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사회에 고마웠던 점 하나가 문득 생각나 적어보자면.
今何やってる?(지금 뭐 하는데?)
별것 없는 이 한마디에 모든 게 담겼다. 아는 분은 알겠지만 나는 일본에 도망치듯 왔고, 일본 사회 안에서의 정규교육이라곤 달랑 6개월만 받았다. 일본어 학교는 1년 다니긴 했지만 초창기 6개월은 거의 야메로 다녔고(밤일이 너무 빡세서 학교 가면 거의 잠만 잤다), 후반 6개월만 제대로 다녔다.
즉 공인 학벌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거의 무학력자에 가까웠는데 어떻게 취직을 하고 명함을 가지거나, 또 프리랜서일 때는 자기 명함을 스스로 파서 들고 다니면서 일을 했다. 위에 적은 말은 누구와 인사를 하거나 소개를 받아 처음 보는 사람과 만났을 때 그가 나에게 물어보는 말이다.
지금 뭐 하는데?
그러면 나는 지금 내가 하는 일을 설명한다. 그걸로 끝이다. 물론 간혹 소개해준 이와는 어떻게 알게 되었는가 묻는 사람도 있지만 첫 만남에서는 물어보지 않는다. 어느 정도 일을 같이했을 때, 즉 친근감이 생겼을 때 물어본다. 뭐 그 외에도 친하게 되면 이것저것 물어보고 대화도 나눈다.
그런데 이쪽에서 먼저 말하지 않는 이상 물어보지 않는 거 하나를 꼽으라면, 바로 학교다. 처음엔 느끼지 못했는데 학교를 어디 나왔는지 먼저 물어보는 사람이 별로 없다. 당연히 ‘어느 대학 나왔냐?’는 말은 한 번도 들어보지 않은 것 같다. 지금 뭐 하는지가 중요하다. 그전에는 뭘 했냐 정도는 물어도 어느 대학(どこの大学)을 나왔느냐고는 안 물었고, 나도 물어보지 않는다.
어느 날 문득 왜 안 물어보는지 의문이 들어 아내에게 “왜 대학이나 학교 같은 건 안 물어?”라고 질문하니 아내 왈 “왜 그런 거 묻냐?”고 반문해온다. 한국에서는 어디 대학 출신에 학번이 어떻고 하는 걸 많이 묻는다고 하니까 아내는 덧붙였다.
대학 안 나온 사람들은 그럼 어떻게 답하는데? 부끄러운 질문이네. 그런 거 물어보면 부끄럽지 않아?
물론 일본에도 그런 거 물어보는 사람이 있다. 와세다 같은 곳은 오비들이 취업 활동하는 후배들 찾아가서 단합대회도 하고 한다. 그런데 그런 모습을 부끄럽다고 말하는 사람이 대다수지 싶다. 아내처럼 말이다.
학력 따윈 모르고 같이 일했던 사람이 나중에 알고 보면 도쿄대 전기공학박사라던가 옥스포드 출신이라던가 컬럼비아 출신이라던가 그런 경우가 많았다. 아, 무학력자 치고는 꽤 좋은 학교 출신들과 일을 했네…
얼마 전에 한국에 갔을 때 모임을 가졌고 서로서로 자기소개를 했다. 어떤 테이블인지 기억이 안 나는데 나한테 누가 ‘몇 학번이세요’라고 물었다. 지금에사 밝히지만 그때 상당한 위화감이 들었다. 첫 만남에서 학번 물어보는 거 하지 말자. 그냥 그뿐이다.
원문: 박철현의 페이스북