 모욕이자 대몽골 제국에 대한 모욕이다. 푸른 늑대들이여!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결론은 보나 마나다. 이미 정복자 칭기즈칸의 권위는 하늘을 뒤엎고 있었다. 신보다 위대한 칭기즈칸에 대한 모욕은 쿠릴타이에 참여한 모든 전사들에 대한 모욕으로 간주되었다. 중앙아시아에 쳐들어간 몽골군은 반항하는 적에게 용서를 베풀지 않았다. 왜냐하면 자신이 모욕을 받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20만 원정군이 하나가 된 몽골군은 지리적 이점을 가진 40만 병력의 호라즘 제국을 무너뜨렸다. 만약 이러한 과정을 거치지 않고 그냥 전쟁을 벌였다면 유목 전사들은 그렇게 열심히 싸우지 않았을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군은 분열되었다. 이 전쟁에 동원된 대부분 병사는 러시아 시골의 이민족 출신이다.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잘난 루스키들은 전쟁과 무관하게 축제를 즐기고 일상생활을 영위했다. 자신이 왜 싸워야 하는지 모르는 러시아 병사들은 도시의 루스키를 증오했고 자신을 이 바닥에 몰아낸 푸틴을 원망했다. 러시아 병사들은 칭기즈칸군과 달리 하나가 아니라 용병에 불과했다. 러시아군은 전황이 유리하면 약탈에 나섰고, 전황이 조금이라도 불리하면 도망갔다.
병참과 무기가 중요한 현대전이라고 하지만, 병사들의 사기를 고려하지 않으면 백전백패라는 것이 베트남전과 아프간 전쟁의 교훈이다. KGB 출신의 푸틴은 전쟁의 기본을 몰랐다. 총동원령을 내리든 핵무기를 쓰던 이번 전쟁에서 러시아의 패배는 불가피하다. 러시아는 전쟁의 명분이 없었고, 푸틴과 병사들은 하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반면 죽을 때까지 문자도 모르고 전략 교과서인 삼국지도 알지 못한 칭기즈칸은 누구보다 전쟁의 명분과 병사들의 사기를 중시한 탁월한 정치인이었다. 클라우제비츠가 ‘전쟁은 정치의 연장’이다고 한 말은 푸틴과 칭기즈칸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원문: 윤성학의 브런치
함께 읽으면 좋은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