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IT기업 BASH의 새 스마트폰 프레젠테이션 현장. 전 세계인이 쓰는 스마트폰 ‘Bashlife ver 14.3’의 핵심기능은 사용자의 생체반응으로 감정을 읽어내 솔루션을 제공하는 것이다. 슬픔과 우울함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 감지되면 이를 해소할 컨텐츠를 즉각 띄운다. 아래처럼 말이다.
너는 내 가장 친한 친구야♪
강당에 3~5살 아기의 목소리가 단순하게 반복되는 배경음악이 울려 퍼진다. 영상 속엔 작고 귀엽고 어딘가 억울하게 생긴(그래서 더 귀여운) 흰 강아지가 닭에게 업혀 다니는 짧은 클립이 뜨고, 사람들은 환호한다.
SF 영화 〈돈 룩 업〉(디카프리오, 제니퍼 로렌스 주연)에 나오는 장면이다. 일론 머스크를 떠올리게 하는 억만장자 CEO가 영상을 보며 아기의 목소리에 맞춰 더덩실 춤을 추는 이 장면이 무척 기괴하게 느껴졌는데, 한편으로는 오싹했다. 이건 과연 현실과 먼 이야기인가?
SNS 피드를 둘러보면 강아지 고양이 영상이 가득하다. 10초 내외 짧은 클립이 그저 귀엽다는 이유로 전 세계로부터 몇백만 개의 좋아요와 댓글을 받는다. 핸드폰은 스마트하라고 발명되었는데, 사용자는 귀여운 영상을 보는데 많은 시간을 쓴다. 우리는 왜 이렇게 귀여운 것에서 눈을 못 떼는 걸까?
귀여움은 우리에게 확실한 보상을 준다
귀여움의 심리학에 대해 노벨상 수상자이자 동물행동학을 만든 콘라트 로렌츠(Konrad Zacharias Lorenz)를 선두로 진화학자들은 답을 찾았다. 포유류의 아기는 세상 밖에 나온 직후 오랫동안 보살핌을 필요로 한다. 진화상 사람은 아기처럼 생긴 것을 보면 사랑을 느끼는 호르몬 ‘옥시토신’과 기분이 좋아지는 호르몬 ‘도파민’이 나오게 된다. 이런 감정은 대상을 보호하고 돌보고 싶은 욕구와 이어지게 되어 있다.
그러면 고양이는 왜 귀엽나?
하지만 우리는 아기만 귀여워하는 것이 아니다. 귀여움을 느끼는 센서가 생각보다 까다롭지 않은 탓이다. 일반적인 아기의 특징(신체 비율 큰 머리, 큰 눈, 짧은 얼굴, 큰 이마, 어설픈 행동 등 )에 가까울수록 우리는 귀여움을 느끼는데, 이를 ‘베이비 스케마(Baby schema・유아도해)’라고 부른다. 덕분에 우리는 아기와 비슷한 것에 모두 귀여움을 느낄 수 있다. 캐릭터, 강아지와 어린 고양이, 장난감 등등.
카카오 뱅크 카드가 출시 이후 폭발적인 인기를 끌자 많은 카드사들이 그 인기 이유를 분석하려고 달려 들었다. 그러나 실무자는 ‘카카오프렌즈가 귀여워서’ 카드를 발급했다는 설문조사 결과를 차마 윗선에 보고할 수 없었다는 이야기가 돌기도 했다. 카더라지만 그럴싸하다. 귀여운 것을 보면 뇌에 확실한 보상이 이루어지는 만큼, 복잡한 카드사 혜택보다 귀여운 캐릭터가 더 중요한 선택 요건이 되었을 수 있는 것이다.
귀여움의 힘이 전략이 될 수 있을까
우리가 귀여운 영상에 눈을 못 떼는 사이 어플에 갖다 바친 시간은 그들의 돈이 된다. 카카오뱅크의 성공은 그동안 카드 혜택 설계에만 공을 들인 다른 카드사를 힘 빠지게 했을 수도 있겠다.
우리는 카카오톡 이모티콘을 고를 때 아름다움이나 표현의 정확성을 바라지 않는다. 흰 얼굴에 점 세개로 요약되는 눈코입, 종종 빼뚤빼뚤한 선으로 만들어 낸 어딘가 엉성한 느낌까지, 귀여우면 구매 버튼을 누른다. (제가 그렇습니다)
이렇게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듯 생물학적인 귀여움은 인간 정신을 쏙 빼놓는 힘이 있다. 단순하지만 강력한 법칙이다. 알아놓는다면 언제든 무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원문: 김연수의 브런치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온몸을 녹이는 귀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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