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팬 사이에 회자되던 내기(?)가 있었습니다. 국내에 애플페이가 들어오는 게 먼저냐 통일이 먼저냐인데요. 오죽이나 안 들어올 것 같으면 이런 내기가 다 생겼을까 싶습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니 통일이 먼저면 좋았을 텐데, 이 논쟁의 종지부를 찍을 때가 오는 듯합니다. 애플페이가 국내 출시될 거라는 뉴스가 연일 나오고 있거든요. 꽤 구체적으로요.
어느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시작되었던 루머는 시간이 흐르면서 각종 언론의 확정 보도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루머의 내용은 VAN 사들이 현대카드의 요청으로 애플페이 결제를 준비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는데요. 자고 일어나면 후속보도가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 VAN : 가맹점에 단말기를 놓고, 카드사까지 공중망을 통해 연결해주고 수수료를 받는 회사입니다.
현재까지 보도된 내용은 이렇습니다.
- 6개 VAN사가 현대카드와 협력 중이라더라 (파이서브, 나이스 정보통신, 한국 정보통신, KIS정보통신, KG이니시스, KSNET 라고 꽤 자세히 회사명까지 보도되었습니다)
- 12월부터는 사용 가능할 거 같다 (어디서는 11월이라고도 보도합니다)
- 현대카드가 1년간 독점적으로 먼저 한다. (그 이상이라는 의견도 왕왕들립니다)
- 코스트코, CU에서 시작, 이후 약 60개 프랜차이즈에서 가능할 것이다. (코스트코는 현재도 현대 독점이니 언급될 테고요. 편의점이나 다른 대형가맹점은 NFC 단말이 있으니 나오는 이야기일 겁니다)
- 현대카드는 NFC 단말기 도입 및 서비스 구축비용의 최대 60%를 지원할 것 (진위가 제일 궁금한 부분입니다. 이유는 뒤에)
- 온라인 결제 도입도 병행할 거다 (사실 이게 더 쉬우니 맞을겁니다)
- 기존에 나왔던 현대카드 전체에서 되는 게 아니라 전용카드 상품을 출시할 수도 있다 (카드사의 수익성 보전 차원에서는 있을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자꾸 후속보도가 나오니 기정 사실화되는 분위기입니다. 아니땐 굴뚝에 연기 날까요, 진짜 나오긴 하려나 봅니다.
생각해 보면 참 오래 걸렸습니다. 애플페이가 나온 게 2014년인데 지금에야 출시된다니 말이죠. 2가지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1. 낮은 NFC 결제 인프라 보급률
많은 기사에서 나왔던 이야기입니다. NFC 결제가 가능한 단말기는 대형마트나 편의점에서나 보이지, 쉽사리 보기 어렵습니다. 국내 가맹점수는 연중 개폐업을 반복하기에 대충 280~330만 사이로 집계되는데요. 이중 6~7만 개 정도에만 NFC 결제기가 깔려 있습니다.
카드사나 VAN사가 NFC 결제기 도입을 여러 번 시도했습니다만, 여신전문금융업법의 가맹점 부당지원 항목 때문에 불발되곤 했습니다. 과거에 대형가맹점에 리베이트를 제공하는 악습이 빈번하다 보니 지원이 금지된 건데요. NFC 결제 단말기를 무상으로 준다면 이 또한 부당지원으로 해석될 여지가 생깁니다. 무려 5년 이하 징역이나 3,000만 원 이하 벌금입니다.
언론 보도처럼 현대카드가 막대한 비용을 들여서 한다면 대체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정말 궁금합니다.
2. 없다가 생기는 수수료들
국가별로 애플페이를 도입한 카드사에게 애플은 추가로 수수료를 받아왔습니다. 카드 플레이트 비용을 절약할 수 있는 무카드 거래 (CNP, Card Not Present)이니 받겠다는 것이었죠. 사용액 기준으로 미국은 0.15%, 중국은 0.03%, 이스라엘은 0.05% 정도를 카드사에서 받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정부 주도로 가맹점 수수료가 많이 낮아진 상황입니다. 특히 영세가맹점의 경우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가 최저 0.8% 일 정도로 낮습니다. 카드사 입장에서는 얼마 안 되는 돈 받아서 VAN사에게 떼주고 추가로 애플에게도 줘야 한다는 말입니다.
카드사로선 완전히 새로운 비용이 발생하는 것이니 싫을 수밖에요. 대비되는 삼성 페이는 현재 이런 항목을 안 받고 있으니 더 그럴 거고요. 우리나라가 중국만큼 규모가 되는 것도 아니니 미국 수준으로 받을 듯한데, 비용이 부담스러울 겁니다.
수수료 이슈는 또 있습니다. 애플페이는 NFC 결제 국제표준규격인 EMV 규격을 지원합니다. 이 표준을 따르게 되면 별도의 수수료를 내야 합니다. (사용액의 1% 전후일 거라는 설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국내에서는 KLSC (Korea Local Smart Card)라는 독자 규격을 신설했습니다.
혹자는 독자화로 인해 갈라파고스 되는 걸 염려하는데요. 국부유출을 막자는 의미도 있으니 마냥 부정적으로 볼 건 아닙니다. 애플페이가 국내 환경에서 구동되려면 EMV수수료를 내거나, 애플페이 결제 규격에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이 부분을 기술적/사업적으로 어떻게 처리했을지가 관전 포인트입니다.
자, 이러한 문제들을 넘고 넘어, 애플페이가 국내에 도입된다면 어떨까요? 정말로 결재판을 바꿀 태풍이 될까요? 그랬으면 좋겠지만 저는 꽤 부정적입니다. 다음의 이유 때문입니다.
① 국내 아이폰 사용자 비율은 22%라고 합니다.
2022년 7월 갤럽에서 스마트폰 사용도 조사를 했습니다. 971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이므로 오차는 있겠지만, 아이폰 사용자는 전체의 20% 였고요. 사용자 중 18~29세가 52%, 30대가 42%였습니다. 좀 더 찾아볼까요? 카운터 포인트 리서치의 자료에 따르면 22년 1분기 기준 국내 아이폰 점유율은 22%라고 합니다.
22%의 사용자가 모두 사용하는 것도 아니겠죠. 젊은 층에서 주로 쓴다고 가정하면 예상 고객은 더 줄어들 겁니다. 카드사가 도입을 주저해왔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② 애플페이는 결제의 수단일 뿐, 돈을 더 쓰게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아이폰 유저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지만, 애플페이가 들어왔다고 해서 한 번 결제할 건을 두 번 결제하게 되진 않습니다. 즉 전체 결제 시장의 파이가 커지는 효과는 크지 않을 거란 말이죠. 신기하고 즐거운 경험이지만 그건 그거고, 내가 사야 할 서비스와 재화는 정해져 있습니다 (그리고 통장 잔고도 정해져 있…ㅠㅜ)
그러니 애플페이 도입 이슈로 VAN사 주가가 폭등하는 것은 좀 희한한 현상입니다. 결제 건수가 늘고 금액이 커져야 VAN사 수익에 도움이 되는 것인데 말이죠. 물론, 대형가맹점에서 2곳 이상의 VAN을 동시에 사용하는 경우가 꽤 있기에 이런 경우는 애플페이를 지원하는 VAN쪽으로 물량이 더 갈 수는 있겠지만… 크게 유의미할진 모르겠습니다.
애플페이는 일종의 수저 같은 겁니다. 포크로 먹던 수저로 먹던 밥만 먹으면 되는 건데 말이죠. 수익이 중요한 카드사 입장에서도 고민되긴 마찬가지입니다.
③ 국내 환경에서 애플페이는 가맹점주가 먼저 나서서 움직일 요인도 적습니다.
삼성페이는 시골 국밥집 아주머니도 어떻게 결제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자꾸 고객이 들고 와서 요구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하는 게 그리 어렵지 않으니까 가능한 일입니다. QR 기반의 지역화폐도 비슷합니다. 많은 고객이 직접 요구하기에 가맹점주가 학습당하는 겁니다. ‘당하는’이 중요합니다. 새로운 결제수단을 실제로 사용하며 가맹점 매출에 영향을 줄 정도로 빈도가 높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인 거죠.
애플페이가 출시되면 아이폰 유저들은 자신이 자주 가는 매장의 사장님에게 애플페이 되게 해 달라고 요구할까요? 애플페이가 안된다고 하면 화를 내며 나가버릴까요? 물론 열혈 팬들도 있으시겠지만, 대부분 가지고 있는 실물 카드를 찾아 내밀게 되실 겁니다.
이게 ‘최대의 문제’입니다. 애플페이 하나로 모두를 커버할 수 없기에 결국 카드를 가지고 다니게 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이런 대안이 있으면 가맹점주와 싸우지 않게 됩니다. 그러니 가맹점주는 굳이 NFC 도입을 챙기지 않게 됩니다. 일종의 악순환입니다.
결제시장은 철저한 All or Nothing입니다. 그동안 오프라인 결제시장으로 진격해 온 사업자가 한둘이 아닙니다. 카카오페이, 네이버페이, 페이코 모두 QR 스티커를 뿌리고 NFC 모듈도 놓으며 노력했지만 성공한 사업자가 없습니다. 이들의 전략이 문제가 있었던 게 아니라, ‘익숙함에 대한 도전‘인 게 문제인 거죠.
대안이 없게 한 번에 모든 가맹점에서 되게 하는 것만이 오프라인 페이 시장에서 이기는 길입니다. 국내에서 이걸 해낸 건 삼성 페이가 유일합니다. 기술적으로 가맹점 인프라를 그대로 사용할 수 있었기에 가능했던 거죠.
결론: 애플페이로 인한 큰 변화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 NFC 인프라 확대의 단초가 될 것이며,
- 온라인 결제에서 어느 정도는 기존 간편 결제의 M/S를 빼앗을 것입니다.
애플페이는 대형가맹점 위주로 시작할 것임이 이미 예고되었습니다. 국내 27개 VAN사중 6개사가 전산개발 중이라는 소식이 그 의미입니다. 전 가맹점에서 사용될 수 있다면 모든 VAN사들이 다 개발에 참여했을 겁니다. 하지만 애플페이가 출시된다면, 어떤 조건이건 많은 팬들이 신청할 겁니다. 애플페이 전용카드가 아니라 현대카드의 모든 상품이 다 된다고 하면 더 편리하게 등록하고 사용하겠죠.
오프라인 어디 어디 매장에서 사용 가능하다는 정보가 빠르게 퍼지며 팬들 사이에 공유될 겁니다. 그래서 단말기가 없던 대형가맹점들도 NFC 단말 설치를 고민하게 될 거고요.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논란은 잦아들 겁니다. 되는 곳에서 사용하는 패턴에 고객들은 익숙해질 것이고, 애플페이의 집객력을 두고 가맹점들의 판단도 갈리겠죠.
한편 애플페이 출시 자체는 NFC 단말 보급에 대해 사회 전체가 관심을 가지고 논의가 시작되는 계기가 될 겁니다. 우리나라는 딱 10년 전인 2012년, USIM 기반 모바일카드로 NFC결제에 도전했지만 크게 화제가 되지 못했습니다. 결제 인프라는 업계에서나 관심을 갖지 일반인들은 관심 없습니다. NFC 결제가 화제가 되는 것도 아이폰이니까 가능한 거죠. 향후 어떤 결제시장의 이벤트도 이 정도로 주목받기는 어려울 거라고 생각됩니다.
해외에서는 주로 보안 이슈로 NFC 결제가 확산되고 있는데요. 삼성페이도 NFC 결제를 지원하기 때문에 그동안 논의되지 못했던 결제방식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질 겁니다. 소문대로 현대카드가 1년을 독점 운영한다고 하면 독점이 풀리는 시점부터 뜨거워질 것 같네요.
반면 온라인 결제는 인프라 이슈가 덜하기 때문에 (물론 영업의 이슈는 있습니다만) 오프라인보다 빠르게 활성화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현대카드 앱카드 내에 애플페이 결제를 옵션으로 넣는다면 바로 온라인 결제에 반영 가능할 것이라서요. 모바일 결제창에서 아래의 순서대로 진행되겠죠.
신용카드 결제 → 현대카드 선택 → 현대카드 앱카드 구동 → 애플페이 선택
만약 전용카드로 출시되는데 그 카드가 서비스는 별로 안 주고 연회비는 높다면 모를까, 애플페이 도입은 현대카드에게 손익 측면에선 도움이 되지 않을 겁니다. 대신 현대카드는 혁신을 선도하는 이미지를 얻겠죠. 과거 kt가 아이폰을 도입하며 skt 보다 부족했던 혁신성을 얻은 것처럼, 현대카드 역시 미래지향적인 이미지를 확보할 수 있을 겁니다.
아직은 뭐하나 공식적인 게 없으니 추론은 이 정도입니다. 상품 구성, 수수료, 기술방식, 인프라 확보 방안 등 저도 궁금한 게 참 많은데요. 연말까지 재미있게 관전해 보고자 합니다. 간만에 빅이벤트이다 보니 혼자 흥미진진하게 보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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