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SLR, 미러리스. 요컨대 비싼 카메라에 대해 사람들이 흔히 하는 착각이 있습니다. 비싼 카메라를 샀으니, 핸드폰 카메라보다는 훨씬 나은 결과물이 척척 나올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지요. 그러다 사진을 찍어보고는 당황하고 맙니다. 이 날것의 사진이 그 가격을 들여 얻을 만한 것이었다? 라는 충격에 빠지는 것이지요.
물론 이에 대해서는 사람에 따라 여러 의견이 있겠습니다만,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이는 사람마다 ‘귀찮음’을 감당해내는 자세가 다르다는 데에서 출발합니다.
1. 핸드폰 카메라를 쓰는 사람들의 성향
핸드폰 카메라를 선호하는 사람은 사진 찍으면서 귀찮은 게 싫으신 분들이 많습니다. 반면 후자는 작품을 위해서라면 귀찮음을 감내하는 성향의 분들입니다. 들고 나가는 자세에서부터 차이가 나니까요. 순전히 사진만을 위해 바디와 렌즈 합쳐 ‘최소’ 5kg 정도의 무게를 들고 다닌다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폰카 찍으시는 분들은 후보정도 귀찮아합니다. 최근 유행하는 카메라 앱은 대부분 후보정 앱이 아닙니다. 아예 찍기 전부터 ‘이렇게 바뀌어 찍힌다’라는 걸 보여주는 선보정 앱들이 절대적으로 인기가 있죠.
이 말인즉슨, 폰카 제조사와 앱 제작사들은 찍는 사람들이 후보정을 자주 하지 않되, 결과물은 보정이 잘 된 걸 선호한다는 걸 알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자동적으로 최대한 보정이 완료되어 나오는 걸 목표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만듭니다. 광각 사진과 망원 사진을 동시에 촬영해 DSLR 특유의 아웃포커싱을 합작으로 구현해 내는 게 대표적이라 하겠습니다.
폰카 제조사와 앱 제작사 입장에서 사진의 목적은 셔터 누르는 순간 모든 게 끝나게 하는 거예요. 귀찮아하는 고객을 위해서 말입니다.
2. DSLR을 쓰는 사람들의 성향
반면, DSLR과 미러리스 등 렌즈 교환형 본격파 카메라는 다릅니다. 제조사들은 ‘이 정도로 무겁고 큰 카메라를 일부러 챙겨서 사진 찍을 정도의 사람이라면, 후보정도 당연히 직접 하는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다‘라는 전제하에 제품을 만들고 설계해요. 그것도 아주 잘할 거라고 말이죠.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자동 보정 기능도 들어는 갑니다만, 진짜 구색맞추기에 불과하죠. 폰카 쪽과는 비교도 안 됩니다…)
그래서 이런 카메라로 찍는 사진들은 후보정을 최대한 쉽고 편하게 할 수 있도록 찍힙니다. 어렵게 말하자면 보정 관용도가 높도록 데이터 량을 높이고, 제조 연속성이 강하며 다이나믹 레인지의 폭이 넓으면서도 채도는 미들레인지에서 연한 수준이 되도록… 등등.
즉 완성된 사진이 아니라 최고의 재료를 만들어주는 게 고급 카메라의 진정한 존재 의의인 겁니다. 그 재료로 어떻게 요리를 하느냐, 이것은 포토그래퍼 각자의 영역이고요. 폰카와는 달리, 고급 카메라는 셔터를 누르는 게 사진의 시작입니다. 셔터 눌러 나온 덩어리는 아직 완성까지 가려면 한참 먼 거지요.
3. 결론
고급 카메라일수록 수고를 덜 해도 더 뛰어난 결과물을 내어줄 것 같다는 생각은, 사진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착각에 불과합니다. 실제로는 그 반대예요. 수고를 아끼지 않는 사람들이 자기만의 결과물을 더 쉽게 쟁취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도구인 것이지요.
이런 소리를 하는 저도 집구석에서 건담 찍을 때나 DSLR 전원 스위치를 켜지, 밖에는 잘 안 들고 나가게 되네요. 역시 편리성이 이기게 되는 싸움인가 봅니다.
원문: 마루토스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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