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he Washington Post에 Anton Troianovski가 기고한 「The Putin Generation, Young Russians are Vladimir Putin’s biggest fans」를 번역한 글입니다.
대학생 예카트리나 마메이는 시내 버스로 등교하는 시간을 활용해 스마트폰으로 독립 매체의 기사를 훑어봅니다. 러시아의 권위주의 정부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기사를 보면서 역설을 느끼죠. 러시아의 “푸틴 세대”라면 누구나 직면하는 역설입니다. 졸업 후 언론인을 꿈꾸는 예카트리나는 자국의 언론이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럼에도 지난 3월 18일 선거에서 푸틴에게 표를 던졌을 겁니다.
러시아의 혼은 나라에 짜르처럼 강력한 정치인이 있기를 바랍니다.
푸틴이 정권을 잡은 지도 어언 18년, 예카트리나 또래의 젊은이들은 푸틴 이전의 러시아를 알지 못합니다. 일부는 반정부 시위에 나선 경험이 있지만, 대다수의 젊은이들이 자라나면서 푸틴을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것이 사회학자들의 분석입니다. 설문조사 결과를 보아도 젊은이들의 푸틴 지지세는 사회 평균을 상회하죠.
KGB 출신의 65세 정치인 블라디미르 푸틴은 네 번째 임기를 시작했습니다. 그가 혼란스러운 신생 민주국가를 권위주의 체제로 굳힐 수 있었던 비결은 언론과 사법부를 단단히 장악한 덕분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대다수의 러시아인들이 그를 지지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푸틴의 정적들조차 인정할 수 밖에 없는 부분입니다.
지난 연말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러시아 성인들 가운데 푸틴을 지지한다는 사람은 전체 응답자의 81%에 달했습니다. 18-24세에서는 지지율이 86%였죠. 인터넷을 통해 역사상 가장 많은 외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세대가 바로 푸틴의 권위주의 정부를 든든히 뒷받침하는 겁니다.
러시아의 청년들은 푸틴의 반대파 탄압에 천착하는 대신 인터넷 사용, 해외 여행, 열린 구직 시장 등에서 개인적인 자유를 만끽합니다. 국영 TV를 프로파간다 방송으로 치부하면서도 “미국에 맞설 강한 러시아가 필요하다”는 국영 매체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죠. 위기의 1990년대나 소비에트 시절 같이 경험한 적 없는 시절에 대한 집단적인 두려움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지난 해, 유튜브 상의 비리 폭로 영상을 중심으로 푸틴의 정적 알렉세이 나발니를 지지하며 시위에 나섰던 청년들이 헤드라인을 장식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를 아랍의 봄과 같은 대규모 안티 푸틴 운동의 전조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죠. 급진적인 변화를 원하는 사람들의 수가 충분히 많지 않고, 서구의 환상과 달리 가장 보수적인 세대가 바로 청년 세대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입니다.
카자흐 국경 지대의 인구 30만 도시 쿠르간에 사는 청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 현상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대선에서 희망, 체념, 공포가 뒤섞인 마음으로 푸틴을 찍겠다고 결정한 이들입니다. 이들이 어른들로부터 들은 1990년대 이전은 그야말로 극단적인 혼란과 폭력의 시대입니다. 버스나 극장에서 누군가 내 자리에 앉았다는 이유로 사람을 때려 죽이던 시절이죠.
예카트리나의 아버지는 자신의 어머니에게 “나는 어머니보다 잘살았고, 내 딸은 나보다 더 잘살기를 원한다”고 말합니다. 예카트리나의 소원도 바로 이것입니다. 언론인을 꿈꾸는 예카트리나는 정부에 비판적인 독립 언론 매체를 팔로우하며, 국영 매체는 프로파간다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언론이라는 게 세상 어디나 그런 거 아닌가요. (국영 매체는) 우리가 미국에 대해 나쁘게 생각하길 원하겠지만, 미국 언론은 또 러시아를 나쁘게 그리겠죠.
예카트리나는 억압된 언론 환경을 푸틴의 탓으로 돌리는 대신, 체제 안에서 경력을 쌓을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지역의 청년 푸틴 팬클럽에 가입해 언론 사무장 역할을 맡은 것입니다.
18세의 청년 사업가 드미트리 샤부로프는 처음 시골에서 쿠르간으로 왔을 때만 해도 스시와 피자 배달, 택시 운전으로 생계를 꾸렸지만 지금은 “크라우드 투자” 사업을 차렸습니다. 앞으로는 모스크바 진출도 계획하죠. 드미트리도 서구 국가들에 비해 러시아에서 개인의 자유가 제한적이라는 사실을 인지합니다. 그럼에도 지금 누릴 수 있는 자유에 집중하고 싶다는 입장입니다.
그는 원하는 직업을 택할 수 있고, 세계 어디든지 갈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그도 나발니의 폭로 비디오 내용과, 반정부 시위에 참여한 “할머니와 아이들”이 끌려가는 모습에 분노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중대한 시기에 검증되지 않은 나발니 같은 정치인을 중요한 자리에 올릴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변화를 추구하다가는 나라가 무너질 거예요. 과거를 돌아보면 현상 유지가 낫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과거에는 상황이 지금보다 더 나빴고, 언제든 다시 그렇게 나빠질 수 있다’는 두려움은 푸틴 세대가 공유하는 정서입니다. 작년에 대학생 6,000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응답자의 대부분이 부모세대에 비해 자신들이 더 많은 기회를 누린다고 느끼지만, 동시에 불확실한 미래와 세계 전쟁의 위협을 우려하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러한 정서가 현상 유지를 단단히 뒷받침한다는 것이 연구진의 분석입니다. 같은 연구에서 응답자의 47%가 푸틴에게 투표하겠다고 답한 반면, 2위 후보인 나발니를 지지하는 학생은 2%에 그쳤죠. 자신이 기억하는 인생 전부를 푸틴 치하에서 보냈고 그 삶이 나쁘지 않았는데, 새로운 지도자가 들어서면 삶이 어떻게 달라질지 모르니까요.
연출가를 꿈꾸는 파벨 리빈은 쿠르간의 동네 극장에서 파트 타임으로 일합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지붕에 난 구멍 때문에 눈과 죽은 새가 바닥에 잔뜩 떨어지곤 했지만, 푸틴이 실시한 지역 발전 프로그램 덕분에 극장도 리모델링을 거쳐 근사한 공간으로 거듭났죠. 빨간 뿔테 안경에 보우타이를 맨 멋쟁이 청년은 푸틴의 가장 큰 업적이 우크라이나 전쟁이 러시아로 번지는 것을 막아낸 것이라고 말합니다.
지금은 훌륭한 군대가 국경에서 러시아를 안전하게 지켜주죠. 다른 사람이 대통령이 된다고 해도 그게 유지되리란 보장이 있을까요?
러시아보다 훨씬 작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안보에 위협이라는 주장은 서구인들에게 우습게 들리지만, 국영 TV의 이러한 주장을 파벨은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는 2016년 미국 대선에 러시아가 개입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도 없다고 말합니다.
영국이 러시아 대선에 개입한다는 얘기는 들어봤어요. 왜 그런지는 모르지만요.
젊은이들의 푸틴 지지 성향에 대해서는 다른 해석도 있습니다. 지역 대학에서 언론학을 가르치며 국영 방송국에서 일하는 알렉세이 데도프는 젊은이들이 단순히 또래와 어울리기 위해 푸틴을 지지한다고 말합니다.
지금의 트렌드는 애국주의거든요. 하지만 트렌드가 바뀌는 순간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예요.
하지만 러시아 청년들의 현상 유지에 대한 선호는 단순히 대통령 선거에서 푸틴을 지지하는 것 이상입니다. 예카트리나와 드미트리, 파벨과 같은 젊은이들의 눈에 크렘린의 오랜 전략인 “관리 민주주의”는 잘 작동하니까요. 러시아에 언론의 자유가 있냐는 질문에 파벨은 TV의 시사 프로그램을 예로 듭니다. 패널로 출연하는 언론인과 정치인들이 서로에게 욕설을 퍼붓지만 아무도 푸틴을 비난하지는 않는 프로그램들이죠.
사람들이 온갖 미친 소리를 다 하잖아요. 그러니까 언론의 자유가 있는 거죠.
쿠르간의 나발니 지지자들 역시 대부분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청년입니다. 그들의 눈에 푸틴 지지자들은 “현상 유지”가 실제로는 “현상 악화”라는 사실을 외면한 채 눈가리개를 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죠. 경제 성장은 둔화되고, 대선 후 정치 탄압은 더욱 심해질 거라고요.
그럼에도 평생 푸틴 말고 다른 대통령을 가져본 적이 없는 드미트리는 미지의 세계로의 이동을 상상할 수 없습니다.
피델 카스트로의 쿠바 같을 거예요.
원문: 뉴스페퍼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