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베르크하인Das berghain이라고 알아?”
내가 베를린에서 한 달을 살기로 했을 때, 이미 베를린을 다녀온 사람들은 내게 이 이름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베르크하인, 베억하인, 벨카인. 한국 음가로는 다양하게 불리는 이곳은 무려 세계 클럽 랭킹 1위에 등극한 곳이다. 누구라도 호기심에 가보고 싶어 지지만, 안타깝게도 베르크하인 악명의 팔할은 엄청나게 뚫기 힘든 입장 방식 때문이다.
The most exclusive nightclub in the world
까다롭게 외모로 가린다고 오해할 수 있지만, 베르크하인의 입장기준은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더 골치 아프다. 오직 저 도어맨의 고갯짓에 그날 밤 우리의 운명이 결정된다. 끄덕이거나, ‘Not today’라며 돌려보내거나. 누가 왜 들어가는지, 스스로 들어가고도 내가 어떠한 이유로 통과했는지 알 길이 없다. 오히려 화려하게 꾸밀수록 들어가기 힘들다는 설이 그나마 신뢰감이 있다.
입장 확률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체감 50% 정도. 그나마 베를린 현지인에게 훨씬 유하고, 외국인이 들어갈 확률은 매우 낮다고 한다.
보통 2~3시간은 기본으로 줄 서야 하는데, 아마 그 시간이 지루하지는 않을 것이다. 내 앞으로 100m는 족히 넘어 보이는 줄이 엄청나게 빠르게 사라지기 때문이다. 원근법에 따라 엄지만 하게 보이는 사람들이 가을 은행 떨어지듯 후두둑 후두둑 거부당해 돌아온다. 그들의 울상 된 표정을 보니 곧 내게 닥칠 심판의 순간이 무섭기도 하고 기분이 묘했다.
대체 어떤 곳인데?
세계 최고의 테크노 클럽이자, LGBT의 성지. 베르크하인을 수식하는 키워드는 크게 두 가지다. 사실 클럽 카테고리에 속할 뿐 일반적인 클럽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모든 사진이 금지되어있기 때문에 구글에 쳐도 내부 사진은 드물다. 입장하면 핸드폰 카메라에 어마어마한 접착성의 스티커부터 붙여준다. 그나마 떠도는 몇 장도 특별 공연할 때 찍은 사진인지 분위기가 실제와 많이 다르다.
베르크하인을 다녀온 사람들에게 후기를 물어보면 모두 비슷한 특징이 있다.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고, 제대로 묘사를 못 하는 자신에 탄식하며, 궁금하면 무조건 가보라는 이야기. 하지만 맘에 들지 않을 수 있다는 경고까지.
매드 맥스였다. 아니면, 악마를 숭배하는 신전은 이런 모습일까? 기적적으로 들어가자마자 친구와 탄식을 쏟아냈다.
내 눈앞을 건물 1.5층 높이의 흰 석고상이 막고 있었다. 너무 커서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 그것을 빨갛고 파란 조명이 쏘아댔다. 그 위로는 위층 스테이지에서 벌써 조명과 음악이 흘러나왔다. 이 5층 건물 전체가 노출 콘크리트와 철근으로 미로처럼 설계되었다. 초행자라면 자신이 어딨는지 조차 알기 어렵다.
살면서 듣지도 보지도 못한 광경이라 아드레날린이 마구 솟구쳤다. 귀에서 심장 소리가 들렸다. 미로로 된 길을 걷는데 마치 서든 어택에서 매복하던 장면이 떠올랐다.
베르크하인 안에는 스테이지가 세 개, 바가 네다섯 개에 아이스크림 가게까지 있다. 공간만으로도 엄청난 충격이었다. 게다가 거대한 콘크리트 공간을 뭉게뭉게 흰 연기가 가득 채우며, 이 공간을 압도하는 훌륭한 스피커까지.
독일의 기술력이란 이런 것일까. 테크노 음악의 강력한 베이스가 몸을 쥐고 흔드는 탓에 클럽을 나와서도 나는 한동안 귀가 멍했다.
홀린 듯 춤을 추고 있는 이들을 보고 있자니 가장 흔한 복장은 남자는 팬티에 가죽 가터벨트, 여자는 검은색 수영복이었다. 내가 갈 때는 겨울이라, 아까 분명 밖에선 다들 검고 칙칙한 아우터를 입고 있었다. 모두 안에는 이런 옷을 숨기고 있었구나, 헛웃음이 났다. 전체가 물렁한 가죽으로 되어 징 박힌 화장실 문이 신기해 한참 쳐다봤다.
한쪽에선 쇠사슬로 매단 거대한 철판 그네가 흔들리고 있었고, 그 위엔 다국적 젊은이들이 공원 잔디밭처럼 편하게 누워있다. 그런데 다른 쪽에선 60대 노인이 엄청나게 기이한 자세로 요가를 하고 있다. (내가 꿈을 꾸는 건가?)
“This is real Berlin!”
나잇대도 연령도 의상도 모두 엄청나게 다양했다. 중년의 남여도 몇 있었고 거의 집 옷처럼 편한 옷을 걸친 사람도 보였다. 도어맨이 날 입장시켜준 이유는 이 공간의 다양성을 맞추기 위해서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어떤 이가 동양 여자애가 신기했는지 갑자기 여기(베를린) 사냐고 물어왔다. 나는 사실 투어리스트야, 하며 멋쩍게 웃자 그 애는 활짝 웃으며 축하해주고는 외쳤다.
This is real Berlin!
흔히 베를린을 ‘다양성이 존중되는 도시’라고 한다. 그 애가 한마디를 던지자 갑자기 모든 게 퍼즐처럼 짜맞춰지는 느낌이었다. 다양성 존중에 대해 글로만 보고 자라온 나는 상상 이상의 무언가를 이곳에서 보았다.
베르크하인에 대해 들은 이는 간혹 ‘난잡한 곳’ 아니냐며 눈썹을 찌푸리는데, 나는 일반 클럽보다 훨씬 안전하다고 느꼈다. 물론 성에 대해 개방된 공간이지만, 동시에 개인의 의사가 존중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대화나 터치가 절대 함부로 이루어지지 않고, 누군가 호감의 눈빛을 건네더라도 ‘no’라고 의사표현을 하면 상대는 유쾌하게 물러난다.
평소에 성이 억압되지 않은 문화라 가능한 일이라 생각한다. 하긴 낮에 남녀혼탕에서 휴식을 취하고, 햇살 좋은 날 공공장소에서도 쉽게 벗는 문화인 Nudism이 일상화된 도시에서, 클럽이라고 갑자기 돌변해 난폭하게 놀지는 않으리라.
반면 누군가 베르크하인을 추천하냐고 묻는다면 그건 단호하게 아니라고 답하겠다. 워낙 하드코어한 정체성이 뚜렷한 곳이라, 내부 문화와 분위기에 대해 충분히 알고 가지 않으면 즐기기 어렵다. 몇 시간을 걸려 애써 들어가놓고 금요일 밤의 흥이 깨져버리면 아깝지 않은가. (세시간 줄 서서 한 시간 만에 도망쳐 나왔다는 글도 읽었다) 물론 나처럼 호기심 덩어리거나, 지구촌의 문화 스펙트럼에 관심이 많은 이라면 한 번쯤 도전해봐도 좋을 듯.
‘벨카인’이 원래 발음과 더 가깝지만, 한국 검색어는 베르크하인이 더 많이 쓰여 베르크하인으로 적었습니다.
원문: 김연수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