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현실은 때때로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하다. 아베 전총리 살해범인 야마가미 데쓰야는 전형적인 분노조절장애, 피해망상 증세를 갖고 있다. 실제로 어제(7월 12일) 검찰 측의 요구로 인해 정신감정을 받기도 했다.
일본검찰이 이런 요구를 선제적으로 한 이유는, 재판에서 야마가미의 변호인이 요구할 게 뻔한 ‘정신적 문제로 인한 형사상 책임능력 부분’, 즉 쟁점을 미리 없애 버리겠다는 뜻이다. 이성적 판단이 가능하기에 계획을 세울 수 있었다(이번 살해계획은 매우 치밀했다)는 전문가들의 견해도 이미 존재한다. 그래서 형사책임 부분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으로 보여지지만, 아무튼 검찰 입장에선 시간을 절약하고 싶을 테니까.
2.
별개로 야마가미의 과거 행적을 보면, 평소에는 과묵한 태도를 유지하다가 뭐에 꽂히면 분노가 장난 아니게 표출되는 성격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직장동료는 물론 학창 시절 급우들이 여러 차례 증언했다. 이로 인해 직장도 오래 다니지 못하고 임시 파견직, 일용직 등을 전전했다.
야마가미는 왜 그런 성격이 되었을까? 타고난 성격 문제도 있지만, 유년기 시절의 파란만장한 가정환경도 영향을 미친 것은 확실해 보인다. 그의 모친은 통일교에 빠져 전 재산을 헌납하고 2002년 파산했다. 당시 야마가미 본인은 명문고에 다니고 있었고, 학교에선 응원단 소속이었다. 나름 간사이 지역의 명문대에도 합격했다. 그런데 등록금마저 모친이 써 버려서(이것도 종교단체에 기부했을 가능성이 크다) 결국 전문학교에 들어갔다가 금세 자퇴하고 자위대에 입대했다.
3년 후 자위대를 제대한 뒤 나름 제대로 살아보겠다고 이런저런 자격증을 따기도 했다(공인중개사 자격증, 전기 관련 자격증 등). 하지만 그를 둘러싼 사정은 나아진 게 없었다. 오히려 친형이 자살하고, 모친과 여동생은 실종되어 지금까지도 연락이 닿지 않는 등 희망 없는 인생이 지속된다. 나중에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구 통일교) 다나카 회장의 인터뷰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모친은 여전히 정신 못 차리고 월 1회 꼴로 교단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고 한다.
3.
아무튼 야마가미는 그런 과정을 거쳐 통일교에 원한을 품는다. 그런데 통일교에 대해 알아보니 ‘기시 노부스케’의 이름이 등장한다. 그는 문선명과 친했던 기시 노부스케가 통일교를 일본에 들여왔다는 사실을 믿게 된다. 참고로 기시 노부스케가 통일교를 일본에 들여왔다는 말은 진위여부가 확실치 않다. 하지만 기시와 문선명이 절친한 사이임은 여러 차례 기록이 남아 있다.
야마가미는 결국 기시 때문에 우리 집안이, 내 인생이 이렇게 됐다고 단정지어버린다. 그런데 기시는 이미 죽고 없다. 그래서 외손자 아베에게 복수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것이다.
이게 중요한 이유는 처음에 야마가미의 진술이 나왔을 때부터, 혹은 지금도 일부 매체는 종교단체 간부를 노렸다가 아베로 타겟을 바꿨다고 보도하고 있다. 하지만 야마가미의 계획을 보면 작년 9월 아베 전 총리가 통일교 산하 단체에 동영상 축하 메시지를 보낸 시점부터 아베를 타겟으로 삼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처음부터 아베를, 그게 아니더라도 적어도 둘을 동시에 노렸다고 추론할 수 있는 것이다. 어차피 아베는 처음부터 타겟이었단 소리다.
2021년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통일교)의 행사에 아베 전 총리가 보낸 기조연성 영상. 야마가미가 암살을 결심하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고 알려졌다.
4.
살해 계획을 세울 때도 그러했다. 그는 동영상을 접한 이후, 그러니까 작년 12월부터 본격적으로 움직인다. 처음에는 사제폭탄을 만들기 시작했지만 이걸로는 확실하게 죽일 수 없을 것 같고, 주위 사람에게도 피해가 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아베 딱 한 명만 노려서 죽일 수 있는 권총으로 바꾼다.
단발 권총에서 산탄총으로 바꾼 것도 그런 의미다. 여러 발 중 한두 발은 맞지 않겠냐는 생각으로, 즉 처음부터 목숨줄을 끊어버리겠다는 계획을 세운 것이다. 무엇보다 범인은 이런 말도 했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까 염려됐다.
즉 일부 언론이 보도하는, 특히 세계일보(?)가 보도하는 ‘외로운 늑대’형 살인자가 아니란 뜻이다. 외로운 늑대는 묻지마 살인, 특히 불특정한 다수를 이유 없이 대량으로 살상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야마가미는 전혀 그렇지 않다. 그는 처음부터 ‘오직’ 아베만을 노렸다.
마치며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 내성적이고 분노조절장애가 있는 범인의 개인적 성격은 중요한 요인이다. 그러한 개인적 성격에는 집안의 파멸이 영향을 미쳤다.
- 집안 파멸의 원인은 모친의 통일교에 대한 전 재산 기부다. 친형은 자살했고, 모친과 여동생은 실종되었다. 야마가미 본인 역시 이래저래 인생이 꼬였다. 그래서 통일교에 대한 적대감이 증폭되었다.
- 통일교를 일본에 들여온 사람이 기시 노부스케라고 믿었다.
- 기시는 이미 죽고 없으니까, 친족이자 후계자인 아베를 검색했다.
- 작년 가을에 아베가 통일교에 보낸 동영상 메시지를 발견했다. 복수해야겠다고 결심하고, 작년 겨울부터 살해 계획에 착수했다.
- 범행 전날 아베의 오카야마현 지원유세장도 가고, 그날 새벽에 총기 테스트도 했다. 이로 미루어 봤을 때 종교단체 간부가 아니라 처음부터 아베를 노린 것이라 보는(아니면 동시에 노린 것이라 보는) 견해가 우세해졌다.
- 참고로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구 통일교)의 다나카 회장은 야마가미 집안의 파산 등등을 알고 있고, 요즘도 행사장에 실종된 것으로 알려진 모친이 참석한다고 증언했다.
결과적으로 기시 노부스케로부터 시작된 ‘아베 삼대’는 결국 기시로 인해 끝난 셈이다. 여러모로 너무나 극적이다.
덧.
나는 야마가미를 옹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일본 내에서도 그가 일으킨 행위에 대해 이해가 간다며 동조하는 사람들이 조금씩 나오고 있다. 하지만 야마가미 본인의 삶이 아무리 엉망이었다고 해도, 아베를 타겟으로 삼고 살해한 것은 명백한 범죄다. 그 둘을 구분해서 생각해야 할 것이다.
원문: 박철현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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