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락부자 vs 벼락거지. 처음에 ‘벼락거지’라는 단어를 접했을 때는 그 신박함에 무릎을 쳤습니다. 그러나 이런저런 글도 접하고 주변 분위기를 보니, 이게 그냥 웃을 일이 아니란 생각이 들더군요. 벼락부자의 카운터 워드인 벼락거지, 의미심장한 단어입니다.
돈값이 너무 싼 세상이 되어가고 (낮은 이자율), 월급만 제자리걸음이다 보니 (저만 그런 것은 아니죠?) 어찌 보면 우리 모두 투자에 등 떠밀려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투자를 한다기 보단 투자 당한달까요? 직장생활 16년 하면서 이렇게 벼락부자 이야기를 많이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큰일 날 것 같은 세상입니다.
벼락부자와 벼락거지를 나눠버리는 주범은, 과거에는 부동산과 주식이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부동산은 부자와 빈자를 나누긴 했지만 ‘벼락’이란 단어를 쓰기에는 좀 약했습니다. 오래 걸리는 편이니까요. 주식은 벼락부자가 간혹 보이긴 했습니다만 주변에 승자보단 패자가 훨씬 많았죠.
그런데 코인은, 가상화폐는 앞의 둘과 좀 다른 양상을 보이며 벼락부자 양산에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상·하한선이 없는 등락 폭이며, 24시간 계속되는 거래소며… 몇억을 베팅해서 수백억을 벌고 사직서를 냈다는 전설적인 이야기들이 여기저기서 들려옵니다. 와, 난 뭐지. 나는 누구고 여긴 어딘가. 핸드폰을 꺼내 업비트를 열어봅니다. 시뻘건 숫자들이 저를 막 유혹해옵니다. ‘일해서 언제 돈 버나 인생 한방이지’라는 생각이 살살 들면서 적금 깨서 살짝만 해 볼까 하는 생각이 막 들죠. 적금 이율이 5%도 안 되는 세상인데, 코인 세상에서는 단 몇 초에도 왔다 갔다 하는 이율이니까요.
정신을 차려 보니 이미 돈은 케이뱅크 계좌에 이체되어 있습니다. 업비트로 옮겨서 KRW(원화)가 충전되고 나면, 수백 개의 코인들이 이미 다 제 것 같습니다. 봐도 잘 모르면서 차트를 하나씩 보다가 ‘어휴 이게 좀 빠졌네 이거나 들어가자’ 합니다. 자기 딴에는 참 합리적이라고 만족하면서 매수를 합니다.
사고 나선 신경 쓰입니다. 거북이 같던 적금이 아니라 당장이라도 천장을 뚫을 것 같은 코인인데, 어떻게 가만히 두고 볼까요. 힐끔힐끔 폰을 봅니다. 밥 먹을 때도 보고, 자기 전에도 보고, 자다가도 보고, 보다가도 자고…
왜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쓰냐고 물으신다면 제가 다 겪어봐서입니다. 올해가 아니라 5년 전부터 말이죠(….!?) 오늘은 제가 5년간 해 본 코인 투자에 대한 저 나름의 단상을 풀어보고자 합니다.
1. 2017년, 코인 투자에 빠지다
케이뱅크 카드 오픈 때문에 정신없이 지나갔던 2017년 가을, 업비트의 등장과 함께 주변에서 코인 이야기가 하나둘씩 들려왔습니다. 아무개가 얼마를 벌었네, 너는 이더리움을 샀냐 나는 퀀텀을 샀다… 삼삼오오 직장인들이 모이면 그 이야기를 해댔죠. 나름 금융권 종사자이니 경험은 해봐야 하지 않을까, 라는 동기부여를 하며 저도 슬쩍 100만 원만 담가 보았더랬습니다.
초심자의 행운이 무섭습니다. 하루 만에 10만 원이 벌렸던 거죠. 오호라 이거 봐라? 하면서 100만 원을 더 넣습니다. 오오, 또 돈이 복사됩니다. 200이라고 하면 왠지 마음이 허하니 다른 데 있던 돈 300을 꺼내와서 500을 만듭니다. 본디 한국 사람은 1, 3, 5, 10 이렇게 가는 거 아니겠습니까? 달리 축의금을 저리 내는 게 아닙니다.
이런 생각에 의거하여, 500으론 좀 아쉬우니 500을 더해 천만 원이 됩니다. 그런데 계속 수익이 납니다? 이쯤 되면 이미 제 마음속에선 저는 코인 마스터입니다. 나카모토 사토시도 제 앞에서 코인 강의를 들을 것 같습니다. 적금도 깨고, 여윳돈을 하나둘씩 모아서 던져 넣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2017년 10월부터 12월까지 여윳돈을 모두 영끌해서 외제차 한 대 값을 투자했습니다. 그걸로 3개월 동안 1,800만 원을 벌었습니다. 코린이가 3개월 만에 말이죠.
갑자기 회사를 왜 다니는 것인지 현타가 오기 시작합니다. 월급을 출근일 수로 나누어보며 제 일당을 가늠해봅니다. 그냥 집에서 업비트만 바라보고 있어도 회사보단 더 벌 것 같습니다. 출근해서 성실히 일하는 사람들이 바보같이 느껴졌습니다. 노동의 가치를 이때처럼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2018년 1월이 되고, 슬슬 이상한 분위기가 조성됩니다. 유시민 작가님이 코인 투자를 방송에서 성토하고, 정부에서 가상화폐 투자를 단속하겠다는 이른바 ‘박상기의 난’도 일어납니다. 자꾸 코인들이 감기에 걸렸는지 새파래집니다. 하루 이틀 아프고 말 줄 알았는데, 자꾸 오래 아픕니다.
이때 도망갔어야 하는데, 웃으며 버텼습니다. 건강한 조정이라고. 다시 오를 거라고 믿으며 말이죠.
2. – 95%를 경험하다
2018년 상반기를 지나며, 제 얼굴도 코인 색깔만큼이나 창백해져 갔습니다. 업비트 앱을 깔았다가 지웠다가를 몇 번을 반복했는지 모릅니다.
마이너스 95%. 그 당시 제 업비트 계좌입니다. 초현실주의 그 자체였습니다. 2000년대 초반에 열심히 하던 ‘피망 맞고’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때는 하루에 몇억씩 고스톱 머니로 잃어도 그러려니 했습니다. 다음날이면 게임머니가 들어왔거든요. 근데 이건 자고 일어나도 복구가 안 되네요?
아재들은 기억하시겠지만 피망 맞고는 쓰리고 이후부터는 화투패를 열 때마다 무시무시한 채찍 소리가 막 나는데, 제 마음속에서 채찍이 휘몰아치고 있었습니다. 덜덜.
인터넷 게시판 여기저기서 비명이 난무합니다. 한강 수온을 물어보는 글이 남 이야기 같지가 않았습니다. 제 스스로 저지른 일이니 누굴 탓할 수도 없고 죽겠더군요. -95%라는 숫자는 생전 처음 봅니다. 학교 시험에서도 100문제 중 95문제를 틀리기는 쉽지 않습니다. 찍어도 저거보단 잘 나오지 않을까요? 그나마 잘하지도 못했던 주식에서도 본 적 없는 숫자인데, 살면서 했던 가장 큰 투자에서 저렇게 될 줄이야.
무념무상의 체념 모드로 들어가기까지 몇 개월간, 현실을 인정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사람은 적응의 동물입니다. 점점 이성을 되찾았고, 냉정하게 상황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일단 빚으로 투자한 게 아니어서, 기간의 압박이 없는 것이 정말 다행이었습니다. 가치를 고민했던 ‘노동’을 계속하고 있었기에 장기전을 할 수 있었습니다. 목돈 들어갈 일이 없는 게 아니었던 터라 팔고 남아있는 5%라도 건질까 생각해 봤는데요. 이미 너무 작고 귀여워져 버렸고, 기왕 이렇게 된 거 이판사판이라는 자포자기 모드가 되더군요. 그리고 2017년 하반기 그 광기의 순간을 복기해보며 배운 게 있었습니다.
- 그때 내가 돈을 번 건 내가 잘해서가 아니라 시장이 좋았을 뿐이라는 점.
- 사람들이 얼마나 비이성적인지 확인했고, 언젠가 사람들은 다시 비이성적이 될 수도 있다는 점.
우습게도 여기에는 2018년 1월 제가 썼던 페북의 제 글이 큰 힘이 되어주었습니다. 자기 글에 자기가 위로받다니 좀 이상합니다만, 당시의 미쳤었던 저를 돌아보면 반드시 다들 또 미칠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버티기 모드로 들어갑니다. 그때만 해도 한 1년 버티면 될 줄 알았지만요.
3. 5년의 세월이 흐르다.
이거야 원, 『빠삐용』이나 『몽테크리스토 백작』도 아니고 한 챕터 넘겼는데 ‘5년 후’ 라니. 네, 그렇게 5년이 흘러갔습니다. 비트코인이 600만 원, 이더리움이 20만 원이 안되던 때를 지나,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해도 여전히 시퍼런 제 계좌를 보면서, 5년이 흘렀습니다.
참고로 저는 상투의 상투 시점에 물려 있었습니다. 종목도 10여 가지는 되었고, 대장인 비트코인의 제 평단은 2,700만 원 정도였습니다. 그야말로 산 정상! 에베레스트는 안 가봤지만 가본 것 같은 기분은 기분 탓이겠죠. 구조대는 오지 않습니다.
그 와중에, 뜻밖에도 -95%의 업비트 계좌는 제게 나름의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친구들을 만나 술이나 밥을 먹을 때 조용히 앱을 보여주면 다들 말을 잇지 못하며 밥을 사주고 술을 사주었습니다. 이후에도 웬만해선 밥을 막 사줍니다(고맙다 친구들아).
모이면 다들 측은한 얼굴로 바라봅니다. 자기들끼리 눈빛을 교환하다가 어렵사리 어찌 되었냐고 물어봅니다. 말없이 다시 앱을 켜서 보여주면 친구들이 다시 땅이 꺼질듯한 한숨을 쉽니다. 몇몇 친구는 캡처 화면인 줄 알았는지 웃으며 뻥치지 말라합니다. 그러다 폰 화면을 만져보고는 실제 업비트 화면임에 당황하며 말을 잇지 못한 적도 몇 번 있었습니다.
사실 진짜 힘이 되었던 것은, 일에 더 집중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어휴, -95%의 주인공이 어딜 농땡이를 피우겠습니까. 일이라도 열심히 해야지, 하는 자동 근로 의욕 증진 효과. 무시 못합니다.
실제로 이 기간 동안 케이뱅크 카드계 구축 완료, 토스 카드 프로젝트 완료, 정부 재난지원금 프로젝트 완료… 제 인생에서 굵직했던 프로젝트들을 모두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 일에 집중하니까 업비트 생각도 안 나고 좋았습니다. 앱도 한 달에 한번 들어가 볼까 말까 하게 되더군요. 사지도, 팔지도 않고 버텼습니다.
2020년 하반기 들어 가상화폐 시장이 다시 활발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바빠서 신경 쓰지 못하고 있는 사이 무슨 일인가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이 제가 산 평단보다 올라서 막 가고 있었습니다. 5년 만에 빨간색 종목이 생겨났습니다. 이것도 좀 현실감이 없었습니다. 5년간 이 순간만 기다렸습니다. 당장 팔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빨간색이 되자 팔지 못하겠더군요. 겨우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2종목 뿐이었는데요. 다른 알트코인들은 여전히 빈사상태였기에, 전체 계좌는 비트 이더의 상승에도 불구하고 파란색이었습니다. 5%, 10% 올라도 빼기가 싫었던 거죠.
그래서 그냥 두었습니다. 어차피 이번 생에는 복구가 어려울 수 있다고 늘 생각한 터라, 저도 느긋합니다. 뭐 또 떨어져도 -95%도 경험한 마당에 뭐가 더 아쉽겠어요. 여차하면 USB에 다 넣어서 제 무덤에 같이 가져가면 됩니다. 외제차 여기 잠들다… 묘비명도 나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냥 두었습니다.
몇 개월이 더 흐르고, 2,700만 원에 샀던 비트코인이 8,000만 원을 돌파했습니다.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이 300~400% 수익률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트론과 에이다도 그랬죠. 다른 알트코인들은 여전히 파란색이었지만, 드디어 2017년 말의 원금이 복구되었습니다.
5년 전에는 그렇게 기다렸던 순간인데 막상 오고 나니 담담하고 허무했습니다. 조용히 코인을 정리했습니다. 해피엔딩일까요, 아니면 ‘헬피엔딩’일까요? 저는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합니다. 원금을 복구해서가 아닙니다. 그보다 더 큰 걸 배워서입니다.
- 배운 점 1 : 투자는 심리
- 배운 점 2 : 코인은 미술품
- 배운 점 3 : 잊어서는 안 될 노동의 가치
한 가지 한 가지가 모두 의미심장한 배움입니다. 글이 너무 길어지니까 이건 다음 편에 적어보겠습니다. 어떤 글이 될지 기대해 주시길 바랍니다.
꽤 오랫동안 물려 있었지만, 코인은 사기다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진 않습니다. 사람들이 가치를 인정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투자(또는 투기)가 시작된다고 봅니다. 애초에 돈 자체가 윤리와는 거리가 있는 터라, 그 모든 것을 인정해야겠죠. 불완전한 우리 인간이 하는 행위인데 애초에 완벽함을 추구하는 것이 욕심인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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