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organ Housel이 기고한 「The Rich And The Wealthy」를 번역한 글입니다.
레지널드 밴더빌트(Reginald Claypoole Vanderbilt)는 심한 불화, 연약한 자존심, 그리고 불가능한 기대치를 가진 가문에서 태어났다. 이 모든 이야기는 거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레지의 증조부 코넬리우스 ‘코모도어’ 벤더빌트(Cornelius “Commodore” Vanderbilt)가 1877년에 세상을 떠났을 때, 뉴욕 데일리 트리뷴은 세계에서 가장 돈이 많았던 사람의 유산에 대한 기사를 썼다.
밴더빌트의 사례는 ‘돈 위에다 가문을 세우려던’ 어리석음을 잘 보여준다. 코모도어의 말년을 지배했던 생각은, 모은 돈을 대대로 밴더빌트 가문의 상징으로 만들고 가문의 가장을 미국 사회의 영원한 권력자로 세우는 것이었다. 세계에서 이렇게 빨리 부를 일군 사람은 없었고, 그 돈이 상속자들에게 이렇게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 경우도 없었다.
그러나 밴더빌트의 돈은 현재의 상속자들에게 어떤 행복도, 고귀함도 가져다주지 않았다. 몇 년 안에 그 모든 돈이 사회로 흘러 들어갈 것이라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상속자들은 돈을 다 써버릴 것이다. 돈은 국가의 방대한 순환 시스템에 흡수될 것이다.
세상을 떠난 철도왕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갈 것이다. 만일 그가 말년에 그토록 마음에 두고 있던 것을 돌보기 위해 지구를 다시 찾는다면, 자신이 가문을 세우는 기술에는 문외한이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실제로 일어난 일은, 이 가혹한 의견보다도 훨씬 더 심각했다. 코넬리우스 밴더빌트는 상속자들에게 오늘날 금액으로 3,000억 달러를 남겼으나, 이 돈은 50년 만에 사라졌다.
이어진 3대 동안, 그들의 주된 목적은 가장 큰 집을 짓고 명문가의 일원과 결혼하는 것으로 압축되었다. 첫 세대의 상속자들은 적어도 가업을 경영하면서 기업가적 감각을 유지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 ‘가업’은 불안과 분노로 변했다. 1875년 한 신문의 기고란에 따르면, “사교계 명사들은 돈에 상관없이 쾌락을 탐닉하고 있다”고 적고 있다. 밴더빌트는 “즐거움과는 상관없이 돈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것으로 응답했다. 이길 수 없는 경기였고, 그렇게 모두가 패했다.
레지널드는 상당한 재산을 물려받은 마지막 밴더빌트 중 한 명이었다. 21번째 생일에 그는 1,250만 달러(오늘날의 금액으로 약 3.5억 달러)를 받았다. 가족 전기 작가인 아서 밴더빌트(Arther Vanderbilt)는 이렇게 말한다.
제멋대로이고 게으르며, 태만했던 레지널드는 지루하지 않게 사는 것 이외의 책임감이나 목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직업을 가진 적이 없었고, 일이라곤 전혀 해본 적이 없었다. 누가 직업을 물으면 ‘젠틀맨’이라고 대답했다.
레지널드가 자신을 돋보이게 만들 수 있었던 유일한 방법은 부유한 플레이보이의 삶을 사는 것이었다. 그는 그 방면에 헌신적이었고, 완벽한 기술을 선보였다.
레지널드는 브랜디와 도박을 좋아했다. 브랜디는 그를 45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나게 만들었다. 간경화가 너무 심해서 간의 혈류가 끊겨 식도로 밀려 올라갔고, 정맥이 갑자기 파열되어 피 웅덩이 속에서 질식사하게 만들었다. 도박은 그에게 파산을 남겼다. 레지널드의 빚을 갚고 난 후 그의 유언은 무용지물이 되었다. 그가 상속자들에게 약속한 액수는 숫자에 불과했다.
레지널드의 손자 앤더슨 쿠퍼(Anderson Cooper)는 가문의 돈을 상속받지 않은 최초의 밴더빌트 중 한 명이었다. 오히려 그것이 축복이었을지도 모른다. 쿠퍼는 유산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저는 유산이 자주성을 없앤다고 생각합니다. 유산은 저주입니다. 제가 자라면서 황금이 든 항아리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느꼈다면, 지금처럼 의욕적으로 행동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밴더빌트의 망령에서 풀려난 것은 그가 처음인 것 같았다.
‘밴더빌트의 망령’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
나의 1달러 지폐와 다른 사람의 1달러 지폐를 구별할 수 없다는 점에서, 돈은 대체가 가능하다. 하지만 사람들이 1달러에서 얻는 가치는 각각 다르다. 심지어 소득과 순자산이 같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그렇다.
부자가 되는 것과 계속 부자로 사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둘은 완전히 다른 세계다. 훌륭하게 부자가 된 사람들 중 많은 수가 계속 부자로 살지 못한다. 돈이 많은 것(rich)과 부자(wealthy)의 차이를 알아야 하는 이유다.
개인적 구분이지만, 다음과 같은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돈이 많다는 것은 물건을 살 돈이 충분하다는 의미다. 반면 부자는 돈을 절약하고 저축한 돈을 투자한다. 이를 통해 일정 수준의 무형의 즐거움을 꾸준히 누린다. 즉, 시간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을 때 하고 싶은 사람과 하고 싶은 만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밴더빌트 가문의 이야기가 흥미롭다. 그들은 지구상에서 가장 돈이 많았지만, 가장 부자는 아니었다. 그들에게 돈은 하나의 자산이라기보다는 사회적 부채에 가까웠다. 그래서 지위를 쫓으면서 인생을 허비하다가 대부분이 비참해졌다.
조지 밴더빌트(George Vanderbilt)는 6년 동안을 거의 4,000평짜리 빌트모어 저택을 지으면서 보냈다. 그 저택은 40개의 가족 침실과 400명의 상주 직원을 지니고 있었지만, 정작 조지는 자신의 생활 패턴과 맞지 않아 거의 시간을 보내지 않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택을 유지하는 데 너무 많은 돈이 들어갔다. 저택을 판 돈의 90%가 밀린 세금을 납부하는 데 쓰였고, 저택은 관광 명소로 바뀌었다. 밴더빌트 가문에는 비슷한 이야기들이 너무 많아서, “무엇이 요점인가?”라고 되물을 수도 있다.
뉴욕 데일리 트리뷴이 일찌감치 깨달았듯이, 그들의 목표는 훌륭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많은 돈뿐이었다. 돈이 평가의 기준이었다. 더 나은 삶을 꾸리기 위해 돈을 사용하기보다, 돈을 위주로 삶이 꾸려졌다. 그래서 그들이 받은 상속은 자산이라기보다는 감당할 수 없는 생활 양식을 뒷받침하는 부채에 가까웠다. 이는 그대로 다음 세대로 넘어갔고, 이윽고 아무것도 남지 않앗다.
‘진정한 부자’가 되는 법
1903년 윌리엄 도슨(William Dawson)이 펴낸 책 『 The Quest for the Simple Life』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사람들이 부에 대해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있다. 돈이 가져다주는 모든 즐거움은, 절약이 필요 없게 되는 지점에서 사라진다는 것이다. 은행 계좌를 확인하지 않고도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 살 수 있는 사람은, 무엇을 사든 아무런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
나심 탈레브의 말도 같은 의미를 전한다.
기록에 따르면, 우리는 사회에서 돈이 점점 더 많아질수록 그 수준 안에서 살아가기 힘들어진다. 우리는 부족보다 풍요를 더 감당하기 어렵다.
밴더빌트 가문의 사례는 극단적이지만, 오늘날 많은 일반인들의 처해 있는 문제를 확대한 것이나 다름없다. 인플레이션으로 조정한 평균 가계 소득은 지난 70년 사이 2배 이상 늘어났지만, 사람들의 기대치 역시 2배 이상 높아져서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오늘날 주택 구입 가능성이 이전 세대보단 낮은 이유 중 하나는 새로 지은 평균 주택의 크기가 이전 세대보다 3분의 1이 더 크기 때문이며, 수백만의 미국인들이 충분한 저축을 가지고 은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과 몇 세대 전만 해도 은퇴라는 개념 전체가 꿈이었다.
누구나 많은 돈을 갖고 싶어 한다. 좋은 것을 살 수 있으니까. 하지만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진정한 부자’가 되는 것이다. 돈으로 더 행복해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 중 하나는 자립을 이루는 것이다. 자립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립이라는(지위를 포함한) 물건에 대한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것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골대를 움직이지 말아야 하고, 기대치가 너무 높지 않은지 계속해서 점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돈은 자산을 가장한 부채가 될 것이다.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쓰는 것 이상으로, 돈의 지배를 받게 될 것이다.
원문: 피우스의 책도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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